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바빠서 tv 드라마 하나 챙겨 볼 여유가 없는 친구가 웬일로 <따뜻한 말 한 마디>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고 했다. 

부부 사이의 문제를 모처럼 진지하게 바라보는 드라마라며, 그러면서 과연 재학(지진희 분)과 은진(한혜진 분)의 불륜으로 시작된 드라마가 어떤 결말을 맞을지 귀추가 주목된다고 덧붙였다. 중년의 그 친구가 살아온 나날에서 짚어왔을 때, 설사 불륜이라 하더라도, 실제 부부 사이의 이혼이란 게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구나 하는 자기 나름의 결론과, 결혼에 대해 모처럼 진지하게 접근하는 <따뜻한 말 한 마디>가 부부의 외도와 갈등을 여타의 드라마처럼 무 자르듯 이혼이라는 결론으로 맺을 건지 기대 반 걱정 반이라고도 했다. 

(사진; tv 리포트)

그리고 드디어 종영을 맞이한 <따뜻한 말 한 마디>는 친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덕분에, 그 결론으로 인해 드라마적 완성도에 대한 논란까지 불러왔다. 

아마도 그것은 재학의 불륜을 알고 용의주도하게 쿠킹 클래스까지 잠입하며 복수를 다짐했던 미경(김지수 분)의 깊은 분노, 그리고 그 깊은 분노만큼이나 집착적인 사랑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오랜 세월 재학에 대한 사랑 만으로 거의 학대에 가까운 시어머니의 시집살이을 견디며 살아온 미경에 대해 드라마를 봤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마도 이 부부는 이혼을 하지 않을까 라고 쉽게 기대(?)를 했었기 때문이다. 
은진의 외도가 성수(이상우 분)의 외도로 인한 보복성 해프닝의 성격이 강하고, 두 사람이 막말을 하며 혹독하게 상대방을 몰아세워도 이른바 '미운 정'이 느껴지는 것과 달리, 재학-미경 부부에게서는 함께 한 세월의 온기가 그보다 덜 느껴졌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마도, 드라마의 마지막까지, 그 냉랭함을 대신할 '정'과 '관계'를 설득하기에 <따뜻한 말 한 마디>의 논리가 상투적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상대방의 외도로 인한 상처가 치유받았다고 혹은 치유는 아니더라도 봉합되었다고 드라마는 말하고 싶었으나, 시청자들은 그리 받아들여지지 않은 바가 클 것이다. 

하지만 그런 논리적 근거의 부족과 함께, 부부간의 문제를 다루는 우리 드라마에 숨겨진 '이혼'에 대한 환타지를 <따뜻한 말 한 마디>가 무시했다는 데서 오는 배신감도 있지 않을까.
일상의 삶을 견디며 사는 사람들이 기회만 주어진다면 짧게는 하루, 아니 1박2일, 길게는 해외 여행을 꿈꾸는 핵심은 바로 '일탈'에 있다. 그처럼, 부부 간의 문제를 다루는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에게, 현실의 자신이 불만을 가지고 사는 문제들이 드라마를 통해 속시원하게 해결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또한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여전히 일정한 시청률을 확보하고 있는 부부간의 문제를 다루는 드라마 <사랑과 전쟁>의 클라이막스와 엔딩은 마치 못된 놀부를 처단하듯, 자신을 괴롭히던 사람들을 응징하고 통쾌하게 이혼을 선언하는 것으로 끝나기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그런데, <따뜻한 말 한 마디>는 미경이 재학을 버리고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삶을 찾아 행복하게 사는 환타지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현실의 선택을 보여준다. 이혼은 그리 쉬운 게 아니라고, 어쩌면 상대방의 불륜 한번으로 손상된 자존심을 내세워 이혼하기 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이 사랑하고 있는 그 사람과, 가족을 끌어안고 가는 것이 더 행복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익숙하지 않은 해법을 논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세계 수위의 이혼율을 보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어쩌면 <따뜻한 말 한마디>가 내세운 해법이 역설적으로 환타지적이거나, 진부한 것일 수도 있겠다. 

(사진 엑스포츠 뉴스)

이렇게 대중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따뜻한 말 한 마디>와 달리, 애초에 제목에서부터 두 번의 이혼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 <세번 결혼하는 여자>는 당연한 수순이듯, 주인공 두 사람의  두번 째 이혼을 목전에 두고 있다. 

준구<하석진 분)와 재혼한 은수(이지아 분)는 마무리 되지 않는 준구의 불륜으로 이혼의 위기에 놓인다. 은수의 전남편인 태원(송창의 분) 역시 새엄만 채린(손여은 분)의 딸 슬기(김지영 분)에 대한 학대로 이혼을 선언한 상태이다. 마치 두 사람은 제목이 정해준 메뉴얼처럼, 재혼을 하고, 다시 이혼을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심지어, 이지아는 준구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는 상태이다. 

3월 1일 은수가 준구를 만나 정리하듯, 애초에 은수와 준구의 결혼은 잘못된 것이라고 드라마는 말한다. 설사 준구가 바람을 피지 않았더라도 자의식이 강한 은수는 준구의 집안에서 조금씩 말라가다, 언젠가는 또 다른 이유로 이혼을 선언할 것이라고 말한다. 아니, 그보다 <세번 결혼하는 여자>는 마치 탯줄을 자르지 않은 아이처럼, 비록 시어머니의 학대로 인해 이혼까지 했지만 여전히 정신적 유대의 끈을 놓지 않은 은수와 태원의 두번 째 결혼이 순탄치 않는게 당연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드라마에서, 두번 째 결혼은 마치 두 사람이 지난 시간 내렸던 첫 번째 이혼이라는 결정이 경솔했음을 증명하기 위한 도구처럼 씌여지고, 두 사람들의 두번 째 파트너는 무엇을 어떻게 해도 결국 두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지 못하는 도구적 인간들일 뿐이다. 드라마는 그들이 만난 새로운 사람들이 문제적 인간이기 때문에, 두번 째 이혼에 봉착한 것처럼 그려내지만, 결국 두 사람의 근본적 문제는, 자존이라고 내세우면서, 첫 번 째 결혼의 탯줄을 끊어내지 못하는데 기인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세번 결혼하는 여자>는 두 주인공의 두번 째 이혼을 들먹이며, <따뜻한 말 한 마디>가 이르른 이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라는 결론에 이르르고 있다. <세번 결혼하는 여자>의 은수와 태원은 두번 째 결혼의 붕괴 지점에 이르러서야, 지난날 자신들의 결정이 경솔했음을 시인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다른 분석도 가능하다. <따뜻한 말 한 마디>가 세월의 더깨가 앉은 좀 살아본 사람의 눈으로 바라본 결혼과 이혼에 대한 현실적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결혼에 대한, 그리고 관계에 대한 따스한 가능성에 대한 천착이라면, <세번 결혼하는 여자>는 김수현이라는 노작가의 눈으로 바라본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한 냉소가 그대로 드러난다. 사랑을 담기에도, 가족이라는 그릇으로 포용하기에, 더더우기 개인의 자존감이 존중받기에는 더더욱 어색해져 버린 이 시대의 결혼이라는 거북살스런 제도를 야멸차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결국은 가정으로 다시 돌아간 미경도 어색하고, 태중에 아이를 넣고 이혼을 하겠다고 나서는 은수도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다. 애초에 결혼 자체가 미친 짓이기 때문일까. 설득력있는 이혼이라는 건 존재하는 것일까. 


by meditator 2014. 3. 2. 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