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지났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일환으로 가급적이면 고향 방문을 자제하라는 정부의 권고와 상관없이 가족들이 몇날 며칠을 함께 어우러져야 하는 명절은 언제나 주부의 입장에서는 고달픈 시간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어디 안가고 집에만 있었는데, 명절이 지나고 나서 서로 만나 하는 인사치레에 꼭 '살'이 들어간다. 겨우 며칠 새에 살이 쪘다더라는 식이다. 왜 주부들은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지나고 나면 살이 찔까? 그 이유를 '사랑스럽게' 풀어낸 단편 영화 <내 아내가 살이 쪘다> 가 10월 2일 유투브를 통해 공개됐다. 

<내 아내가 살이 쪘다>는 12분 분량의 단편 영화이다. 그리고 이 단편 영화는 우리에게는 배우 류덕환으로 더 친숙한 감독 류덕환의 연출작이다. 낯선 감독 류덕환, 하지만 이미 류덕환 감독은 2012년 <장준환을 기다리며>, 2015년 <비공식 개강 총회> 등을 연출한 바 있다. 

 

 

자꾸만 먹는 엄마 
영화는 체중계에 올라 늘어난 자신의 몸무게를 확인하고 비명을 지르는 아내(장영남 분)로 시작된다. 목욕탕에서 잰 몸무게와 다르다며 늘어난 몸무게를 잘못된 체중계 탓으로 돌린 아내, 그도 잠시 밥 먹자며 부엌으로 향한다. 

식구들의 저녁을 준비하는 중, 아내는 칼질을 하다 연신 입으로 무언가를 넣는다. 거기서 끝일까? 찌개를 끓이던 아내는 맛을 본다며, 찌개 국물이며, 건더기를 먹어댄다. 간이 안맞아서 물을 더 부으니, 다시 또 간을 봐야 한다. 이미 찌개가 상에 올라가기 전에 엄마의 배가 찰 정도로. 거기서 끝일까? 

온가족이 함께 한 외식에서 남은 등갈비를 알뜰하게 싸가지고 온 아내, 다시 덥혀서 식구들에게 권한다. 하지만 '집에서 먹으면 맛이 없다'는 둥, '시간이 없다'며 식구들은 내빼기 바쁘고, 결국 그 '남은'것들은 그걸 남길 수 없는 아내의 입으로 들어간다. 

어느 집안에서도 너무나 익숙한 상황, 그 상황에 류덕환 감독은 '아내의 살'에 대한 개연성을 섬세하게 포착해 낸다. 여기까지만 봐도 아내가 살이 안찌는게 이상하다. 집집마다 한 입 더 먹으라는 엄마와, 먹기 싫다는 식구들, 버리는 게 아깝다는 엄마와 그냥 버리라는 식구들의 실랑이야 너무도 익숙한 구도이니까. 심지어 영화 속 엄마는 강아지가 저지레한 초콜릿 수거까지 엄마의 입으로 한다. 

그런데 여기서 류덕환 감독은 주부 '살'의 개연성에 한 술을 더 보탠다. 거실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가족, 과자 봉지를 쥔 막내가 장난을 치다 과자를 온 바닥에 쏟아버린다. 빨래를 개던 엄마는 아연실색 장난을 친 막내를 야단치지만 결국 애정어린 포옹으로 마무리된다. 화해의 기념으로 엄마에게 과자 하나를 건네는 막내, 하지만 엄마는 '엄마 살쪄'라며 거절하자, 재치넘치게도 막내는 과자 끄트머리를 조금 잘라 엄마의 입에 넣어준다. 

과자를 먹어본 사람은 아마도 알 터이다. 그 손톱만한 조각이 입에 들어와 녹는 순간의 달콤함이 주는 유혹을, 결국 그 유혹에 넘어간 엄마는 '이거 맛있는데 더 주지'라며 바닥에 떨어진 과자를 입에 넣는다. 

 

 

엄마의 살은 사랑이다 
류덕환 감독이 <내 아내가 살이 쪘다>를 통해 '정의'내린 엄마의 '살'은 '사랑'이다. 식구들을 위해 애써 음식을 준비하고, 하나라도 더 먹이려는 과정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입에 넣는 것들이 결국 엄마의 살이 된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추석과 같은 명절을 지내고 나면 자신도 모르게 몸무게의 뒷자리가 달라지는 '비밀'이다. 

엄마는 연신 살이 찐다고 되놰이지만 음식으로부터의 '거리 두기'가 되지 않는다. 늘 엄마의 주변을 둘러싼 음식들, 그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인간이 얼마나 될까? 그렇게 류덕환 감독은 '주부의 살'에 대해 애정어린 고찰을 한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없을까? 감독이 선택한 해답 역시 '사랑'이다. 영화는 줄곧 남편(김태훈 분)의 시선으로 엄마를 지켜본다. 그간 많은 드라마에서 '서늘한 캐릭터'를 연기해 온 아빠 김태훈, 하지만 <내 아내가 살이 쪘다> 속 아빠는 다르다. 살이 쪘다며 혼비백산하는 아내에게 그대론데 라고 하는 남편, 그리고 음식을 하다 집어먹고, 남긴 음식을 아깝다며 먹고, 심지어 개가 저지레한 음식까지 먹는 아내를 줄곧 애정어린 시선으로 지켜보던 남편은 결심한다. '안되겠다! 나도 노력해야겠다'

 

 

남편의 노력은 무엇이었을까? 찌개를 끓이다 간을 보려는 아내 대신 남편이 뛰어가 간을 본다. 엄마가 차려놓은 음식을 안먹고 내빼는 아이들을 불러모아, 너네가 안먹으면 엄마가 먹게 된다며 먹인다. 아들이 엄마 입에 넣어주는 과자를 대신 먹기 위해 아빠는 슬라이딩을 한다. 그 결과? '아빠가 살이쪘다'

영화는 우리네 생활 속 '주부의 살'이라는 사소한 사건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따라간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면 그냥 '살'에 대한 보고서가 될 뻔한 영화는 아빠가 살이 쪘다라는 반전 아닌 반전을 통해, '주부'라는 짐에 대한 '혜안'을 제시한다. 영화는 엄마가 살이 찔 음식을 나눠먹는 아빠이지만, 결국 그 속에 담긴 건, 주부라는 역할을 나누어 짊어짐이다. 

아무리 주부의 역할을 덜어낸다 해도 각자 저마다의 생활이 뚜렷해져가는 상황 속에서 그 역할의 나눔이라는게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아내가 살이 쪘다> 속 아내를 대신해서 기꺼이 살이 찔 각오가 될 남편의 자세라면 주부의 짐도 조금은 덜어지지 않을까? 결국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나누어지는 '살'이 아니라, '짐'이다. 

by meditator 2020. 10. 7. 17: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