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0일 2.996%로 시작한 <응답하라 1998>이 4회만에 시청률 8%를 넘었다(닐슨 코리아 기준 8.251%) 이 정도면 앞선 <응답하라> 시리즈에 비해 훨씬 더 빨리 신드롬에 도달하고 있는 중이라 해도 그리 틀리지 않은 평가다. 방송을 보고 있노라면 별 다른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쌍문동 골목 가족들이 아웅다웅하며 살아가는 이야기, 역시나 전편에 이어 여주인공의 남편 찾기 퍼즐의 반복인데도, 하염없이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묘하다. 그 이유가 뭘까?


이 글을 쓰는 기자는 83년에 대학을 입학한 연식이 제법 된 사람이다. 그렇다면 83학번 세대가 본 <응답하라 1988>은 동시대적 공감 그 자체일까? 그런데 이상하다. 동시대, 아니 이미 대학을 졸업한 이후의 이야기인데, 이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는 듯한 회고조의 기시감이 든다. 드라마는 1988년인데, 막상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정취는 1970년대의 어느 시점을 느끼게 한다. 아마도 그건 내가 살았던 1980년대에는 느끼기 힘들었던 정서를 <응답하라 1988>이 그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존무죄, 무전유죄의 1988
11월 13일 방영된 3회 <응답하라 1988>의 소 제목은 유전무죄, 무전 유죄였다. 드라마의 사회적 배경은 지강헌 탈주 사건 과정에서 그가 외친 '유전무죄, 무전 유죄'가 사회적 유행어가 되던 시기이다. 왜 당시 이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유행어가 되었을까? 이 말 그대로 이미 당시 대한민국은 '유전(有錢)'이 곧 사회적 기득권을 얻는데 직행 티켓이 되는 것이 당연시 되어가는 사회였기 때문이다. 당시 사회를 살던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미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부의 격차를 넘어선 사회적 격차를 몸으로 느끼기 시작했던 시기였기에, 한 탈주자의 이 말이 모든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사회적 유행어로 자리매김하던 시기가 되었다. 즉, 광주 사태를 진압하고 대통령이 된 전두환 정권을 뒷받침한 경제적 호황은 그 떡고물이 편중되어 계층 차이가 분명하게 체감되기 시작하던 때가 바로 저 88년 올림픽의 뒤였던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 속에선 그런 빈부의 격차는 두드러지지 않는다. 정환이네는 형이 산 올림픽 복권으로 졸지에 부자가 되었지만, 그들이 가진 부를 전횡하지 않는다. 말끝마다 '졸부'잖아 하면서도 수학 여행을 가는 덕선이의 용돈까지 챙길 정도로 정환모의 마음은 넉넉하다.  빛보증을 잘못써서 하루 아침에 반지하로 내려앉은 덕선네는 막내 아들 노을을 친구들이 '반지하'라 불러 아버지의 마음을 후벼파지만, 그럼에도 건강하고 밝게 자라는, 그리고 여전히 술만 마시면 누군가에게 퍼주는 마음 넉넉한 가장의 여유를 가진 집안이다. 드라마 속 골목 사람들에게 빈부격차는 그저 경제적 지수일 뿐, 말 그대로 콩 한 톨도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정서를 쌍문동 골목 사람들은 가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당시를 살았던 사람은 그런 시대를 산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마치 농촌을 다룬 <전원 일기> 속 농촌이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듯이, 쌍문동 골목 이야기를 다룬 <응답하라 1988> 속 서울은 당시에 존재하지 않은 가상의 1988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농촌 드라마 <전원일기>가 시작된 시기는 1980년 10월 21일이다. 이 시기가 상당히 상징적이지 않은가. 1980년 하고도, 광주 사태가 마무리 된 10월 21일, 거기에 농촌 공동 사회가 파괴되고, 도시 집중 현상이 극에 달하기 시작한 1980년대의 그 첫 무렵에, 농촌 공동체의 아름다움을 다룬 <전원일기>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전원일기>는 세상 그 어느 곳에서도 존재하지 않은 할머니, 아버지, 자식 삼대, 사대가 모여 사는 대가족과, 그 주변 이웃들이 너나없이 한 가족처럼 지내는 아름다운 가족 공동체의 이야기로 당시 서민들의 심금을 울렸다. 오죽하면 그 드라마에 나오는 최불암, 김혜자 씨를 진짜 부부로 알았을 정도로. 



우리가 상실한 도시 공동체, <응답하라>
그렇듯이,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가족을 기초 단위로 한 도시 공동체의 이야기를 <응답하라> 시리즈는 일관되게 다룬다. <응답하라 1997>이 부산의 성시원네를 배경으로 너나없이 지내던 친구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응답하라 1994>는 서울 신촌의 하숙집을 배경으로 역시나 혈육같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두 드라마 모두 피를 나눈 형제처럼 친해져 버린 벗들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그 핵심에는 <응답하라> 시리즈의 실질적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성동일-이일화 부부가 있다. 즉, 이 부부를 중심으로 한 확대 가족과 같은 공동체가 <응답하라> 시리즈의 본질인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화룡점정이 된 것은 당시의 시대를 묶어낸 음악을 비롯한 문화적 상품을로 점철된 문화적 공감대가, 공동체적 정서를 더하여, 완성된 시대적 공동체가 완성된다. 즉, 해체된 원자화된 21세기 사람들이 잃어버린 공동체와 그 정서를 일관되게 다루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응답하라 1988>은 그 시점을 쌍문동 골목으로 가지고 간다. 왜 쌍문동일까? 그것은 <전원일기>가 지도에서 찾기도 힘든 양촌리라는 곳을 찾아간 것과 같은 이치다. 당시 서울이라기엔 여러모로 아쉬운 변두리 쌍문동을 배경으로, 마치 70년대나 60년대에나 있을 법한 서울 도시 공동체의 정서를 드라마는 담는다. 서로의 밥그릇 갯수까지 알 것같은 이웃들, 그래서 드라마는 개인의 문제로 시작하여, 공동체의 해결로 끝을 맺는다. 반대로, 관계의 문제가, 공동체의 고민이 되기도 한다. 4회, 바둑 경기에서 자꾸 지는 택이의 문제를 친구들이 함께 왁자기껄 웃고 해결하는 것이 공동체 해결의 대표적인 사례요, 매 시리즈마다 시청자들을 낚는 여주인공의 남편 문제가 대표적인 공동체의 문제화환 개인의 문제이다. 즉,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공동체가 나서서 서로서로 해결해 주지만, 감정조차 공유해 버리는 그 공동체의 부담 역시 온전히 개인의 몫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매 시리즈 여주인공의 남편 찾기는 그저 시청자들을 낚기 위한 수단만이 아니라, 너와 나가 분명치 않는 공동체적 문화의 필연적 산물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응답하라>는 <국제 시장>과도 같은 코드를 가진다. 그 시절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온 아버지가 오늘의 현재를 일구었듯이, 이제는 사라진 가족 공동체의 아름다움이 그 시절의 추억을 한껏 살려낸다. 과거는 아름답고, 추억은 흐뭇하다. 그저 문제는 그 모든 것을 잃고, 홀로 떨구어져 나온 현재의 우리뿐. 그런데 오늘의 빈익빈 부익부, 배금주의, 해체된 가족, 그리고 원자화된 개인을 낳은 것은 누구일까? <국제시장>의 아버지는 오로지 희생만 했을 뿐이고, <응답하라>의 가족은 가족을 중심으로 사랑하고, 뭉쳤을 뿐일까? 과거를 그린 드라마들은 답하지 않는다. 그때는 아름다웠고, 지금의 현실은 불쌍할 뿐이다. 당시의 사람들은 정이 넘쳤고, 우리는 그 정마저 잃은 채 도시를 헤맨다. 도대체 그럼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누구의 잘못인가? 현재를 만든 부모 세대의 배금주의, 성공 지상주의를 드라마는 그려내지 않는다. 

<전원일기>는 파괴되어 가는 농촌 공동체의 이야기를 시늉만 했을 뿐, 아름다운 농촌만을 그려냈다. 마찬가지다. <응답하라> 역시 그 아름다운 가족 공동체 속에서 살아낸 가족들은 성공한 중산층으로 그려질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성공한 자의 후일담은 약간의 흉터에도 불구하고 아름답다. <응답하라>가 달착지근한 건 바로 그 때문이다. 
by meditator 2015. 11. 15. 16:00
  • 익명 2015.11.15 16:48 ADDR EDIT/DEL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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