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 쌤' 덕분에 '심리학'이라는 학문이 대중적으로 익숙한 학문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가족'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내면 아이'라는 용어가 종종 등장하곤 한다. 부모 자식간의 갈등, 이전까지는 그 '문제'의 촛점이 '아이'에 맞춰져 있다면, 최근에 들어서는 그 갈등의 근원으로 부모, 그 중에서도 특히 부모가 어린 시절 가진 '트라우마'를 조명한다. 드러난 문제 속에 숨겨진 또 다른 '가족'의 문제이다. 

여기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란 한 여성이 있다. 어른이 된 그녀는 여전히 그런 어린 시절의 아픔을 자신의 '내면'에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그런 자신의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좋은 부모가 되기로 했다. 심지어 '기차'를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기관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딜레마가 있다. 그 '아이'가 그녀가 낳은 아이가 아니다. <가족의 색깔> 속 아키라(아리무라 카스미 분)의 선택이다. 

 

 

25살, 엄마를 선택했다
아키라는 25살이다. 한참 '창창'할 나이, 그런데 '결혼'을 선택했다. 마트에서 장을 보던 그녀에게 마지막 남았던 당근을 나누어 주고, 카레에는 '고구마'를 넣으면 맛있다며 고구마도 나누어 주던 '따뜻한 남자' 슈헤이, 가슴 통증이 와서 병원에 급히 입원했지만 놀라서 찾아간 아내 아키라를 따뜻하게 안아주며 웃겨주려 애쓰던 남자, 영화는 그렇게 아키라의 남편을 그린다. 스물 다섯 살의 젊은 여성이 이미 다 큰 아이가 있는 남자 슈헤이와 결혼을 했다. 

하지만 결혼은 그녀가 원하던 안락한 가정 대신 '시련'을 주었다. 어느날 가슴이 아프다며 입원한 남편, 놀라 달려온 아내를 웃으며 달래주었지만 다음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남편이 남긴 건 동업 사기로 인한 빚, 그래서 그들이 살던 도쿄의 아파트가 날라갔다. 그리고 초등학생인 아들이 남았다. 

과연 아키라는 어떤 선택을 할까? 도쿄의 아파트를 처분한 아키라는 슌야를 데리고 남편의 고향 가고시마를 향한다. 아들의 죽음도 몰랐던 시아버지 세츠오(쿠니무라 준 분)에게 남편의 유해를 전한 아키라는 당분간 자신들이 시아버지 댁에 머물수 있게 해달라 청한다. 그리고 철도 기관사인 시아버지 덕에 기차 덕후였던 남편을 꼭 빼닮아 아버지 못지 않게 기차를 좋아하던 아들을 위해 '기관사'에 도전하고자 한다. 

겨우 25살이지만 아키라는 의연하게 이제는 엄마도, 아빠도 없는 슌야의 부모 노릇을 감당하려 한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자동차 면허조차 없는 아키라가 '기관사'가 되려고 한다. 하지만, 그게 어디 '의지'만 가지고 되는 일일까?

자신을 놀리는 친구 얼굴에 상처를 입히는 바람에 보호자로 호출된 아키라, 아키라는 의연하게 제가 슌야의 '부모'입니다를 외치지만 영화 속 슌야는 아키라를 늘 '아키라짱'이라 부른다. 부모의 날, 아키라에게 학교에 오지말라고 당부한 슌야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에, 이미 세상에 없는 아버지가 여전히 그의 곁에 있는 것처럼 쓴 글을 발표한다. 그런 슌야에게 '아버지의 부재'를 이제 그만 받아들이라고 하는 아키라, 하지만 슌야의 입에서, 아버지 대신 아키라가 없어졌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말만 듣고 만다. 

 

 

슌야의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선택한 기관사의 길도 여의치 않다. 이제는 사양 길에 접어들었지만 지역민들의 열의에 힘입어 미니 열차로 운행하는 가고시마 열차, 순조롭게 기관사가 되나 싶었지만 기찻길로 뛰어든 사슴을 치고, 그 죽은 사슴을 바라보는 어린 사슴을 보고 나서는 아키라는 좀처럼 예전처럼 그 일에 집중하기가 힘들어 진다. 

죽은 남편의 아버지, 그리고 자신이 낳지 않은 남편의 아들, 그리고 젊은 엄마라는 이질적인 '가족 구성원'이 하나의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가족의 색깔>, 그 서사의 줄기를 이루는 건 '가족'됨을 지향하는 한 여성의 '의지'이다. 영화는 슌야가 낳자마자 슌야의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홀로 남은 슌야의 아빠가 아이를 기르기가 힘들 것을 염려한 시아버지는 슌야의 외할머니가 아이를 데려가겠다는 결정에 동의한다. 형편으로 보면 그게 나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슌야의 아버지 슈헤이는 그런 '어른'들의 결정을 거슬러 홀로 아이를 키워냈다. 

형편과 편의, 그걸로 보자면 아키라의 결정도 무모해 보인다. 영화는 시아버지의 시점에서 과거 아들과 이제 아들조차 없는 며느리의 결정을 '오버랩'하며 '가족'을 묻는다. 하지만, '가족'을 이루는 건 생각보다 여의치 않다. 자신을 끝내 '아키라짱이라 부르는 슌야, 정작 '아들'을 위한다는 그 일을 자신이 해낼 수 있을까?

불안정한 상태로 인해 '휴직까지 당할 처지에 놓인 아키라, 그런데 자신을 응원해 줄줄 알았던 시아버지가 말한다. '자신이 결정할 문제'라고. 스스로 기관사가 될 수 없다면 될 수 없는 것이라고. 

 

 

자신의 답을 찾아가는 두 여성
영화는 선택에 기로에 놓인 두 젊은 여성을 등장시킨다. 처음부터 서로에게 호의적이었던 아키라와 슌야의 담임 선생님, 노천 변에서 토하고 있던 선생님에게 119를 부르려 하던 아키라는 그녀가 가정이 있는 남자의 아이를 가졌음을 알게 된다. '축복'받지 못한 아이니 지우겠다고 결심했던 선생님은 미혼모라는 '존재'를 차치하고 생명의 잉태 그 자체를 '축하한다'고 전한다. 

선생님은 학부모들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결국 아이를 스스로 낳아 기를 것을 결심한다. 반면 아키라의 결심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자신을 응원해 줄 것 같은 시아버지의 냉정한 한 마디, 그리고 보호자가 되기로 했지만 자신을 '부모'로 받아들이지 않는 듯한 슌야, '위해서'라는 명목의 그녀의 결심이 그 근간에서 부터 흔들린다.

아빠로 부터 사랑받을 수 없는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했던 선생님이 그 답을 자신에게서 찾은 것처럼, 아키라에게 필요했던 시간 역시 '누구'가 아닌, 자기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스스로 답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돌아온 아키라에게 슌야는 말한다. '아키라는 아키라 짱'이라고. 슈헤이나, 죽은 엄마를 대신한 자리가 아니라, 25살 아키라의 자리인 곳,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직업으로 기관사, 비로소 아키라는 부모로써도, 직업인으로서도  '견습' 딱지를 떼었다. 

전형적인 일본 가족 영화의 정서가 물씬 품어나는 <가족의 색깔>, 하지만 잔잔한 듯한 분위기 안에서 던져진 질문들은 심상치 않다. 가족이라는 영향력 안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던져진 '과제', 전형적인 '가족주의'인 듯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도발적인 답을 준 영화이다. 


by meditator 2022. 6. 27.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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