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도 지적했지만 <인간의 조건>은 '~없이 살기'를 하는 미션 프로그램이 아니다. 하지만 그간 핸드폰, 자동차, 돈 등을 없이 사는 미션이 부각되면서, <인간의 조건>을 찾아가는 본연의 과제 보다도, 미션 수행을 위한 모습들이 위주가 되는 '본말전도'의 상황이 종종 빚어지기도 했었다. 또한, '~없이 살기'란 미션 소재 자체의 한계도 분명했었고.

그래서 이제 <인간의 조건>은 '~없이 살기'를 넘어 '~하기' 도전에 나섰다. 그 첫 과제는 바로 '원산지 알고 먹기' 하지만, ~없이 살기나, '~하기'나,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인간답게 살기 위한 미션이 무모하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부정적 과제를 넘어 긍정의 열매를 먹어서일까? '원산지 알고 먹기' 첫 방송은 생각 외로, 푸짐한 먹거리의 '먹방'이 되었다.

아침을 먹고 오라니까 허겁지겁 두 그릇을 비운 김준현처럼 늘 무언가가 없어서 쪼달리다 부엌식탁 가득한 8판의 계란처럼, '~없이 살기'에 길들여 졌는지, 그들의 풍족함이 어색하기도 하고, 또 한편에선, 좋은 음식을 감사한 마음으로 먹는 그들과 함께 이렇게 인간의 조건을 찾아갈 수도 있구나하며 푸근해지기도 한다.

 

(사진; 유니온 프레스)

 

웬 뜬금없는 '원산지 알고 먹기'인가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바로 이 '원산지' 문제는 환경 문제, 그 중에서도 먹거리의 환경 문제로 들어갔을 때 가장 원론적으로 부딪치게 되는 심각한 과제이다. 그걸 위해서는 프로그램에서도 언급되고, 멤버들이 식재료를 사러 갈 때마다 옆에 수치로 표기되었던 '푸드 마일리지'를 알아야 한다.

'푸드 마일리지'는 인간의 여행이 아닌, 우리가 먹는 먹거리가 우리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걸린 수송 행로와 거리를 말한다. 사람들이 비행기를 이용해 여행을 많이 다니면 마일리지가 많이 쌓여 여러 혜택을 얻을 수 있다지만, 반대로, 우리의 간사한 입맛과 편의를 위해 먹거리가 수만킬로미터의 여행을 하고나서 얻어지는 건, 그 운송 과정에 씌여지는 엄청난 이동 비용과 거기에 드는 엄청난 에너지원의 소모, 그리고 장기간 보존을 위한 무차별 농약과 보존제의 살포뿐이다.

하지만, 이미 우린 귤이 들어가고 아직 봄철 과일이 무르익지 않는 그 계절의 헛헛한 입맛을 달래기 위해 먹는 캘리포니아산 오렌지와 칠레산 포도에, 무한대로 늘어난 육식에의 갈망을 처리해줄 미국과 호주산 쇠고기에, 이제는 없으면 우리의 밥상이 존립하는 거 자체가 힘들 정도의 중국산 식재료들에 무감각하게 길들여져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을 <인간의 조건>은 찾아들어가 원산지를 아는 음식만 먹는 미션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힘들 것이라며 꾸역꾸역 미리 못먹을까봐 챙겨먹은 아침 식사와 달리, 막상 원산지를 찾아보니 생각 외로 먹을 것들이 많았다. 쌀만 해도 김포, 이천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고, 계란에, 푸성귀는 구하기만 하면 방사하여 낳은 유정난에, 농약을 치지 않은 무농약 유기농 먹거리들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잔뜩 쫄았던 멤버들은 첫 날의 저녁을 장어까지 구워가며 푸짐한 '먹방'을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식탁에서도 알 수 있듯이 원산지를 알아야 먹을 수 있다하니, 제일 먼저 원산지를 알기 힘든 수많은 재료들의 범벅인 라면이 그 식탁에서 탈락했다. 필리핀산 바나나나 즐겨마시던 커피도 우리나라에서는 구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저 가장 원론적인 밥상, 된장, 고추장에 쌈채소에 계란 후라이, 장어 구이의 질박한 요리 방식만이 우선 그들이 만들 수 있는 최선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조금 더 맛난 먹거리를 향해 그들의 나아가면 거리로 환산되는 환경의 문제 푸드 마일리지만의 문제가 아닌 인간의 먹거리가 가진 보다 심오한 문제를 또 조우하게 되리라.

또한 '~없이 살기'에서 '~로 살기'로 버전 업된 <인간의 조건>의 존립 기한 여부도 판가름나지 않을까.

by meditator 2013. 5. 5. 1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