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끝이야?'
<나의 해방일지> 마지막 회를 본 즉자적 소감은 이게 아닐까? 마치 어제 보고, 오늘 보고, 내일 볼 듯하며 흘러가는 주인공들의 일상, '아니 뭐 그래서 어떻게 된다는 거야?', 그저 또 하루가 지나듯 드라마가 끝을 맺었다.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은 것같은 드라마, 하지만 시간이 흐르니 밀물처럼 많은 이야기들이 되돌아온다. 지금은 서울 하늘 밑 어느 곳에서 살아갈 이들, 그들을 통해 박해영 작가는 '답'이 없는듯한 이 시대에 '답'을 전한다. 

 

 

'해방'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출판사를 하는 박상민 부장 친구 덕에 오랜만에 '해방 클럽'이 뭉쳤다.  '나의 해방일지'를 출간할 수도 있는 상황에 저마다 자신의 동정을 전한다. 돌고 돌아온 질문, 그래서 '해방은?'이다. 쓰던 걸 그만두자 '해방'에 매진하던 실천도 동시에 멈췄다는 '자조적인 평가', 겨우 내가 누군지 알듯하다는 아쉬움에 염미정(김지원 분)이 말한다.

'그게 다가 아닐까요? 자기 자신을 아는 거.' 

극 초반 세상의 그림자같던 염미정은 이제 마지막 회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 '확고한' 존재가 되었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재혼하셨으며, 회사에서는 그녀의 이름을 도용해 바람을 피던 커플 때문에 외려 그녀가 쫓겨났다. 이제 막 디자이너로서 실력을 인정받아 정직원이 되려던 참이었다. 그녀의 '재능'과는 상관없는 직무를 맡으며 사는 그녀, 그런데 이제 더는 그녀의 눈빛이 흔들리지 않는다. 

구씨와 재회한 그녀가 담담하게 그녀의 '개새끼들'에 대해 말한다. 그녀에게 돈을 빌리고 여전히 갚지 않는 전 애인, 그런데 그녀는 외려 그가 돈을 갚을까봐 걱정이었단다. '개새끼'라 부르며 자신의 모든 원망을 한껏 퍼부을 수 있는 존재, 구씨가 전화한 날도 그 '개새끼'의 결혼식에 가서 그가 얼마나 형편없는 존재인지 알려주려 했다는 미정, 그런데 미정은 말한다. 그 '개새끼'가 없어지면 그를 핑계대던 자신의 비겁함이 드러날까봐 두려웠다고. 

 

 

해방일지를 처음  쓰던 시절, 해방 클럽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해방'되고픈 그 무엇이 있었다. 어디 해방클럽만인가. 삼포로 네 다섯 시간을 걸려 출퇴근하던 염씨네 삼남매 모두 '해방'이 필요한 존재들이었다. 그들이 매달린 삶이 마치 만원 지하철처럼 그들을 시달리게 했다. 머리를 자르고, 차를 사고 싶어하며, 애인에게 돈까지 뜯기며 방황했다. 

<뜻밖의 여정> 속 한 장면이다. 마흔이 된 피디가 윤여정 배우에게 말한다. 마흔쯤 되면 인생이 좀 가닥이 잡힐 줄 알았다고. 세상을 사는 자신감을 좀 얻게 될 줄 알았다고. 그러자 '나도 육십은 처음이라'는 윤여정 배우의 유명한 발언이 다시 등장한다. 78세가 된 윤여정 배우가 여전히 말한다. 이 나이가 되도 여전히 고민이 많다고. 그런데 사람인데,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인데 늘 새로 닥쳐오는 인생이라는 파도에 어떻게 고민이 없을 수 있겠냐고. 당연한 거 아니냐고. 마흔이 되도, 육십이 되도, 그리고 칠십을 한참 넘겨도 사는 건 늘 '고민'이라고. 

윤여정 배우의 말씀처럼, 인생은 늘 녹록치않다. <나의 해방일지> 초반 염씨네 삼남매들은 그런 인생의 답을 '차'를 사는 것처럼 얻으려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차가 생기면 인생이 달라질 거라고. 오죽하면 창희(이민기 분)는 구씨의 외제 차를 다 얻어타고 기분을 내려 했을까. 

이 시대의 사랑 방정식
'우리 결혼해요!', '어른들도 엄마가 없으면 슬퍼요?'라고 묻던 조태훈(이기우 분)의 딸이 안쓰러웠던 기정(이엘 분)은 청혼을 했다. 시청자들은 당연히 3년의 시간이 흐른 후 조태훈과 염기정이 결혼을 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랑을 하면 결혼을 하고, 그런게 우리가 사는 세상의 '답정너'이다. 하지만 사는 게 고달픈 젊은 세대는 그런 '답정너'를 거부한다. 그래서 등장한 게 삼포니, 오포니, 구포 세대이다. <나의 해방일지> 속 염씨네 삼남매 역시 모두 사랑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들과의 세상이 말하는 '인생의 프로세스'를 밟는게 여의치 않다. 

창희의 오랜 벗이자 연인인 현아는 자신의 '프리한 영혼'을 주체할 수 없다. 기정의 남자 조태훈은 여전히 자신의 어깨에 드리운 세 여자가 버겁다. 오죽하면 혹시나 하던 기정의 임신이 아님이 드러났을 때 그 신중한 성격에 '잘되었네요'라고 속도 없이 말을 내뱉고 말았을까. 미정의 연인은? 손석구라는 배우의 '매력'에 기대서 그렇지, 셋 중 가장 대책이 없다. 영락없는 알콜릭에, 호빠 관리자에, 결국 그의 머리를 치고 도망간 형의 말처럼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며 사는 존재다. 위협이 문제가 아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그의 앞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이라니. 존재 자체가 위험하고 위태롭다. 

'사랑하는 사람'만 있으면 될 것같던 염기정은 3년의 시간이 흐른 후 여전히 싱글이다. 그런 그녀가 드라마의 초반처럼 헤어스타일을 변화시켰다. 스스로 자신의 머리를 자른다. 그녀는 말한다. 세상에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머리 밖에 더 있냐고. 흔히 그렇듯이 머리를 자르고 이제 '이별'을 하려나 했는데, 기정은 다른 선택을 한다. 

그녀는 말한다. 자신이 태훈의 어깨 위에 짐인 세 여자에 더한 네 번 째 여자가 된 것 같았다고. 왜 자신이 태훈을 사랑하는데, 태훈의 가족들로 인해 자꾸만 작아져야 되는지 모르겠다고. 그런데 여전히 팔이 저리도록 태훈을 사랑한다고. 

기정은 다른 선택을 한다. 사랑하는 이를 만나고, 그와의 '가정'을 꾸리는 대신, 그 '가정'을 짐으로 느끼는 이와의 '해방'을 꿈꾼다. 여전히 그들은 따로 살지만 늦은 밤 태훈은 수줍게 기정의 집 창문 앞에서 장미 한 송이와 그녀가 좋아하는 계란빵을 전한다. 꽃봉오리마저 나동그라진 태훈같은 멀대같은 줄기 한 송이에도 감동하는 기정, 계란빵을 좋아한다고 했으니 망정이지, 소고기를 좋아했으면 어쩔 뻔 했냐는 그녀가 한결 편하다. 세상의 '굴레' 대신 사랑을 선택한 것이다. 한 남자를 사랑한다고 해서 꼭 그의 '가족'으로 얹혀져야한다는 것으로 부터 '해방'되니 '사랑'만 보인다. 

 

 
이민기 배우가 보여준 신선한 스펙트럼의 연기로 설득력을 얻은 염창희가 도달한 '해방'은 묵직하다. '차'처럼 세상의 '것들에 대한 욕망을 향해 어쩔줄 몰라하던 그가 도달한 곳은 뜻밖에도 '장례지도사'이다. 죽은 이들의 곁에 늘 머물게 되는 그의 '운명'을 비로소 그 스스로 편안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정해진 삶의 궤도를 갑갑해 못견디는 현아를 기꺼이 보내준다. 니 편한대로 살다가, 생각나면 오라고. 늘 '입을 털'지 못해 안달하던 그가 지그시 입을 다문다. 더는 타인의 '공감'을 얻기 위해 안달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다. 

그래도 한 장의 마침표를 찍은 듯한 창희와 기정과 달리, 미정의 상황은 불투명하지 않은가?  가방에 돈을 챙긴 구씨는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그런데 거리 선 미정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도 밝다. 구씨는 물었다. 자신도 '개새끼'였냐고. '개'를 잃어버렸다고 통곡을 하며 시장길을 거닐 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미정은 그를 '개새끼'로 만든 대신, '추앙'했다. 자신이 가득 채워지기를 원했던 그녀, 그 '사랑'을 통해 자신을 충만케 했다. 사랑을 통해 자신을 사랑하기로 한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사랑하는 자신'이 사랑스러운 그녀, 그녀의 '해방'이다. 

그들은 그렇게 자신들이 짊어진 삶의 화두로 부터 저마다 '해방'의 길을 찾아나선다. 끝인가 싶던 드라마의 엔딩처럼 그건 진행형이다. 그리고 드라마는 이제 그 해방의 화두를 보는 이들에게 던진다. 세상의 잣대에 자신을 맞추려 애쓰며 자신을 잃어갈 것인가? 아니면 당신만의 해방일지를 써 볼텐가?  

by meditator 2022. 5. 30. 20: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