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만큼 인생의 통과 의례에 '집착'하다시피 하는 나라가 있을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을 가야하고, 대학을 나오면 취직을 해야 한다. 취직을 하면 그 다음엔? 사람들은 쉬이 '남의 집 자식'들의 일생에 질문을 퍼붓는다. 그런 세상에 그저 자식보다 하루 더 살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진 엄마들이 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취직'을 하고 '월급'까지 타온다. 자기 스스로 돈을 번다는 사실도 좋지만, 무엇보다 '내 아이'가 세상으로 나가 사람들과 어울려 그 속에서 자기 몫을 찾는다는 사실이 가슴 벅차다. 그걸 위해서라면 살던 곳을 떠나는 것 쯤이야 무엇이 문제랴 싶다. 가지고 있던 '땅'도 기꺼이 '기부'할 수도 있다. 바로 여주에 있는 '푸르메 여주팜'이 일군 '기적'이다. 

경기도 여주시에 있는 '푸르메 여주팜'은 IT 기술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 농장이다. 아침이 되면 농장의 하늘이 저절로 열린다. 하지만 스마트 농장이라고 해서 모두가 '자동'은 아니다. 익은 방울 토마토도 따주어야 하고, 가지 치기도 해주어야 한다. 딴 버섯을 분류도 해주어하는 건 물론이다. 이렇게 방울 토마토와 버섯 농사에서 '필수적'인 일을 38명의 발달장애 직원이 해내고 있다. 

 

 

'발달 장애'는 유전적인 원인, 후천적인 뇌 구조 손상, 각종 신체 질환, 환경적 요인 등으로 인해 유발되는 장애를 말한다. 어느 특정 질환 또는 장애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관계, 의사소통, 인지 발달의 지연과 이상을 특징으로 하고, 제 나이에 맞게 발달하지 못한 상태를 모두 지칭한다.(다음 백과) 적절한 '자극'을 통해 사회적으로 잘 적응하고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지만 사회적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고립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경우가 상당수인 상황 그러기에 푸르메 여주팜의 직원 모집에 전국의 발달 장애인들이 모였다. 

명함도 있다. '나도 직원'
매일 오전 8시 30분 직원들을 태운 차가 도착한다. 자동으로 천장이 열린 방울 토마토 온실, 29살 이수연 씨는 곁순을 자른다. 9살 때 부모님을 여의고 재활원에서만 생활하던 수연씨는 공장 직원 중 꽤 높은 수준의 업무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다. 개인 별로 편차가 심한 발달장애인들, 그녀가 생활하는 재활원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사람은 92명 중 20명 뿐이다. 

가공실에서 세척 중 결함을 찾아내는 일을 하는 26살 임의혁 씨의 원래 집은 구미이다. 산업공단인 구미에도 제조업체는 많지만 소근육을 움직이기 힘든 의혁 씨가 일할만한 곳은 없었다. '내 아이가 일을 할수 있다는데', 엄마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사를 했다. 

버섯팀에서 일하는 36살의 김동휘 씨, 어머니와 함께 퇴근을 한다. '늘 재밌대요'라며 웃음을 띠는 어머니, 동휘씨가 일을 하는 건 그저 동휘 씨만의 일이 아니었다. 그저 늦된 아이인 줄 알았던 동휘 씨, 다 큰 동휘 씨가 갈 곳이 있다는 변화가, 가족들의 삶마저 달라지게 했다고 한다. 

'동생에게 짐이 되면 어쩌나, 쟤가 나중에 혼자 어떻게 살아갈까', 발달장애인들의 타인 의존도는 80%이다. 푸르메 여주팜에서도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교육과 훈련이 이루어지고 있다. 더구나 개인별 편차가 심하다. 표준 메뉴얼이 어렵다. 이런 발달장애인들이 모여 '농장'을 일구기 위해서는 많은 이들의 노력이 필요했다. 

 

 

32살 덕희 씨는 오후반 직원이다. 농장 가는 걸 너무 좋아한다. 이제는 홀로 출근한다. 월급날 집으로 돌아온 덕희  씨가 개선장군처럼 말한다. '돈 벌어왔어!' 그런 아들을 보는 장춘수 씨는 너무나 기쁘다. 치료하면 수술하면 낫는 줄 알고 온갖 치료란 치료는 다해봤다는 춘수 씨, 결국 '치료'를 포기하고 아들을 위해 함께 '농사'를 짓기로 했단다. 10년을 이 농사 저 농사 지어봤지만, 이게 혼자 해서는 안되는 일이구나를 절감하게 된 춘수 씨가 발달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고민하던 푸르메 재단을 만났다. 

발달장애인이 혼자서 독립해서 살아가려면 우선으로 생계를 보장할 수 있는 안정된 일터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뭘까?, 열심히 찾았는데, 우리가 찾은 답이 ‘스마트팜’이었어요.” -임지영/ 푸르메재단 경영지원 실장


기꺼이 땅을 기부한 춘수씨, 하지만 발달장애인들을 일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스마트팜을 만들기 위해서는 100억 정도의 막대한 비용이 필요했다. 한 아이가 자라기 위해서는 하나의 마을이 필요하다는 문구처럼, 한 사람의 발달장애인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좋은 뜻을 지닌 재단과, 독지가, 그리고 재원을 감당해준 기업과 은행, 그 모든 것을 현실적 과정으로 풀어낼 지자체 등 많은 이들의 뜻이 기적처럼 모아져야 했다. 그 '기적'의 결과물이 국내 최초 민, 관, 공 컨소시엄형 장애인 사업장 푸르메 여주팜이다. 

 

 

직원들은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누어 일주일에 5일 하루 4시간을 근무하고 최저임금보다 높은 월급을 받는다. 4대 보험도 적용된다. 우리나라 발달장애인은 25만 여명, 그 중 23.3%만 일을 하고 있다. 장애인 학교를 졸업해도 갈 곳이 없이, 가정이나 시설의 돌봄을 받으며 사회적으로 소외당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매일 출근하는 게 너무 좋아요.” -김동휘
“전에는 우울했는데 여긴 함께 일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정말 행복해요.” -이수연


평소에는 거의 말수가 없다는 덕희 씨, 그런 덕희씨가 동료들을 만나며 인사도 하고 말수가 많아진다. 심지어 장난도 치고, 애교도 부린다. '부끄럽게 왜그래~', 그 전에는 쓰지 않았던 감정 표현의 어휘가 등장한다. 그들에게 '일'은 사회적 존재로서 자신을 증명하고 확인하는 시간이다. 

매달 25일은 월급날이다. 월급 명세서를 받기 위해 줄을 선다. 월급날 의혁씨가 은행에 들른다. '아파트를 살려고', 주택 청약을 들기 위해서이다. 직원들에게 꿈을 물었다.

'버섯을 잘 따는 거예요',
'엄마, 이제 내가 일을 할게요',
'아빠 차 바꿔줘야지'. 

by meditator 2022. 6. 20. 2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