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자 에바 일루즈는 그의 책 <감성 자본주의>를 통해 뒤르캥 사회학의 핵심 개념인 연대(계급적 연대)가 사회적 행위자들을 사회의 중심적 상징에 묶어 두는 '한 다발의 감정'이라 정의내린다. 하지만,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그의 책 <심리정치>를 통해 이런 공통의 정서, 혹은 감정을 공유하는 계급적 연대가 신자유주의 사회에 있어서는 더 이상 유의미한 감정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즉, 생산, 그리고 소비의 한계에 봉착한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로 돌입하면서, 우리 사회에 모든 연속적이고 공통화된 그 관계, 정서들을 해체한다. 그리고 대신 그 모든 것들을 '감성화'시킨다. 왜냐하면 생산된 사물을 무한히 소비할 수 있지만, '기분'은 그럴 수 있으니까. 그리하여 오늘날의 소비 자본주의는 '구매를 충동하는 자극을 늘이고 , 더 많은 욕구를 생성하기 위해 기분을 동원'한다. 인간의 인격 전체가 생산 과정 속에 빠져든다. 그리고 그것을 '취향'이라 이름짓는다. 



타인의 취향? 아니 확장판 '나 혼자 산다'
11월 11일 첫 선을 보인 jtbc의 새 예능 <타인의 취향>은 바로 이 신자유주의 사회의 이른바 '취향'을 타겟으로 한다. 프로그램은 현생 인류의 진화가 2015년에 이르러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를 거쳐 이제 '취향에 따라 즐기고, 취향에 따라 소비하는 신인류' '호모 테이스트쿠스'에 이르렀음을 지적하고, 그 '취향'의 인류를 다루겠다는 취지를 내보인다. 그에 따라 유세윤, 잭슨, 장진, 유병재, 스테파니 리 등 출연진들을 시간 별로 따라다니며 그들, '타인의 취향'을 보여주겠다고 한다. 

그에 따라 프로그램은 유병재의 느지막한 아침에서 부터 유세윤의 시끌벅적한 밤까지 출연자들의 하루를 바삐 따라 다닌다. '취향'에 타겟을 맞춘 카메라는 유병재와 그의 동거인이자 매니저의 취향 차이로 삐그덕거리는 매 끼니의 식사를 다루고, 아이돌 잭슨의 '건강한 삶에 홀릭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늘씬한 모델 스테파니의 계란 후라이 두 개로도 모자란 반전 식탐이나, 노래방 앱에 빠져든 신인류적 모습도 빠뜨리지 않는다. 바삐 출연자들을 따라다니던 카메라는 늦은 밤 작업실에 모여 3년만에 UV로 새 앨범을 준비하는 유세윤과 뮤지로 끝을 맺는다. 

<타인의 취향>은 호모 테이스티쿠스라며 현생 인류의 진화를 정의내렸지만, 막상 방영된 첫 방송을 보면 의문이 제기된다. 서로의 식성이 달라 아웅다웅하는 것, 그리고 모델임에도 푸짐한 식사를 하는 것, 아이돌이 아름다운 몸을 가지기 위해 운동으로 시간을 보내고, '오가닉'에 빠져드는 것, 이게 취향일까? 아니 그걸 취향이라면 취향일 수 있는데, 과연 수요일 밤 11시 한 시간에 걸쳐 이들의 이 '이른바 취향'이라는 걸 볼 가치가 있을까? 싶은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방송은 '취향'이라는 이름으로 하루 종일 출연자들이 놀고 먹는 것을 그려낸다. 방송인 유병재가 방송에서 보여준 모습이라고는 아침 밥 먹고, 스텝들이 바삐 일하건 말건 늘어지게 자고, 그러다 다시 저녁을 먹기 위해 맛집을 찾아가는 것이다. 아이돌 잭슨 역시 마찬가지다. 일어나 운동하고, 비타민 먹고, 무료하게 홈쇼핑을 보고, 스테파니 리 역시 한가롭게 공원을 달리고, 쇼핑을 하고, 홀로 노래 부르며 즐긴다. 방송 그 어디에도 바삐 일하는 사람은 없다. 그들은 '취향'이란 이름 하에, 2015년 대한민국에서 쉬이 찾아보기 힘든 여유로운 삶을 즐긴다. 마치 대한민국이지만, 대한민국 그 어느 곳이 아닌 듯이. SNS로 촌철살인을 날리는 예리한 유병재는 <타인의 취향>에서 그저 찌질하고 매니저에게 은근히 갑질하는 연예인에 불과해 보일 뿐이다. 

그렇게 하루 종일 출연자들이 '놀고 먹는' 것을 보여주던 방송은 늦은 밤이 되어서야, 뮤지와 유세윤의 작업실에 이르러, 비로소 '취향'의 맛을 비로소 보여준다. 21살 무렵 만나 음악적 동지가 된 두 사람, 자신들이 자라면서 들어왔더 음악과, 음악적 취향이 너무도 흡사하여 곧, 음악적 동지가 된 두 사람이, 모처럼 UV로 만나 작업을 해가는 모습, 남들은 그들의 음악을 '웃기는 음악'이라 하지만, 정작 두 사람은 '재밌는' 음악이라, 재밌어서 하는 음악이라 아쉬워하는 지점에서, '취향'은 어울리는 정의를 마주한다. 



2015년 취향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1999년에 만들어진 프랑스 아네스 자루이 감독의 <타인의 취향>은 결국 '취향'이라고 칭해지는 것들의 부질없음을 다룬다. 오히려 그 '취향'이란 허상을 거둬버리고 나면 그 속에는 프렌치 코스 요리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는 인간 관계들의 군상이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취향'으로 부터 시작한 영화는 그 겉치레 안에 담겨있는 인간의 본 모습을 고찰하고자 하였다. 그렇다면, 새로 시작한 JTBC의 <타인의 취향>은 무엇을 보여주고자 한 것일까? 그저 2015년을 살아간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의 다른 식습관, 다른 취미 생활, 그리고 결국은 다른 소비 생활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 시대의 '취향'을 설명할 수 있다 생각했을까? 그런 '취향'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없는 <타인의 취향>은 결국 또 다른 버전의 <나혼자 산다>가 되어버린다. 그렇게 되어버리면 언제나 아류가 원조를 따를 수 없듯이, <타인의 취향>은 그저 그런 또 하나의 리얼리티 밀착 카메라로 남아 버린다. 

폐지된 <연쇄 쇼핑 가족>에 이어 <타인의 취향>까지 JTBC의 예능은 2015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적 모습을 예능에 담아내려 애쓴다. 하지만, 결국 현생 인류의 소비 보고서로 시작하여, '소비'만 남았던 <연쇄 쇼핑 가족>처럼, '취향'을 담으려 했지만, '역시나 소비적 삶'만 잔뜩 담은 <타인의 취향> 역시 표면적 현생 인류의 삶을 그려내는데 집중한다면 이 또한 <연쇄 쇼핑 가족>의 전철을 밟지 말란 법이 없다. 웃기자고 만드는 예능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대 동시대인들의 웃음에 대한 철학이 없는 예능은 부박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5. 11. 12. 1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