언제부터인가 대신 '책'을 읽어주는 프로그램들이 등장했다. kbs의 <tv, 책을 말하다>에서 <tv, 책을 보다>로 면면히 이어지는 프로그램이 그것이요, <이동진의 빨간 책방>을 위시한 팟 캐스트의 여러 책 관련 프로그램들이 그것이다.  처음엔 '책'을 소개해 준다고 하던 취지들이, 어느샌가 바쁜 생활 속에서 진득하게 책을 붙들고 앉아있기 힘든 사람들을 위해 '정보'로서, 혹은 '힐링'으로 대신 책을 읽어주겠다고 입장이 바뀐 프로그램들이다. <tv, 책을 보다>는 '책 소개 프로그램의 틀을 벗어나 책에 대한 서로 다른 시선 or 책에 대한 색다른 주장을 다룬 강독쇼로 시청자와 공감의 폭을 충분히 넓히고 이해를 공유함으로 인문학적 재미의 확대를 목표로 한다'며 '독서 권장'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고, 9월 15일 첫 선을 보인, tvn의 <비밀 독서단> 역시 책 읽을 시간 없는 시청자들 대신 책을 읽어 주겠노라 당당히 밝힌다. 


이는 성인 세 명 중 한 명이 한 해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실질 문맹률 oecd 꼴찌의 대한민국의 현실을 반영한, 자구지책이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시기마다 사람들을 위로하고 길을 밝혀준' '책'을 포기할 수 없는 문화적 안간힘이기도 하다. 거기에, 책은 읽지도 않으면서, '인문학'에는 솔깃한 기이한 '인문학 열풍'의 편승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게 '책을 읽지 않는 문화 속에서 탄생한 '책 읽어주는 프로그램'에 또 하나의 새 프로그램이 얹혀졌다. tvn의 <비밀 독서단>이 그것이다. 





익숙한 듯 새로운 독서 프로그램

tvn의 <비밀 독서단>은 기존 대신 '책'을 읽어주는 프로그램의 전통을 따라하면서, 그 '교양'적 성격을 조금 더 희석시키고자 노력한, 즉, '예능화'한 책 읽어주기를 시도한 프로그램이다. '예능화'한 책 읽어주기 프로그램이라니, 잊혀진 슬픈 전설인 2013년 3월 종영된 강호동의 <달빛 프린스>가 떠올려진다. 그리고 보면, <달빛 프린스>는 최근 범람하고 있는 '인문학적 열풍'에 혜안이 밝았던 거였다. 단지, 그 혜안의 방향과 코드가 잘못되었을 뿐, 그렇게 첫 단추부터 '근육질 강호동'을 내세워 불협화음을 빚어 실패했던 책읽기의 예능화가 tvn으로 오면 어떻게 달라질까?


새로인 시작한 <비밀 독서단>,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새 프로그램인데 낯설지 않다. 우선은 단원들이 모여 앉은 스튜디오가 이미 tvn에서 선보인 인문학적 토크쇼 <젠틀맨 리그>와 유사하다. 심지어 그 구성도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인기를 끌었던 <킹스맨>을 패러디 한 듯한 젠틀맨들을 등장시켜, 매너 대신, '인문학적 지식'이 사람을 만든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젠틀맨리그>처럼, 마치 원탁의 기사들을 연상시키는 중세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스튜디오에 비밀 단원들이 모여 각자 준비한 책을 소개하는 방식이 크게 이물감을 주지 않는다. 그렇게 '인문학적 지식'을 통해 '매너'가 사람을 만들 듯 제대로된 젠틀맨이 되어가고, 비밀의 책을 통해, '기사'가 되어가는 어떤 제식이, '교양'으로서의 격을 만든다. 그렇게 '인문학적 지식'이나, '독서'는 거창한 목적이나, 필수불가결한 효용대신, 거리의 양아치가 젠틀맨이 되어가듯, 멋들어진 삶의 한 방식으로 접근되는 것이다. 


프로그램을 이끄는 사람들의 구성도 대동소이하다. 연예인 + 전문가의 적절한 콜라보레이션을 추구한다. <젠틀맨 리그>가 정재형과 장기하라는 실질적 면모와 상관없이 좀 '지적'이어 보이는 mc  두 사람에 인하대 로스쿨 교수 홍승기, 경제 전문가 이진우, 역사 교사인 김준우를 합세시켰다면, <비밀 독서단>은 개그맨 정찬우에, 데프콘, 예지원, 미술에 일가견있는 아나운서 김범수, 기자 신기주, 베스트셀러 저자 조승연을 합류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엎어치든 메치든 결국 '책'과 관련된 프로그램은 책을 소개하고, 그 내용을 함께 공유하는 형식을 벗어날 수 없다. 과연 이런 천편일률적일 수 밖에 없는 '책소개'의 형식을 <비밀 독서단>은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책읽기의 진부함을 극복하기 위한 비법은?

이런 진부한 형식에 대한 <비밀 독서단>의 해법은 '책으로 입털기'이다. 한 시간 여의 프로그램 동안 다섯 명의 단원이 다섯 권의 책을 소개하듯이, 책에 대한 소개는 짧고 간결하게, 그리고 마치 요리비법의 '킥'처럼, '생명줄'을 통해, 단 한 줄로 책을 설득하고자 한다. 대신, 그 짧은 소개의 부족분을 채우는 것을, 그 책을 두고 '설왕설래'하는 출연자들의 입담이다. 


조승연이 소개한 라 로슈프코의 <잠언과 성찰>을 두고 벌인 데프콘, 신기주 기자와의 설전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전문가로서 야심차게 <잠언과 성찰>을 소개했지만, 그런 소개에 아랑곳하지 않고, 데프콘은 책이 너무 어렵다고 논박한다. 그리고 그 논박에 이어, 이런 잠언 식의 책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거나, 생각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신기주 기자의 반박이 뒤따라 조승연 단원을 무색하게 한다. 심지어 이 날의 책으로 뽑힌 신기주 기자가 소개한 발로 쓴, 사례가 풍부한 말콤 글래드웰의 <다윗과 골리앗>과 비교가 되면 <잠언과 성찰>의 자리는 더더욱 협소해 지고 만다. 하지만, 바로 이것이 그저 교양으로서의 책 소개를 넘어, '책을 가지고 물고 뜯는 재미를 주는 <비밀 기사단>의 묘미이다. 


이를 통해 시청자들은 자신은 읽지도 않았으면서, 마치 그 책을 읽은 양 프로그램에 소개된 책들을 '소비'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이런 책 소개 프로그램의 장단점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렇게 맛깔나게 혹은 감질나게 소개되는 과정을 통해 결국 내 스스로 읽어보게 만들고 싶은 것이 그 장점이라면, 결국 '남의 말'에 불과한 소개를 듣고, 마치 자신이 읽은 것인양 '만족'하게 되는 단점이 그 반대편에 자리한다. 책을 안읽은 사회에서 그나마 이렇게라도 책을 점하게 되면 다행이지만, 그냥 그렇게 책을 소비하고 말 가능성도 남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5. 9. 17. 1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