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회, 광해(서인국 분)를 폐서인 시키고자 하는 선조에게 광해가 일갈한다.

"아버님은 평생, 왕의 얼굴에 매달리셨습니다. 하지만, 군주가 진정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군주 자신의 얼굴이 아니라, 바로 백성들의 얼굴입니다"

광해의 이 단호한 왕의 얼굴에 대한 정의가, 바로 드라마<왕의 얼굴>이 끈질기게 추구하고자 한 주제 의식이다.

 

그리고, 그 주제 의식에 걸맞게, 선조(이성재 분)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왕이 된 광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그간 백성들의 등골을 휘게 만들었던, 방납의 폐해를 없애고자 대동법을 실시한 것이다. 객주 장수태(고인범 분)의 단적인 예처럼, 산골에 부과된 전복이라는 말도 되지 않는 공물을 내기 위해 백성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장수태와 같은 상인의 전횡과, 관료들의 이권을 견뎌내야 했는데, 이렇게 가장 백성들을 고통스럽게 만든 방납을, 토지 소유에 근거하여, 각 얼마를 정하는 대동법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광해가 방납의 폐해를 들고 나오자, 그를 지지했던 대북파의 거두 이산해(안석환 분)는 만류한다. 조선이 세워진 이래 모든 왕들이 그 폐단을 없애고자 하였으나, 그 어떤 왕도 성공치 못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런 이산해의 저지에, 광해는 단호하게 말한다. 그는, 바로 공과 같은 대신들이, 방납의 이권에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냐고. 그러면서, 각자 소유한 토지에 근거하여, 공평하게 쌀로 세를 대신 부과하는 대동법을 실시하겠다고 밝힌다.

 

내가 왕이다  서인국이 왕의 얼굴에서 광해를 맡아 훌륭하게 소화했다. /KBS2 왕의 얼굴 방송 캡처

the fact

 

드라마의 한 장면이지만, 보는 시청자들은 이 장면에서, 우리가 사는 현재가 고스란히 짚어진다. 현재 정치권에서 논의가 되고 있는 이른바, 증세 논란이 그것이다. 즉, 복지 국가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결국 증세를 해야 하는데, 과연 그 대상이 누가 되어야 할 것인가를 두고, 갑론을박 각 입장별로 의견이 갈리는 것이다. 연초가 되자마자 급락한 대통령의 지지율의 상당 부분이, 유리 지갑이라 일컬어지는 월급쟁이들의 연말 정산의 달콤한 즐거움을 앗아갔던 탓이 큰데, 거기서 사람들이 반발하는 이유는, 바로, 정작 돈을 내야 하는 부자들에게는, 각종 혜택을 주면서, 정작 만만한 사람들에게 다시 세금을 뜯어 가고 있다는 불만이 표출된 것이다. 결국, 날이 갈수록, 빈부의 격차가 극심해 지고 있고,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결국, [21세기 자본론]의 피케티의 주장처럼, 부유세만이 해결책인데, 그 해결책은 외면한 채, 엄한 담뱃세 등으로, 서민의 등골을 다시 빼먹는다 생각하니, 사람들의 마음이 다 얼어붙어 버리는 것이다. 바로 이런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해, 드라마 <왕의 얼굴>은 이른바 불운의 왕세자 광해를 통해, 진정한 리더가 추구해야 할 바가 무엇인가를 찾아가고자 했다. 그리고 마지막 회 보란듯이, 광해는 가진 땅에 근거해 세를 부과하는, 이른바 부자 증세의 효과가 드러내는  대동법을 통해, 이 시대의 리더가 추구할 해법을 제시한다.

 

단 한번도 거역할 수 없었던 아비 선조에게, 백성의 얼굴을 일갈하고, 왕이 되자마자, 대동법을 통해, 백성들의 밝은 얼굴을 살폈던 광해, 그가, 그렇게 백성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리더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왔던 길은 험란했다.

그 자신이 적통이 아니기에, 늘 왕의 자격이 부족하다 생각했던 아비 선조의, 노회한 정략에 휘말려, 적통도 아니고, 심지어 장자도 아닌 처지에, 혹여나 왕의 자리를 넘볼까 시험의 대상이 되고, 밀려드는 왜군 앞에 먹잇감처럼 왕세자가 되었던 광해, 하지만, 그는 오히려 아비의 시험에 들어 폐서인이 되어 궁밖에 내처지고, 홀로 한양에 남아 왕가의 대표자로서 백성을 돌보며, 진정한 리더로서 성숙해 간다. 그래서, 마지막, 평생을 나라를 좀먹은 선조가 나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 있냐며, 왕의 자격에 타고난 신분이 무슨 소용이 있냐며 반문하는 김도치에게 당당하게, 그것은, 권력과 재물이 아니라, 책임이라며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드라마 <왕의 얼굴>은 최근 학계에서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개혁 군주로서의 광해군에 대한 연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거기에, 우리가 사는 현실에 대한 거울로서, 진정 백성을 생각하는 리더로서의 광해를 완성하였다. 그리고, 인조 반정을 통해 비운의 왕이 되고만 광해의 운명이, 우리가 역사를 통해 배우듯, 폐륜이 아니라, 어쩌면, 그가 왕이 되자마자 실시했던 진정 백성을 위한 대동법 등의 개혁적 정책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드라마의 여운으로 남긴다. 그것을 위해, 인목 대비는,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권력의 화신이 되었고, 이산해 등의 관료들은 가렴주구에 물든 권신 세력으로 묘사되었다. 이렇게 왕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의 개혁적 정책과, 정통성을 승인하지 않는 무리들이 결국 광해를 왕좌에서 밀어냈을 것이라는 것을, 23회의 여정 속에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도록 드라마는 광해라는 인물을 구현해 낸다.

 

그리고 이렇게 백성을 생각하는 리더로 재탄생되는 광해의 맞은 편에, 평생, 왕의 얼굴을 가지고 싶었지만, 정작 왕의 얼굴에 집착만 했을 뿐, 전란이 나자마자 자기 한 몸 살고자 내빼기 바빴던, 심지어 자신의 왕좌를 지키기 위해 피붙이조차 의심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던 편협한 인간 선조를 대비시킨다. 또한, 자신의 가족을 국가에 의해 잃고, 타고난 운명을 거부하며 스스로 왕이 되고자 했던, 하지만, 결국은 그것이 개인의 야욕으로 귀결되고만 김도치란 또 다른 인물을 대비시킨다. 이렇게 왕이고, 왕이 되고자 했고, 결국 왕이 된 세 인물들의 행적을 통해, 올바른 리더의 길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들었다.

 

물론, 이렇게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좋은 주제 의식에도 불구하고 사극으로서 <왕의 얼굴>이 가진 아쉬운 점은 남는다.

무엇보다, 굳이 '관상'이라는 소재를 들어 왕의 얼굴에 천착함으로써,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어렵사리 에둘러 돌아와야만 했다. 선조를 왕의 관상에 집착하는 인물로 그려낼 것이 아니라, 담백하게 정통성을 지니지 못해 의심과, 변덕으로 자신의 보위를 유지하는 불완전한 인간으로 그려냈었다면 좀 더 드라마적 개연성이 분명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관상'이란 픽션을 끌어 들임으로써, 광해라는 캐릭터가 뜬금없이 관상감의 과거를 보게 만든다거나, 결국 김개시가 되는 가희를 그려내는데 있어 역사적 사실을 비껴가는 묘사를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게 된 것이다. 심지어, 광해군대에 이르러서까지 그 권세를 유지했던 김개시를 선조를 독살하고, 광해의 곁에서 물러나는 순정의 주인공으로 만듦으로써 왜곡의 수순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사극 <왕의 얼굴>의 옥에 티이다.

 

또한, 백성을 생각하는 군주로 거듭나는 리더로 구현하기 위해, 광해라는 인물을 지나치게 도덕적인 히어로로 그려낸 것 역시 아쉬운 점이다. 불가피하든 어쨌든 결국, 자신의 형을 비롯하여, 인목왕후, 영창대군, 그리고 결국 자신의 동지와도 같던 허균까지 죽음으로 몬 군주가 광해일진대, 폐주로서의 그를 새롭게 모색하는 것이, 정반대로 영웅으로 미화하는 경지에 이른 점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흑백 논리적인 비약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차라리, 깨닫고 고뇌하는 인간 광해였다면, 조금 더 현실감있는 역사적 인물로 기억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5. 2. 6. 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