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 제일 두려운 건 '치매'에 걸릴까 하는 것이다. 생각 외로 '암'이나 다른 질병보다 노인들은 '자신'을 잃어가는 치매를 제일 걱정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자기 스스로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시간이 다가온다는 것이 몸이 아픈 것보다 더 공포스럽게 다가온다. 자신뿐만이 아니다. 노인 한 사람의 치매로 온 가족이 고통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가 맞이한 고통이기에 더욱 그에 대한 하중이 커진다. 바로 그 '치매'에 대한 화두를 12월 5일 방영한 드라마 스페셜 2020 <나들이>가 다루고 있다. 

 

 
치매에 걸린 영란 씨 
소파에서 잠을 깬 영란 씨, 그녀의 눈은 아직 현실로 돌아오지 못한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는 듯 허공을 헤매던 그녀의 눈에 익숙한 집안의 모습과 벽에 걸린 가족들의 사진이 눈에 들어오자 그제야 영란 씨는 현실의 시간에 한 발 들어선다. 

잘 손질된 화단에 장독대, 마당까지 너른 번듯한 이층집, 그 안을 채운 시간의 더깨가 앉은 가재도구들, 그곳에 영란 씨라는 이름를 가진 노인이 홀로 산다. 한때는 음식 장사로 성공을 거두어 입지전적 인물로 신문 지상에 오르내리기까지 했던 영란 씨지만 이제는 몇 개 되지도 않는 계단조차 내려서는 것이 버거운 노년에 이르렀다. 어렵사리 계단을 내려 장독 두껑을 챙겨 덮으며 그녀가 향한 곳은 병원이다. 

그리고 병원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건 청천벽력같은 '치매'라는 판정이다. '내가 왜?'라며 벌컥 화를 내는 영란씨, 정신줄 놓지 않고 이날 이때까지 열심히 살아왔다는 그녀에게 치매라는 판정은 쉬이 수긍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치매'라는 판정과 함께 그녀에게 떠오른 기억이 있다. 어린 두 아들과 함께 친정 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그 '없던 시절', 그녀의 어머니도 '치매'였다. 밥그릇을 빼앗는 그녀를 문밖까지 쫓아와 '왜 밥도 못먹게 하냐'며 빗자루로 모질게 패던 어머니, 내림이듯 그 어머니의 병이 이제 그녀를 찾아왔다. 그 시절 두 아들과 함께 살아가기도 벅찼던 그녀에게 어머니의 '치매'가 감당할 수 없었던 것처럼 '치매'라는 판정에 영란 씨는 자신이 보았던 그 '못볼 꼴'을 이제 당신의 자식들에게 안겨야 한다는 게 서럽다. 

치매에 걸린 영란 씨의 모습이 이제는 낯설지 않은 나이가 된 '손숙' 배우가 자신을 찾아온 감당할 수 없는 병에 걸려 '고뇌'하는 노인을 자연스럽게 연기한다. '치매'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면 무엇이 제일 겁날까. 우선 치매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고, 그걸 받아들인다면 자신의 병이 자기 자식들에게 '고통'으로 안겨지지 않을까 하는 공포가 앞설 것이다. 늙고 병들어 가면서도 자식들을 걱정하게 되는 '인지상정', 드라마는 그 여전한 모성을 담는다. 

여기서 더 머물다 가고 싶다 - 황지우

펑! 튀밥 튀기듯 벚나무들,
공중 가득 흰 꽃팝 튀겨놓은 날
잠시 세상 그만두고
그 아래로 휴가갈 일이다

눈감으면, 꽃잎 대신
잉잉대는 벌들이 달린,
금방 날아갈 것 같은 소리--나무 한 그루
이 지상에 유감없이 출현한다

눈뜨면, 만발한 벚꽃 아래로
유모차를 몰고 들어오는 젊은 일가족;
흰 블라우스에 그 꽃그늘 받으며 지나갈 때
팝콘 같은, 이 세상 한때의 웃음

그들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內藏寺 가는 벚꽃길; 어쩌다 한순간
나타나는, 딴 세상 보이는 날은
우리, 여기서 쬐끔만 더 머물다 가자

                                      -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중


 

 
영란 씨와 순천 씨의 나들이 
자신의 병을 알게 된 영란 씨는 나들이를 떠난다. 그녀의 나들이를 동행한 건, 아니 그녀를 모시고 떠난 건 입버릇처럼 자랑하던 잘난 자식들이 아니다. 영란 씨에게 어수룩하게 포도 송이를 빼앗겼던 트럭 행상 방순철(정웅인 분)이다. 한때는 출판사도 했었다는 그는 과일전을 펴놓고도 아이들이 맛보기 과일을 퍼먹던 말던 그 옆에 앉아 시집을 펼쳐보는 장사에는 젬병인 장사꾼이다. 

그런 그이기에 물건을 떼기 위해 가는 원주 행에 함께 하고 싶다는 영란 씨의 떼쓰는 듯한 청을 거절하지 못한다. 함께 떠난 여행, 물건을 떼는 농원에서 장사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영란 씨 덕에 바가지는 쓰지 않았지만 거래처를 놓치게 된 순철 씨는 그저 씁쓸한 미소 한번으로 삼키고 영란 씨가 원하던 곳으로 향한다. 그렇게 두 사람의 나들이는 원주로 고성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순철 씨라고 사정이 없을까. 사람좋은 만큼 세상살이 자기 것을 야무지게 챙길 잇속이 없던 순철 씨는 가족마저 잃은 채 팔자에 없는 트럭 행상 중이다. 늦은 밤 과일이라도 챙겨주고 싶어 집 앞에 놔두고 떠나는 그에게 딸은 '돈'이 필요하다며 악다구니를 한다. 빚쟁이에 시달리지 않게 해주기 위해 이혼 도장을 찍어주는 게 다였던 순철 씨에게 휴학을 밥 먹듯이 하며 대학을 다니는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아버지 노릇을 요구한다. 

드라마는 나이도 다르고, 처지도 다른 두 사람을 '부모'라는 공통점으로 엮는다. 자식을 위해서는 뭐든지 다해주고 싶은 부모 마음, 하지만 그 마음은 여의치않다. 자식을 위해 뭐든지 다해주고 싶어 손이 곱도록 장사를 했지만 외국에서 사업을 하고, 번듯한 직장을 가진 영란 씨의 자식들은 '만족'을 모른다. 그런데도 그런 자식들에게 영란 씨는 여전히 엄마의 마음으로 자신의 병을 안겨주고 싶지 않다. 순철 씨 역시 뭐든 다해주고 싶은데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자식들은 다르지 않다. 가진 걸 다 퍼준 영란 씨 자식들이나, 가진 게 없는 순철 씨 자식이나 여전히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요구'할 뿐이다. 

그 '요구'를 채워주면 부모의 도리를 다하는 것일까? 드라마는 가진 걸 다 퍼부어 줬는데도 여전히 어린 아이처럼 늙은 엄마 앞에서 더 달라고 떼를 쓰는 영란 씨의 자식들을 통해 부모와 자식의 '도리'를 묻는다. '배금주의' 사회의 이치를 따라 살아온 영란 씨의 의지가지할 데 없는 처지를 통해 반문한다. 

그럼에도 부모는 자식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까지 쏟아부으려 한다. 그 마지막 선택이 영란 씨는 더는 자식들에게 자신이 그랬듯 치매인 엄마를 '의탁'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고, 순철 씨는 자존심을 무너뜨리고 영란 씨에게 '돈'을 구하는 것이다. 두 사람의 선택은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두 사람의 선택은 원하던 결과를 가져다 주지 않았다. 대신 각자가 홀로 짊어졌던 짐을 내려놓는 계기가 된다. 그간 두 사람의 나들이가 헛되지 않았던 탓이다. 치매에 걸린 노년, 그리고 감당할 수 없는 가장의 무게, 그게 답이 있을까. 그래도 드라마는 답을 구한다. 드라마의 엔딩, 여전히 두 사람은 다시 '나들이'를 떠난다.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황지우의 시처럼, 그거면 되지 않을까. 너른 세상 잠시 잠깐이라도 서로가 '벗'이 되어 떠날 수 있는 시간, 그거라도 있다면 삶의 족쇄는 조금은 헐거워질 것이다. 

by meditator 2020. 12. 6. 14:16

꼬리가 아홉 달린 여우의 이야기는 낯설지 않다. 옛 이야기 속 여우 누이는 '누이'로 둔갑한 여우가 가축들부터 시작하여, 부모님, 형제들까지 잡아먹어가며 한 집안을 '거덜'내어 버리는 이야기였다. 이제는 전설이 된 <전설의 고향> 속 구미호는 여름이면 찾아오는 단골 손님이었지만 '서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람으로 둔갑한 여우는 사람의 간을 먹고 사람으로 되고자 한다. 그런데 그만 아내가 된 여우를 의심한 남편으로 인해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사람을 원망하며 사라진다. 이렇게 오랫동안 사랑받아왔던 구미호 전설이 환타지 멜로 버전으로 오늘에 되살려졌다. 

 

 

'전설' 속 이야기를 현대적 버전으로 되살리는 건 낯선 일이 아니다. 드라큐라도, 늑대인간도 영화로 부터 시작하여 '미드' 속 주인공으로 맹활약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최동훈 감독에 의해 일찌기 족자에 봉인되었던 전우치가 서울 시내를 활보한 적이 있다. '저승사자'들은 영화<신과 함께>, 드라마 <도깨비>를 비롯하여 다작 중이다.  그런 면에서 구미호의 현대적 버전 업은 새로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12월 3일 종영한 <구미호뎐>은 구미호 전설과 함께  우리의 전설 속 다양한 콘텐츠를 현대적 버전으로 재해석해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무엇보다 전설 속 구미호들은 일관되게 '여자'였다. 여우라는 동물이 가지는 그간의 고정 관념에 힘입어 늘 이야기 속 여우들은 '여성'이라는 성적 정체성을 대변했다. 그런데 새롭게 찾아온 구미호는 그런 전설 속 고정 관념을 뒤집는다. 산속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나르시즘'에 빠질 만큼의 '미모'를 가진 남성이 꼬리가 아홉 달린 여우가 되어 돌아왔다. 

그런데 그 여우는 서울 한 복판에 빨간 우산을 들고 활보하지만 한때 백두대간을 다스리던 산신이었다. <구미호뎐>이 흥미로운 건, 전설 속에서 '구미호'라는 캐릭터를 빼내 온 것이 아니라 구미호를 중심으로 전설 속 세계관을 오늘에 되살려 냈다는 것이다. 

 

 

오늘에 되살려 진 전설 속 세계관 
백두대간을 다스리던 산신 구미호가 주인공이지만, <구미호뎐> 서사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곳은 삶과 죽음의 경계가 되는 삼도천이다. 즉 죽은 후 저승에 이르는 큰 강, 서양 신화의 아케론과 같은 영역에서 그곳을 관장하는 염라대왕의 누이 탈의파가 이제는 '내세 출입국 관리소'가 되어 그곳을 관장하며 드라마 속 삶과 죽음의 운명을 총괄한다. 삶과 죽음의 운명을 가르는 현세와 내세관이 드라마의 세계관으로 중심을 확고하게 잡아준다. 

백두대간을 다스리던 산신이었지만 구미호 이연(이동욱 분)은 전설 속 운명을 거스르지 못한 채 '인간' 여성(조보아 분)과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 사랑의 훼방꾼, 그리고 백두대간을 다스리는 산신의 자리를 욕심낸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로 인해 사랑하는 여인을 스스로의 손으로 죽음에 이르게 한다.

여기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방식이 흥미롭다. 여우는 은혜를 입으면 갚아야 한다는 전설 속 '인연의 고리'가 아킬레스 건이 되어 사랑하는 이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다. 이건 인간과 여우 사이에 태어난 구미호의 의붓동생 이랑(김범 분)이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이무기의 측근과의 얽힌 인연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은혜'라는 전통적 보은의 사고를 환타지 멜로 <구미호뎐>은 양날의 칼이 되는 극적인 장치로 활용한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구미호는 산신의 자리를 박차고 삼도천의 '무사'가 되어 600년의 세월을 인고하며 사랑하는 이의 '환생'을 기다린다. 구미호가 '환생'을 기다릴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저승을 향해 가던 여인에게 자신의 여우 구슬을 주었기 때문이다. 여우 구슬을 가진 이를 찾으며 이승을 어지르는 갖은 악귀를 '처단'하는 전사 구미호가 된 것이다. 

전사가 된 구미호 곁에는 또한 전설 속 인물들이 포진되어 있다. 인간 남자를 사랑하는 마음을 이심전심으로 이해해 준 이연의 든든한 지원군이 된 우렁각시와 토종 여우, 그리고 애증의 이복동생 이랑과 그가 구해준 러시아 여우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600년의 세월 동안 사랑으로 얽힌 환생한 인간 남지아와 그 맞은 편에 그만큼의 세월 동안 구미호의 자리를 넘본 이무기가 가장 강력한 '적'으로 등장한다. 그외에 에피소드로 민속촌에서 사또 코스프레를 하는 또 다른 산신 반달곰, 여우고개의 지박령 외눈박이 장승에, 여우구슬을 탐내는 저승지왕까지 매회 신선한 전설 속 캐릭터들이 등장하여 이야기를 밀고 당긴다. 구미호를 중심으로 이 캐릭터들의 향연을 보는 것만으로도 <구미호뎐>은 흥미로웠다. 

 

 

인연의 결자해지 
건물주가 된 구미호 이연, 다큐 피디로 그의 앞에 나타난 환생한 연인 남지아, 방송사 사장으로 포진한 이무기의 측근, 그리고 인턴으로 등장한 이무기에 수의사 토종 여우 등등 각각 저마다의 직업을 가지고 드라마 속에서 분주히 움직이지만 결국 이들을 이끄는 것은 '인연'이자 운명이다. 그리고 그 '운명'에 순응하지만은 않은 '사랑'이다. 

매년 <전설의 고향>이 리바이벌 되고, 그 중에서도 구미호라는 캐릭터가 스터디 셀러가 되는 이유는 그 비극적 운명성에 있다. 인간의 간을 탐하면서도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이 되고 싶은 아이러니한 운명은 고전 비극의 요소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구미호뎐> 역시 그러한 비극적 운명을 그대로 가져온다. 사랑하지만 600년 전 결국 사랑하는 이를 자신의 손으로 죽일 수 밖에 없었던 인연을 저버리지 못한 채 구미호가 그녀의 환생을 기다린 이유는 바로 자신을 위해 죽어간 그녀에 대한 '보은'을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드라마는 전설이 가졌던 비극적 운명성은 살리되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저마다의 인연으로 얽힌다. 구미호와 600년의 연인 남지아가 그렇듯, 드라마 초반 '악역'으로 매번 구미호의 발목을 잡았던 이랑의 '원한'은 알고보니 600년 전 형에게 버림받았다는 '악연'의 고리를 끊지 못해서이다. 또 다른 악의 축 이무기의 사연도 알고보면 안타깝다. 흉측하게 태어난 몰골로 인하여 죽은 자들의 틈에 버려진 아기가 이무기가 되어 용이 되어 승천하고 산신이 되고 싶었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원한'이 시공을 거슬러 오늘의 '악'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남지아에 이무기가 연연하는 건 그녀가 600년 전 그에게 제물로 받쳐진 여인이기 때문이다.

매번 우렁 각시의 식당에 와서 알짱거리던 탐사 보도 팀 팀장이 알고보니 이무기의 손에 죽음을 맞이한 신랑이라던가, 공원에서 자꾸만 이랑의 뒤를 따라오던 아이가 알고보니 전생에 이랑이 아끼던 검둥개였다는 식으로 드라마 속 모든 인물들은 전생과 이생에 이어진 다하지 못한 인연의 끈으로 묶여 있다. 

하지만 그 인연에 순응하는 대신 저마다 그 주어진 숙명을 뛰어넘고자 애쓴다. '환생'을 통해 다시 만났지만 사랑하는 이의 몸에 따라온 이무기로 인해 죽이거나, 죽임을 당할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자신'을 던져 사랑하는 이를 구하려는 '희생'은 숙명을 거스른 전설의 재해석이 된다.  600년 전과 달리 이연이 몸을 던져 남지아를 구하고 삼도천에 뛰어들었지만 그가 남긴 여우 구슬이 이연을 환생시킨 것이다. 그리고, 남의 목숨이었던 꽈리로 목숨을 연명하던 이랑이 형 이연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희생'함으로써 사랑받는 소년으로 '환생'한 것처럼 드라마는 인연의 재해석을 통해 '해피엔딩'을 맞는다. 하지만 그 전설을 비껴간 듯한 재해석은 결국 '권선징악'이라는 전통적 세계관에 따르기에 환타지 멜로는 '모던'했자만 전체적인 정서는 여전히 고전적 프레임을 유지한다. 

앞서 <도깨비>에 이어 <구미호뎐>까지 고전적 인물의 현대적 버전으로 안성맞춤인 배우 이동욱의 적절한 캐스팅에, 중 2병같은 형님앓이를 하는 반항적인 이랑의 김범, 그리고 젊은이의 모습이지만 그 서늘함은 딱 600년을 거스른 이무기에 어울렸던 이태리에, 삼도천의 수장에 그보다 더 어울릴 수 없었던 김정난 등 적절한 캐릭터 캐스팅에 전설을 환타지적으로 잘 버무려 낸 극본, 그 극본을 공들여 환타지로 되살려 낸 강신효 연출까지 모처럼 깔끔한 환타지 멜로가 반가웠다. 




by meditator 2020. 12. 4. 15:28

아이러니하다. 우리 사회를 강타한 코로나 팬데믹은 그간 주식에 관심이 없었던 2030 세대로 하여금 주식 열풍에 빠지게 하였다. 2030세대 100 명 중 54%가 주식을 하고 있고, 그 중 90%가 올해 주식을 시작했다. 

 

 

BTS 주식을 굿즈로 사는 세대
직장인들의 점심 시간 풍경이 변화했다. 점심 시간이 시작하자 마자 제일 먼저 할 일은 식당으로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오전 장의 결과를 확인하는 것이다. 점심 식사 후 차 한 잔을 놓고 나누는 이야기가 대부분 주식 투자 관련이다. 대부분이 우리나라든 해외든 주식 투자를 하고 있기에 주식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더는 어색한 주제가 아니다. 

대학생이라고 다를까. 수업 시간에 주식을 못팔아 '물렸다'는 이야기가 자연스러운 세대이다. 주식 관련 스터디 모임을 하고 몇 십만원에서 부터 연습삼아 주식을 시작하는 '주린이'들이 대학 캠퍼스에서 낯설지 않다. 이들에게 주식은 한강아 보이는 아파트에서 살도록 '자수성가'의 꿈을 이뤄줄 이 시대의 동앗줄과도 같다. 

6년전 대학을 중퇴한 후 단돈 200만원에서 1억 2천을 마련한 주식 투자 크리에이터 종현 씨, 종현 씨의 여자 친구는 한때는 오늘을 행복하게 살자는 욜로 족이었지만 종현 씨를 만나 신용카드 끊기부터 시작하여 삶의 방식을 바꿨다. 데이트도 투자와 수익이 날 상가를 찾아보며 하는 이들 커플, 그런 덕분일까 그간 저축한 돈에 대출을 얹어 신혼집을 장만했다. 

더는 부모님 세대처럼 주식으로 패가망신을 하지 않는다고 장담하는 세대. 그들에게 주식은 주도면밀한 생존 전략이다. 금융 투자 전문가 존리는 코로나와 함께 등장한 젊은 세대의 주식 투자 열풍에 대해 고통으로 인한 인식의 변화를 그 이유로 든다. 코로나로 인한 우리 삶의 변화가 인생을 되돌아 보게 하고, 혹시나 인생에서 놓치는 것이 없는가라는 '성찰'이 주된 관심사 '돈'에 대한 열망으로 귀결되며 주식 투자 열풍을 낳았다는 것이다. 

작년에서 올해에 걸쳐 20대의 일자리가 20만 개가 줄었다. 30대는 29만 개가 줄었다. 저성장 시대 삶이 불확실성이 증가했다. 평생 직장은 사라지게 되고 그에 따라 젊은 세대들은 실직 불안에 떤다. 반면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돈의 가치는 떨어지고 자산의 가격차는 커졌다. 선택의 차이가 너무도 다른 결과를 낳았다. 코로나는 이런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를 더욱 증폭시켰다.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라는 평가에 82%가 그렇다고 대답하는 세대. 근로 소득만으로 부를 축적할 수 없다고 88?%가 대답하는 세대. 젊은 세대는 혹시나 그들에게 닥칠 극단적 궁핍에 대한 공포를 바탕으로 절박하게 주식에 뛰어든 것이다. 상대적으로 평등한 정보에 따른 해석 능력에 따라 부가 주어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젊은 세대로 하여금 일확천금의 꿈을 꾸도록 만든다. 

 

 

래버지리라도 마다하지 않는 투자
자칭 '오창의 존리'라는 김재용 씨는 퇴근하자 마자 주식 마감장을 확인한다. 이제 주식 투자 7개월 차, 2000 만원을 대출 받아 투자하여 4500만원을 만든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주식 투자를 적극적으로 권유한다. 매달 200만원 정도 씩을 투자하는 그는 매번 이익을 보지는 못하지만 언젠가는 우상향할 것이라는 마음으로 투자에 올인한다. 5000 만원이 모이면 '경매'를 통해 부동산을 가겠다는 그, 부족한 자금은 대출을 통해 충당하겠다고 한다. 성공적으로 임대를 한다면 이자보다 높은 수익을 낼 것이란다. 

블루머니라는 주식 투자 블로그를 하는 30대, 3천~4천 정도 마이너스 통장을 활용하여 국내외 주식 투자 자금을 1억 5천 정도 되게 불렸다. 주식 투자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그는 원래는 빚을 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도 초급락장에는 마이너스 통장이라도 활용하여 '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금리 시대 빚을 이용해야 한다고조 한다.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시대 주식 투자를 안하면 손해라는 것이다. 상승장과 하락장의 대세를 잘 알면 손해는 보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기도 한다. 

주식 투자 15년 만에 경제적 자유를 얻었다는 전인구 씨는 구독자 24만 주식 관련 크리에이터로 활동 중이다. 그에게 오는 상담 메일 중 상당수가 돈을 잃었다는 내용, 그 중에서는 2~30대가 제일 많단다. 마이너스 통장은 물론, 카드론 현금 서비스를 받아서 주식에 '몰빵' 했다가 날렸는데 어떻게 하면 원금을 회복할 수 있냐는 내용들이다. 

올 한 해 신용대출만 13.2조원, 전년 대비 70% 이상 증가했다. 30대가 가장 많았고, 20대도 많았다. 100 조에 이르는 주식 시장에 도는 자금 중 10~20%가 이른바 '빚투'이다. 대출은 너무 쉽다. 젊은이들은 비상금 대출을 받아 주식을 한다. 대기업에 다니는 이들 역시 회사에서 해주는 대출이 쉽다. 상승장에 이른바 빚을 내서 투자하는 '래버리지'라도 땡겨서 투자를 하려는 이들, 과연 빚투는 승산이 있을까?

주식만이 아니다. 이른바 '영끌' 영혼을 끌어모아서라도 빚을 내서 집을 마련하겠다는 사람들이 젊은 층의 61.5%에 이른다. 실제 주택 담보 대출의 44%가 2~30대이다. 과도한 주택 담보 대출을 받아 짊어진 빚의 무게를, 마이너스 통장을 대출받아 그걸로 주식 투자를 해서 메꿔보겠다는 세대. 아파트 값이 평균 10억 이상이 된 시대, 여전히 부동산은 손해보지 않는다는 부동산 불패 신화에 저당잡힌 젊은 세대의 어깨가 무겁다. 

젊은 세대들은 왜 그렇게 '돈'을 모으기에 자신을 던질까. 그들은 말한다. 돈때문에 선택이 바뀌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고. 인색하게 살고 싶지 않다고. 돈은 불행을 막아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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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환불해 주세요
하지만 36년 투자 경력의 이원기 씨의 주장은 다르다. 지금은 비교적 수익률을 올리기 쉬운 시기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과잉 자신감을 가질 우려가 크다고 경고한다. 언젠가는 오를 것이라고 낙관하지만 지난 36년의 경험에 비춰 이른바 우량주라는 주식이 -30%, -50%, 심지어 -80%가 되버린 경우가 200개도 넘는 반면, 엄청난 수익을 낸 경우는 20개에 불과했다고 우려한다. 

스마트한 소수가 이익을 보고 평범한 다수가 손해를 보는게 주식 투자의 구조라고 정의한 이원기 씨는 주식을 마치 전자 오락이나 모바일 게임처럼 희화화하는 경향이나, 동학 개미 따상 등의 감각적인 단어가 붐을 일으켜 사람들을 주식으로 끌어모으는 호객 행위와도 같다며 냉철하고 차가운 현실 감각이 필요하다고 아쉬워한다. 

존리 씨 역시 오른것만 보고 투자하는 근시안적인 안목을 안타까워 한다.  200만원을 투자하여 50만원을 벌면, 2억이면 5000 만원을 번다고 상상하게 되는게 인간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전문가 박영미씨는 빅히트 주식이 떨어지자 환불 소동이 벌어지는 데서 보여지는 젊은 층의 주식 자체에 대한 짧은 지식을 우려한다. 

가계 대출 사상 최대, 경제적 불평등을 상징하는 피케티 지수는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는 중인 한국 경제, 젊은 층은 이런 시대를 돌파하게 위해 경제 전선에 자신을 던진다. 밀레니얼 세대는 마치 게임 인벤토리 리스트처럼 직장도, 수익도, 그리고 기초 자산도 필수라 여긴다. 

하지만 이런 브레이크 없는 고속 열차같은 한국 경제 상황에 '버블'을 우려한다. 고대 강성진 교수는 재정 적자로 인해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려 지출이 늘어난 상황이라며, 코로나가 끝나고 재정이 줄어들어 거품이 꺼지면서 빚내서 집을 산 사람이 파산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경제의 불확실성을 강조한다. 미래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미래는 알 수 없기에 '영혼을 끌어모아' 투자를 하고 집을 사지만, 그런 방식이 외려 젊음의 시간을 담보로 잡힐 수 있다는 것이다. 



 

by meditator 2020. 12. 2.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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