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라는 매체를 통해 여러 종류의 프로그램들이 만들어 지고 있다. 트렌드리더에 가까운 예능은 당대를 가장 발 빠르게 선도해 간다. 먹방이 유행이다 싶으면 진이 빠질 때까지 먹방을 울궈먹는가 하면, 먹방이 다해간다 싶으면 발 빠르게 '집방'이란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 내려 애쓰는 식이다. 그에 반해 드라마는 점점 세대 별 구획이 분명해 져간다. 젊은이들은 아예 공중파에는 시선을 돌리려 하지 않지만, 그럴 수록 주말 드라마나 아침, 저녁 시간대 드라마는 중장년 세대를 위한 철저한 '서비스'정신에 투철해진다. 


하지만, tv를 통해 방영되는 프로그램이 이들 예능과 드라마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 예능이나 드라마 만큼이나, '다큐'도 많이 방영된다. 월요일이면 <다큐 스페셜(mbc)>, 화요일에는 <pd수첩(mbc)>, 수요일엔 < 추적 60분(kbs)>,  목요일 <kbs스페셜(kbs1)> , 토요일 <다큐 공감(kbs1)>, <그것이 알고 싶다> 등 거의 매일 여러가지 성격의 다큐 프로그램이 편성되어 있는가 하면, ebs에서는 <다큐 프라임> 등 거의 매일 한 두 편의 다큐가 편성 방영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 잡지 못하는 '딱딱한' 형식의 다큐는 마치 동네 오래된 빵가게처럼 쉬이 잊혀지곤 한다. 하지만, 묵묵히 고집스런 뚝심으로 자신만의 레시피를 고집하는 쉐프처럼, 사람들의 주목을 쉬이 받지 못하는 다큐는, 속물화되고 세상사에 쉬이 타협하는 다른 프로그램과 달리, 우직하게 우리 사는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고자 하는 노력을 쉬지 않는다. 2월 28일 방영된 <sbs스페셜>과 <다큐 3일>도 마찬가지다. 



단원고, 그 멍에가 된 이름을 다시 불러보다. 
2월 28일 방영된 <sbs스페셜>은 '졸업-학교를 떠날 수 없는 아이들'을 방영했다. 졸업 즈음에 해가 바뀌어 졸업생이 된 단원고 박준혁 군의 이야기를 다룬다. 다큐의 시작은 아이들이 없는 단원고 교실에서 시작된다. 없는 아이들의 빈 자리를 채운 부모님, 그리고 아이들의 출석부를 부르기 시작하는 선생님, 불러도 대답없는 아이들 대신 부모님들이 대답한다. 하지만 그 대답의 끝은 흐느낌으로, 통곡으로 마무리되면서, 600일이 지나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져가는, 아닌 적극적으로 잊혀져 가는 세월호 희생자들의 이야기가 결코 끝날 수 없는 것임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sbs스페셜>은 그저 상기 시키는 것만 하지 않는다. 해가 바뀌고, 다시 해가 바뀌어 어느덧 2학년 준혁이가 친구들과 함께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이제 홀로 졸업식을 맞이해야 하는 상황을 묵묵히 지켜본다.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 동네 친구가 곧 학교 친구가 되었던 준혁이, 하지만 이제 준혁이에겐 친구가 없다. 그래서 준혁이는 학교를 다녀 온 후에 밖에 나서지 않는다. 함께 어울릴 친구가 없기 때문이다. 대신 종종 교실을 찾아 친구들에게 하고픈 말을 남길 뿐이다. 그런 준혁이가 이제 그렇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긴 학교를 떠날 즈음이 돌아왔다. 



하지만, 단원고의 졸업식은 그저 여느 학교의 졸업식처럼 쉽지 않다. 아이들이 없는 빈교실을 존치하느냐 마냐의 문제를 비롯하여, 여러가지로 갈라진 학교와 학부모들간의 이견, 그리고 이제 600일이 된 상황에서 여전히 아이들을 잊을 수 없는 부모와 그들을 바라보는 차가운 사회의 시선, 거기에 특별전형이라는 '배려(?)'에 대한 따가운 시선 등이, 축하 받아야 할 졸업식을, 따가운 보도 카메라의 세례와, 거기에 얼굴을 가리고 도망치듯 학교문을 나서야 하는 학생들의 행렬로 마무리하게 만든다. 그리고 다큐는 그런 소란 가운데 부모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담담하게 자신을 드러낸 준혁이와, 그의 의연함 뒤로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를 덤덤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오히려 그런 사태에 집중하는 대신, 졸업을 했지만 아직은 새로운 세상에 나서기가 두려운 준혁이와 그리고 함께 하지 못한 준혁이의 친구들과 함께, 미처 가보지 못한 제주도 수학 여행을 다녀온다. 물살에 휩쓸려 그만 손을 놓치고 만 아이, 준혁이가 만들어 준 것이면 무엇이든 맛있다 먹어주던 친구, 준혁아 부르던 목소리가 독특해서 지금도 귓가에 그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친구, 준혁이와 친구들은 그렇게 함께 가지 못한 친구 다섯의 사진을 대신 가지고 추운 제주도의 바람을 맞는다. 



종로구 익선동, 그 오래된, 지켜야 될 골목길
종로구 익선동 166번지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마을이다. 일제 강점기 도시형 한옥 마을로 집단적으로 조성된 이 마을은 2004년 재개발이 무산되는 바람에 유일한 한옥 마을로 잔존하게 되었다. 

<다큐 3일>은 언제난 그렇듯 72시간 동안 이 오래된 한옥 마을을 촘촘히 지켜본다. 하지만, 그저 지켜보는 것만이 아니다. 166번지에 수십년을 살아온 토박이 주민들의 이야기를 통해, 일제 시대 요정과 요릿집등으로 융성했던 이 마을의 역사와, 그리고 이제 세월이 흘러 재개발이 무산되는 바람에 유지될 수 있는 낡은 한옥의 전사를 샅샅이 훑는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저 아직도 버텨내고 있는 한옥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대신, 최근 우리 사회에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우려를 담고 지켜본다. 그래서, 그 낡은 골목의 담벼락 하나, 낡은 가구 하나가, 이제 사라지만 다시는 복원하기 힘든 소중한 것임을 문화재 전문 위원의 전문가적 소견을 얹어 명시한다. 애써 동네 주민이 버린 낡은 자개 장롱조차 끌어들이는 그 오래된 한옥 마을을 지키겨 애쓰는 젊은이들의 노력을 그려내며, 전통의 유지를 강조한다. 그리고, 집값이 오르면 버터낼 도리가 없는 오래된 세탁소 주인의 말을 통해, 이곳이 부디 안녕하기를 원하는 소망을 대신한다. 




<sbs스페셜>은 단원고 아이들의 교실을 존치하자고 소리높이지도 않는다. 그저 루시드 폴의 '내 몫까지 살아내 주렴'하는 나즈막한 목소리를 배경으로, 친구들을 잊지 못한 채 힘들어 하던 졸업생이 애써 용기를 내는 모습을 담는다. 특례 입학의 논란 뒤로, 대학을 가는 대신, 친구들을 돌려준다면 그걸 택하겠다는 졸업생의 눈물섞인 토로를 전한다.  특례입학이나, 보상금, 그리고 교실의 유용이란 편협한 잣대 뒤에서 여전히 아이들을 잃은 상처에서 한 발도 나올 수 없는 학부모와, 사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졸업생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저 600일이란 시간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노란 리본의 의미를 상기시킨다. 

<다큐3일>도 마찬가지다. 섣부른 젠트리피케이션의 우려 대신, 익선동 166번지의 가치를 부각시킨다. 그곳의 낡은 흙담벼락이, 그리고 동네 주민이 이제는 쓸모 없다 버린 자개 장이 사라지면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우리의 소중한 유산임을 드러낸다. 그리고 거기에 깃들여 사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곳을 훼손시키지 않고 지키려는 젊은이들의 통해, 젠트리피케이션의 거센 물살에 대항해야 할 의미와 가치를 상기시킨다. 

<sbs스페셜>과 <다큐 3일>은 편견과, 무지, 그리고 물질적 이기심에 외로 꼬아진 세상 사람들의 고개를 주물주물, 돌려 놓으려 애쓴다. 

by meditator 2016. 2. 29. 14: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