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셋까지는 골라볼만 했다. 드라마 얘기다. 공중파 3사의 드라마가 동시간대 격돌을 벌이는 것만 해도 불꽃이 튄다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던 것에 tvn이 가세를 했다. 심지어 30분 먼저 선방을 날렸다. 그렇게 시작된 4파전, 거기에 밤 11시 한갓지게 자리잡았던 jtbc 월화 드라마가 심기일전 <뷰티인사이드>로 도전장을 날려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최종회 5.181% 닐슨 코리아 유료가구 기준) 그렇게 시작된 월화 드라마 5파전, 2월 11일 jtbc, mbc, sbs가 동시에 새 드라마를 선보이며 5파전의 2라운드가 불타올랐다. 과연 5채널의 선택, 무려 사극만 두 편에, 장르물도 두 편, 거기에 환타지 로맨스까지, 골라보는 재미와 선택 장애를 오갈 수 밖에 없는 드라마의 풍년, 풍성하다해야 할까, 범람이라 해야 할까. 

 

 

선점, <왕이 된 남자> 
5파전임에도 2월 11일 방송 결과는 이미 선점한 <왕이 된 남자>의 압승으로 끝났다. 무기력하지만 폭주했던 진짜 왕 이헌과 광대 출신의 왕이 된 남자 하선, 여진구의 기가 막힌 2인 1역으로 하선과 이헌, 그리고 왕비 유소운의 삼각 관계 아닌 삼각 관계로 이어졌전 팽팽했던 끈이 이헌의 허무한 죽음으로 일단락되고, 그 극의 동력을 애닳은 하선과 유소운의 순애보가 이어받으며 절정으로 달려가며 '로맨스 사극'으로서의 인기를 이어갔다. (8.24% 닐슨 코리아 유료 가구 기준) 물론 거기에는 일찌기 <돈꽃>으로 발화한 김희원 연출 팀의 공력이 큰 바탕이 된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일찌기 동지들을 잃으면서도 포기할 수 없었던 개혁에의 꿈을 이헌을 자신의 손으로 죽여가면서까지 다시 일으켜 세우려 했던 이수의 정치와, 그런 그의 적이 된 좌의정 신치수의 세도, 거기에 '왕이 유고시 대통을 정할 수 있다는 권한'을 향한 계비의 끊임없는 계략 등, 왕권을 둘러싼 정치적 대결의 집중도가 상대적으로 헐겁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하선과 유소운의 러브 스토리, 거기에 수구와 개혁의 정치 드라마를 잘 버무려 내어 로맨스 정치 사극으로 유종의 미를 마무리하여 영화 <왕이 된 남자>의 후광을 떨쳐내고 드라마 <왕이 된 남자>로 기억되게 될 것인가 귀추가 주목된다. 

 

 

신선한 장르의 사극, <해치> 
과연 조선조에서 왕이 아닌 연산군과 광해군이 없었다면 우리 사극은 어떻게 되었을까 란 반문을 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사극, 그 중에서도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의 진폭은 좁다. 현재 월화 드라마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왕이 된 남자> 역시 가상의 왕을 배경으로 하지만, 알만한 사람이라면 그 왕이 광해군을 모티브로 삼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되풀이 되는 사극의 소재들에서 김이영 작가는 독보적이다. 이병훈 감독과 손을 잡은 <이산>, <동이>, <마의> 그리고 <화정>에 이르기까지 완성도를 차치하고 김이영 작가가 역사 속에서 길어낸 소재는 신선했다. 

그 김이영 작가가 이번에 역사 속에서 길어올린 인물은 뜻밖에도 영조다. 늘 이미 권좌를 차지해서 노회한 왕이 되어 자신의 아들을 죽였던 논란의 대상 영조가 아니라, 천한 무수리의 몸에서 태어나 왕좌를 차지하게 된 젊은 영조가 <해치>의 주인공으로 들어왔다. 그러기에 <해치>는 무엇보다 신선한 역사 속 이야기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 

하지만 신선한 소재인 만큼 방송 첫 회에 이미 밀풍군 등에 대한 역사적 고증의 논란이 있다. 또한 안타깝게도 <해치>를 이끌어 갈 주역 연잉군 이금 역의 정일우, 여지 역의 고아라에 대한 부족한 사극 발성과 연기에 대한 평도 따랐다. 또한 이병훈감독이 없는 김이영 작가만의 내공을, 그리고 완성도 있는 서사를 마무리해 낼 수 있을 것인가. 신선하지만 짐이 무거운 <해치>, 그 시작은 지상파 1위로 순조롭다 .(7.1%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이 장르는 뭐지? <아이템> 
또 한편의 웹툰이 드라마로 리메이크 되었다. 시즌2를 마무리하고 현재 79화까지 진행된 민형, 김준석 작가의 웹툰 <아이템>은 흔히 영웅물이 특별해진 사람들을 소재로 삼은 것과 달리, 평범한 사람들이 손에 넣은 초능력을 가진 물건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그려낸 실험적인 작품이다. 

이미 웹툰으로 장르물마니아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던 <아이템> 거기에 <신과 함께>, <공작>, <암수살인> 등 영화에,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으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주지훈의 귀환으로 화제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드라마의 시작은 폭주하는 열차 선로에 뛰어들어 초능력을 가진 팔찌를 차고 막아내는 주지훈으로 주목시키며 시작된다. 

그리고 또 한 사람, 감옥에서 나와 무릎끓고 사죄를 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노인네들이 똥오줌을 못가린다'며 거물 법조인들을 카리스마로 꼼짝못하게 만들고, 자신의 비밀 공간에 들어서는 아이템수집가로 변모하는 다양한 소시오패스의 모습을 보이는 김강우의 합류도 반갑다. 

하지만 웹툰의 실사화는 아직은 버거워 보인다. 1, 2회의 이야기들은 흡인력있게 장르물의 시청자들을 빨아들이는 대신, 산만한 전개로 신선한 소재에 대한 흥미를 반감시킨다. 거기에 '잘 해야 본전'이라는 김강우의 인터뷰답게 소시오패스 재벌 김강우도, 검사 주지훈도 어쩐지 새롭기 보다는 기시감을 일으킨다. 거기에 열심히는 하지만 늘 어쩐지 겉도는 듯한 신소영 역의 진세연의 호흡도 아직은 미지수다. 

과연 익숙한 배우들, 낯선 장르, 이런 딜레마를 극복하고 초인간이 아닌 초능력을 가진 물건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설득해 낼 수 있을지. 대세 주지훈이 과연 드라마에서도 통할 지 4.9%의 시청률로는 갈 길이 멀다. 

 

 

김혜자가 된 한지민, <눈이 부시게> 
평범한 가족이 있다. 아니 있었다. 셈이 밝은 아내는 답답하지만 모범 운전자 표창을 받은 딸바보 아버지 김상운 씨(안내상 분), 손이 부드트도록 염색약을 만지지만 그게 그녀의 낙이고 삶인, 아니 그보다도 하나 밖에 없는 미모의 딸이 희망인 미용사 엄마 이정은(이정은 분) 씨, 취미가 동생 놀려먹기인 세상 태평인 오빠 김영수(손호준 분), 그리고 지금은 비록 백수지만 언젠가는 아나운서가 될 꺼라는 이쁜 딸 혜자(한지민 분), 그랬는데 그 이름 하나가 딱 문제라던 젊고 이쁘던 혜자가 진짜 김혜자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눈이 부시게>는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의 새로운 변주로 시작된다. 우연히 바닷가에서 발견한 시간 여행이 가능한 시계를 한때 맘껏 사용했던 25살의 여자가 그 마구 사용했던 시간의 댓가로 하루 아침에 늙어버린 역환타지, 거기에 <송곳>의 김석윤 피디와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의 이남규 작가의 내공이 만나 새로운 '휴먼 드라마'를 예고한다. 

첫 회 집안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지만 현실은 첫 사랑도 못이루고 꿈도 저만치인 25살의 혜자의 지지부진한 인생이 이어진다. 여전히 이쁘지만 그래도 굳이 왜 한지민이었을까 라는 물음표를 남긴 캐스팅에, 싱그럽지만 여전히 어색한 이준하 역의 남주혁의 만남은 그 자체로 아직은 물음표다. 어쩌면 이 드라마가 진짜 시작하는 건, 그런 장황한 서론을 끝내고 젊은 혜자가 나이든 혜자가 된 3회 부터일 것이다. 이미 김혜자 선생의 등장만으로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드라마, 과연 김석윤, 이남규, 김혜자의 조합이 월화 드라마 대전 속에서 따스한 온기를 남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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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조들호 2> 
'드까알'이란 속어가 있다. '드라마는 까봐야 안다'는 말이다. <조들호2>가 시작되기 전만 해도 박신양 고현정의 만남으로 화제가 되었던 이 드라마가 모든 월화 드라마를 제압할 것이라 예측되었다. 40%를 넘는 <황금빛 내인생>의 주인공 박시후도 구제하지 못한 월화 드라마의 침체를 드디어 두 카리스마의 주인공 박신양, 고현정의 구해낼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는 무참하게 무너졌다. 시즌 1에서 처럼 거지 꼴로 등장하여 분기탱천한 조들호 변호사의 박신양은 여전했고, 나긋나긋한 목소리지만, 그래서 더 서늘했던 고현정의 존재감은 무시무시했지만 거기까지만 이었다.  이른바 재벌가의 부도덕한 행태와 그에 대항하는 조들호의 분전은 '분전'이라기엔 '클리셰'를 넘어서지 못한 듯 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박신양의 디스크 수술에, 변희봉 중도 퇴장 등으로 드라마는 동력을 잃었다. 심지어 아직도 이 드라마를 하느냐고 한다.  

14회 드디어 재기에 성공한 변호사 조들호, 하지만 14회의 지루했던 조들호의 고전에 기대했던 많은 시청자들이 떠났다. 그래도 주지훈의 <아이템>를 꺽은  5.7%의 시청률은 그나마 두 배우에 대한 이름값이다. 하지만 이름값이라기엔 그 댓가가 너무 크다. 박신양, 고현정 두 배우의 작품마다 따라다니는 제작진과의 불화를 이번에도 피해가지 못했다. 심지어 작가 이름이 나오지 않는 드라마라니. 꼴찌가 아니라고 면피를 하기엔 두 배우의 이름값 그 상흔이 깊다. 

by meditator 2019. 2. 12. 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