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아이를 속이고 버린 것도 모자라, 자신의 오빠를 이용해 하류로 착각해 하류의 형까지 죽여버린 주다해,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백지 유전자 감식을 들고 백도경과 단판 딜을 벌이는 배포를 가진 그녀의 '악함'에 대해 논하는 건 진부한 발목잡기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덜 사이코패스같은 그녀가 그 경계선을 넘기 전에, 한번쯤은 인간 주다해에 대해 이야기해 볼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우선 법적으로 주다해가 저지른 범죄를 짚어보자. 지금까지 저지른 가장 큰 범죄는 하류의 형을 죽음으로 몰아간 살인교사죄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야왕>이란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에게 그녀를 결정적으로 '나쁜 년'으로 찍게 된 계기는 엄밀하게는 법적인 문제라 보긴 그렇다. 물론 버젓이 남편과 아이가 있는 유부녀인 주제에 백학의 황태자 백도훈의 연인이 된 것은, 사기 혐의로 넣을 수도 있지만, 돈이 결부되지 않는다면 대부분 민사 상의 문제인 것이다. 그것보다는 그녀가, 이른바 도의적인 측면에서, 자신의 가족을 도외시했다는 점, 그것이 바로 그녀가 '죽일 년'이 된 결정적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면 하류는 어떨까? 물론 그는 주다해로 인해 모든 것을 잃었다. 사랑하던 가족도, 아이도, 그리고 억울한 누명으로 감옥을 갇혔고, 겨우 만난 형조차 죽음을 당했다. 그러기에 시청자들은 '도의적으로' 그의 복수가 당연하다고 여긴다. 이제 갓 감옥에서 출소한 그가 죽은 형의 복수를 위해 자신이 변호사로 둔갑하는 '변호사법 위반'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의 복수의 방식은? 가만히 따져보면 마치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라는 식으로 그간 주다해가 걸어왔던 길이랑 다르지 않다. 시청자들은 주다해에 당한 하류에 시선을 빼앗겨, 그리고 주다해의 앙큼함에 속절없이 넘어가는 백도경이 안타까워, 그녀 곁에 하류가 나타난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하류도 백도경을 이용하는 건 마찬가지다. 주다해가 자신의 야망을 위해 백도훈을 사랑의 제물로 삼았듯이, 하류 역시 백도경의 호감과 사랑을 이용해 자신의 복수를 완성하려 한다. 단지, 그의 복수를 위한 백도경의 이용이 시청자들에겐 불쌍한 백도경에게 찾아온 로망이요, 위로가 되기에 잊고 있을 뿐이지. 엄밀하게 말하자면 백씨 모자는 하류네 부부에겐 그저 만만한 사랑의 '봉'이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하류의 이용은 선의로 눈을 꾹 감고, 그저 주다해만 나쁜 년이라고 손가락질한다.

 

(사진은 디시인사이드 야왕 갤러리에서)

 

주다해를 나쁜 년으로 만든 것은 그녀의 '욕망'이다. <야왕>이란 드라마에서 여성의 욕망은 불온하다. '백학'의 한 부서 본부장이 되어 커피 체인점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 정도의 능력을 가진 여성 주다해가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과정은 처음부터 불순하다. 남편과 자식이란 굴레로 움츠리게 만들더니, 욕망의 에스컬레이터로 잡은 것이 대뜸 '백학'의 황태자의 사랑이다. 거기에 주다해로 하여금 악수를 자꾸 두게 만든 것은 그 사랑하려는 배도훈의 생모이다. 그저 자신의 아들의 짝으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주다해를 하염없이 깍아내리고 트집잡는 것도 모자라 뒷조사에 음모까지 거침없다. 그러던 백도경의 약점은 그녀의 아들 백도훈이요, 아마도 나중에는 그녀의 사랑, 하류가 될 것이다.

 

여성은 '가족'이란 울타리에서 벗어나서는 안되는 법이거늘(?), 그것을 뛰어넘어 자신의 욕망을 꿈꾸는 주다해에게 돌아온 것은 아이의 죽음이요, 자신의 욕망을 이어가기 위한 범죄들이다. 아마도 욕망을 꿇어앉히지 않는 한 <야왕>이란 드라마에서 주다해가 자신의 욕망을 실현해 가는 방법은 사이코패스화 되어 범죄로 또 다른 범죄를 막는 길 밖에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백도경 역시 다르지 않다. 가족 제도라는 틀에서 벗어난 모성은 범죄의 희생양이며, 꿈꿀 수 없는 사랑도 역시 또 다른 제물이 될 뿐이니. <야왕>은 하류의 복수극이라기 보다는 그 옛날 궁중 잔혹사 속의 임금의 승은을 위해 죽고 죽이는 여성들처럼, 현대 사회에서 욕망의 에스컬레이션을 둘러싼 여성들의 또 다른 잔혹사에 다름 아닌 것처럼 보인다. <야왕>을 보다보면 시대가 조선 시대이건, 첨단의 21세기이건 여전히 여성의 욕망은 불순하며 가족과 사회의 안녕을 해치는 불온한 것처럼 보인다. 가족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과 희생이 새삼 강조되는 이 시점에, 심지어 대통령도 여성인데, 여전히 텔레비젼 속 욕망에 물든 여성들은 조선시대 장희빈 뺨치게 악녀일 뿐이다.

by meditator 2013. 2. 19. 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