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막한 도시가 연상되는 회색빛 담벼락 앞에, 혹은 스산한 해변가에 한 소녀가 서있다. 온 세상을 담을 듯 커다란 눈망울, 그림을 보는 순간 배경도, 소녀의 옷도, 머리도 사라지고 그 눈망울에 담긴 애잔한 감성에 압도된다. 이 그림을 보고, 이 소녀를 보고 어떤 느낌이 들까? 

 

 

'저는 이 그림에 전쟁이 끝난 후  부모를 잃고 남겨진 전쟁 고아의 슬픔을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공감하시는가? 이 그럴 듯한 한 마디에 2차 대전 후 미국 사람들은 마음을 열었다. 그리고 지갑을 열었다. 1950~60년대 마크 로스코나 잭슨 플록과 같은 추상 미술이 주류였던 미 미술계에서 인형처럼 큰 눈을 그린 저 그림들을 전시할 기회조차 얻을 수 없었다. 겨우 자리를 잡은 것이 술집 벽 한 켠, 하지만 우연히 신문에 실린 사진과 그 사진에 얹혀진 이 그림의 작가라는 월터 킨의 그럴 듯한 해석은 '키치'라는 평론가들의 폄하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과 그 작가를 대중적 인기의 물결에 얹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숨겨진 진실'이 있다. 2014년 팀 버튼에 의해 만들어진 동명의 영화 <빅 아이즈>의 이야기처럼, 이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소녀들의 그림을 그린 진짜 주인공은 이 그림을 팔아 한 몫을 크게 챙긴 월터 킨이 아니라 그의 아내였던 마가렛 킨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그림,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평생을 정진해온 화가 마가렛 킨의 전시회가 지난 5월에서부터 9월까지 마이아트 뮤지엄에서 개최되고 있다. 특히 정우철 씨 등의 도슨트를 통하면 마가렛 킨의 생애에 대한 보다 친절한 설명에 다가설 수 있다. 

전쟁 고아의 슬픔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이 그림의 진짜 작가 마가렛 킨은 무엇을 그리고자 했을까? 바로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린 작가의 슬픈 마음을 그대로 그림에 드러낸 것이다. 

'내가 아이에게 그리는 눈은 나 자신의 가장 깊은 감정을 표현한 것이다. 
눈은 마음의 창이다' - 마가렛 킨 



 

 
이름을 찾기 위한 지난한 싸움 
첫 번째 결혼으로 딸을 얻었지만 폭력적인 남편을 피해 도시로 나온 마가렛은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며 힘들게 살아가는 처지였다. 1950년대 미국은 아직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인정'되지 않았던 시대, 함께 그림를 그리던 월터가 다가오자 마가렛은 홀로 딸을 키워야 하는 불안정한 처지에 그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 결혼은 그녀의 '무덤'이 되었다. 남편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 여류 화가의 존재가 인정받기 힘들다는 핑계를 들어 그녀의 이름에 남편의 성인 '킨'을 서명하게 유도하였다. 그림이 팔리기 시작하고, 사업 수완이 좋은 월터가 이른바 '굿즈'와 같은 형태로 그림을 다양한 방식으로 상업화하며 떼돈을 버는 동안, 그녀는 딸조차 모르는 숨겨진 방에서 강아지들을 벗삼아 하루 18시간씩 그림을 그려야 했다. 그림이 많이 팔리면 팔릴 수록,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그녀의 고통은 더욱 극심해졌다. 

그래서 그녀가 모색한 돌파구가 바로 그녀가 좋아했던 모딜리아니의 그림에 영향을 받은 이전에 그렸던 그림과 다른 그림을 그리고자 한 것이었다. 킨이라는 결혼 후 생긴 성 대신 전시는 마가렛의 전 생애 기간 동안 그림을 시간의 순서에 따라 전시해 놓았다. '킨'이라는 서명으로 그녀가 자기 자신에 대해 혼란을 느꼈던 시절의,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전세계적으로 그녀를 유명작가로 만들어 준 '빅 아이즈'를 시작으로, 월터 킨의 아내로 남편처럼 그림을 그리는, 그래서 부부 화가로 이름을 날렸던 시기의 '모딜리아니 풍'의 그림이 잇달아 걸려있다. 

하지만, 변화시킨 화풍만으로 그녀는 자신의 고통을 상쇄할 수 없었다. 더구나 딸을 위해 선택했던 결혼이었지만 딸 앞에서조차 빅 아이즈의 주인 행세를 하는 남편을 견딜 수 없었던 마가렛은 모든 재산을 놔둔 채 딸과 함께 월터를 떠난다. 그리고 미국 사회 내 성장하는 여성의 인권 운동에 발맞춰 자신의 정체성 찾기에 돌입한다. 

하지만, 그 시간은 길었다. 무려 12년, 1986년에 이르러서야 그것도 아내의 그림과 그 그림으로 만든 굿즈를 팔아 일군 그 많은 재산을 탕진하여 변호사조차 내세울 수 없었던 월터를 상대로, 법정에서 53분 만에 스스로 자신이 마가렛임을 증명하는 그림, '증거 번호 227'을 그려서야 자기 그림들의 이름을 되찾았다. 더구나 늘 울타기 바깥에서, 혹은 갇혀서 세상을 바라보던 소녀가, 아직은 슬픈 눈빛이지만 울타리 밖으로 나온 '세심한' 포인트는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나는 12년 동안 거짓말을 했고, 이는 내가 두고두고 후회하는 결정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나는 진실이 가지는 가치를 배웠고, 명성, 사랑, 돈, 그 무엇도 양심을 버릴 만한 가치는 없다고  배웠다',  -마가렛 킨 


도슨트의 말처럼 때로는 일본 서스펜스 영화 속 아이 귀신과도 같은 커다란 눈에 대한 호불호는 차치하고, 키치 풍의 팝 아트가 익숙한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마가렛 킨의 '빅 아이즈'는 친숙한 '화풍'이다. 그러나 그 친숙한 화풍에 담긴 한 여성 화가가 벌인 자기 정체성에 대한 지난한 싸움이야마로 전시회를 통해 얻은 진짜 수확이다. 그저 애잔했던 눈망울이 자신을 잃은 여성이 그림을 통해서 밖에 드러낼 수 밖에 없었던 슬픔이라 여겨지니 그 눈망울들이 한결 더 안쓰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슬픈 눈망울은 자신의 이름을 찾는 여정에 나선 이후 변화한다. 하와이에서의 자유로운 삶, 종교, 그리고 사랑은 눈망울을 한결 더 커졌지만 더 이상 슬프지 않다. 평생에 걸쳐 일관되게 자신이 그린 그림 속 인물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자 하는 작가의 일관된 작품 세계가 느껴지는 지점이다.

더구나 아직도 생존해 있는 작가는 90이 넘은 나이에도 한결같이 그림을 그리고 있고, 그 결과물을 전시회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여기서 최근 재개된 툴루스 로트렛 전의 신체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40대의 나이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3000 점이 넘는 작품을 그려냈던 툴루스 로트렉이 보였던  삶에 대한 '성실성'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어 숙연한 마음마저 들었다.

거기에 우리에게 익숙한 팀 버튼 감독의 그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캐릭터들이 다름 아닌 마가렛 킨의 영향력이었다는 사실은 '옵션'이다. 그러기에 당연히 다른 누구도 아닌 마가렛 킨의 생애를 스크린에 옮긴 이가 팀 버튼감독이 되는 것이다. 팀 버튼의 <빅 아이즈>는 바로 그런 두 사람의 '인연'을 통해 탄생한 작품이다. 아마도 전시회를 보고 팀 버튼의 <빅 아이즈>를 본다면 색다른 감흥으로 다가올 것이다. 

by meditator 2020. 7. 7. 1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