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그 일이 있고나서 텔레비젼 속 시간은 멈췄다. 모든 드라마와 예능들은 정지했고, 대부분의 시간들은 현지의 상황 보도와 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가를 분석하는데 할애되었다. 그리고 한 주가 지나고 조심스레 드라마가 시작되었고, 주말이 되어가며 일부 방송에서는 예능 프로그램도 다시 선보이기 시작되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면, 아마도 모든 방송이 다시 예전처럼 재개될 것이다. 

그런데 어쩐지 드라마를 보아도, 다시 시작한 예능을 보아도 예전의 그 드라마와 예능이 아니다. 일부에서는, 섣부르게 시작된 예능에 대한 비판의 소리마저도 나온다. 과연 이런 시기에 방송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까?

지난 한 주가 넘는 시간 동안 있었던 일은 그저 누군가의 일이 아니다. 그 사건이 실시간 시시각각으로 보도되면서, 전국민이, 그것이 자기의 일인양 몸서리쳤고, 그 후속의 이어지는 부실한 사태 해결 과정에서 또 한번 상처를 입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일상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예전처럼 흘러가려 한다. 

물론 의연하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여느 때처럼 씩씩하게 웃으며 지내려 하는 것도 좋다. 그런 의미에서, 예전 방송들이 다시 돌아오는 것도 의미가 있다. 4월 26일자 한겨레 신문의 보도에서처럼, 9,11사태 뒤 '뉴욕이 다시 일어섰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소방관들과 시장이 오프닝을 맡아 재개한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의 사례도 있다. 

하지만, 아직도 각 sns에서 나부끼는 노란 리본처럼, 실종자가 사라지는 그 날까지 아직 사람들은 그 기억 속에 놓여져 있을 수 밖에 없다. 상처는 진행중이다.

오히려 이런 때 한번쯤은 그간 우리의 방송을 되짚어 보면 어떨까? 뻥뻥 비워져 나간 예능으로 가득찼던 방송 시간표 속에서, 시청률에 연연하는 사이에, 어쩌면 조금 더 세상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프로그램들은 사라지거나, 미뤄지고, 그 사이를 그저 흥청망청 웃고 떠드는 프로그램들이 채워진 것은 아닐까 반성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다. 

전직 한겨레 기자의 김규원의 책 [마인드 더 갭]을 보면, 그가 영국을 가서 가장 놀랐던 것 중에 하나가 우리나라와 방송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이었다. 즉 영국은 우리나라만큼 예능이나 드라마가 많지 않다는 것이 그 하나요, 국회의원들의 국정 활동이 고스란히 텔레비젼으로 실시간 중계되는 현실적 방송 환경이 그를 놀래킨 두번째 였다. 막상 따분할 것 같은 그 국회 중계를 보며, 그는 영국 사회가 가진 민주적 전통의 근간이 어디서 부터 시작되는 가를 가장 직접적으로 체험했다고 자신의 책을 통해 밝히고 있다. 그의 책 제목 '마인드 더 갭'의 의미가 바로 그것이다. 
그렇듯이, 그간 우리 방송은, 어쩌면 정작 들여다 보고 살펴보아야 할 많은 것들은 제외한 채 '엔터테인먼트'만이 방송의 주목적인 채 달려오지 않았나 하는 것을 바로, 지금 이 시점에 한번쯤은 되돌아 보아야 할 것이다. 

그와 더불어, 전국민적으로 심리적 상처를 입힌 이 상황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해법도 필요하지 않을까. 심리학자 정혜신씨의 견해에 따르면, 개인적인 트라우마에 대해 아픈 것은 아프다 할 수 있는 과정이 치유의 가장 빠른 회복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희망 버스'의 일원이 되어 쌍용차노동자들을 비롯하여 전국 방방 곡곡의 고통받은 사람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그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바로 그런 '희망 버스'가 방송계에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4월 26일 새로 시작된 <잘 먹고 잘 사는 법. 식사하셨어요?>는 그런 치유의 미덕을 보인 적절한 방송으로 보여진다. 일찌기 설 특집으로 선보인 이 프로그램은, 당시에도 차마 아버지의 부재를 어린 딸에게 알리지 못한 채 힘겹게 버티어 가고 있는 엄마와 두 자녀의 가정을 찾아가 치유의 만찬을 제공한다. 그저 밥 한끼였지만, 방랑식객 임지호 씨의 삶의 철학이 담긴 밥상을 받은 엄마는 아빠가 없는 빈 자리를 버겁게 메고 버티어 오던 삶에 위로를 얻었고, 어린 딸에게 힘겹게 아빠의 부재를 전하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렇게 특집 방송에서부터 시작된 치유의 만찬은 26일 시작된 첫 방송에서도 이어진다. 이날 밥 한  끼를 청한 사람은 23살의 대학생 김재민, 재민군은 자신의 부모님에게 밥상을 차려드렸으면 하는 소망을 밝힌다. 하지만 정작 재민군의 인도 아래 찾아간 곳에는 그의 친부모님이 아니라, 2010년 연평 해전에서 전사한 고 문광옥 씨의 부모님이 계셨다. 그리고 김재민군은 문광옥씨의 뒤를 따라 입대한 친구 23명 중의 한 사람이었다. 

방랑 식객 임지호씨는 아들이 죽은 뒤 술로 세월을 보내다 위가 수축되어 식사도 제대로 못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들이 좋아하던 돼지고기는 먹을 수도 없었던 부모님들을 위해서 치유의 만찬을 마련한다. 꿈과 미래의 메시지가 담긴 벚꽃으로 치장을 한 돼지고기 음식을 아들의 친구들과 함께 나누며 고 문광옥씨의 부모님은 잠시나마 시름을 잊고, 새롭게 살아갈 힘을 얻는 듯이 보였다. 

밥상으로 인생이 바뀐다는 야심찬 시도를 한 프로그램답게, 특집에 이어, 첫 방송에서, 부재한 가족의 빈 자리에 힘겨워하는 나머지 가족들을 위한 치유의 밥상이 마련되었고, 공교롭게도, 그 밥상은, 지금의 시기에 그걸 보는 우리에게도 위로를 건넨다. 

바로 이런 프로그램들이 모두가 보기 힘든 토요일 아침 8시 40분이 아니라,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시간대에 위로의 메시지를 건넸으면 한다. 그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돌아가는, 그래서 어느 틈에 드라마를 보다가, 예능을 보다가 선뜻 자기 마음의 그림자에 섬뜩해지는 시간을 치유해 주는 적극적 시도들말이다. 
by meditator 2014. 4. 26. 2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