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수업,
김수진 선생님의 5학년 교실, 오늘 수업은 교과서에 나와있지 않은 '성평등 수업'이다. 선생님은 평소와 다르게 남자와 여자로 나뉘어서 맞은 편에 앉은 학생들에게, '남자답게', '여자답게' 고정 관념 대결을 제안한다. 

아이들의 의견은 봇물처럼 터진다. '무슨 남자가 울어?', '사나이는 태어나서 세 번 만 우는 거야', '남자 애가 소심해', '무슨 남자가 핑크색을 좋아해?' 등등 남자 편의 의견에 맞서, '여자는 꾸며야 해', '여자는 조신해야 돼', '여자는 밤에 돌아다니지마', '술 자리에 여자가 있어야지'까지 여자다운 편견들이 쏟아진다. 과연 어느 편이 이겼을까. 남자아이들의 '남자답게'가 끝났는데, 여전히 '여자답게'의 의견들은 남아있다. 그러니 당연히 승리는 '여자답게' 편, 그런데 어쩐지 씁쓸하다.  이겼지만 과연 좋아할 일이냐는 반문이 나온다. '여자답게', '남자답게'라는 의견을 나누며 이미 학생들은 그 '여자다운' 것들이, '남자다운' 것들이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듯하다. 

 

 

두번 째 수업.
역시나 5학년 정윤식 선생님네 반 수업이다. 선생님은 '제주도에 유채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제안한다. 술래가 앞으로 나와 칠판 쪽에 기대있는 동안, 선생님이 전달하는 사진을 나만 보고 몰래 다른 친구에게 무사히(?) 들키지 않고 전달하는 게임이다. 선생님이 화장실에 앉아있는 사진 한 장, 그 사진을 아이들은 치열하게 몰래 몰래 전달하려 애쓰는 한편, 그 사진을 보지 못한 친구들은 얼른, 어떻게서라도 보고 싶어 몸살을 한다. 

물론 옷을 다 입고 있는 별 거 아닌 사진 한 장, 그저 보고나면 웃음짓게 만드는 사진이라면, 만약에 이 사진의 주인공이 나라면, 실제 상황이라면 어떨까? 라며 게임 끝에 던져진 질문에 아이들은 창피해서 자살을 할 수도 있겠다라는 답이 나온다. 그렇다면 이 '게임'의 의미는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 '몰카', '디지털 성범죄'라는 답들이 등장하고, 아이들은 '제주도에 유채꽃이 피었습니다'라는 게임을 계기로 사회적 문제를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Think outside of the box
5월 3일 방영된 <거리의 만찬>은 어린이날 특집으로 학교 현장에서 'Think outside of the box'(고정 관념을 깨다) 교육을 실천하고 계시는 선생님들을 초대했다. 이른바 '성평등 수업', 그 시작은 젠더 이슈와 관련된 댓글에서 부터 였다. 교육이 제대로 되어야 한다는 댓글에서 함께 책을 읽던 모임을 하던 교사들은 그 주제를 수업으로 끌고 들어왔다. 

 

 

난무하는 감각적 뉴스, 사회적 사건이 있으면 언론들은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그 사건들을 계속 자극적으로 양산해내고 아이들은 그런 '뉴스'에 무분별하게 노출된다. '버닝썬' 사건 동영상,  그거 누구래 하며 어른들의 행동을 그대로 답습하는 아이들, 자신들이 접하는 인터넷 상의 콘텐츠에서 익힌 '응 니에미', '느금마'(엄마를 혐오적으로 부르는 표현) 에서 부터 '피싸개'(생리를 하는 여성을 낮잡아 부르는 말)까지를 무분별하게 습득 '혐오'를 일상화시키는 아이들, 거기서 더 나아가, '선생님 가슴이 크시네요, '하고 싶어요' 등 감정적 모욕을 하고도 사과는 커녕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모르는 아이들, 심지어 화장실에서 3000원을 받고 가슴을 보여주는 왜곡된 성의식의 현실에 교사들은 교과서를 넘어선 '성평등' 교육만이 이런 현실에 대한 '백신'이 될 거라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성평등, 인권 교육의 시작 
장난이나, 재미로 여겼던 사안들에 대해 뭔가 다르게 생각해 볼 여지를 주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수업, 일본 야동에서 비롯된 '앙 기모띠'가 유투버로 부터 아이들에게 까지 자연스레 습득되는 현실에서 '성적 대상'으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서로 존중해야 될 인격체로서의 '남녀'에 대한 인식을 바로 잡고자 한다.  가사 노동 등에 대한 고민을 통해 그저 여성의 편을 드는 게 아니라, 밖에 나가서 돈을 벌어와야 하는 아빠도 힘들고, 집에서 가사 노동만 전담하는 엄마도 힘들다는 성역할에 대한 '무게'를 아이들과 함께 나눠보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교육' 한번이 당장 아이들을 달라지게 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게이네, 호모, 장애' 등 그간 스스럼없이 썼던 차별적 표현들에 대해 배우고 알면서 아이들은 조금씩 변해간다고 한다. 바로 이런 과정을 그래서 선생님들은 '백신'이라 표현한다. 당장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흐름'을 변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는. 그래서 선생님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한 성평등 교육이 결국은 '인권'에 대한 이해, 인권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진다는 확신을 가지며, 이런 작은 흐름들이 모아져 '학교 폭력 예방' 등의 좋은 에너지로 모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성평등 교육에 대한 불편한 시선들이 거칠게 반응하기에 이런 교육을 유지해 나가는 게 쉽지 않다고 선생님들은 토로한다. '프로불편러'란 댓글에 '세상을 좀 더 좋게 만들려면 불편했던 것을 개선해야 하기 때문에 프로 불편러가 맞다고 하면서도, '피해 의식'이 심하다는 등의 반응에 선생님들의 어깨는 무거워진다. '미개'해서 가르치겠다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알아서가 아니라, 선생님 스스로도 '결혼하기 좋은 직업'이라는 말은 칭찬으로 듣던 시절이 가진 '함께 되묻고 반성'하는 시간으로서의 '성평등' 수업이라는 소회 끝에 선생님의 눈시울은 붉어진다. 

체육 시간,  달라진 수업에서는 공놀이를 하더라도, 남학생, 여학생 모두에게 열려진 가능성의 시간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실제 남학생보다 운동을 덜 좋아하는 여학생들, 그런 시간들이 쌓여서 고등학교만 가도 아예 체육 수업과는 담쌓게 되는 현실에서, 룰을 바꾸고, 팀 구성을 바꿔가기만 해도 여학생들은 좀 더 적극적으로 수업에 임하게 된다고 선생님들은 전한다. 또한 지금까지 힘든 일은 남학생들에게 시킨다던가, 얼굴도 이쁜데 글씨도 좀 잘 쓰지라며 여학생에게 상투적으로 하던 표현의  관행 자체에 대해 선생님들 먼저 변화하고자 하는 노력도 잊지 않는다. 더 알아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고민하고 변화하고자 하는 시간으로서의 '성평등' 수업, 여전히 세상의 시간은 따갑지만 다수의 인식이 바뀌려면 교육 밖에 없다는 젊은 선생님들의 5월의 신록같은 신념에 봄의 전령 딸끼 뷔페가 작은 보답을 전한다. 



by meditator 2019. 5. 4. 14: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