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부 기자는 H.O.T를 취재하러 다녀오느라 바쁘다. 극중 어린 여주인공은 자동차 카 스테레오를 통해 H.O.T음악을 틀어달라 앙탈을 부리다 교통 사고를 유발한다.

그저 H,O.T면 다 설명되는 어설픈 설정이지만, <돈의 화신>은 마치 <응답하라 1997 >의 경제버전처럼, 지금으로 부터 10년전 한국 사회를 H.O.T를 넣어 배경색을 칠하고, 거기에 '돈'을 향한 욕망에 자신을 거침없이 팔아넘기는 이 사회 지식인층을 등장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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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철, 장영순 작가의 전작 <자이언트>는 6.25 전쟁이 끝나고 개발 독재 시기까지, 돈을 향해 혹은 돈을 이용해 자신의 꿈을 이루고 복수를 완성하려는 인간 군상들을 대하 드라마로 다루었다. 그 시기의 돈을 향한 꿈들은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린 폐허에서 입지전적으로 부를 형성해 가는 방식은 원시적 자본주의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모하고도 무자비한 이른바 '졸부'의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대한민국의 부의 반열을 형성한다.

이제 그들이 부의 몸통을 이뤄 행세하는 1990년대의 대한민국은 어떻게 다시 재편되어 가는가를 장영철, 장영순 작가는 <돈의 화신>을 통해 해명하고자 한다.

 

최근 차기 정권의 총리 후보자가 온갖 돈과 관련된 추문으로 말미암아 자진 낙마를 할 수 밖에 없게 되자, 차기 정권을 준비하는 측에서는, 당직 후보에 대한 검증에 있어 도덕적 부분을 완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한 사람이 일을 하는데 있어 능력과 그의 도덕적 수준과는 별개의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하면서. 즉 이는 대한민국에서 내로라 하는 자리에 앉을 사람치고 깨끗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시인하는 셈이 된 것이다.

바로 <돈의 화신>이 그려내고자 하는 지점이 이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정계, 법계를 막론하고 그들이 누구하나 도덕적 검증 과정에서 무사히 살아남을 수 없는 사람들이 되어가는 과정에 <돈의 화신>은 포커스를 맞춘다.

 

드라마 속 이중만 회장은 홀홀단신 서울로 올라와 땅을 비롯한 갖은 부를 축적한 전형적인 졸부의 현신이다. 그러던 그가 자식처럼 아끼던 차세광의 복수극 음모로 인해 목숨을 물론,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차세광은 누구인가? 현재 사법 연수원생에, 변호사 보로 일하는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다. 하지만, 그의 드러난 간판의 현란함과 달리, 아버지가 이중만 회장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불우한 사연을 지닌 복수로 되갚으려는 사적 복수의 신봉자요, 이중만 회장의 내연녀를 사랑 놀음에 이용하거나, 복수를 위해서는 은인의 아들을 죽이고, 그 아내를 평생 정신 병원에 가두는 그 좋은 머리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써먹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런 차세광을 옆에서 직접적으로 돕는 사람은 바로 이중만 회장의 변호사요, 이중만 회장의 아들이 마지막으로 손을 내밀은 사람은 어머니 사건을 담당한 검사였다. 뿐만 아니라, 시민의 발이 되어야 하는 기자는 이강석의 소재를 알리는데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

 

이들이 누구인가. 대한민국이라는 시스템이 제대로 굴러가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제도적 틀을 공고하게 지켜나가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른바 '돈'의 유혹에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을, 자신의 신념을 팔아넘긴다. <돈의 화신>이라는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거대한 은유,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는 매번 청문회를 보면서, 씁쓸함을 삼키는, 이제는 그 마저도 비공개로 한다는 현실을 조우하게 되는 것이다.

즉, 아버지의 세대가 물불을 가리지 않고 만들어 놓은 부, 그 아들들은 다시 직업의 소명 의식따위는 개나 주어 버리고, 아버지 세대의 방식 그대로 아니 더 교묘하게 자신들의 직위와 좋은 머리를 이용해서, 그것을 자신들의 부로 이어간다. 심지어, 아버지 세대의 부를 찬탈해가면서. 이제 거기에 대해, 다음 세대, 이강석의 세대는 이전 <자이언트>의 황태섭을 무너뜨리기 위해 그 자신이 부를 일궈 나가듯이, 차세광이 만들어 놓은 법의 그물로 교묘하게 짜여진 부를 무너뜨리기 위해, 또 다른 법을 이용해 갈 듯하다.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그것이 사업이 되었건, 법이 되었건 여전한 대한민국의 논리라는 결론을 내리며.

by meditator 2013. 2. 4. 09: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