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철학자 쟝 보드리야르는 '걸프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라는 도발적 언급을 한다. 즉, 전폭기 조종석에 딸린 스크린을 통해 일종의 전자 오락 형태로 제시된 전쟁 상황은, 고전적 전쟁의 참혹함을 간단히 증발시켜 버린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한 것이다. 이렇게, 현대의 고도화된 사회적 문화적 기제들은, 그 당사자들이 겪는 고통과 슬픔을 거세시켜버린 채 문서 상의 문구나, 혹은 기계의 장치로 대체시켜 버린다. 그래서 모든 현실은, 그저 편리한 절차나, 과정, 프로그램으로 상치되어, 그 속에서 '인간'은 증발되어 버린다. 그래서, 다시 역설적으로, 그 어떤 무기도 장착하지 않은 사무실 안의 책상 앞에 앉아 서류를 다루고, 숫자 놀음을 하는  '화이트 칼라'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원 권력자가 되어 폭력을 휘두르게 되는 것이다. 


당뇨 합병증으로 알츠하이머를 앓은 김석주의 아버지(최일화 분)는 눈 앞의 아들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리고 아들을 닮은 듯한 김석주(김명민 분)에게 속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자신의 아들 이야기를 한다. 너무나 영민하여 오만해 질까, 남들이 다 칭찬만 하는 아들에게 지레 더 엄격해야만 했던 아버지, 하지만, 그 아들에게 법원 건물의 재료가 되는 돌 석자를 이름에 넣어, 돌로 지어진 건물처럼 오래도록 강건하게 살아갈 인물이 되기를 바랬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진심을 알고, 김석주는 오열한다. 아버지 앞에서 당당하게 서로 생각이 다른 것뿐이라고 말했던 자신의 오만을 절절하게 깨달으면서. '엘리트'의 눈을 잃고, '인간'의 눈을 회복한 김석주는, 그간 자신이 변호했던 여러 사건의 피해자들을 목도하면서, 자신의 다른 생각이 가지는 엄청난 파급 효과, 그 오만의 실체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마치 전투기 조종석에서 게임을 하던 전투기 조종사가 폐허가 된 전쟁터에 던져지듯, 김석주는 자신이 투하한 변호의 피폐함을 마음의 눈으로목도하고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한다. 

(사진; OSEN)

12회에 이르기까지, 사고로 인한 기억상실을 통해 변호사로서 부도덕했던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 보게 되었던 김석주는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음을 깨닫고 차영우 로펌을 사직한다. 거대 기업들의 비자금을 주무르던 변호사 김석주의 사직으로 그의 주 고객들이었던 그룹, 은행들은 당황한다. 하지만, 차영우는 그런 클라이언트들을 진정시키며, 여전히 차영우 펌이 고객들의 의뢰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음을 설명하고, 김석주의 다음 카드를 준비시킨다. 

김석주의 다음 카드, 즉 포스트 김석주로 선택된 것은, 서울지법 판사 전지원(진이한 분)이다. 지검장보다는 학계에 뜻을 두었다는 전지원을, 선배 판사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카드로 활용하고자 한다. 전지원 만이 아니다. 차영우는 전투기 조종사가 게임을 하듯, 법원의 조직도를 놓고, 이리저리 인사권을 재단한다. 그리고 시청자들은 안다. <개과천선>이라는 드라마 속 차영우 펌으로 등장하는 가상의 변호사 집단이, 그간 드라마 속 기업들이 실제 기업들을 상징하듯, 실제 우리 사회에서 내로라 하는 로펌을 모델로 하고 있음을. 차영우가 쥐락펴락하는 법원의 인사들이, 그가 입막음하는 관료들이, 그가 무자비하게 댓가를 치루게 하는 중소기업가들이 다 우리 사회의 실존인물이요, 실재의 사건들이라는 것을. 아마도 우리 사회의 사회 경제면을 차지했던 수많은 사건들이 차영우같은 사람들의 온기 한 점 없는 목소리로 농락당했음을 <개과천선>은 설명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차영우도, 전지원도 게임을 하듯 폭탄을 투하하는 전투기 조종사일 뿐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좌지우지하는 인사가, 돈으로 매수하는 인물 들이 벌이는 사건의 속내에 관심이 없다. 차영우가 전지원이 자신의 로펌을 올 가능성에, 그의 승부사 기질을 들듯이, 그저 그들은, 게임을 하듯, 자신들이 개입한 사건에서 이기고, 그 성취의 댓가로 많은 돈을 벌면 그뿐이다.

그들의 논리는 엄정하고 화려하다. 가처분 취소 소송에서 김석주와 만난 전지원, 소송 대리인으로 나선 김석주가 재판부에 호소하는 것은 과도한 이자로 인해 부도 위기에 빠진 기업들의 형편이다. 그런 김석주의 호소에 맞대응하는 전지원의 논리는 약속 이행이라는 지극히 원칙적이고, 상식적인 논리이다. 당신이 계약을 했으니 약속을 지키라는데,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는가. 

(사진; TV리포트)

그들은 종잇장을 통해 익힌 엄정한 원칙, 이론 들로 자신을 무장한다. 그리고 그 이론의 관철을 위해 자신들의 인맥을 동원한다. 양심적인 판사인 듯했던 전지원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이기기 위한 승부수를 마련하기 위해 선배 판사들을 움직인다. 자신들이 책을 통해 배운 형이상학적 논리에 위배되지 않는 승부를 위해, 주변의 도움을 받을 뿐이다. 화이트 칼라들의 지식과, 힘이 무기가 되어, 누군가의 편을 들고, 그들의 편에 서서 누군가를 짓밟지만, 정작 자신들은, 자신들이 배우고 안 원칙을 실천할 뿐이라 여긴다. 바다에 퍼진 석유에 검게 찌든 물고기를 들고 몰려와 항의를 해도, 항의를 하다하다 건물에서 몸을 던져도, 그것은 그저, 해결해야 할 부수적 사건 사고에 불과하다. 한 나라의 국부가 해외에 넘어가도, 기업이 수많은 피해자를 내며 자기 이익만 챙겨도, 은행이 부조리한 계약으로 억울한 손해를 입혀도, '종이'로 부터 비롯된 논리와 원칙에 따라, 그들은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 

사실 법원 인사를 농락하는, 중소기업 대표의 세무 조사를 지시하는  차영우의 눈빛은, 저항하는 사람들을 진압하는 독재자의 그것과 다름없지만, 세련된 로펌 속 그의 말투는 지극히 온화하고 사무적이며 냉정하기 그지없다. '인간'이 거세된 로펌 속 이겨야 할 사건의 일부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을 알게 된 시청자들은 차영우의 권력이 더 소름끼치게 무섭다. 손에 피를 묻히지 않은 차가운 권력의 무자비함이란 상상 그 이상일 테니까. 천하의 망나니같던 김석주는 어쩌면 새발의 피일 뿐, 진짜 실세는 바로 차영우로 대표되는 공고한 법적 권위와 재량과 능력을 가진 저들이다. 아득함마저 느껴지는 13회이다. 그 예전 6.25 때 B29의 공습 앞에 무기력했던 피난민의 마음이 이랬을까.


by meditator 2014. 6. 19. 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