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sns에 꽃을 통해 나를 확인하는 이벤트가 성황을 이루었다. 몇 가지 질문에 답을 하면 나를 상징하는 꽃을 알려주고 그와 함께 내 성격을 말해주는 방식이었다. sns를 통해 지인들과 이 이벤트를 나누었는데 모두들 열심이었다. 새로운 화장품을 선전하기 위해 마련된 이 이벤트는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mbti의 또 다른 형태와도 같았다. 

코로나로 인해 대면 접촉이 한결 줄어든 2020년 인기를 끌었던 것이 mbti와 같은 '나를 찾아가는' 각종 '리트머스' 프로그램들이었다. 관계를 통해 나를 확인하던 사람들은 잦아든 관계 대신 프로그램을 통해 나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이 다양한 프로그램들은 '칼 융'의 심리 유형 이론을 기반으로 한다. 즉 사람들이 저마다 서로 다른 자아의 특징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실천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아이디어가 <소울>의 영화 감독 피트 닥터 감독의 출발점이다. 

 

 

이미 지난 2015년 '머릿속 감정 컨트롤 본부' 속 기쁨, 슬픔 등 다섯 가지 감정을 캐릭터로 구현한 <인사이드 아웃>을 통해 우리의 '감정'을 작품화한 바 있는 피트 닥터 감독은 이제 '영혼'에 캐릭터를 입힌다. 이제는 23살 된 아들이 어릴 적부터 사람든 저마다 고유한 영혼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고유한 '자아 의식'은 어디로부터 왔을까? 그런 의문이 <소울>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한다. 슬픔이라는 부정적인 감정조차도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서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주제를 통해 우리의 모든 감정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도록 도왔던 피트 닥터 감독은 <인사이드 아웃>에서 함께 했던 디즈니와 픽사의 협업을 통해 영혼들의 이야기를 통한 삶의 긍정성을 또 다른 각도에서 조망하고자 한다. 

삶의 절정에서 죽음의 세계에 빠져버린 조 
이야기의 시작은 '영혼'들의 세계가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세계이다. 재즈 뮤지션이었던 아버지의 뒤를 잇고자 하는 조 가드너, 하지만 현실은 뉴욕의 고등학교에서 밴드를 가르치는 강사 신세이다. 가르치는 밴드의 불협화음은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재능이 있는 학생 조차도 음악에 대한 열정의 싹수가 요원하다.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도 학생들에게 '재즈'의 묘미를 절묘하게 설득하고자 애쓰는 조 선생님, 그런 그의 진지한 열정에 하늘이 감복해서일까. 교장 선생님이 찾아와 그가 '정규직'이 되었음을 축하한다. 

하지만 정규직이라는 안정된 직장에도 그의 얼굴이 밝아지지 않는다. 그때 걸려온 전화 한 통 그토록 그의 제자였던 재즈 밴드 멤버가 갑작스럽게 빠진 멤버 대신 연주를 부탁한 것이다. 어쩌면 연주자로서 피아노를 연주를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은 나이, 하지만 우려스러운 시선을 불식하고 멋들어진 연주로 첫 연주의 기회를 얻게 된다. 그러나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그의 '농담 아닌 농담'이 현실이 된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

머나먼 저세상을 향하는 컨베이어 벨트에서 오늘 밤 연주를 위해 어떻게든 다시 지구로 돌아가려 애쓰던 조는 엉뚱하게도 태어나기 전 세상에서 어린 영혼들을 멘토링 하는 '유세미나'에 가게 된다. 그리고 멘토로 착각되어 태어나기 싫다는 시니컬한 영혼 22를 맡게된다. 

 

 

조와 22의 동상이몽 
본의 아니게 멘토가 되어버린 조, 그런데 어떻게 해도 돌아갈 수 없는 지구의 통행증을 22를 통해 얻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에 조는 22의 마음을 돌이키려 애쓴다. 
하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구로 돌아가겠다는 조와 달리 그간 테레사 수녀, 아인슈타인 등 유명인 멘토들이 두 손을 들고 나가떨어진 22의 마음은 쉽사리 돌려지지 않는다. 그러다 길잃은 영혼을 구해주는 모험가 문윈드 등의 도움을 얻어 함께 지구로 향하게 된다. 

하지만 조의 기대와 달리 22가 조의 몸에 그리고 조는 고양이 미스터 미튼스가 되어버린다  조가 되어버린 22 영혼을 구슬러 어떻게든 오늘 밤 있을 연주를 준비하려 애쓰는 조의 한바탕 해프닝, 그 해프닝을 통해 <소울>은 삶의 의미를 되살려 낸다. 

안정적인 정규직의 일자리 따위 그에게 찾아온 재즈 밴드 연주에 목숨을 거는 조, 그렇게  음악적 열정으로 충만한 조의 몸에 들어간 22는 삶의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느낄 수 없던 음식의 맛을 깨닫고, 그를 손들게 했던 멘토들의 교육을 통해 얻은 해박한 식견으로 조의 주변 사람들과 능숙하게 소통한다. 심지어 음악을 포기하겠다 찾아온 밴드부 학생의 마음을 돌려놓을 만큼 식견과 혜안이 밝다. 영화는 저세상의 골칫덩어리 22가 유세미나에서의 부적응 과정의 경험을 바탕으로 삼아 지상의 소통왕이 되는 과정을 통해  <인사이드 아웃>의 슬픔이처럼 저마다 영혼의 존재론적 가치가 있음을 역설한다. 

저마다 다른 '캐릭터'를 가진 어린 영혼이 지구에 생명으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불꽃을 획득해야 하는 통과 의례,  그걸 삶의 의미를 터득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조와 22는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정작 22 가슴에 불꽃이 빛나도록 한 순간은 삶의 아주 사소한 순간이었다. 그 중에서도 백미는 바로 거리에 앉은 22에게 떨어지는 꽃잎 한 장이었다.  삶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살아갈 만한 것이 아니라 삶이 주는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있는 그 순간이 바로 우리가 살아갈 준비가 된 것이라고 영화 속 삶의 불꽃이 반짝이며 전한다. 

하지만 그렇게 삶의 의지를 회복한 22의 불꽃은 조의 몫이 된다. 다시 지구로 돌아와 그토록 원하던 도로테아 윌리엄스 밴드와의 협연을 끝낸 조는 행복했을까?
<소울>은 조와 22의 엇박자 '멘토링'을 통해 각자 자신의 모습을 발견해 가도록 한다. 조가 되기 위해 애쓰다 자신이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은 22처럼, <소울>은 조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지는 셈이다. 저세상에 와서도 멘토링을 하고, 기꺼이 자신에게 온 유일한 기회와 '저세상에서의 마지막 멘토링'을 맞바꾸는 조가 살아온, 살아갈 '캐릭터'는 무엇일까? 

 

 

당신이 어떤 모습이라도 
<소울>의 성격 파빌리온에서는 새로 태어날 영혼들에게 각양각색의 캐릭터를 부여한다. 모두가 좋은 것만 받을 것같지만 그건 아니다. 누군가는 매우 우울한 성격을, 또 다른 누군가는 시시콜콜 따지는 까다로운 성격을, 영화는 가장 까칠했던 22를 통해 세상 그 어떤 성격도 삶의 과정에 모두 저마다의 몫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성공한 연주자만을 바라보며 살아왔지만 인간 세계에서나 저 세상에 가서도 '멘토'의 숙명을 피할 수 없는 조 역시 마찬가지다. 

다시  mbti로 돌아와서, 타인을 통해 자신을 확인할 수 없는 시절에 사람들이 mbti에 몰두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내가 이러이러하게 세상에 유용하다는 자기 확인이 아닐까 싶다. 타인을 통해 증명받아왔던 나의 가치를 그 소통이 적조해지는 시절에 검사지를 통해 당신을 이런 면에서 유용하며 의미가 있는 존재라는 삶의 확인 도장같은 거 말이다. 공교롭게도 mbti가 붐을 이루는 시절에 <소울>은 우리 영혼의 캐릭터를 논한다. 그리고 결국 그런 각양각색 생명의 캐릭터를 통해 당신이 어떤 모습이든 세상을 살아갈 만하다고 어깨를 두드려준다. 그리고 그 당신이 살아갈 세상은 당신이 무엇이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 세상 자체로 살만 한 것이라도 덕담도 잊지 않는다. 


by meditator 2021. 1. 26. 0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