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일반인과 군인이라는 세상의 커다란 이분법이 존재하듯이, 군대는 사람사는 세상과 동떨어진 성역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바로 그 성역을 콩트의 소재로 끌고와, 이른바 예능의 소재로서의 '군대 붐'을 일으킨 주역 김기호 작가가, 여름에 걸맞는 16부작 판타지 옴니버스 시리즈를 들고 돌아왔다.

 

 

물론 판타지 시리즈가 처음은 아니다.

이미 미국의 트와일라잇 존이라던가, 일본의 기묘한 이야기, 그리고 영국의 블랙미러처럼, 드라마 장르에서는 분명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영역이다. 하지만, 아이디어 고갈과 함께 한국형 공포 영화가 점차 그 존재감을 빛을 일어가듯, 언제부터인가 여름이면 텔레비젼에서 한 자리씩 차지하던 이른바 '납량 특집' 시리즈 역시 어느샌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그도 그렇듯이, 환상 거탑이 내걸고 있듯이, 미스터리, 스릴러, sf, 심지어 만화적 상상력까지 곁들인 영역들은 시청률에 목숨을 거는 공중파에서는 감히 시도해 보기 힘든 이야기들이니까. 8월에 귀신을 보는 여자와 그 곁을 지키는 남자의 이야기라는 <주군의 태양>이 선보이기는 하지만, 그 작가진이 로맨틱 코미디로 유명한 홍미란 자매 작가인 한에서, 이 드라마 역시 애정물에 방점을 찍을 가능성이 높고, 이 드라마를 기대하는 사람들도 그런 의미가 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tvn의 판티컬 드라마 <환상 거탑>은 여름이라면 한번쯤은 보아줄 만한 아니 여름이 아니라도, 푸른 거탑 못지 않은 드라마의 영역에서 기대해 볼 만한 시도이다.

 

 

 

옵니버스 식으로 엮어진 첫 회, 두 가지의 에피소드가 등장했다.

첫 화는 [인권 존중] 17명의 여자를 파렴치하게 죽인 살인마를 무기 징역 기간을 다룬 것으로, 마지막 판결이 내려질 때가지 일말의 반성이 없는 살인마가 죽여달라고 고통스레 외치는 그 순간까지의 시간을 다룬다. 다음 2화는 [타임 은행], 만년 지각생인 김상진 대리가 타임 은행을 통해 개과천선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천사같은 여자 친구의 목숨이 경각에 달리자, 자신의 목숨을 놓고 딜을 할 수 밖에 없게되는 이야이이다.

물론 [인권 존중]과 [타임 은행]의 이야기들이 매우 새롭지는 않다. 더더구나, 이미 외국의 판타지 시리즈나 그 비슷한 류의 영화, 심지어, [타임은행]의 엔딩은 일찌기 사랑 영화 <이프 온리>를 떠오르게 조차 하는 기시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일찌기 셰익스피어 이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냉소적인 정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조합의 판타지를 즐기는 맛은 이런 류의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꽤 씹고 즐길만한 꺼리가 되었다.

더구나 한 회에 한 에피소드가 아니라, 20여분만에 기승전결 스토리를 진행시켜 버리고, 분명한 메시지조차 전달하는 쌈박함은 매력적이다. 꼭 같은 장르는 아니지만, 한동안 주말 저녁을 달구었던 김국진, 김진수의 전성기 시절, <테마 게임>을 떠올리게 조차 한다.

 

 

첫 회, 판디컬 드라마 <환상 거탑>이 더욱더 볼 만했던 것은 모처럼 제 몸에 맡는 역할을 맡아 존재감을 발휘했던 중견 배우, 강성진, 남성진, 조달환의 열연이었다.

최근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인기를 끄는 이유 중에 악역 정웅진의 존재감을 손에 꼽는 사람들이 꽤 되듯이, 드라마에서 비중있는 조연의 존재란 이제 드라마의 성공에 결정적 요소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실제 많은 배우들이 좋은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어울리는 배역을 맡지 못한 채 세월을 타고 흘러간다.

조달환이라는 배우도 연기를 몇 년 째 제대로 하지 못하다가 엉뚱하게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인기를 얻게 된 경우이다. [인권 존중]의 남성진 역시, 그저 간수로 슬쩍슬쩍 등장하기만 해도, 얼음장 같은 그의 프로필에 호화로운 독방이 그저 호화롭지만은 않을 거란 '스포'를 느끼게 만든다. 일찌기 '베스트 셀러 극장' 등을 통해 보여주었던 그의 섬뜩한 연기가 모처럼 제 자리를 만난 거 같아 반갑기 까지 하다. 중견 배우들이 모처럼 자기 몫의 자리를 찾은 거 같아, <환상 거탑>이 또 다른 이유로 반갑다.

 

 

<푸른 거탑>에 이어, <환상 거탑>까지, 남들이 시도하지 않은 좋은 아이디어 하나로 밀어부친 김기호 작가의 거탑 시리즈가 부디 <환상 거탑>에서도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바란다. 그래야 또 다른 '거탑' 시리즈를 볼 수 있을 테니까

by meditator 2013. 7. 18.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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