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한자로 하면, 休暇, 

여기서 休는 쉴 휴자로, 쉬다. 작업이나 일을 그만두다 라는 뜻인데, 재밌는 것은 거기에 그만두라는 명령의 취지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참 적절하다, 강제적으로 하던 일을 그만두고 쉬라. 暇는 겨를, 짬을 의미한다. 느긋하게, 여유있게 지내는 것이다. 이 의미들을 모아서 다시 해석해 보면, 무조건 강제적으로라도 일을 쉬고, 느긋하게 지내는 것, 그게 휴가다. 그런데 우리의 휴가는 어떨까? 
그간 한 여름에 '물없이 살기', '전기없이 살기' 등 가혹한 미션을 달려왔던 <인간의 조건>이 이번엔 제대로 쉬어가 보기로 한다. 바로, <휴가의 조건>, 여섯 남자에게 미션으로 휴가를 주고, 그들이 '휴가'를 누리는 모습을 통해 우리네 삶의 휴가 문화를 짚어보고 있는 중이다. 


며칠 전 <한겨레 신문>에는 휴가를 대하는 부부의 서로 다른 자세로 인한 갈등의 에피소드가 올라왔었다. 휴가라면 어디를 가서 아침 댓바람부터 부지런히 그곳의 볼 거리를 보고, 이름난 먹거리도 빠짐없이 먹어야 하는 아내, 청정 지역으로 휴가를 다녀오라는 미션에, 동트기도 전에 일어나 한라산을 종주하고, 이름난 해변을 다니고, 맛집도 빠짐없이 탐방한 정태호, 허경환의 스타일이 그것이다. 
반면, 남편은 그냥 좀 어디를 가더라도, 느긋하게 쉬다 오면 안되냐는 주의다. <인간의 조건>에서 보자면 김준현의 입장이다. 잘 먹고, 잘 쉬는게 남는 거라는 식이다. 언제나 어떤 미션에도 여유로운 자세를 견지해오던 김준현은 이번에도, 휴가를 가지 못해(?) 초조해 하는 김준호에게 집에서도 편하게 즐기는 방법을 전파하고자 애쓴다. 
이렇듯 휴가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은 겨우 결혼 3년차의 부부를 냉정과 부부싸움으로 몰라갈 정도로 성격이나 취향으로 몰아붙이기엔 입장의 차이가 확연한 노선들이다.  그리고 <인간의 조건>은 휴가에 대해 다른 양상을 보이는 여섯 남자들의 모습을 통해  양립하기 힘든 '휴가'의 다양한 면들을 고찰한다. 

"난 어떻게 보내야 할 지 모르겠어. 미션 중에 이번 미션이 제일 힘든 거 같아"
세상에, '휴가의 조건'을 겪고 있는 김준호의 고백이다. 짬짬이 일이 있어 멀리 떠나지 못하는 , 지금까지 줄곧 일을 하느라 휴가다운 휴가를 누려보지 못했던 김준호는 처음 '휴가'를 준다고 했을 때 좋아했던 것도 잠시, 점점 이른바 '멘붕'에 빠져간다. 여행을 가는 것 말고는 도대체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 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놀아본 놈이 논다'는 속어가 떠오르는 지점이다. 그런 그의 모습은 지금까지 많은 미션을 받고 미션 중에 어려움을 겪던 그의 모습과 달리 묘하게 애잔하다. 그 이유는 그런 그의 모습이, 휴가라고 하면 죽자고 가족들 데리고 이름난 휴양지나 찾아다니며 시간을 보내는 것 외엔 그 어떤 대안도 생각해 보지 않은 바로 지금 전국의 유명 휴양지를 메우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또 다른 모습일 것 같아서이다. 아직까지도 대한민국 사회에서 휴가라 하면, 느긋하게 쉬는 시간이라기보다는, 휴가라는 단어의 본래 의미와 달리, 치뤄야 할  또 하나의 미션같은 경우가 많을 테니까. 김준호처럼 휴가기간에 어딘가를 떠나지 않고 시간을 그저 보낸다는 것에 적응하지 못할 '시간의 노예'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박성호가 사이판에서 만난 한 달짜리 휴가를 보내는 필리핀의 가족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상상도 못할 모습이다. 휴가도 전투적으로 치뤄내야 하는 2013년의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박성호의 놀라움은 그대로 반사된다. 김준호의 혼란과, 박성호의 깨달음을 통해 <인간의 조건>은 슬며시 질문을 던진다. 쉬어간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사진; 스포츠 월드)

휴가에 대한 고찰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늘 그렇듯 김준호의 대척점에는 박성호가 있다. 박성호는 '휴가'가 주어지자, 대뜸, 무조건, 가보고 싶었던 해외 여행을 떠난다. 급작스럽게 주어진 미션인 만큼 당연히 미리 예약 따위는 할 수 없는 상황을 '떠나자!'라는 의지 하나로 극복해 가며 해외로 떠난다. 개 짖는 소리조차 두려움을 느끼게 만드는 이국의 낯선 마을에서 짧은 영어로 방을 얻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박성호의 모습에시청자들은 엄두가 나지 않으면서도 부러운 마음이 절로 든다. 휴가 떠나기 한 달 전부터 예약이다 뭐다에 시다린 사람들은 저게 진짜 휴가다 싶다. 더구나, 아무도 없을 거 같은 해변에 뛰어들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는 모습은, 함께 제주도를 다녀와, 역시 휴가는 친구와 함께 가야 돼라고 말하는 허경환의 입장과는 또 다르게 매혹적이다. 늘 가족들과 함께 떠나는 여행을 숙제처럼 치루는 가장이라면 더더욱 공감이 될. 

'휴가의 조건'의 첫 번째 과제 '청청 지역 돌아보기'는 이렇게 휴가에 대처하는 다양한 모습들을 통해 '쉼'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다. 다음 과제, 해보지 못했던 일 하기를 통해, 그저 쉬는 것 이상의 휴가의 의미를 덧붙일 것이다. 


by meditator 2013. 8. 11. 10:24

'어휴, 덥겠다~'

이번 전기 없이 1주일 살기 미션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저런 말이 튀어나온다.  비만 안오면 사람을 구워먹을 듯이 푹푹 찌는 날씨에, 비오듯 흐르는 땀으로 온몸을 적시며 자전거를 돌려 전기를 만들어 봐야, 불 켜고, 기껏해야 조그만 선풍기 한 대 겨우 돌리는데 그 조그만 선풍기 앞에서, 그게 아니라도 늘 땀을 흘리는 김준현을 비롯한 여섯 남자들의 호구지책은 궁색하다 못해 안쓰럽기 까지 하다. 게다가 전기 없이 살기라고 해서, 그저 불만 안들어오는 줄 알았더니, 냉장고에, 엘리베이터에, 에어컨에, 전기 밥솥에, 역대 최강으로 멤버들을 곤혹스럽게 만든다. 심지어, 자동문은 불가항력이다. 




이제는 '~없이 살기' 미션에 제법 적응한 멤버들은 언제나 그렇듯 전기없이 살 수 있는 여러가지 도구들을 찾아낸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자전거를 타서 전기를 만드는 수동 발전기를 비롯하여, 태양열로 핸드폰을 충전할 수 있는 충전기, 그리고 태양열 충전 가방 까지 '궁즉통'이라고 당장의 전기없는 최악의 상황은 피해간다. 

제작진은 '이열치열'이라고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더운 여름에 전기 없이 살기라는 무모한 미션을 제시했을 것이다. 더울 수록 에어컨 등 전기에 의존도가 높으니까. 미션의 효과도 극명하게 드러날 테니까. 마지막날 멤버들이, 그간 사용한 도구들을 앞에다 쭈욱 늘어놓고 총평을 하듯이, 언제나 그렇듯, '~없이 살기'의 1주일은 역설적으로 그 미션 대상이 얼마나 내 삶에 밀착되어 있는지를 깨닫게 되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전기 없이 살기 1주일의 결론, 전기는 소중하다는 다른 미션의 결과물과는 좀 다른 뉘앙스를 풍긴다. 


처음, 삼무, 핸드폰, 텔레비젼, 컴퓨터를 없이 살기의 경우 처음엔 멤버들이 금단 증상으로 고생은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 수록 오히려 문명의 이기에 노예가 되었던 자신의 삶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자동차 없이 살기 역시 연예인으로서는 무모하다 싶었지만 걷고, 함께 차를 타며 이루어 나가는 잊혀졌던 아날로그한 삶의 잔상을 깨닫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심지어 최근의 물 없이 살기조차, 겨우 20L라는 소량의 물로도 너끈히 살아내는 이제는 '~없이 살기'에 제법 적응한 멤버들의 내공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며,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물을 아끼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런데, 이번 '전기 없이 살기'의 경우, '전기 보안관'을 자처하며 혹은 '빛돌이' 분장까지 감수하며 캠페인을 벌인 다양한 전기를 아껴쓰는 방법들도 유의미하긴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보다는 '전기가 없으면 안되겠구나!'란 뼈저린 깨달음이 좀 더 앞선 시간이 돼버렸다. 여섯 멤버들은 코요테의 노래에 맞춰 각각의 개인기까지 얹어 율동과 노래를 하며 즐겁게 자전거 발전기를 돌리려 애썼지만, 마지막 날 김준현이 몇 번 목에까지 울컥 차올랐다는 고백이 전혀 이물감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전기 없이 살기 1주일은 전기 의존의 불가항력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시간처럼 보였다. 그것은 아마도 가장 결정적으로는 정말로 겨루어 볼 만했던 다른 미션과 달리 '전기'라는 존재가 우리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조건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효과의 극대화를 위해 더운 여름날 너무 무모하게 밀어붙인 제작진의 야심(?) 도 있지 않을까 싶다. 


(사진; TV리포트)


실제 멤버들이 찾아간 친환경 마을처럼, 여러 곳에서 '전기 없는' 생활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생활이, 멤버들이 찾아간 그 마을처럼 음식 하나를 하려면 우선 아궁이부터 만들고, 장작부터 패야 하는 원시적 상황일까? 전기가 없이도 살아낼 수 있는 여건을 보여주려면 조금 더 현실에 와닿을 수 있는 여건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멤버들이 일시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자전거 발전기를 상시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경우나, 태양열 조리기처럼, 전기 없이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도구 등을 좀 더 보여주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더운 여름에, 무지막지하게 땔감부터 해대며 원초적인 방식으로 하루종일을 투자해 요리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안타깝게도 전해주려는 메시지의 왜곡을 낳을 우려가 큰 것이다. 


또 하나, 최근 <인간의 조건>에서 여러가지 캠페인 성 미션을 시도하다 보니, 그와 관련된 장소를 찾아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전기 없이 살기' 미션의 경우는 그 찾아가는 장소가 좀 잘못 선정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전기 없이 살기'를 한다면 물론 소중한 전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 가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기를 없이, 혹은 전기에 덜 의존을 하고 살려는 시도들을 좀 더 보여주어야 하지 않았을까? 즉, 전기가 만들어지는 발전소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대체 에너지를 활용하는 사례들을 좀 더 보여주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태양열 난방 시스템을 마련한 광명시라던가, 우리나라는 아니지만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걸음 에너지를 모아 전기를 만드는 외국 사례 등, 대체 에너지에 대한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는 노력이 아쉬웠다. 그토록 멤버들을 고생시킨 더위의 경우도, 실제 일본에서는 지열을 이용한 냉난방을 하는 걸 보면, 찾아보기만 하면, 무식하게 견디는 게 능사가 아닌 사례는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실제 태양의 도시로 알려진 독일의 프라이브르크의 경우를 보면, 도시 전체가 태양열을 통해 움직이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전기가 없이 견디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전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관건인 것이다. 


<인간의 조건>이 제시하는 미션은 두 얼굴을 가진다. 한 면에서는 문명의 수단인 미션 대상을 '~없이 살기'의 1주일을 통해, 완전한 독립은 아니더라도, 최대한 덜 의존적인 삶에 대한 여지를 고려해 볼 수 있도록 하는 것과, 또 한 가지는 미션 대상의 부재를 통해, 그 소중함을 깨닫고 그것을 좀 더 아끼도록 노력하자는 이중적 의미를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번 전기 없이 살기의 1주일은 어쩐지, 첫번 째 목적에서, 더운 날씨로 인해, 백기를 들고 항복한 느낌이 나는 것이다. 다음에, 조건이 극악하지 않을 때 차분하게, 대체 에너지에 대한 고민을 좀 더 해봐가면서 보는 사람도, 저 정도면 나도 해볼만 한데 하는, 여유로운 전기 없는 1주일의 재시도는 어떨까?  '전기없는'이라는 말만 들어도 멤버들이 기함을 하고 도망가 버릴까? 






by meditator 2013. 7. 28. 10:07

멤버들의 집을 찾아간 제작진은 다짜고짜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하는 모습에서부터 카메라를 들이댄다. 샤워기를 틀어놓고 이를 닦는 박성호, 알뜰하게 비누칠을 하는 동안은 샤워기를 잠근 김준현, 옷을 벗고 있다 민망하다 하는데도 들이민 카메라는 집요하게 화장실에서 물을 소비하는 멤버들을 찍어댄다. 그러자, 눈치빠른 김준현이 말한다. "세살 먹은 애도 알겠다. 이번엔 물이지? 물없이 살기지?"

그간 원산지 알고 먹기를 통해 푸짐한 먹방을 즐기고, 친구 찾기를 통해 모처럼 하하호호 친구들과의 여가를 즐겼던 <인간의 조건>이 다시 그 본연의 '~없이 살기' 미션으로 돌아왔다. 그것도 이 더운 여름에, '물없이 살기'

굳이 '물없이 살기' 미션의 당위성을 멤버들이 다 모인 오프닝에서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조차 없었다. 지난 번 '쓰레기 없이 살기' 미션에서 하루를 쫓아다니며 쓰레기를 모아 보여준 것만으로도 '쓰레기 없이 살기' 미션의 당위성이 설명되었듯이, 그저 아침 나절 멤버들의 준비 과정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우리가 물을 얼마나 하염없이 낭비하고 사는가는 여실히 보여주었다. 샤워기를 틀어놓은 채 이를 닦는다든가, 물을 틀어놓고 샴푸 거품을 낸다든가, 얼굴에 비누칠을 한다던가, 그 '물'이란게 내가 쓰면 '줄줄줄' 새어나가는 걸 모르다가도, 남이 아무 생각없이 틀어놓고 쓰는 걸 보면, 몹시도 아까운 요물이다. 그래서 두 말할 필요 없이 <인간의 조건>이 내건 '물없이 살기' 미션엔 이의를 제기할 여지가 없다.

하루에 생활을 하면서 물이 얼마나 필요할까?란 제작진의 질문에, 멤버들은 처음엔 그저 마시는 물만 생각하다가 하나하나 자신들이 소비하는 물을 꼽아보고는 깜짝 놀란다. 역시나 '쓰레기 없이 살기'에서도 그랬듯이 당장에 걸리는 건, 화장실 문제 부터다. 하지만 그것을 뺀다해도, 우리 생활 속에서 물이 줄줄 새고 있다는 걸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각자 필요한 물을 말하라고 했을 때, 김준현이나, 김준호처럼 자신들은 안씻고 버틸 수 있다고 장담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최대한 부풀려 대며 많은 양을 요구한다.

 

(사진; 뉴스엔)

 

하지만 제작진이 제시한 물의 양은 단, 20 L 뿐이다. 이것은 2006년 UN(국제연합)이 발표한 '인간개발보고서'의, 한 사람이 하루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물의 양이다. 그리고 등장한 물통을 보고 멤버들은 경악한다. 겨우 이걸로 하루를 버티라니!

그저 최대한 마시는 걸 줄이면 되겠거니 했던 '물없이 살기' 미션이었지만, 미션 수행에 들어가면서 이 미션이야 말로, 미션의 진검승부 같은 것이라는 걸 멤버들은 깨닫기 시작한다. 우리가 생활 하는 그 모든 곳에 물이 없는 곳이 없으니 말이다.

식당에 들어가 외식을 해도 기본적으로 6L 물이 차감당한다. 거기에 먹는 음식에 따라, 하다못해 동치미나, 음료수를 먹으면 양이 추가되는 건 물론이다. 먹는 건 괜찮겠거니 했는데, 물이 없으면 당장에 밥도 지을 수 없고, 어떤 음식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기발하게 물없는 카레를 해보는데 먹기는 먹지만 뻑뻑하기가 이를 데 없다. 그 뻑뻑함의 갈증을 오이로 달래는 밖에.

먹는 건 약과다. 먹고 나서 설거지도 아끼고 아끼니, 한 통의 물로 해결했다 치지만, 이 더운 여름에, 샤워는 어쩔 것인가, 멤버별로 거품이 안나는 비누 사용하기에서, 물수건으로 닦아내기, 얼굴 씻은 물로 발 닦기 등 기발한 방법들이 동원된다. 그나저나, 세탁은 빼주는 건가? 보고 있는 시청자들 머릿 속에 제 먼저 이런 저런 물이 필요한 곳이 떠오른다.

그러나, 1월부터 시작해서, 5개월 여 달려온 <인간의 조건>은 이제 각자 캐릭터가 구축이 되고, 여섯 개그맨들의 가족같은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어떤 미션을 들이대도 여유롭게 받아칠 수 있는 내공이 생긴 듯 하다.

이 더운 여름에 꾸질꾸질해 질 수 밖에 없는 '물없이 살기'란 미션을 받아들고도, 이젠 여섯 멤버들은 그럴 줄 알았다며 여유를 부린다. 처음, 돈없이 살거나, 쓰레기 없이 살기 때만 해도 어쩔 줄 모르고 우왕좌왕 하던 사람들이, 자연스레 어떤 기발한 방법이 있을까 각자 궁리하느라 바쁘다. 김준호처럼 난 물을 안마셔도 돼, 하면서 버티기 방법을 쓰는 우격다짐 스타일이 있는가 하면, 정태호처럼, 미션의 취지를 생각해 보며, 그저 안쓰는 게 아니라, 쓰되 쓰는 방식을 달리하는 모범 답안형이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분명 이 여름에 '물없이 살기'란 미션은 꽤나 버겁고 지난한 미션임에도 그것을 받아든 여섯 멤버들은 이제 그간의 미션의 내공으로 지혜롭게 모색해 나간다. 물없이 머리 감을 수 있는 샴푸나, 손 세정제에서, 언젠가 1박2일에서 봤던 물없이 만들 수 있느 카레까지 다양한 아이디어가 돌출한다.

그런가 하면, 각자 20L의 물이 주어지자, 대뜸 누가 얼마나 쓰는가에 따라 '왕'을 정하자며 게임을 벌이고는, 미션의 결과를 유쾌한 '왕 놀이'로 마무리 짓는다. 미션이 고난이 아니라, 각자의 방식으로 도전하는 즐거운 게임처럼 변해가는 것이다.

 

(사진; osen)

 

물론 지금도 여전히 진행중이긴 하지만, 이제는 그 맛이 한결 상실된 그 예전 1박2일의 복불복 게임을 보며 느꼈던 묘미를 <인간의 조건> 미션 수행을 통해 맛보게 된다.

처음, <인간의 조건> 멤버들이 '~없이 살기'란 미션을 통해 '공익 광고'같은 모습들을 더 많이 보여주었다면, 5개월 여를 지내면서, 이제는 '예능'에 좀 더 방점을 찍는 재미를 만들어 내는 중이다. 그리고 그건, 이젠 그들이 개그콘서트 무대에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관객석에서 환호가 울려나올 만큼, 그들이 그저 먹기만 해도 정겹고, 어울려 부등켜 안기만 해도 미소가 지어지는 5개월의 숙성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돈없이 살기' 등 ~없이 살기 미션을 통해, 난감한 미션을 수행하는 내공이 생겼다면, '원산지 알고 먹기'나, '친구 찾기'를 통해 멤버들이 합을 이뤄내는 시너지에 대한 확인을 한 듯하다. 그래서, 다시 돌아온 '~없이 살기' 미션은 분명 목적은 '공익'이되, 그 내용은 한결 여유롭고, 풍성한 '예능'이다.

by meditator 2013. 6. 16. 09:52

친구 찾기 미션의 3주차가 끝났다.

꼬박 미션 수행을 향해 달리던 4주차의 다른 미션과 달리, 3주 만에 막을 내린 '친구 찾기'는 그간 인간다운 삶을 향해 고되게 달려온 <인간의 조건> 팀에게는 장거리를 달려 가도, 기억을 더듬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묻고 또 되묻기를 반복해도 그 끝에는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친구가 있었기에 쉼표와도 같은 휴식 시간 같았다.

 

미션의 마지막 날, 과연 친구가 무엇일까? 란 제작진의 물음에,

'친구는 그저 친구'라는 선문답같은 대답에서부터,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가족'같은 관계라는 매력적인 정의까지 다양한 대답이 등장했다. 그 어떤 대답을 했건, 그들에게 주어진1주일간 <인간의 조건> 멤버들은 '친한' 친구를 찾아다니며, 혹은 친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노력하며. 심지어는 멤버 사이의 인기 투표 비슷한 친구 투표를 하면서, 과연 친구가 무엇일까를 되짚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동선을 쫓아가며 시청자들 역시 1년 가야 한번 볼까 말까한 하지만 만나면 내 흑역사까지 고스란히 알고 있어 더 이상 구구한 설명이 필요없는 친구에서 부터 사회 생활 속에서 엇갈리는 '친구'들까지 다양한 친구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도 되었을 것이다.

 

(사진; OSEN)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촬영 분량이 나오지 않은 탓이었는지, 아니면 결국 찍어놓고 보니, 친구를 만나서 하하호호 반갑다 하는 것 이상의 차별성을 둘 수 없는 내용 탓이었는지, 단지 3주차로 촉박하게 마무리된 '친구 찾기' 미션이 친구란 화두에 대해 조금 더 농밀하게 마무리하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한편에선 남는다.

이제는 얼굴조차 서로 가물가물 하지만 함께 유치원을 다녔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눈물이 핑 돌던 박성호의 꼬꼬마 어린 시절 친구나, 오해로 인해 3년간 연락조차 하지 않았지만 역시나 만나는 순간, 그 모든 것이 그저 아집이었음을 확인시켜주었던 양상국의 친구 찾기는 이런 게 '친구'라는 정의를 내려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렇게 머리가 굳기 이전의 어린 시절 친구들의 막연한 우정은 향수와도 같은 묘한 정취를 불러 일으켰지만, 그 못지 않게 인상깊었던 것은, 김준호가 친구라고 하자, 대뜸 <개그콘서트>를 함께 해온 김대희를 든 것이라던가, 그와 반대로 그를 따라 방송국까지 옮겼지만 잘 되지 않아서 한때는 원망하기도 했던, 그러나 이제 나이가 드니 그 상황이 이해가 된다는 심현섭을 친구로 찾아가는 모습이 어쩌면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겐 지금 혹은 한 때 내 옆에 있거나, 있었지만 정작 '친구'로써 인식하지 못했던 '친구'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래서 상투적으로 어린 시절 친구를 만나 그들과 즐겁게 추억을 되짚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유재석이나 신동엽처럼 친구라고 우기기엔 낯 간지러운 선배들을 찾아가 입술 도장을 찍어 달라고 하는 대신에, 사회 생활을 하면서 함께 어려움을 겪었던 시간들을 조금 더 깊게 다루어 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해피 투게더>에 함께 출연하기까지 했던 박성호의 동기, 박준형 등을 찾아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나쁘지 않았겠다. 또한 이제는 <개그콘서트>의 맏형이거나, 중진에 가까운 멤버들이, 정작 자신이 몸담고 있는 <개그 콘서트> 팀을 좀 더 다양하게 적극적으로 이 프로그램에서 친구로 소개하지 못한 것도 아쉽다.

가능성이 불투명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무례가 될 수도 있는 이벤트 성 송강호, 최민식, 이나영, 김연아 만나기가 아니라, 지금 현재 멤버들이 코너를 함께 하고 있는, 혹은 한때 했던 <개그콘서트>의 멤버들을 찾아다니며 추억을 나누었다면 조금 더 풍성하고 친근한 내용들이 나왔을 텐데, 그렇다면 <개그콘서트>도 좋고, <인간의 조건>도 좋은 '윈윈 전략'이 되었을 텐데, 그런 면에서 언제부터인가, 명망인을 목말라 하는 <인간의 조건>의 얄팍한 근시안이 아쉽다.

정성호가, 양상국이 처음 <인간의 조건>을 시작할 때만 해도, 그저 좀 아는 개그맨이었듯이, <인간의 조건> 팀의 생각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하게 활용 가능한 인재 풀이 바로 옆에 있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내 아이도, 내 부인도 친구가 될 수 있는 다양한 '친구'에 대한 정의처럼, '친구 찾기'라는 주제를 통해 얼마든지 문어발 식으로 다앙하고 깊은 재미를 추구할 수 있었는데 제작진 자체가 주제에 대해 '쉬어가기'처럼 편하게 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조차 들었다.

 

(사진; OSEN)

 

하지만, '친구 찾기'란 주제는 <인간의 조건>에게 꽤나 중요한 의미를 지닌 미션이었다. 과연 '~없이 살기'란 전투적 미션이 아니라도 그 속에서 인간다운 성취를 이뤄낼 수 있는가의 관건이 된 미션이었다. 그런 면에서, 객관적으로 <인간의 조건>에 주어진 상황과, 제작진이 미션을 대하는 온도에 있어서 조금 차이가 나는 듯 하다.

 

또 하나 우려스러운 것은, 이제 <인간의 조건> 멤버들이 각각 캐럭터를 구축하고, 그들이 함께 '먹방'을 하거나, '꽁트'를 하는 상황에서 오는 안정적 호의가 이뤄진 상황에서, 가끔은 안일하게 거기에 기대어 가려는 듯한 인상을 줄 때가 있다.

예전 <남자의 자격>에서 이경규는 김준호가 '꽁트'식으로 하는 것을 질색을 했다. 아마도 그 이유는 프로그램의 흐름을 깨거나, 오히려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 우려가 있기 때무이었을 것이다. <인간의 조건> 멤버들은 ,<개그콘서트>를 통해 단련되어 그 누구보다도 '꽁트'에 뒤질 자원들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본말이 전도되는 상황이 된다면, 금방 변덕스런 시청자들은 외면할 것이다. '먹방'도 마찬가지다.

 

'친구 찾기' 미션이 그랬다. 시청자들은 언제나 그랬듯, 이 프로그램이 친구란 주제를 통해 무언가 더 말하리라 기대하고 있는데, 정작 우리도 친구지 하면서 예의 꽁트와 먹방을 하며 즐기는 걸 보면서 갸웃거리게 되는 것이다. 쉼표 하나도 만만치 않다.

by meditator 2013. 6. 9. 10:19

<인간의 조건>의 외연은 확장 중이다.

처음에 '핸드폰, 텔레비젼, 컴퓨터 없이 살기'로 시작해서, '자동차없이 살기', '돈없이 살기' 등의 ~없이 살기로 시작된 미션은 '산지 음식만 먹고 살기'를 넘어 '진짜 친구 찾기'란 미션으로 또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처음 ~없이 살기란 부정적 미션을 앞에 내걸은 <인간의 조건>이 그로 인해 캠페인성 성격은 분명하게 드러냈지만, 제한된 미션 영역으로 인해 프로그램의 운명 자체가 시한부가 아니겠느냐는 중론이 일었을 때, <인간의 조건>은 과감히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미션 '산지 음식만 먹고 살기'로 '건강한 먹방'의 신세계를 도출해 냈다.

즉, 그저 맛있게 먹어대는 것이 '먹방'이 아니라 - 도무지 어디서 만들어 졌는지, 어떤 원료로 만들어 졌는지 정체 불명의 음식이 아니라, 믿고 먹을 수 있는 재료로 만들어 진 것이 진짜 맛있게 먹기 위한 - 전제 조건이 따라야 한다는 것으로 그저 서로 먹어대기 급급했던 '먹방' 경쟁에 일침을 놓았달까.

이런 산지 음식만으로 먹고 살기를 통한 건강한 먹방을 만들어 냄으로써 인간답게 살기 위한 조건이, <인간의 조건>이란 프로그램이 꼭 ~없이 살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내었었다.

그리고 거기서 얻은 자신감으로 한 발 더 나아가, 어쩌면 어느 프로그래에선가 보았던 것같은 상투적인 듯한, 하지만 사실은 막연하기도 한 '진짜 친구 찾기'란 미션이 부여되었다.

 

 

(사진; 매일경제)

 

그런데 지금까지 그래왔듯 <인간의 조건>의 친구 찾기 미션이 다른 프로그램에서 꽤나 보았던 그 친구찾기인데도 색다른 기대를 하게 되는 것은 지금까지 늘 <인간의 조건>이란 프로그램이 주어진 미션의 영역을 넘어 늘 진지하게 '인간답게 살아가는 삶'에 대한 질문에 대한 긴장을 늦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 핸드폰, 텔레비젼, 컴퓨터 없이 살기란 미션에서 부터 그랬다. 문명의 이기를 없앤 불편함도 불편함이었지만, 오히려 그를 통해 문명에 길들여진 삶을 들여다 보는 반사 효과가 더 컸었다. 그리고 거기서 시작된 '아날로그적 삶'의 온기는 '자동차 없이 살기'를 통해 더더욱 확산되어 갔다.

문명의 이기가 없어진 순간 삶은 불편해 지지만 예상 외로 소박해진 삶 속에서 잃어가고 있던 인간 본래의 모습을 잠시나마 되찾게 되는 시간을 함께 누리게 된 것이다. 사람들이 오고가는 거리를 걷다 문득 눈물을 흘리던 김준현의 모습을 보는 시청자들조차 낯설지 않게.

'돈없이 살기' 역시 마찬가지다. 어찌보면 자신의 직업을 통해 먹고 사는 방법을 빼앗는 어거지 미션 같아 보였지만, 그 과정을 통해 힘들고 지겨워졌을 자신들의 직업이 얼마나 많은 것을 제공해 주는가를 역으로 깨닫는 시간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100인의 입술 도장을 받아내야 하는 우격다짐 친구찾기가 또 어떤 깨달음을 줄까 자연스레 궁금해 지는 것이다.

 

(사진; tv리포트)

 

그런데 벌써'진짜 친구 찾기'란 미션이 주어진 1회 만으로도 시청자들에게 '친구'에 대한 많은 물음표를 던진다.

진짜 친구를 찾으라니까, 진짜 친구란 어디까지가 진짜일까 란 질문을 꼼꼼한 박성호는 스스로에게 던진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일생을 쭈욱 적어보고, 시기별로 진짜 친구들의 목록을 작성해 본다. 그에 반해 친구가 진~짜 많다는 김준호는 명쾌하게, 진~짜 친한 친구, 친한 친구, 그저 친구의 영역이 분류되어 있다. 이렇게 멤버 별로 진짜 친구에 대해 다르게 접근해 가는 모습 자체 만으로도 '친구'에 대한 화두는 충분히 제시되기 시작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친구를 찾으라니까 다들 어릴 적 친구를 찾느라 연연한다. 심지어 허경환은 멤버들은 사회 생활로 만난 것이니 친구가 아니라는 뉘앙스까지 풍긴다. 그러면서, 박성호가 누굴 찾지 하니까 이구동성으로 그의 매니저 '준석'을 불러댄다. 옆사람의 속사정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친구를 찾으라니까 일년 가야 한번 볼까말까한 사람들과 연락하느라 쩔쩔매는 아이러니라니!

물론 이 미션을 통해 그간 연락이 안되는 추억의 친구도 만나게 되고, 소원했던 친구와의 오해도 풀어가겠지만, 언제나 그랬듯 어쩌면 이번 친구 찾기의 여정도 저 멀리 돌고 돌아, 결국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깨닫는 소박한 삶의 철학으로 귀결될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건 착각일까?

by meditator 2013. 5. 26. 10:22

전에도 지적했지만 <인간의 조건>은 '~없이 살기'를 하는 미션 프로그램이 아니다. 하지만 그간 핸드폰, 자동차, 돈 등을 없이 사는 미션이 부각되면서, <인간의 조건>을 찾아가는 본연의 과제 보다도, 미션 수행을 위한 모습들이 위주가 되는 '본말전도'의 상황이 종종 빚어지기도 했었다. 또한, '~없이 살기'란 미션 소재 자체의 한계도 분명했었고.

그래서 이제 <인간의 조건>은 '~없이 살기'를 넘어 '~하기' 도전에 나섰다. 그 첫 과제는 바로 '원산지 알고 먹기' 하지만, ~없이 살기나, '~하기'나,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인간답게 살기 위한 미션이 무모하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부정적 과제를 넘어 긍정의 열매를 먹어서일까? '원산지 알고 먹기' 첫 방송은 생각 외로, 푸짐한 먹거리의 '먹방'이 되었다.

아침을 먹고 오라니까 허겁지겁 두 그릇을 비운 김준현처럼 늘 무언가가 없어서 쪼달리다 부엌식탁 가득한 8판의 계란처럼, '~없이 살기'에 길들여 졌는지, 그들의 풍족함이 어색하기도 하고, 또 한편에선, 좋은 음식을 감사한 마음으로 먹는 그들과 함께 이렇게 인간의 조건을 찾아갈 수도 있구나하며 푸근해지기도 한다.

 

(사진; 유니온 프레스)

 

웬 뜬금없는 '원산지 알고 먹기'인가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바로 이 '원산지' 문제는 환경 문제, 그 중에서도 먹거리의 환경 문제로 들어갔을 때 가장 원론적으로 부딪치게 되는 심각한 과제이다. 그걸 위해서는 프로그램에서도 언급되고, 멤버들이 식재료를 사러 갈 때마다 옆에 수치로 표기되었던 '푸드 마일리지'를 알아야 한다.

'푸드 마일리지'는 인간의 여행이 아닌, 우리가 먹는 먹거리가 우리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걸린 수송 행로와 거리를 말한다. 사람들이 비행기를 이용해 여행을 많이 다니면 마일리지가 많이 쌓여 여러 혜택을 얻을 수 있다지만, 반대로, 우리의 간사한 입맛과 편의를 위해 먹거리가 수만킬로미터의 여행을 하고나서 얻어지는 건, 그 운송 과정에 씌여지는 엄청난 이동 비용과 거기에 드는 엄청난 에너지원의 소모, 그리고 장기간 보존을 위한 무차별 농약과 보존제의 살포뿐이다.

하지만, 이미 우린 귤이 들어가고 아직 봄철 과일이 무르익지 않는 그 계절의 헛헛한 입맛을 달래기 위해 먹는 캘리포니아산 오렌지와 칠레산 포도에, 무한대로 늘어난 육식에의 갈망을 처리해줄 미국과 호주산 쇠고기에, 이제는 없으면 우리의 밥상이 존립하는 거 자체가 힘들 정도의 중국산 식재료들에 무감각하게 길들여져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을 <인간의 조건>은 찾아들어가 원산지를 아는 음식만 먹는 미션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힘들 것이라며 꾸역꾸역 미리 못먹을까봐 챙겨먹은 아침 식사와 달리, 막상 원산지를 찾아보니 생각 외로 먹을 것들이 많았다. 쌀만 해도 김포, 이천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고, 계란에, 푸성귀는 구하기만 하면 방사하여 낳은 유정난에, 농약을 치지 않은 무농약 유기농 먹거리들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잔뜩 쫄았던 멤버들은 첫 날의 저녁을 장어까지 구워가며 푸짐한 '먹방'을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식탁에서도 알 수 있듯이 원산지를 알아야 먹을 수 있다하니, 제일 먼저 원산지를 알기 힘든 수많은 재료들의 범벅인 라면이 그 식탁에서 탈락했다. 필리핀산 바나나나 즐겨마시던 커피도 우리나라에서는 구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저 가장 원론적인 밥상, 된장, 고추장에 쌈채소에 계란 후라이, 장어 구이의 질박한 요리 방식만이 우선 그들이 만들 수 있는 최선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조금 더 맛난 먹거리를 향해 그들의 나아가면 거리로 환산되는 환경의 문제 푸드 마일리지만의 문제가 아닌 인간의 먹거리가 가진 보다 심오한 문제를 또 조우하게 되리라.

또한 '~없이 살기'에서 '~로 살기'로 버전 업된 <인간의 조건>의 존립 기한 여부도 판가름나지 않을까.

by meditator 2013. 5. 5. 10:34

파일럿 프로그램까지 합쳐서 네 번째 미션이 마무리 되었다. 그런데 오해는 없어야 하겠다. 단기별로 주어지는 과제가 '~없이 살기'라고 해서, <인간의 조건>이 미션 수행 프로그램이 아니다. 즉, ~없이 잘 살아내기가 이 프로그램의 목적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삶의 일부분이 부재한 그 상황 속에서, 모든 것이 너무 풍족하고 충만한 삶 속에서 자신을 잃어가고 있는 현대인들 삶에서 중요한 하나를 빼어봄으로써, 즉 문명의 단식을 통해 본연의 자신을 되돌아 보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조건>인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아예 프로그램 제목을 '~없이 살기'로 지었겠지 왜 '인간의 조건'이라고 했겠는가.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돈없이 살기'의 미션을 부여받은 여섯 명의 개그맨들은 좌충우돌 일주일을 보내며 또 한 번 자신을 되돌아보는 화두로 되돌아 갔다.

 

 

'돈없이 살기'가 '돈벌이 체험하기'로?

체험 마지막 허경환은 말한다. 미션은 '돈없이 살기'인데, 그 미션의 본래의 취지에 천착하지 못한 채 너무 돈벌기에 급급했던 거같다고. 그렇다. 대부분의 멤버들이 지갑을 빼앗기자, 특히나 허경환이 당장 부산을 다녀와야 할 상황에 맞닦뜨리자 허겁지겁 돈을 벌어야 겠다고 나선다. 그리고 그 상황은, 미션이 마무리 될 때까지 상당부분 이어졌다.

그리고 이런 광경들이 섣부르게 '~없이 살기' 미션의 한계를 지적하는 여론으로까지 이어졌다. 당장 기름값이 필요하고, 당장 한 끼를 때워야 하는데 호주머니는 비었을 때 다급해 질 수 밖에 없다. 아니, 그보다는 근본적으로,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가, 엉터리 도인으로 변한 김준호의 '인생은 돈'이라는 한 마디처럼 오직 '돈'을 위해, '돈'의 논리로, '돈'을 벌며 살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그것을 빼앗긴 사람들이 막힌 출구 앞에서 당황해 하며 쩔쩔매는 실험실 생쥐처럼 구는 건 어찌보면 당연지사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인간의 조건>의 미션에는 한편의 이야기처럼 '기승전결'이 있다. 물론 처음에는 가장 의지하던 무언가를 빼앗겨 당황한다. 그리고 그것의 부재를 채우려 쩔쩔매며 다양한 모색을 한다. 하지만 그런 좌충우돌이, 미션 중반을 넘어가면서, 그 무엇인가가 부재한 삶이 익숙해 질 즈음부터는 전혀 다른 각도로 미션을 바라보기 시작하게 되는것이다.

 

510,286.1666666666667

 

돈을 왜 벌어야 하지?

물론 자신의 분야가 아닌 일들을 하면서 개그맨 여섯 명들이 뼈저기게 느낀 것은 그래도 자신들의 직업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이 가장 행복하고 쉽다는 것이었다. 장동건이 와도, 얼굴을 가리면 물건을 팔 수 없을거라는 박성호의 말은, 그 어떤 직업에의 헌사보다 감동적이었다. 쉽게 구할 수 있을 거라던 아르바이트 자리도, 혹은 만만하게 벌 수 있을거라 여겼던 단 돈 만원도, 막상 해보니 그 어떤 것도 쉽지 않다는 걸 여섯 명의 개그맨들은 그리고 그 시간을 함께 했던 시청자들은 공감했을 것이다.

또한 한시적으로 돈을 벌어 자급자족해야 하는 생활은 역설적으로 쳇바퀴처럼 돈의 노예가 되었던 자신의 삶에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왜 애써 돈을 벌어야 하지?' '돈을 벌어서 무엇을 하려는 거지?' 그리고 반성도 해본다. 돈이 없다는 사실에 너무 당황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데 너무 급급했다고.

물론 그 과정에서 일관되게 꼭 돈이 없어도 된다며 꼭 필요한 돈만 벌려고 했던 김준현의 '안빈낙도'형 선택도 아르바이트로 정신없던 여섯 명의 선택 중 하나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그리고 여유로운 김준현도 결국은 사자 탈을 쓰고 땀 범벅이 될 수 밖에 없듯이 '돈'이 없으면 당장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삶이라는 걸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먹고 사는 걸 때우기만 한다면, 그 다음에 돈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혹은 그 이상 굳이 벌 필요가 있을까? 라는 질문은, '돈'으로 돌아가는 세상의 속도에 휘말린 우리들에게는 많은 시사점을 남기는 지점이다. 그래서, 애써 돈을 벌어 멤버들을 위한 만찬을 즐겁게 차리고, 생일 케잌과 선물을 사는 마지막의 결론은, 어찌 보면 미담을 위한 상투적 해피엔딩일수 있지만, 우리가 돈을 쫒는 가장 근원적인 이유를 설명해주는 시간이기도 하다.

 

정규직, 비정규직의 차별이 고착화되어 그 문제가 사회적으로 곪아가고 있는 이즈음, '돈없이 살기'란 미션을 통해 '왜 돈을 벌어야 하지' 따위의 질문을 던지는 자체가 너무 낭만적이거나, 사치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건강한 의식을 담보하지 않은 사회 성원에게선, 제도의 변화나, 사회의 개혁 자체가 아예 꿈도 꿔볼 수 조차 없으니, 낭만적이라도, 때론 무엇을 위해 돈을 버나?라는 원론적 질문 정도는 한번쯤 던져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게 너무 소박해 보여도 <인간의 조건>의 묘미이다.

by meditator 2013. 4. 28. 09:48

<1박2일>, <인간의 조건>, <나 혼자 산다>, <진짜 사나이>, <무한도전> 이들 프로그램의 공통점은? 맞다. 바로 남자들만의 예능이다. <<런닝맨>과 새로 시작하는 강호동의 예능 <맨발의 친구들>은 여성 멤버가 있긴 하지만 프로그램 내내 종횡무진 달려야 산다던가, 외국에 나가 무일푼으로 그 나라 사람처럼 생활해야 하는 포맷은 여성을 포함한다지만 기본적인 흐름에 있어서는 남성적이다. <남자의 자격>이 101가지의 미션을 다하지 못하고 역사의 한 장이 되어 사라진 것을 아쉬워 한 게 엊그제 같은데, 오히려, 이 프로그램에서 다하지 못한 군대 체험하기, 혼자 생활하기 등의 미션들은 분화되어, 여러 프로그램의 주제가 되어 각개약진 중이다.

 

1세대 예능; '북치고 장구치고'

종영한 <남자의 자격>도 그렇고, 건재한 <무한도전>도 그렇고, 프로그램의 관건은 어떤 미션이 주어지는가에 달려 있다.

한때 <남자의 자격>이 합창 미션을 통해 멤버들의 수장 이경규가 연예대상을 다시 거머쥘 수 있었던 것처럼, 미션에 따라 프로그램의 부침이 오고간다. 실제 <남자의 자격>이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 프로그램의 종영을 앞당긴 것도, '화무십일홍'이라고 유효기간이 지나 '합창' 미션에 연연한 탓이 크다.

<무한도전>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무한도전>이란 프로그램에 대해 절대적 충성을 다하는 두터운 팬 층을 지니고 있지만, '돈을 갖고 튀어라' 등의 미션에 따라, '무한도전답다' 라던가, '너무 매니악하다'라던가의 평이 엇갈리며 시청률을 좌지우지 하는 것이다.

크게 보아서 <1박2일>도 장소에 따라 '삶의 현장'급의 체험을 하기도 하고, 맛집 투어가 되기도 하며, 복불복의 살벌한 배틀 현장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1세대 예능들은, 멤버들과 함께 프로그램 틀 안에서 무한변주를 해내는 것이 프로그램의 묘미였다. 또한 그러기 위해서는, '미션'을 위한 '미션' 그 자체가 중요시되었던 것이다.

 

인간의 조건

 

2세대 예능; 하나만 잘 하자

하지만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인간의 조건>이나, <나 혼자 산다>, 그리고 <진짜 사나이>는 마치 앞선 프로그램들의 한 회차 분의 미션을 옮겨 놓은 것처럼 분명한 한계를 지니고 시작한다. 이미 1세대 예능들이 자리를 잡거나, 그 인기를 다하고 사라져가는 시점에서, 일종의 고육지책이랄까. 하지만 분명한 선을 긋고 시작한 예능들은 오히려 그로 이내 색다른 묘미를 자아내며 순항 중이다.

<인간의 조건>은 ~없이 살기란 부정적 상황을 근거로 한다. 하지만, 세번째 미션(파일럿 프로그램까지 합하면 네번 째) 돈 없이 살기를 통해 멤버들은 그 어느때보다도 자신의 삶에 대해 성찰하고, 자신의 직업, 그리고 현대 사회를 이루는 돈이란 것에 대해 고민해 보는 중이다. 미션은 부정적이되, 그 부정을 통해 늘 얻어가는 건 '삶의 긍정'이랄까.

<나 혼자 산다>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의 조건>과 마찬가지로 간보듯 파일럿 프로그램을 시작된 남자들이 혼자 사는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는 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현대 사회의 부정적 산물인 '혼자 살기'를 그저 인간으로써 살아가는 모습의 하나로 긍정한다. 때로는 외롭고 쓸쓸하지만, 악플을 남긴 데프톤의 스타일처럼 이미 거기에 길들여진 모습도 나쁘지 않다며 보여준다.

이제 막 시작한 <진짜 사나이>는 더더욱 역설적이다. 남자들이 가장 꿈꾸기 싫은 바로 그 군대 다시 미션이라니! 이 프로그램이 케이블에서 성황리에 방영되고 있는 <푸른 거탑>의 리얼리티 버전이라는 것에는 변명할 여지가 없겠다. 하지만, 시트콤과 리얼리티는 또 다른 질감을 자아낼 것이니, 이미 1회의 방영만으로도 화제성은 충분했다.

이처럼 2세대 남자들의 예능은, 우리 사회에서 부정적으로 생각되는 상황들을 미션으로 시작한다. <진짜 사나이>의 예후는 아직 진단하기 이르지만, <인간의 조건>과 <나 혼자 산다>는 그 부정적 상황을 통해 오히려 '힐링'을 추구한다. 혼자 살지만 나쁘지 않다라던가, 혼자 살아도 이렇게 잘 지낼 수 있어 라는 걸 보여주며, 고독에 몸부림치는 현대인들을 위로한다. <인간의 조건>은 더욱 성찰적이다. 당신이 목매어 사는 자동차, 돈, 이런 것들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멤버들의 체험을 통해 되묻곤하다. 그리고 그런 것들에 너무 연연하지 않아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며 대안적 삶까지 슬쩍 곁들인다.

이렇게 새롭게 등장한 예능들의 주제가 '힐링'이다보니, 이 프로그램들의 미션은 1세대 예능들처럼 강요적이지 않다. 숨가쁘게 시간 안에 달성해야 할, 때로는 서로를 속고 속이며 도달해야 할 목표는 없다. 오히려 이미 나 혼자 사는 삶의 제한성, 혹은 분기 별로 주어지는 ~없이 살기가 밑에 깔리다 보니, 그 안에서 멤버 각자 혹은, 미션 별 다양함은 풍부해진다. 덕분에 데프콘은 빨간 무개차를 타고 달리며 맘껏 제주도의 먹방을 보여줄 수 있고, 돈을 벌기 위한, 김준호, 박성호 vs. 양상국, 허경환의 다른 선택을 마주치게 되는 것이다.

'~없이 살기'를 가지고 몇 주나 버틸까 싶지만, 매번 색다른 빛깔로 멤버들의 체험은 우리에게 또다른 삶의 질문을 던진다.

 

무지개 명예회원 :: 무지개 아지트에서_1

 

꼭 남자들만의 예능이어야만 할까?

세상은 점점 더 여성이 우위를 차지해 간다고 하지만, 여전히 직장 내에서 직원의 비율과 승진 기회에는 보이지 않는 유리 천장이 존재하는 것처럼, 예능에서의 남초 현상은 여전히 두드러진다. 물론 <인간의 조건>처럼 한 집에서 머무르는 한계적 상황에서 여성 멤버의 존재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 혼자 산다>는 좀 다르게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파업 기간이라는 변칙적 상황에서 편성된 <무한 걸스>의 처참한 시청률과, <남자의 자격>의 뒤를 이은 성격은 다르지만 여성 예능임을 내건 <맘마미아>가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는 건 갈 길이 먼 여성 예능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꼭 '남성'들의 예능이 남성을 이해하는 건 아닐 수도 있겠다. 이젠 '군대가기'까지 주말 황금 시간대로 끌고 들어오는 것을 보면, 이건 오히려, 예능을 통한 '남성'의 이해라기 보다는 '남성'의 소비에 가깝단 생각이 드니까.

by meditator 2013. 4. 21. 09:34

<직장의 신>이란 드라마에 대해 종종 그런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스김이 능력이 있다면서 파지 처리에, 청소에, 커피 타기에 회사 내 허드렛일만 하느냐고. 그러면 어디선가 득달같이 답이 치고 올라온다. 실제로 회사 일 중 그런 허드렛일이 제일 많다거나 혹은 그런 허드렛일이 있어야 회사가 돌아간다거나, 앞으로 차츰 능력을 보일 거라고.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지?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는 하지만 일개 드라마의 여주인공의 능력과 일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처럼 우리 사회 대부분 사람들에겐 늘 더 좋은 일, 아니 더 나은 일, 더 나은 보수 라는 이데올로기는 마치 타고난 '정언 명령'이라도 되는 것처럼 절대적이다. <직장의 신>이라는 드라마가 유쾌하면서도 보다보면 묘하게 가슴이 찡해지는 이유는 아마도 우리가 당연히 믿어 의심치 않는 저 사상에 대해 살금살금 의문을 제기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 가치의 전복을 꿈꾸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직장의 신>만이 아니다. 돈없이 1주일을 살아보겠다던 <인간의 조건>은 돈을 벌기 위해 살아가는 우리 삶에 대해 무수한 의문 부호를 던지며 우리를 생각케 한다. 마치 제대로 된 인간이 되고 싶으면 생각 좀 하고 살아! 하는 것처럼.

 

돈없이 1주일을 살라면서, 자기 직업을 이용해서도 안되고, 가진 돈을 써서도 안된다는 건, 물론 프로그램의 목적을 살리겠다는 취지인 줄은 알지만, 따지고 보면 꽤나 억지인 설정이다. 돈에 대해 논하려고 하면서, 정작 자신의 밥벌이를 금기 사항으로 하다니.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손발 묶고 돈없이 살자는 이 방식이 역설적으로 여섯 남자의 밥벌이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 되었다.

 

 

당장 눈 앞에 닥친 허경환의 부산행을 무사히 완수하기 위해 김준호와 박성호가 옷가지를 들고 홍대 앞 거리에서 노점을 펼치는 등 부산함을 보이는 이면에, 먹을 것만 있다면 꼭 돈을 벌어야 할까 라고 생각하던 김준현, 정태호는 이것저것 시도는 해보았으되, 막상 하루 종일 돈 한 푼을 벌지 못하자, 무기력함과 자괴감까지 느낀다. 그저 돈을 번다고만 생각했었는데, 막상, 더 잘 살기 위해 벌어댔던 돈이라는 막연함 속에는 자신의 직업이라는 또 다른 의미가 숨겨져 있던 것을 깨달아 가는 것이다. 40분만에 옷가지를 땡처리했다고 좋아하던 김준호, 박성호도 그 완판의 이면에 그저 싸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개그맨인 자신들을 봐주었기 때문이란걸 느끼게 되고.

뿐만 아니다. <직장의 신>을 본 사람들의 코멘트 속 사고방식처럼 쉽게 돈을 벌자하니 가장 먼저 떠오른 아르바이트, 세차, 서빙, 놀이공원 도우미를 선택한 박성호나, 양상국 등은 일의 현장 속에서 갈피를 못잡고 서성이거나, 버거워하면서 막상 쉽게 돈 벌어보이는 아르바이트 조차도 쉬운 돈 벌이가 아님을 깨닫는다.

 

'환경'이라던가, '공해'라던가 분명한 지향점을 가진 '자동차없이 1주일 살기'와 '쓰레기 없이 1주일' 살기와 다르게, '돈없이 1주일 살기'의 미션은 무지개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체험의 시간이 되어간다.

6인 6색처럼, 돈을 벌거나, 아니면 돈없이 버티어 보는 시간을 겪으면서 여섯 남자들은 마치 돈에 대한 여섯 가지 철학을 논하듯이, 체험을 통해 갖가지 상념을 풀어내고, 그건 곧 '돈'으로 충만된 우리네 삶을 헤짚는 지점이 된다.

돈이 꼭 있어야 돼? 하지만 당장 먹고 살 수 없는 건 당연지사요, 그걸 넘어, 돈이라는 매개를 통해 자신을 실현해 내는 그 과정이 있다는 걸 우리는 쉽게 놓치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까짓거 돈 몇 푼 버는게 뭐 그리 힘들어 하지만, 막상 닥쳐보면 그간 내가 해오던 일만큼 나에게 돈을 쉽게 혹은 행복하게 벌어주는 것도 없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니. 낄낄대며 좌충우돌 여섯 남자의 해프닝을 바라보다 섬찟섬찟 돈으로 이루어지는 세상, 하지만 어쩌면 돈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세상의 이면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3. 4. 14. 09:28

'3월 18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6층에서 '인간의 조건'의 연출 신미진PD와 출연자 6명(김준현 박성호 허경환 양상국 정태호 김준호)은 환경부로부터 감사패를 수여 받았다. 환경부가 이날 '인간의 조건' 팀에게 감사패를 수여한 것은 1회용품 사용을 지양하는 등 방송을 통해 친환경 생활 방식을 전파한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다'

 

이렇게 환경부의 감사패까지 받은 것처럼 지금까지 <인간의 조건>이 수행해 왔던 미션들은 휴대폰, 텔레비젼, 컴퓨터, 자동차, 쓰레기 등 그 존재만으로도 환경에 대해 상징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과제들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인간의 조건>은 '공익'과 '힐링'이라는 힘든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 없이 살기'라는 부정적 미션은 그 화제성과 파급성으로 인해 단기간 내에 <인간의 조건>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던 프로젝트이지만, 또 그만큼 단 1주일만에 미션 완료, 그리고 횟수로는 4회에 한해 방영되는 내용으로 인해 순환은 빠르지만 소재 고갈의 우려가 예측되는 '뜨거운 감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제 <인간의 조건>은 그간 해왔던 '환경 프로젝트'와 같았던 파일럿을 포함한 3번의 미션을 마무리하고, 새롭게 본격적으로 인간의 조건을 탐색하기 위한 '돈없이 살기'란 프로젝트로 방향을 전환했다.

 

돈없이 산다?

생각해 보면 그 옛날 대동강 물을 팔았다는 김삿갓이 울고 갈 만큼, 마시는 맹물조차 돈을 주고 사먹어야 하는, 돈 없이는 숨조차 쉬기 힘들 것같은 고도화된 자본주의의 대한민국에서 돈 없이 살라니, 이게 가능한 미션일까?

다른 때와 다르게 아침부터 거하게 삼계탕을 먹인 제작진은 미션이 돈없이 1주일 살기라며여섯 멤버의 지갑을 강탈해 간다. 그리고 단 10분의 시간을 주면서 김준현의 결혼 준비 등 돈없이 사는 1주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하란다. 심지어 자신들의 직업, 즉 개그 등을 이용한 돈벌이도 안된다고 못까지 박는다. 개인의 자동차는 이용할 수 있으되, 기름은 남아있는 거에 한해서만 가능하단다. 엄밀하게는 그간 자신이 벌어놓은 돈, 혹은 자신의 직업을 통해 벌어들인 돈없이, 홀홀단신으로 날품팔이로 돈을 벌어가며 살아가는 1주일이다.

이제는 척 하면 척!이라고 거저 주는 밥을 먹으며 혹시나 돈?이라며 예상했던 멤버들도 막상 정말 돈없이 1주일을 살라고 하자, 누가 목이라도 조르는 것처럼 숨이 막혀한다.

대한민국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당장 돈없이 어디를 갈 수 있겠으며, 무엇을 먹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덜컥, 허경환은 당장 다음 날 부산까지 가야한다고 하고. .

 

 

<인간의 조건>의 멤버들이 '~없이 살기'의 미션을 수행하는 방식은 이제 제법 사이클을 그린다. 처음에 적응기, 그 다음에 가장 낮은 차원의 유치한 미션 모색기, 그리고 과제에 천착해 가며 본격적인 미션 수행기의 순서로.

언제나 미션 과제가 주어지면 ~ 없이 살기란 과제가 적응이 안되 머뭇거리며 멤버들은 그 과제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당장 내일 허경환이 부산을 가야 했지만, 김준현 등은 지인이 부쳐 준 간장 게장만 껴안고 '난 이거만 있으면 돈 없어도 돼'라며 여유를 부린다. ~없이 살아가는 삶에 현실성을 쉽게 인지해내지 못한달까? 돈이 없으면 먹을 수도, 다닐 수도 없는데, 걱정은 늘어지지만 그간 자신의 삶의 리듬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시간을 허비한다.

그런가 하면 당장에 돈이 급한 상황을 가장 원시적으로(?) 돌파해 나가려고 한다. 어릴 적 누구나 한번쯤은 해봤던 자판기앞에서 혹은 철봉대 밑에서 동전 찾기처럼 말이다. 이제는 동네 놀이터에 아이들이 나와서 놀지 않는다는 사실도 모른 체 놀이터의 흙더미를 뒤진다.

야무지게 물물교환을 노리거나, 유명인의 사인을 받아 한 몫을 잡아보려고 해보지만 성과가 눈에 보이진 않을 뿐더러, 그게 돈이 되기까기 기다리기엔 배가 너무 고프다. 돈이 없다는 건 13시간 만에 밥술을 떠넣게 되는 절실한 궁핍의 현실태이니까.

 

돈이 없이 사는 미션은 그 이전의 미션과는 다르게 난제이다.

핸드폰이나, 쓰레기나, 자동차는 '환경'이라는 눈에 보이는 분명한 주제가 보였다. 반면 '돈없이 산다'는 것을 분명한 과제를 제시함에도 그저 돈이 없다는 것 이상, 그저 돈을 벌기 힘들다는 것 이상의, 돈이 우리 삶에 있어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규명해 내야 하는 철학적 미션이다. 또 막상 개그맨이란 직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제외한 무언가로 돈을 벌어 살아야 한다는 것은, 미션을 위한 미션, 그저 개그맨들의 아르바이트 해프닝으로 귀결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는 함정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 미션을 통해 돈 없이도 살아가는 1주일을, 그것을 통해 '돈'의 의미를 천착해 낼 수 있다면, <인간의 조건>은 그간 공익성 환경 프로그램의 틀을 벗고, 본격적인 '인간의 조건'으로서 자기 활로를 넓혀가는 계기가 될 것이다.

어려운 과제임에도 긍정적 신호가 보이는 것은, 그간의 미션을 통해 여섯 멤버들의 생존 지수가 한결 상승했다는 것이다.

이제는 스스럼없이 서로를 가족이라 부르는 여섯 멤버들은 허경환의 부산행을 개인의 과제가 아니라, 서로가 힘을 모아 해결해 내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어렵게 번 돈을 흔쾌히 넘겨준다. 자동차 없이 살았던 1주일의 경험이 자연스레 자신의 차를 놔두고 함께 차를 이용하는 카풀로 이어지고. 돈을 아끼기 위해 지하철을 이용하는게 낯설지 않다. 왕발통을 이용하듯 물물교환을 생각해 낸 김준호 특유의 잔머리나, 한없이 다림질을 하며 재생종이를 만들듯 한 시간여를 놀이터에서 헤매며 20원을 찾아내는 양상국의 뚝심도 여전히 프로그램의 잔재미를 준다.

이 여섯 멤버의 시너지 속에서 모색된 '돈없는 생활의 맛'이 기대된다.

by meditator 2013. 4. 7. 09:54
| 1 2 3 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