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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 시효가 지나버린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루었던 <갑동이>가 마무리 되었다. 현실에서도 영화에서도 결국 잡을 수 없었던 연쇄 살인 사건이 드라마<갑동이>에서는 해결되었다. 형사가 되어 연쇄 살인범의 낙인을 피했던 갑동이(정인기 분)도 잡혔고, 갑동이를 흠모했던 카피캣 갑동이(이준 분)는 죽었다. 그리고 갑동이로 인해 마음의 짐에 짖눌렸던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그것을 풀어내었다.
처음 '반갑다, 갑동이'로 공소시효가 지난 연쇄 살인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갈 때만 해도, <갑동이>는 연쇄 살인범을 다룬 서스펜스 스릴러물처럼 보였다. 하지만, 20회로 마무리된 지금, 오히려 <갑동이>는 범죄물이나, 공포물이기 보다는 '심리물'에 가까운 드라마가가 아니었나 싶다.
극중 웹툰 작가로 나온 마지울(김지원 분)이 연쇄 살인범을 그려낸 웹툰의 제목이 '짐슴의 길'이었다. 마치 그 웹툰의 제목처럼, 드라마 <갑동이>는 20회에 이르는 동안, 류태오라는 갑동이의 카피캣의 연쇄 살인을 재현해 내면서, 그리고, 갑동이와, 갑동이 카피캣,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의 얼크러짐을 통해, 우리 사회 연쇄 살인범이 선택한(?) 혹은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짐슴의 길'을 밝히고자 하였다.
초중반 갑동이의 카피캣 류태오를 통해 갑동이 연쇄 살인을 재현해 낼 때만 해도, 드라마는 그저 파렴치한 연쇄 살인범을 그려내는데 치중하는 듯했다. 하지만, 갑동이 카피캣 류태오에 대한 하무염(윤상현 분), 오마리아(김민정 분), 마지울의 애증으로 극이 혼란스러워 지면서, 거기에 더해, 진짜 갑동이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정작 갑동이를 자신의 인생을 걸고 추적하던 형사 양철곤(성동일 분)이 피치못할 사정으로 갑동이가 되고, 정작 가장 신뢰를 받던 수사반 반장이던 차도혁이 진짜 갑동이임이 밝혀지고, 그의 여죄를 추궁하는 과정에서 <갑동이>가 던지는 질문들은 그저 누가 옳다 그르다라는 식의 사지선다 형 답을 구할 수 없게 오묘해 졌고, 그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인간에 대한 심오한 고뇌를 자아냈다.
(사진; osen)
사법부조차 정신병의 트릭을 통해 피해가려던 갑동이를, 정작 무수한 인명을 살상한 사이코패스가 가장 애착을 느끼는 것은 자기 자신의 생명이라는, 류태오를 통한 힌트로 여죄를 밝혀내 공소시효를 무색하게 만든 하무염, 그래서 갑동이와 갑동이의 카피캣은 법원의 심판대에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사형이 구형되었지만, 최근 들어 사형대에 올라간 사람이 없어진 대한민국에서, 사형의 의미는 무색하다. 아니, 그가 저지른 무수한 살인과 피해자,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의 고통에 비해, 법의 처벌은 하염없이 가볍게 느껴질 뿐이다. 정작, 처벌은 감옥에 갇혀 매일 밤 꾸는 악몽이 대신한다. 그런 악몽조차 피해가고 싶은 갑동이는 하무염에게 영원한 안식을 요구한다.
류태오가 갑동이의 카피캣을 자처한 이유는 바로 연쇄 살인범이었던 갑동이가 스스로 자신의 살인을 멈추었던 '위대함' 때문이었다. 하지만, 마지울이 그린 웹툰의 제목이 '짐승의 길'이었던 것처럼 류태오도, 갑동이도 멈출 수 없었다. 외국으로 피해가던 류태오는 어쩌지 못한 욕망을 주체못해 스튜어디스를 충동적으로 살해했고, 멈추었다, 그래서 공소시효를 피해갔다 여겨졌던 갑동이는 단지 세상의 눈을 피했을 뿐이었다.
바로 드라마는 여기에 방점을 찍는다. 사이코패스와 인간이 갈리는 길, 짐승과 인간이 달라지는 길, 거기에 주목한다.
죄의 댓가를 받아 감옥에 갇힌 갑동이는 악몽조차 못견디어 영원한 안식을 꾀하고, 류태오의 죽음을 사주한다. 멈추기를 갈망했던 류태오도 그리 다르지 않다. 자신이 죽인 사람들에 대한 사죄나 죄과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우선시했던 류태오는,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오마리아에게 자신과 함께 외국으로 가달라고 요구했으며, 사형대에 오르는 대신, 자신의 재산을 도모해 법의 그물망을 피하고자 한다.
결국 <갑동이>가 말하고자 하는 사이코패스, 짐승의 정의가, 진짜 갑동이와 갑동이의 카피캣의 선택을 통해 설명한다.
그리고 그런 짐승의 반대편에 인간이 있다. 사이코패스 연쇄 살인범인 줄 알면서도, 그런 사람들에 대해 연민을 감출 수 없었던 하무염, 마지울, 그리고 사이코패스일 망정 그를 이용했다는 죄책감에 혼돈스러웠던 오마리아, 그리고, 결국 자신이 피치못했건 어떻건 한 사람의 갑동이였음을 시인한 양철곤, 그를 가르쳤다는 이유만으로 갑동이를 자처한 한상훈(강남길 분)의 선택이 바로 인간의 그것이다. 또한 그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사명감 역시 빠질 수 없다. 그렇게 지리하도록 갑동이와, 갑동이 카피캣을 두고 주변 사람들이 겪는 혼돈과 갈등, 자책을 통해 그것이 바로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바로 그런 마음이, 우리 사회를 사이코패스로부터 우리의 인간다움을 지킬 수 있는 길이라고 <갑동이>는 어렵게 말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사이코패스라는 범죄자만이 아니라, 사회 속에 존재하는 사람으로써, 인간다운 선택이 무엇이어야 하는 가를 드라마 <갑동이>는 말하고자 한다.
물론, 짐승의 길 혹은 사이코패스와 인간의 길을 장황하게 설명하고자, 지그재그 발걸음을 내딛는 동안, 아쉬운 점도 있다. 왜 그가 사이코패스인가를 설명하기 위해, 인간과 사이코패스의 경계에 서있는 그 애매모호한 짐승을 설명하기 위해, 때로 드라마는 연쇄 살인범을 옹호한다는 느낌이 들만큼 갑동이와 특히나 갑동이의 카피캣에 천착했다. 마지막, 류태오가 거두어진 절을 방문한 세 사람 하무염, 오마리아, 마지울의 행보는, 그들의 인간다움을 내보인 것지만, 그렇게 갑동이를 통해 연민을 표현하는 방식을 그려낸 이 드라마의 갑갑한 점이기도 하다. 즉, 갑동이가 왜 짐승인가, 그리고 그렇지 않은 인간이 왜 인간인가를 그려내기 위해 양 자가 평행선을 달리는 동안, 오마리아를 제외한 갑동이의 희생자들은 방기된 면이 강하다. 이 두 사람이, 두 부류가 무엇이 다른가를 설명하고자 천착하는 동안, 그에게 희생된 무순한 사람들, 그가 저지른 범죄의 부피는 얇아졌다. 갑동이와 갑동이의 카피캣의 마음을 들여다 보면서, 그들이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선에 놓여있는 갈등에 집중하면서, 그들에게 희생된 사람들의 사연과 고통과 고뇌는 상대적으로 희박해 진점, 그것이 <갑동이>가 남긴 아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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