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같은 방송국의 작품으로 20대의 젊은 남주와, 그와 호흡을 맞추는 중년 연기자의 조화로, <쓰리데이즈>의 후속작으로 <너희들은 포위됐다>를 견주어 논하고는 하지만, 오히려 작품 주제면에서 보자면, 직업적 사명감과 신념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하는 점에서 진정한 <쓰리데이즈>의 후계자는 <개과천선>이라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다. <쓰리데이즈>가 대통령에서 부터, 일개 경호관에 이르기까지, 가장 고위직에서, 그 고위직을 지키는 그림자와 같은 존재까지의 직업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자세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면, <개과천선>은 우리 사회의 지배 계층을 이루고 있는 화이트 칼라의 직업적 윤리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2008년 미국의 금융 위기를 가져온 원인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결정적인 것은, 바로 엄청난 월급을 챙기면서, 부실한 금융 자신에 투자를 유도하고, 그 이익만을 챙겨 먹은 금융 기관 등의 상위 화이트 칼라들의 부도덕을 빼놓을 없다. 이를 놓고, [문명의 대가]에서 제프리 삭스는 '미국의 경제 위기 뿌리에는 도덕적 위기가 존재한다'며, '정치와 경제 엘리트 층에서 시민적 미덕이 쇠퇴함으로써, 힘있는 자와 부자들이 사회 전체와 세계에 대해 정직하고 사려 깊고 동정적인 태도를 갖지 못한 채 사회가 시장, 법류, 선거만으로 이루어 진다'며 안타까워 하고 있다. 
멀리 미국을 예로 들 것도 없다. 당장 우리나라만 해도 [한겨레]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15년 동안 임원과 직원 사이의 보수의 격차가 직원 월급이 160% 오르는 동안, 임원 월급은 240% 오르는 등, 심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는 사외 이사 등을 포한한 케이스고, 그런 경우를 제외하면 사내 임원의 훨씬 더 커질 것이라고 한다. 지난해 상장 100대 기업 임원의 평균 연봉은 11억6천4백13만원 으로, 이들 연봉은 같은 회사 직원의 평균 임금(6729만원)의 17배, 전체 근로자의 평균 임금보다는 32배나 많은 임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임원들이 연봉만큼의 일을 해치울 지는 모르겠지만, 그 일의 성격들이,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데 보탬이 되는가에 대해서는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회의적일 것이다. 미국 금융 위기 정도는 아니지만, 우리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많은 금융 사태의 배경에 이들 상위 엘리트들의 비도덕과 비윤리성이 존재하고 있는 것 또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우리나라 상위 엘리트의 도덕성의 부재를 <개과천선>은 기억력이 상실된 변호사를 통해 꼬집는다. 

<개과천선>만이 아니다. <골든 크로스>에서 절대악으로 포스를 내뿜는 경제 기획부 금융 정책 국장  서동하(정보석 분)나, 그의 장인 법률 사무소 ''신명'의 고문 김재갑(이호재 분), 조력자 변호사 박희서(김규철 분)가 또 다른 김석주이다. 
(사진; 뉴스엔)

대기업 왕회장의 비자금을 관리할 정도로 유능한 변호사였던 김석주(김명민) 변호사는 사고로 자신에 대한 기억을 잃는다. 변호사로서의 능력은 여전하지만, 김석주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겨우 정신을 되찾은 그에게 닥친 것은 그가 벌려놓았던 태진 전자의 태진 건설 인수건이었다. 그의 말만 믿고 입찰 가격을 적어넣었던 태진 전자는 예상치 못한 탈락으로 그 책임을 김석주에게 떠넘기고 추궁한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기억을 잃은 김석주 변호사는, 기억을 잃기전 자신이 과연 어떤 의도에서 이 일을 처리해 갔는지 알 수 없다. 그의 과거와, 자료들을 훑어 보면서, 김석주는, 바로 자기 자신 김석주가 어떤 의문이었는지 의문을 가진다. 또한, 그가 몸담고 있는 로펌과, 그 로펌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행태에 대해 회의를 가지기 시작한다. 

기억을 잃고 병원에서 환자들의 부당한 의료 사건을 솔선수범 해결할 정도로 도덕성을 회복한 김석주는, 파렴치한 변호사로서 기업의 비자금을 관리하고, 그 이익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과거의 자신이 하던 일은 마무리 짓지만, 그 댓가로 화려한 아파트와 멋진 외제차를 모는 삶에 대해 낯설어 한다. 그런 김석주라는 사람의 기억력 상실을 매개로, <개과천선>은 변호사라는 직업이 우리 사회에서 가진 도덕적 위치에 대해, 그리고 그를 통해 화이트 칼라들의 부도덕성을 꼬집는다. 

이미 <골든 타임>을 통해 의사의 직업적 윤리와 사명감에 대해 고찰했던 최유라 작가는 그런 내공을 바탕으로 거기에 착실한 조사를 덧대어  이번에는 변호사라는 또 다른 직업의 세계에 도전한다. 
현대건설을 둘러싼 현대 가의 쟁탈전을 연상케 하는 극중 태진 전자의 태진 건설 인수 사건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황한 법적 용어와 경제적 논리가 등장함으로써 이미 의학적 용어를 정확히 몰라도 익숙한 의학 드라마의 상황으로 넘겨짚을 수 있었던 전작과 달리, 대강의 흐름은 알아도 낯선 용어와 사례들이 <개과천선>이라는 드라마의 몰입을 용이하게 하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한 나라의 경제를 위기로 빠뜨릴 만큼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지배 엘리트 층의 직업 윤리에 대한 문제 제기만으로도 <개과천선>의 의의는 이미 충분하다. 부디 이 드라마도 <쓰리데이즈>만큼 처음의 그 의도대로, 자신의 주제 의식을 잘 밀고 나가, 우리 사회의 문제를 잘 파헤치고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는 드라마로 남기 바란다. 


by meditator 2014. 5. 9. 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