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서 세자빈을 잃은 왕자가 300년 후 옥탑방으로 떨어져 세자빈 살해 사건도 해결하고, 진정한 사랑도 얻는 이희명 작가의 2012년 작품 <옥탑방 왕세자>는 환타지 로코라는 독특한 복합 장르이다. 일찌기 <토마토>, <팝콘>, <명랑소녀 성공기> 등 90년대 최고의 로맨틱 멜로물을 써왔던 이희명 작가는 이후 오랜 칩거 기간을 겪은 후, 기존의 로코에 새로운 형식을 가미한 <옥탑방 왕세자>를 통해 전성기를 되찾았다. 그런 <옥탑방 왕세자>의 성공 이후, <야왕>을 통해 잠시 외도를 했던 이희명 작가가, 이제 새로이 시작한 <냄새를 보는 소녀>로 다시 돌아왔다. 역시나, <옥탑방 왕세자>와 같은 복합 장르를 통해서이다. 이번엔 스릴러이다. 웹툰 <냄새를 보는 소녀>의 원작을 기반으로, 원작의 스릴러를 도입한 드라마 <냄새를 보는 소녀>는 로맨틱 스릴러물이다. 아마도 90년대의 로맨틱 물의 전성기 이후, 2000년대 초반 과도기를 겪은 이희명 작가는, 21세기의 급격하게 변화하는 대중들의 관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로코'라는 단순 장르로만 승부해서는 무리란 판단을 내렸던 듯 하다. 




로코 + 스릴러의 절묘한 결합?
원작의 어두운 기운을 덜어내고, 심지어 여주인공이 개그 우먼 지망생이자, 남자 주인공의 사건 수사를 돕는 대신 만담 파트너를 제안하는 <냄새를 보는 소녀>는 로코 중에서도 '개그'가 얹힌 아주 밝은 로코이면서, 동시에, 남녀 주인공의 과거의 사건에 맞물려 '바코드 연쇄 살인'을 풀어가는 치명적인 스릴러이다. 로맨틱 코미디와, 그것도 웃음을 한껏 버무린 봄에 어울리는 말랑말랑한 사랑 이야기와, 연쇄 살인범의 결합이라는 난제를 들고 나온 것이다. 

이렇게 양 극단의 두 장르가 맞물리는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떠올려지는 미드가 한 편있다. 2009년 시즌 8로 종영한 <명탐정 몽크> 시리즈가 그것이다. 주인공 에드리안 몽크는 전직 경찰이었다. 하지만 3년전 자동차 사고로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후 그는 더 이상 경찰직을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휴유증에 빠진다. 그 결과 일상 생활을 제대로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 강박 관념이 심한데, 이 시리즈의 매력은 바로 이 일상적이지 않은 사나이 몽크가 벌이는 해프닝에서 빚어진다. 그는 심각하고 진지한데 보는 사람들은 그가 난감해 하는 상황에서 데굴데굴 구르게 되는 정상적 상황에 비정상적인 사람이 맞물리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이 이 시리즈의 매력이다. 강박관념을 가진 몽크는 그런 장애(?)를 가지고 온갖 곳을 누비며, 갖은 모험을 하게 되고, 심지어 각종 살해 사건 들을 해결한다. 스릴러와 웃음의 절묘한 조합, 그것이 바로 몽크 시리즈의 절묘한 콜라보레이션이었다. 그리고 바로, <냄새를 보는 소녀>가 그렇게 몽크 시리즈처럼 웃음과 살인 사건의 해결, 묵은 해원의 해결이라는 복합적 과제를 들고 나선다. 

그저 동생의 살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강력반 형사가 되고자 했던 최무각 순경, 하지만 파출소의 말단 순경인 그의 저돌적 의지는 번번히 가로막히고 만다. 하지만 냄새를 보는 오초림의 도움으로 주마리 실종 사건을 해결하고, 특별 수사반에 특채가 되면서, 주인공 남녀의 소개에 주력하던 1,2부를 지나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사건 수사, 스릴러 부분에 들어선다. 2회까지만 해도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초림을 지켜보던 천백경 원장(송종호 분)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수사선상에 등장했고, 또 한 사람, 주마리의 애인이지만 어쩐지 의심쩍은 권재희(남궁민 분)도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염미(윤진서 분)라는 프로파일러가 특별 수사반 반장으로 등장하면서 극에 개입하면서, 경찰 쪽 라인도 이야기가 펼쳐진다. 
덕분에 과거의 사연을 소개하고, 무감각한 최무각의 활약상에도 불구하고 오초림, 최무각 두 사람에 집중하던 극이 흐트러진다. 2회에 두 주인공의 알콩달콩함에 홀려 3회에 시선을 둔 시청자들은 두 사람이 다시 만나 아웅다웅하기까지 한참이나 기다려야 했다. 대신 최무각과, 권재희, 그리고 천백경이라는 이 드라마를 이끄는 문제적 남자들의 알수 없는 팽팽한 긴장감이 새로운 분위기를 형성한다. 

<냄새를 보는 소녀>가 이번에 선택한 미션은 꽤나 고난도이다. 주인공들의 과거가 얽힌 연쇄 살인을 해결하는 스릴러에, 그 정극단에, 웃음을 잔뜩 머금은 로맨틱 코미디에, 심지어 여주인공과 남자 주인공 최무각을 자연스레 얽히도록 만들기 위해 여주인공은 개그 극단의 막내, 개그우먼 지망생이다. 그래서 서로를 돕기 위해 그들은 함께 수사를 하고, 만담 파트너도 한다. 진지하게 취조실에서 범인에 대해 고뇌하는가 싶은 최무각 형사가 뜬금없이 '촬~!' 하며 개그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식이다. 그런 면에서 <냄새를 보는 소녀>의 시도는 모험적이다. '로코'라는 장르가 최근 트렌드에 역부족일 수 있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스릴러와의 결합, 그것도 웃음기를 잔뜩 머금은 개그스런 로코에 연쇄 살인범의 사건 수사는 마치 '적과의 동침'과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로코를 좋아하는 시청자들은 스릴러의 장면에 호불호가 갈릴 수 있고, 스릴러를 좋아하는 시청자들은 두 주인공이 개그에 얽히는게 부담스러울 수 있다. 더구나, 빈번히 등장하는 개그 극단은 과연 이것이 드라마에 필요한 설정인가를 두고 설왕설래의 대상이 될 수있는 것이다. 아마도 3회가 2회에 비해 산만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지금까지 입가심처럼 등장했던 사건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두 주인공 외의 등장인물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면서, '로코'와 '스릴러'라는 두 장르가 확연하게 대비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난제를 설득해 내는 건 이희명 작가와 박유천,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어려운 난제를 <냄새를 보는 소녀>는 3회에 이르기까지 무난하게 수행하고 있는 듯하다. 1회 초반 상세하게 설명된 오초림의 사연과 달리, 사건을 수사하다 잠이 들고, 대식가의 수준을 넘어선 먹방을 보이며, 탈골이 되고서도 멀쩡한 최무각이란 인물에 대한 설명을, 오초림의 냄새를 보게 된 이상한 눈에 대한 공감으로 이끌어 내고, 사건 수사에 집중하는 최무각 순경을 통해 자연스레 용의선상에 오른 인물들과 프로파일러 염미를 극중으로 흡인시킨다. 또한 그런 한편에서 개그 극단의 품평회를 둘러싼 두 사람의 해프닝을 통해 만담과 로맨틱 코미디 특유의 달달함과 '썸'까지 자유자재로 오가며 3회 <냄새를 보는 소녀>는 개그와 로코, 그리고 스릴러를 오간다. 자칫하면 이질적인 이 요소들이, 때로는 생경한 듯 하면서도, 제법 잘 어울려 버무려지고 있는 듯하다. 

무엇보다 이런 장르적 이질감을 녹이는 결정적 수훈은 <옥탑방 왕세자>에 이어 기업물 <야왕>의 경험을 안고 돌아온 이희명 작가가 풀어가는 절묘한 이야기에 있다. 또한 그와 <옥탑방 왕세자>에 이어 다시 호흡을 맞춘 이제는 콤비라 부를만한 박유천이 있어서 가능하다. 이미 <옥탑방 왕세자>를 통해 개그 감각에 남다른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었던 박유천이기에, 마치 이희명 작가가 믿고 쓰는 듯 남자 주인공으로서는 버거운 각종 상황이 등장하지만 번번히 그 어려운 미션을 박유천은 설득해 내고 만다. 어색한 '그린 라이트'도, 대머리 가발을 둘러 쓰고 '촬~'을 연발하는 상황도 진지하게 하지만 보는 사람은 데굴데굴 굴러가게 만들어 버린다.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한, 그리고 동생의 살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살아가는 그의 우직함이, 오초림이란 뜻밖의 인물을 만나 벌이는 해프닝에서도 전혀 이질감없이 버무려저 들어간다. 작가가 회마다 부여하는 기상천회의 미션을 남자 주인공을 맡은 박유천은 특유의 유연함과 자연스러움으로 그 어떤 개그맨보다도 웃기게, 그리고 그 어떤 사연많은 주인공보다 진지하게 풀어가면서, 로코와 스릴러의 두 장르를 오고간다. 또한 이렇게 밝고 건강한 여배우였는가 라는 
깨달음을 주는 신세경이 풀어내는 오초림의 캐릭터는 무감각한 최무각과의 호흡에서 최고다. 거기에 믿고 보는 남궁민에, 단 한 장면으로도 충분했던 <응답하라 1997>의 '윤제형' 송종호라니!

사실, 모든 사람들이 쉽게 보는 작품을 만들겠다는 백수찬 감독의 의지는 때로는 드라마를 조금은 헐겁게, 조금은 늘어지게도 만든다. 물론 덕분에 알기 쉽고 이해하기는 쉽지만, 쫀득한 긴장감을 원하는 드라마 애청자들 입장에서는 아쉬운 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하지만, 그런 아쉬운 소리도, 두 주인공의 열연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 틈에 나왔던 입이 들어가 버릴 만큼, 이제 3회에 불과한 <냄새를 보는 소녀>의 '케미'는 설득적이다. 
by meditator 2015. 4. 9. 09: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