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왔다! 장보리>에서 연민정이란 전무후무한 악역 캐릭터로 mbc 연기 대상을 거머쥔 이유리의 차기작은 뜻밖에도 케이블인 tvn의 금토 드라마 <슈퍼대디 열>이었다. 5월2일 종영한 이 드라마에서 이유리가 맡은 역할은, 그녀에게 연기 대상을 쥐어 준 여주인공의 모든 것을 빼앗기 위해 고심하는 악녀가 아니라, 시한부의 삶를 살면서도 적극적을 자신의 아이에게 진정한 가족을 만들어 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싱글모의 역할이었다. 왜 연기 대상을 쥐어 준 공중파의 작품을 마다하고 케이블의 드라마로 갔을까? 그건 연기대상을 받은 캐릭터와 <슈퍼 대디 열>의 캐릭터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조연으로서, 누군가의 것을 빼앗는 악녀가 아니라, 다시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 사랑스러운 여인으로서, 그건 이유리가 그간 해왔던 아침 드라마나, 주말 드라마에서의 '복수'의 당사자이건, '복수'의 대상이었던 범주를 벗어난 신선한 '수혜'였다. 

하지만, 그런 '신선한 수혜'가 어느 배우에게나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이유리도 연기 대상을 받고 나서야, 케이블 tv를 통해서 새로운 선택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이유리의 기회에서도 보여지듯이, 선택을 당하는 대상인 배우들에게 있어, 자신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는 흔하지 않다. 그것보다는, 그간 이유리가 그래왔듯이, 마치 굴레처럼 익숙해진 캐릭터로 '소모'되기 십상이다. 그러던 배우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그런데 그 기회가 드라마가 아닌 예능이다. 



봇물터진 배우들의 예능 나들이 
딱히 누가 시작이랄 것도 없이 최근 너도 나도 배우들의 예능 나들이가 봇물을 이룬다. 굳이 그 시작을 따지자면, 역시나 나영석 pd를 들 수 있겠다. 일찌기 <1박2일> 시즌1을 통해 배우 이승기를 '국민 허당'이란 독보적 캐릭터로 승화시킨 바 있던 나영석 pd는 tvn으로 자리를 옮겨 런칭한 <꽃보다 시리즈>와 <삼시 세끼>를 통해 국민 할배, 미대생, 차줌마 등 배우들의 예능적 재탄생을 주도했다. 그렇게 나영석 pd의 예능을 통해 전국민적 관심의 대상으로 새롭게 각인된 배우들이 등장하면서, 간헐적으로 이루어지던 배우들의 예능행 역시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1박2일> 시즌에서 이승기의 게스트로 등장하여 '미대생'의 분위기를 뽐내던 이서진은 <꽃보다 할배>시리즈에서 '짐꾼'으로 다양한 매력을 뿜어내더니 <삼시세끼>라는 독자적 프로그램을 꿰어찼다. 그가 출연했던 드라마 <참 좋은 시절>의 강동석 보다, 예능인 <꽃보다 할배>, <삼시 세끼>에서 투덜거리면서도 제 할 일은 똑뿌러지게 해내는 이서진이 훨씬 더 매력적이다. 

이제 이서진에 이어 <꽃보다 할배>에 합류한 최지우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가 열연했던 2014년 <유혹>에서 유세영 캐릭터도 치명적이었지만, <삼시 세끼> 단 한번 출연으로 <꽃보다 할배> 그리스 편의 멤버를 꿰어찬 최지우의 나이를 잊게 만드는 톡톡 튀는 매력을 상쇄하긴 힘들다. '전국민의 아줌마가 되어버린, 그래서 심지어 이제, 그가 출연한 <화정>의 광해군 캐릭터에 집중하기 힘들게 만든, 차줌마 차승원의 매력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렇게 배우들은 드라마의 캐릭터를 통해서는 다 보여줄 수 없었던 자신의 숨은 매력을 예능을 통해 뽐낸다. 한번 갔다온 경험에서 부터, 이제는 아이부터 만들고 봐야 한다며 털털한 매력을 거침없이 뿜어내어 <썸남썸녀>의 정규 편성에 기여한 채정안, '도라에몽' 덕후라는 전무후무한 캐릭터로 각종 예능을 섭렵하고 있는 심형탁에, 드라마의 캐릭터보다 솔직 담백한 입담이 더 돋보이는 이규한이나 김지훈 등이 있다. 

그리고 그렇게 예능을 통해 자신의 또 다른 면모를 발휘한 효과가 역으로, 드라마의 캐스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심형탁의 경우, 예능에서 활발한 활약을 보인 이후, 드라마의 출연 빈도가 늘었으며, ,<브레인>에서 단역에 가까웠던 캐릭터에 비해 극중 비중도 늘어났다. 물론, 최근 <화정>의 차승원처럼, 그 예능적 캐릭터가 드라마 속 인물의 몰입에 방해가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가정사로 인한 구설 외에, 영화 <하이힐>의 조용한 종영 등, 침체기를 겪는 차승원에게 <삼시세끼>가 대하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돌아오는데 영향력을 미쳤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기꺼이 예능을 택한 배우들
이렇게 양날의 검이 된 예능, 하지만 배우들은, 협소한 기회, 고정된 캐릭터를 벗어나기 위해 기꺼이 예능을 선택한다. 

5월 8일 방송된 <님과 함께 시즌2 최고의 사랑>은 안문숙, 장서희, 두 여배우를 내세운다. 안문숙은 이미 시즌 1을 통해 그간 예능을 통해 걸쭉한 입담을 보여줬던 것과 달리, 아나운서 김범수와 애틋한 러브 스토리를 구현해 내 주목받은 바 시즌2까지 그 활약을 이어간다. 장서희의 출연은 뜻밖이다. 하지만, 이유리처럼 '점을 찍고' 서야 인정을 받는 '복수극'에만 출연해왔던 장서희 역시, 로맨틱한 가수 윤건과의 러브 스토리를 마다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이어 5월9일 첫 선을 보인, <레이디 액션>은 선택의 한계를 뛰어 넘은 또 다른 경지이다. 안문숙이나, 장서희가 세월에, 혹은 캐릭터의 한계로 주어지지 않은 여배우의 가능성을 예능의 러브 스토리'를 통해 풀어내고자 했다면, 여배우이기에 제한적이던 '액션'이라는 영역에, 조민수, 김현주, 손태영, 이시영, 최여진, 이미도 등의 여섯 배우가 도전한다. 

오십줄의 조민수부터, 삽십대의 이시영, 이미도, 심지어 애를 낳은 지 갓 백일을 넘긴 손태영까지, 다양한 연령, 조건의 여배우들이, 여배우로서는 버거운 영역인 '액션' 배우의 영역에 도전하는 것이다. 첫 회를 선보인 <레이디 액션>은 여섯 여배우들이 자신의 몸으로 온전히 끌어가는 한 시간 여로 인해 볼거리를 만들어 낸다. '아장거리던' 여배우들이, 그간 드라마를 통해 '여자'로 길들여진 몸짓을 털어내고, 꾀부리지 않고 액션에 어울리는 배우가 되기 위해 구슬 땀을 흘리는 '리얼'이 그대로 웃음과 감동의 포인트가 된다. 죽을 때까지 '도전'이라고 배우를 정의한 조민수가 새로운 영역에 대한 호기심을 허벅지의 통증을 참아가며 올라가지 않는 다리를 손으로 들어 올리며 액션을 만들어 갈 때, 어설픈 그들의 몸짓에서 시작된 웃음을 감동으로 마무리되고, 예능은 이렇게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배우들과 함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다. 그들에게 주어지지 않은 드라마나, 영화의 캐릭터를 예능을 통해 구현해 낸다. 

by meditator 2015. 5. 9. 0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