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마치 사랑학 교과서와도 같다. 매회 전개되는 상황은 '음악'이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사랑을 하는 두 사람이 겪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단계'를 밟아 풀어내고 있다. 혹자는 그래서 14회에 이르도록 도돌이표같은 지지부진한 전래라 답답해 하지만, 세상에 던져진 자신과 자신의 사랑을 겪어본 이들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 '리얼'하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 빠져들어간다. 

'사랑'은 두 사람의 '관계'다. 그게 남녀가 되었든, 남남이 되었든, 여여가 되었든. 그런데 사랑을 하는 주체인 두 사람이 '사회'로부터 분리되지 않은 존재이기 때문에, 사회적 존재인 두 사람이 하는 사랑은 언제나 '주변'의 환경과 조건, 그리고 사람들로 인해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두 사람의 '사랑'은 온전히 두 사람에게 '사랑'만을 할 수 없도록 만든다. 

 

 

이별 선언 
결국 송아(박은빈 분)는 준영(김민재 분)을 찾아가 이별을 알린다. '그만 만나요. 사랑을 생각하느라 내 마음에 상처를 너무 많이 냈어요' 라고. 좋아해서 만났고, 사랑해서 조금 더 상대방을 '배려'하려고 했던 마음들이 자꾸만 상처가 됐다. '행복한 쪽으로 결정하면 돼'라고 위로를 건네는 언니의 말을 들은 송아가 내린 결정은 '상처'가 되는 사랑으로부터 자신을 놓아주는 것이었다. 도대체 왜 사랑하는 송아와 준영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사이가 되었을까? 

두 사람의 관계로만 보면 매번 송아를 만나면 '미안하다'고 말하게 되는 준영이 있다. 송아는 조금 더 '준영'과 함께 하고 싶지만, '미안하다'고 말하는 준영은 매번 송아를 밀어내는 것같다. 송아를 좌절시키는 '미안하다', 그 '사과'의 단어 안에 숨겨진 뜻은 네가 원하지 않은 상황을 만들어서, 그런 상황에 놓여서, 다시 한번 너로 하여금 상처를 받게 해서 미안하다이다. 준영은 왜 자꾸 원치않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걸까? 

안식년을 가지고 모처럼 고국에 돌아온 준영, 하지만 그 일년의 안식년이 말 그대로 휴식같은 사랑 '송아'를 만나게 만들었지만, 송아를 제외한 모든 것이 준영을 쉴 수 없도록 만든다. 

무엇보다 끊임없이 준영을 ATM으로 만들어 버리는 부모님이다. '차라리 외국에서 계속 연주나 하며 돈이나 보낼 것을'이라고 절규하게 만들도록 끊임없이 사업을 빙자하여 '돈사고'를 치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의 상황에 무력한 어머니가 준영이 짊어진 짐이다. 

드라마를 본 누군가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보고나서 남은 것 중 하나가 우리나라에서 음악을 하는데 많은 돈이 든다는 것을 알게되었다는 '우스개' 아닌 우스개처럼 가진 것없이 '피아노 잘 치는' 재능만으로 오늘의 지위에 이르른 준영은 그래서 이제 자신의 '피아노 치는 재능'을 더 이상 '하늘이 내려준 소명'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무엇이 이들을 사랑만 할 수 없게 만드는가 
그런데 '피아노를 잘 치는 능력'만으로도 음악을 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부모님이라는 '짐'을 떠안은 준영, 결국 그는 오랫동안 '경후'재단의 도움을 받아왔을 수 밖에 없었다.  나문숙 이사장(예수정 분)은 준영이 자신이 좋아하는 피아노를 잘 치게 해주고 싶다는 도움은 이제와 준영에게 마음이 접지 못하는 이사장의 손녀 정경(박지형 분)에게 준영의 사랑을 차지하려는 '무기'가 된다. 도움을 요청한 준영의 아버지에게 돈을 건네고, 경후의 도움을 받았던 시간의 빛에서 자유롭지 못한 준영에게 자신의 피아노 반주를 요청하는 식이다. 준영이 원하는 것을 주고 싶었다던 나문숙 이사장조차 정경이 준영을 원하자 준영에게 정경의 배필이 되어줄 것을 요청한다. 

준영이 매번 이제는 아니라고 하지만, 점점 '집착'이 되어가는 정경의 사랑은 매번 준영의 발목을 잡는다. 이제 유투브까지 올려진 '트로이메라이' 처럼. 

그 시작은 차이콥스키 콩쿨에 나가는 준영을 다시 '사사'하기 시작한 유태진 교수(주석태 분)의 욕심이다. 자신의 앨범을 발매했지만 그 반응이 신통치 않다 못해 혹평 투성이이자, 자신의 연구실에 새로 들여온 연주를 기억하는 피아노에 '녹음'되었던 준영의 '트로이메라이'를 자신의 연주인 양 보낸다. '살리에르'처럼 준영에 대한 애증으로 술잔을 기울이던 그가 결국 저질러버린 '범죄'적 행동, 하지만 준영은 가급적 이 사건을 조용히 처리하려 한다. 

그 이유는 '송아', 트로이메라이가 지난 15년 동안 자신이 정격에게 들려주었던 음악임을 아는 송아에게 그걸 다시 쳤다는 사실 자체가 상처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에서이다. 사랑하는 이에게 더 이상 '미안한 일'을 만들고싶지 않다는 '사랑'에 빠진 준영의 마음, 하지만 그 준영의 진심을 세상을 그대로 놓아두지 않는다. 자신의 '피아노' 한 대 없이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연습을 해야 하는 가난한 음악가, 그런 음악가의 상황을 이용하는 재단과 교수라는 '기득권'. 정경의 마음은 그 자체로는 '사랑'이지만, 정경이 '자신이 가진 부'를 사랑에 이용하는 순간, 그 역시 또 다른 '기득권'일 뿐이다. 

'기득권의 횡포'로 치자면 송아가 당하고 있는 것 역시 만만치 않다. 송아가 힘든 건 준영과의 관계에서 준영의 석연치않은 태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자신 역시 '사랑'에만 집중할 수 없는 인생의 기로에 놓였기 때문이다. 

준영의 새 매니저 박과장이 얄밉게 정의내렸던 '너무 늦은 출발', 4년을 재수를 해서야 들어간 음대에서 송아는 4학년을 마치도록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에 대한 세상의 인정에 목마르다. 그런 송아에게 냉큼 이수경 교수(백지원 분)가 손을 내밀었다. 

자신을 알아봐주었다는 기쁨도 잠시, 이수경 교수가 송아에게 대학원을 권한 이유가 송아가 대학원을 갈 만해서가 아니라, 경영학과를 다녔던 그녀의 똑뿌러지는 일처리가 자신에게, 자신이 이제 막 만든 오케스트라에 '실무'로서 필요해서였다는 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결국 교수라는 직위로 '송아'의 재능을 볼모로 삼아, 송아를 이용하는 이교수로 인해 송아는 잠시 유보되었던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의 해결되지 않는 질문을 다시 꺼내들게 된다. 

드라마는 두 젊은이 준영과 송아, 그리고 그들의 사랑을 통해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자신의 것으로 받아든 '화두', 그를 둘러싼 '세상'의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두 사람은 사랑을,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꿈을 고민하지만, 결국 그 '사랑'도, 꿈마저도 '세상', 특히 '기득권'처럼 틀이 짜여진 세상 속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드라마는 '음악'을 매개로 풀어내고 있다. 풀어내는 이야기를 러브스토리이지만 웬만한 청춘 리얼리티못지 않다. 

이제 송아는 그런 자신에게 자꾸만 '상처'를 주는 세상을, 준영과의 사랑 때문이라 생각하며 '사랑'을 놓겠다 선언했다. 그런데 '상처'를 주는 건 사랑일까? 자신의 재능조차 ATM이 되는 세상에서 늘 주춤거리던 준영이, 그 준영이 유일하게 욕심냈던  '사랑', 과연 '세상'에 상처를 받는 '사랑'은 어떤 결정을 내릴까? 



by meditator 2020. 10. 14. 0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