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일 방영분 <남자의 자격>은 서울 시장 투어를 했다. 그리고 마지막 투어 장소인 마장동 우시장에서 홀로 독박을 쓴 윤형빈은 흔쾌히 스탭을 위해 소고기 100만원 어치를 쐈다. 분명 문제 맞추기를 시작했을 때는 이경규의 편이었던 윤형빈이 마지막에 홀로 남아 소고기값을 계산하는 과정은 문제가 푸는 과정에서 발생한 해프닝이라고 했지만, 마치 그 전주 윤형빈의 과도한 혼수 준비로 인한 구설수를 애써 봉합하려는 듯한 제스쳐로 느껴져 안타까웠다.

 

사실, 4년여 <남자의 자격>을 함께 해오던 막내가 결혼을 하는 과정에서 형들이 혼수를 한가지씩 도와준다는 그 사실만 놓고 보면 '미덕'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무한도전>의 하하가 형들에게서 받은 축의금을 기부를 한데다, 고가의 커피 머신을 사는 등 무리수로 인해 흐뭇하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은 구설수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아빠, 어디가?>의 상승세로 인해 위축되던 <남자의 자격>은 결국 '종영'이라는 아쉬운 카드를 꺼내들고 말았다.

그런데 지금 시점에 과연 <남자의 자격>의 종영이 적당한 카드인가에 대해서는 선뜻 100% 동의하기 힘들다.

 

물론 <남자의 자격>은 진부하다. 3월 3일자 서울 시장 투어라는 아이템은 <1박 2일>에서 꽤나 써먹었던 소재이다. 전국 방방 곡곡 어느 지역을 가던 그 지역의 전통 시장 먹거리 투어를 하던 방식은 출연진만 달라졌을뿐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더구나 잠자리 복불복이 달린 살벌한 게임 방식도 아니고 각팀 별로 나누어 먹거리를 맛보고, 그걸 다시 모아서 다함께 맛보고 그 중 가장 맛있는 거 고르기 하고 땡!해버리니 좀 맥이 빠지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그 다음에 찾아간 경동 시장에서 온갖 남자에게 좋다는 약재 맛보기는 오래 전에 이경규가 했던 mbc <일요일 일요이 밤에>의 건강 보감 코너를 그대로 옮겨온 듯했다. 여전히 이경규가 그 특유의 너스레로 분위기를 잡고 만만한 김태원과 이윤석을 희생양 삼아 가학적인 재미를 뽑아내는 것으로 시간을 꾸려갔다.

이렇듯 최근 <남자의 자격>이 내세운 '죽기 전에 해보아야 할 101가지'들은 새롭지도 않고,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지도 않는다. 더구나 이경규와 그의 수족같은 몇몇 멤버들이 하는 만들어 내는 상황은 새로 들어온 김준호에게 콩트를 하지 말라는 이경규의 구박이 무색하게 콩트화되어 있다.

 

 

그런데도 희한하게 그런 진부하고도 진부한 아저씨들의 뻔한 조합에 여전히 중독성이 있다. 그리고 전통 시장에서 만난 사람들이 반기는 이경규나 김태원을 봤을 때 그런 그들의 뻔함이 친근함으로 여전히 먹히는 부분이 있다는 것 역시 무시못할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 들어온 주상욱과 김준호의 개인적 고군분투는 상투적인 <남자의 자격>에 꽤나 활력소가 되고 있었다는 것 역시 섣부르게 남자의 자격이란 프로그램이 문을 닫으려는 결정에 우려를 낳게하는 요인이다.

<남자의 자격>의 종영이란 결국 이제 '아저씨들의 예능'이란 예능의 또 하나의 주제가 역사속으로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건 다시 한번 '이경규식의 예능'이 막을 내리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연속으로 시청률 꼴찌를 하는 프로그램을 지속시켜야 하는 의무나 동기는 없다. 하지만 과연 지금이 <남자의 자격>이란 프로그램을 없앨 시기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남자의 자격>을 보면 안타까운 것이 <무한도전>과 같은 장인정신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5년 전의 아이템을 다시 꺼내 그것을 자기와의 싸움으로 새롭게 버전업하여 내보여 찬사를 받은 <무한도전>에는 그 멤버만큼이나 유명한 pd가 있다. 하지만, 그간 <남자의 자격>이 내리막 길을 걷게 만든 장본인은 엄밀하게 이경규도, 멤버들도 아니라, 공무원처럼 때우듯 프로그램을 끌어왔던 제작진이었다. <무모한 도전>이 <무한도전>이 되어가는 시간처럼, 그 누구라도 <남자의 자격>에 대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투자를 했다면, 충분히 '아저씨들의 자격'이 '할아버지들의 자격'이 될 수도 있는 것인데, 그저 시청률과 허술한 제작정신으로 또 하나의 프로그램을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드는 것이다. 더 오랜 시간을 끌고온 <무한도전>이 진부하지 않은데 <남자의 자격>이 진부해져 버린 것, 그건 시간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인간의 조건>은 멤버가 신선하기는 했지만, 예능으로서는 모험인 개그 콘서트의 멤버들이었고, 프로그램의 내용도 쓰레기 버리지 않기 등 다큐에나 어울릴 만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조건에서 멤버들의 캐릭터를 뽑아내고, 다큐를 예능을 넘어 '힐링'으로 승화시킨 것은 온전히 제작진이 이뤄낸 성과인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8년 여의 전통을 가진 <놀러와>를 무 자르듯 없애 버리고 들어간 후속 프로그램은 또 한번의 종영을 맞이하고, <승승장구>를 밀어버리고 차지한 강호동의 예능 <달빛 프린스> 역시 또 한번의 변신을 한다고 한다. 때로는 존재감이 없어보이는 것들이 만들어 놓은 전통이란 것도 무시못할 것들인데, 유행에 눈이 먼 사람들은 그나마 남은 전통마저도 싹쓸어 없애 버리려고 하는 듯하다. 마치 어릴 적 동네의 소박한 모습을 아파트가 밀어 버리듯이. 이경규는 뻔하지만 과연 그 시간 예능으로 이경규를 대체해서 지금 한참 흐름을 타고 있는 <아빠, 어디가?>를 이겨낼 대안이라니, 글쎄다. 때로는 바꾸고 걷어내는 것보다 지키고 견뎌내는 것이 현명한 판단일 수 있는데 여전히 사람들은 새로운 것으로 시선을 잡는 데 급급한다.

더구나 예능에서의 유재석-강호동 투톱 체제가 허물어지고, 대안으로 새로운 대세가 떠오르지도 않았으며,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나, 서바이벌 프로그램 역시 한계에 봉착한 이즈음 하늘 아래, 귀여운 아이들을 제끼고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을 새로운 것이 있을까?

by meditator 2013. 3. 4. 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