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의 비밀>은 김규완 작가의 작품이다.

김규완 작가는 '작가주의'의 칭호를 받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우리나라 작가들 중 한 사람이었다. 특히, <피아노> 이래 가족이란 이름으로 묶여진 사람들 사이에서 빚어지는 욕망의 불협화음을 그려내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작가이다. 김작가의 작품에서는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의 그 평화로운 휴식처가 아닌, 인간사의 모든 모순의 응집처이자, 출발점으로써의 가족이 드라마의 중심이 되곤 한다.

하지만, 2010년 야심차게 신데렐라 스토리를 전복시킨 <신데렐라 언니>를 통해 다시 한번 김규완 특유의 가족 해부를 통한 현대인의 욕망과 화해를 논해보려고 했지만, 그저 의도만 좋았던 작품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그리고 이제 어언3년 만에 들고 돌아온 <출생의 비밀>, 전혀 다른 캐릭터와 다른 설정들에도 불구하고, 극이 진행되면 될수록 김규완 특유의 색채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치 <신데렐라 언니>의 '용두사미'가 못내 아쉬웠던 듯, 신데렐라 이야기의 또 다른 버전이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는 중이다.

 

(사진; 신데렐라 언니, kbs)

 

<신데렐라 언니>와 <출생의 비밀>이 비슷하다고?

이 말이 억지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그도 그럴 것이, <출생의 비밀>이란 드라마에서 처음 눈길을 끈 것은 바로 막되먹은 강봉두(유준상 분)의 '깨는' 존재감이었으니까,이 드라마를 처음 본 사람들은 마치 미녀와 야수처럼 강봉두와 정이현이 해듬이를 사이에 두고 남녀 관계로 얽혀 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강봉두의 깜짝쇼가 끝나고, 극이 진행이 되면서, 동시에 잃어버린 정이현의 기억의 퍼즐들이 조금씩 맞혀져 가면서 드라마는 마치 피카소의 그림처럼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 다른 얼굴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유일한 의지처였던 어머니마저 잃은 가난한 학생이던 정이현이 등록금을 한번만 대달라고 찾아간 아버지 최국은 예가 그룹의 적장자였던 것이다. 기억의 편린들을 잃었지만, 지금의 정이현은 작은 아버지가 이끄는 예가 그룹의 핵심 일원이다.

 

<신데렐라 언니>에서, 정작 신데렐라 효선(서우 분)은 주인공이 아니었다.

대성도가의 무남독녀 외동딸이지만,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은 효선은 늘 외로움에 시달리며 애정을 갈구한다. 그리고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처럼, 대성도가를 노리는 새어머니가 들어오고, 그녀의 딸 은조(문근영 분)과 한 남자를 놓고 운명적인 사랑의 줄다리기를 펼치게 된다.

<출생의 비밀>의 이현도 마찬가지로 예가 그룹의 적장자의 하나밖에 없는 딸이다.

하지만 현실의 예가 그룹을 틀어쥐고 있는 건, 작은 아버지요, 이현은 혈통은 있으되, 실권은 없다. 단지 다른 게 있다면 적통의 이권을 노리는 자가 아버지와 피를 나눈 형제요, 효선과 다르게 이현은 의붓언니 은조만큼이나 능력자다. 그리고 은조처럼 이현은 성찰자로써 가족간의 혈투를 지켜보는 역할을 한다.

 

김규완 작품에 등장하는 가족들은 늘 콩가루 집안이다.

재혼에 의해 새롭게 이루어진 유사 가족이거나, 혹은 피를 나눈 형제라 하더라도, 이른바 재물, 가업을 누가 가져갈 것인가의 이권을 놓고서는 남보다도 못한 격렬한 이전투구를 벌이게 되는 존재인 것이다. 가장 애틋한 사랑의 상징이 한 꺼풀 벗겨놓고 보면 가장 첨예한 욕망의 장이라는 설정은, 역으로, 가장 진지한 욕망에 대한 철학적 성찰의 시간을 요구한다.

대성도가의 재산을 쟁취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않고 뱀처럼 구는 어머니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면서도, 효선의 집착 앞에선 자신 또한 어찌할 수 없는 욕망을 가진 인간이기에 고뇌하는 은조처럼, 이현 역시 잃어버린 기억의 단편들을 찾아가면서 그럴 듯한 예가 그룹의 일원이었던 자신이, 자신을 배반한 친구와 애인처럼 역시나 자신의 이해 관계 앞에선 가장 계산적인 인간임을 깨닫게 되고, 현재 자신이 누리는 부의 성채 뒤에 숨겨진 추악한 욕망의 실체에 조금씩 다가가게 된다.

언제나 방관자적인 은조의 시선을 통해, 부도, 욕망도 '인간'이 담겨져 있지 않다면 허상에 불과하단 것을 말하고자 했던 것처럼, <출생의 비밀>은 역설적으로 가장 무식하고, 가진 것없는 강봉두의 순정을 통해, 그를 야수처럼 징그러워하다가 다시 그 예전처럼 그에게 조금씩 다가가는 이현을 통해 이해에 빠르고, 욕망에 거침없는 예가 그룹 가족의 허상을, 진정한 행복을 논하려 하고 있다.

 

이렇게 동화 신데렐라 이야기는 욕망의 파노라마를 펼치며 끊임없이 다른 버전으로 재생되고 있는 것이다.

<신데렐라 언니>가 제작 의도에서 누가 신데렐라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똑같이 아픈 두 여성들의 '동화'를 노렸듯이, 이전 드라마의 구조를 얼마나 닮았는가가 아니라, 가족이란 제도를 통해 충돌하는 인간의 욕망이 얼마만큼 충분히 서술되었는가가 관건일 것이다.

많은 우리나라의 작가들이 그러하듯이 훌륭한 시놉과 촉박한 제작 일정으로 말미암은 '용두사미식'의 전개로 인해, 명작으로 시작해서 범작이 되어버린 <신데렐라 언니>에 비해, <출생의 비밀>은 좀 더 야무진 포석을 여기저기 벌려 놓았다. 덕분에 회를 거듭할 수록, 드라마의 재미가 속속 새롭게 드러나고 있다. 부디 이 포석들에 탄탄한 집을 지어, 김규완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을 속시원하게 해낸 명작으로 끝내지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3. 6. 2. 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