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스스로 몸을 던진 이창준(유제명 분)의 죽음과 함께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시대에 대한 묵직한 문제 제기를 했던 <비밀의 숲 시즌1>, 그로부터 3년의 시간이 흐른 2020년 시즌2가 찾아왔다. 

브로커 박무성의 죽음으로 시작되었던 <비밀의 숲 시즌1>은 원심력있게 뻗어나가며  영은수(신혜선 분)를 희생양으로 삼고, 결국 이창준 - 윤세원(이규형 분), 두 사람에 의한 경찰, 검찰과 재벌, 그 구조적인 커넥션에 대한 폭로와 징벌이었음을 드러냈다.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있다. 보통 사람은 안전할 거란 심리적 마지노선이 붕괴된 후 사회 해체 단계다. 19년 검사로서 이 붕괴의 구멍이 내 앞에서 커가는 걸 지켜만 봤다.'


이렇게 시작된 이창준의 유서, '적당히 오염됐다면 외면'했을 거라던 그는 '자신의 몸에서 내는 삐걱 소리를 견딜 수 없어서, 오래 묵은 책처럼 먼지만 먹을 수 없어서' 스스로 자신을 제물로 삼았다. 

이창준의 그늘에서 시작된 시즌2
이창준의 죽음으로 부터 달라진 것이 있을까? 시즌 2의 시작을 바라보는 시청자들에게 가장 궁금한 점은 이것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과연 시즌 2에서 거목과도 같았던 이창준의 바톤을 이어받을 사람은 누구일까 하고, 당연히 새로 등장한 우태하(최무성 분)와 최빛(전해진 분)에게 시선이 쏠릴 수 밖에 없다. 

시즌 2의 시작 역시 '죽음'이었다. 그런데 시즌 1이 정치 브로커 박무성의 죽음이라는 '음모'의 가능성이 다분히 보이는 죽음이었다면, 시즌 2는 뜬금없게도 통영 바닷가에 놀러온 청년들의 '사고'였다. 그렇다면 저 '사고'도 시즌 1처럼 거대한 사건의 시작이 될까?

결국 그랬다. 16회, 한조의 비리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연재(윤세아 분) 회장이 던진 이성재의 비리 파일을 오주선을 통해 건네받은 강원철(박성근 분)은 남양주 별장 사건 수사에서 '한조'에 대한 묵인을 강요받으며 옷을 벗었다. 전관 예우의 시간을 견디며 홀로 낚시터에서 세월을 낚는 그를 찾아온 황시목(조승우 분)에게 강원철은 통영 바닷가 사건을 '고해'한다.

그때 자신이 그 사건을 빨리 종결시켰다고, 그때 자신이 제대로 사건을 살폈다면, 그랬다면 서동재가 뒤늦게 그 사건을 의심할 일도 없었을 것이며 그로 인해 납치를 당하지도, 그 사건을 검경 수사권 조정에 이용하기 위해 우태하가 범죄자를 이용해 협박 편지를 보낼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참회한다. 그리고 그 참회는 바로 시즌 1에 이어 시즌2가 말하고자 하는 바 '주제'이다. '침묵을 원하는 자 모두가 공범이다.'

 

   

 


우태하와 최빛, 그들은 이창준이 아니었다. 
통영 사건으로 부터 시작되어 검경 수사권 조정위원회라는 현 시국에서도 예민한 사안을 들고 나왔던 <비밀의 숲 시즌2>는 결국 수사권 조정 위원회의 중심 인물이었던 우태하 형사법제단 부장 검사와 최빛 경찰청 정보부장 및 수사구조 혁신단 단장이 박광수 변호사의 시체 유기의 공모자로 밝혀지며 좌초되고 만다.

시즌 2에서 황시목, 한여진 두 주인공을 제외하고 가장 주목받았던 두 사람, 우태하와 최빛, 시청자들은 그들 중 누가 시즌 1에서 이창준과 같은 역할을 해줄 것인가 주목했지만, 16회차 내내 그들은 늘 검찰의 편에서, 그리고 경찰의 편에서 자기 편의 이익을 위해,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서만 '고군분투'했다. 

그리고 그 고군분투의 끝에 두 사람은 침몰하고 만다. 한조의 '지령'을 받은 박광수 변호사의 주최로 별장에 모인 경찰과 검찰의 주요 인물들, 그곳에 정치적 야심을 가진 우태하와 구속된 전 경찰청 정보과장이 있었다. 하지만 재벌 그룹과의 '야합'을 꿈꾸던 그들의 야망은 박광수의 심근경색으로 인한 사망으로 '일장춘몽'이 되었다. 박광수의 사체를 놓고 고심하던 우태하와 내뺀 정보과장의 부름을 받고 그 자리에 온 최빛은 사건을 은폐시키기 위해 박광수를 운전 중 사망한 것으로 '조작'했고, 의정부 경찰 서장이었던 최빛은 이 사건의 수사를 종결시켰다. 그리고 두 사람은 이제 다시 검경 수사권 조정 위원회의 대표로 마주하게 되었다.

자신의 편에서 가장 유리한 '이권'을 쟁취하고 고수하는 '쇼'를 벌이기만 하면 될 것같은 상황, 뜻밖에도 어떻게든 우태하의 눈에 들어보고자 했던 서동재로 인해 수면 아래 잠겼던 박광수의 죽음이 부상하게 된다. 그리고 뜻밖에도 사라진 서동재, 수면 위로 올라온 박광수의 죽음을 두고 전전긍긍하던 두 사람은 검경이라는 '적'에서 시체 유기 사건의 동지가 되어 움직인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우태하는 사라진 서동재를 검찰 측에 유리한 조건으로 써먹기 위해 목격자와 협박 편지를 조작한다. 

황시목은 말한다. 우태하가 검찰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대의명분을 운운하며 정당화하는 협박 편지와, 그가 최빛과 벌인 박광수의 시체 유기는 다르지 않다고. 정보 과장의 부름을 받고 박광수의 사체를 유기한 대가로 경찰청  구조 혁신단장으로의 승진이라는 꽃길을 선택한 최빛처럼 그들은 늘 '그런 식'으로 자신들의 안위와 성공을 위해 달려왔을 것이라고. 

'처음부터 칼을 뺏어야 한다. 처음부터,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조차 칼을 빼들지 않으면 시스템 자체가 무너진다.'며 무너진 시스템을 복구시키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손에 피를 묻혔던 이창준과 달리, 그의 죽음 이후 여전히 경찰도, 검찰도 서로 자신들이 수사권을 가져가야겠다고, 자신들이 그 권리를 가질 자격이 있다고 했지만, 정작 그 대표인 당사자들은 가장 그 자격을 가지지 못했음을 드러내고야 만다. 

 

   

 

여전히 황시목과 한여진이 그곳에 있다.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된다. 
누군가 날 대신해 오물을 치워줄 것이라 기다려선 안된다. 
기다리고 침묵하면 온 사방이 곧 발 하나 디딜 수 없는 지경이 될 것이다. 
이제 입을 벌려 말하고, 손을 들어 가리키고, 장막을 치우고 비밀을 드러내야 한다.'


이창준일까, 혹은 이창준이었으면 좋겠다고 여겼던 두 사람이 결국 '세상을 혼탁하게 만드는 오염원이었음이 드러난 시즌 2, 그렇다면 시즌 2의 이창준은 없는 것일까?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힌 이창준은 없었지만, 대신 시즌1에 이어, 시즌 2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우직하게 자신의 맡은 바 임무를 우직하게 수행해 낸 황시목과 한여진이 여전히 버티며 우리에게 16부작 완주의 보람을 안긴다. 

그저 '사고'로 지나쳐갈 뻔한 통영 사건, 그곳을 지나치던 황시목과 집에서 우연히 인스타를 통해 그 현장에 있었던 연인들을 본 한여진은 '의아심'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들이 느꼈던 의아심을 '수사'를 통해 풀어내고자 했다. 

통영 사건에서부터 보인 여전한 황시목과 한여진의 고지식할 정도로 진실을 향한 성실함. 이는 서동재 납치 사건 과정을 이용하거나, 박광수 사체 유기를 하며 늘 자신의 '입신양명'을 추구한 우태하의 맞은 편에 그들을 자리하도록 만든다. 어떤 이해 관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법적인 사실을 통해서만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황시목의 '결함'이 곧 그의 특징이자, '선의' 나아가 '정의'가 되어 시즌 2를 이끈다. 한여진이라고 다를까. 나를 밟고 가라는 최빛의 농담같은 한 마디를 한여진은 눈물을 머금고 해내고야 만다. 

그래서 두 사람은 통영 사건으로 부터 시작하여, 경찰의 입장에서 뇌관이 될 수도 있는 의정부 경찰서 내 왕따로 인한 자살 사건, 그리고 서동재 납치 사건을 경유하여, 우태하, 최빛의 박광수 시체 유기 사건에 이르기 까지 일관되게 '진실'만을 추적한다. 그들이 경찰이건, 검찰이건, 그 과정에서 자신의 편인 경찰의 목을 조르게 되건, 검찰 선배를 구속하게 되건, 그래서 '내부 고발자'라는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되어도, 심지어 한여진을 범죄자로 만들겠다는 우태하의 협박 앞에서도 의연하게 자신들의 길을 간다. 그리고 그건 비록 방법은 달랐지만 시즌 1에서  이창준이 하고자 했던 바다. 

좌초된 검경 수사권 조정 위원회를 두고 드라마는 지나가듯 말한다. 황시목과 한여진처럼만 하면 '조정'을 하고 말 것도 없다고. 뒤늦은 강원철의 참회 역시 마찬가지다. 우태하도, 최빛도, 그리고 검찰도, 경찰도, 자주 '우리가 남이가'를 운운한다. 그리고 니가 내 입장이라면이라며 사람 사는 일의 불가피함을 넘겨집는다. 하지만, 결국 에돌아 시즌 2가 말하는 건, 시즌 1에 이어 여전히 '독야청청'할 수 밖에 없어도 침묵하지 말고, 그 누군가 자신을 대신해서 오물을 치워줄 것이라 기대하지 말고 입을 벌려 말하고 손을 들어 가리키라는 것이다. 매우 정치적일 듯했던 시즌2의 전개와 달리, 여전히 내 밥그릇 챙기기 바쁜 세상에서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부정부패에 대한 '인간적 자세'로 귀결된다. 그리고 묻는다. 과연 당신은 침묵하는 자인가, 입을 벌려 말하는 자인가 라고. 

시즌 1에 비해 느린 전개, 흡인력 떨어지는 흐름, 거기에 상대적으로 설득력이 떨어지는 논리임에도 불구하고 16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원주로 내려간 황시목과 새로이 발령을 받은 한여진이 새로운 사건으로 돌아와 주기를 기다기게 되는 드라마, <비밀의 숲>,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또 이만한 이야기를 해주는 드라마가 드물다 싶다. 

by meditator 2020. 10. 5. 0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