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를 비롯하여 소속사, 자국의 팬들을 비롯하여 해외 팬들은 읍소했다. 아직 혐의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박유천의 '인권'을 지켜달라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켜봐 달라고. 하지만 대중과 언론은 냉혹했다. 그 공신력있다는 jtbc 8시 뉴스에서 박유천 고소라는 기사가 뜸과 동시에 모든 언론은 서로 뒤쳐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라도 난 듯이 박유천 인민 재판의 레이스를 펼쳤다. 




가열찼던 박유천 인민 재판 레이스 
그가 나라의 부름을 받고 있는 '공익'이라는 점, 거기에 '아이돌' 출신이라는 점, 특히나 예전 소속사였던 sm을 상대로 지난 7년간 지난한 싸움을 벌였고, 그럼에도 여전히 가수로서 공중파 출연은 못하고 있는 등 법적으로 하등 문제가 없다지만 여전히 암묵적인 '차별'을 받는 불리한 존재라는 점, 그리고 최근 우리 사회를 민감하게 달구고 있는 이슈, '성폭행'과 관련된 사안이, 거기에 다른 곳이 아닌 '여자'들이 나오는 술집에서 벌어진 하위 성문화의 장소가 사건의 배경이라는 점에서, 박유천은 대중과 언론의 가장 '만만한' 상대가 되었다. 

그래서 '언론'은 '고소'를 당했다는 그 사실 만으로, '고소'를 한 여성의 입장을, 심지어 그녀의 편의에 따라 종종 새롭게 재단되는 입장들을 퍼나르기에 바빴다. 그 누구도 왜 그 여성이 '법'의 보호 대신, '언론'의 폭로를 택했는지 하등 의문을 제기하지 않은 채, 서로 '박유천'이 '성폭행'범이라는 낙인을 찍기에 바빴다. 심지어 그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유머스럽게' 그린 그림까지 동원하며, 그를 '정신적'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몰아갔다. pd수첩의 경우, 확인되지 않은 고소 여성들의 증언을 근거로 '대역' 연기자까지 동원하며 확증되지 않은 혐의를 '사실'인 양 확정지었다. 과거 박유천의 사진을 통해 당시의 사건을 실감나게 글로 재연해낸 디스패치에 대해, 평상시에는 '찌라시' 언론이라 손가락질 하던 대중들이, 박유천 사건에는 '한 건'을 했다며 박수쳤다. 

일부 자각있는 측에서는 박유천 사건을 빌미로 각종 세월호 선상에 실린 철근에서 부터 세월호 특조위 종결, 전기, 가스 민영화까지 우리 사회의 심각한 사회, 정치적 현안들이 묻힌다고 읍소를 했지만, '민언련' 발표처럼 일부 종편에서는 방송 분량의 70%를 박유천에 할애하면서, '의도적'으로 사회적 이슈들을 묻어 버렸다. 





달라도 너무 달랐던 미국와 한국의 언론 
그런 가운데 미국 피츠버그 파이러리츠 소속인 강정호 선수의 '성폭행' 사건이 터졌다. 우리나라 언론들은 또 다시 새로운 '가쉽'에 솔깃하는 사이, 이 사건을 두고 보여지는 미국 언론의 모습은 그간 보여진 우리 언론의 모습과 너무도 판이했다.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언론은 '사실' 보도 외에 어떤 그 이상의 '기사'를 쓰지 않았다. 심지어, 강정호 선수는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엔트리에서 제외되지 않고, 경기에 나가 '홈런'을 쳤다. 그리고 그런 강정호 선수를 인터뷰하는 언론들은 그의 불미스러운 사건에 대해 단 한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아니다. 다른 것은 미국 언론만이 아니다. 공익 근무중인 아이돌 출신의 연예인에 대해 그토록 무참하게 닦아 세우던 한국 언론이, 같은 사안임에도 강정호에 대해서는 '혐의가 밝혀진 바 없다'며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그저 고소 사건의 횟수가 문제일까, 아니면 현재 국위 선양 중인, 그것도 미국 메이저 리그에 진출한 스포츠 선수와, 누구말대로 만만한 딴따라의 차이인 것인지. 박유천은 우리 나라 스타 중 독보적으로 한, 중은 물론, 해외 각국에서 인기가 있는 굳건한 기반을 가진 한류 스타로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을 비롯 물포럼, 아시안 게임 등의 굵직굵직한 행사에서 홍보 대사 등으로 한 몫을 했지만, 그런 그의 지난 이력은 '딴따라'라는 '존재'를 뛰어넘지 못한 채 언론과 대중의 가장 구미가 당긴 먹이감이 됐을 뿐이다. 

오죽하면 한 영국 변호사는 박유천 갤러리에 '한국 대중 매체에 드리는 편지'를 통해, 박유천 사건이 '한국 대중 매체인들이 만든 한 편의 드라마'을 본 듯하며 한국 뉴스 방송인 협회 및 한국 기자 협회가 만드는 <뉴스 윤리 도덕 규범의 취업 표준>을 위배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변호사가 지적한 대로, 이런 언론이 침해안 명예나 권리는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지만, 과연, 박유천이 받은 피해는 보상받을 수 있을까?



무협의가 된 박유천, 그러나 그 훼손된 인권의 보상은?
7월 7일 역시나 섣부른 sbs 뉴스의 보도를 시작으로, 7월 8일 경찰은 박유천의 첫 번째 고소 사건이 무혐의로 처분되었음을 발표했다. 그나마 dna증거를 가진 첫 번째 고소건이 이렇게 일단락 된 이상, 시간 경과가 크고, 증거 조차 미미한 그 이전의 사건들의 결과도 그리 다르지 않을 것으로 추측된다. 

무혐의로 판정이 난 후, 각 언론들은 담담하게 이 사건의 결과를 보도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무혐의'로 판결이 났지만, 훼손된 연예인 박유천의 이미지는 회복하기 힘들 것이라고. 그 이미지 훼손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당사자들이, 한 마디의 '사과'는 커녕, 그래도 공익이면서 술집에 드나들고 여자들이랑 성관계를 가진 것은 사실이니, 이미지 추락은 어쩔 수 없다고 냉정하게 단언한다. 댓글들도 마찬가지다. 마치 그간 자신이 물어 뜯었던 박유천이 '범죄자'가 되지 않은 것이 원통하기라도 한 듯이, 그의 '실수'를 닦아 세우며, 그래도 넌 끝이라고 다그친다.

'언론'도, '대중'도 '실수'와, '범죄'의 경계를 구분짖지 않는다. 그리고, 강남 번화가를 화려하게 빛내는 그 술집과 그 술집에 드나드는 엄연한 하위 문화에 대한 고찰이나, 반성은 커녕, 회사월들도 드나들었다는 그곳에 그저 '박유천'만이 그곳에 드나든 양, 그를 여전히 '속죄양'으로 삼아 씹기에 바쁘다. 이 유난스런 도덕적 '결벽주의'가 과연, 진정한 '도덕'의 결과물인지, '마녀 사냥'의 전형인지, 그 누구도 이제 와 쉬이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들의 냉정함이, 그리고 그들의 집요함이, 박유천 사건이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는 동안 묻혀버린 제반 사회, 정치적 사건에 조금이라도 나누어 졌다면, 그렇게 허무하게 세월호 특조위는 마무리되지 않았을 것이며, 아마 우리 사회는 지금 보다 조금은 더 나은 사회가 되지 않았을까? 제발, 그간 당신이 던진 돌로 이미 충분히 피 흘리고 있는 박유천을 향해, 반성과 사과는 차마 자존심이 상해 못한다 하더라도, 더 이상 돌을 던지지 않는 최소한의 양식을 바란다. 지난 삼주간 당신들의 무차별한 분노와 욕받이로, 박유천의 실수는 이미 충분히 '처벌'받지 않았나?

by meditator 2016. 7. 8. 14:46

박유천 성폭행 피소'라는 jtbc 뉴스룸 보도는 레이스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와도 같았다. '성폭행'이라는 종소리가 울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언론들은 질주하는 그레이하운드 경주견처럼 서로 뒤지기라도 할 듯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박유천'이란 한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기 위해 전력 질주를 했다. 




공정보도의 대표주자라는  jtbc 마저 
무엇보다 제일 먼저 아쉬운 점은 그간 '종편'임에도 불구하고 '공정한 언론'이라는 평판을 얻은 바 있는 jtbc가 사실 여부의 진원지를 분명히 하지도 않은 채 '공인'이라는 잣대를 들이밀며, '확정되지 않은 범죄'의 혐의만으로 그 흔한 A군, B군이라는 이니셜도 아깝다는 듯이 '박유천'의 실명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더구나, 소속사의 공식적 발표를 보면, 검찰로 부터 공식적 조사 통보조차 받지 않은 사안임에도 도대체 그 기사의 출처가 어딘지 불분명한 기사를 '공신력있는' jtbc가 섣부르게 보도를 했다는 것이다.

jtbc가 레이스의 서막을 알리자, 이후의 사태는 그간 우리 사회에서 보인 황색 언론의 행태를 고스란히 답보한다. 13일 jtbc의 보도 이후, 6월 15일 피해자라 알려진 여성의 고소 취하에 이르기 까지, 언론은 박유천이란 한 사람의 인격 모독을 넘어, 인격 살인에 해당하는 행태를 되풀이 했다.

우선 '성폭행' 사실 여부에 대한 고소 여부조차도 본인이 통보받기 이전 이미 언론은 '성폭행'을 기정 사실화하면서 기사를 써내려 갔다. 소속사는 고소와 관련된 그 어떤 공식적 통보도 받지 않았다고 발표하고, 이와 관련된 확인되지 않은 보도를 자제해 달라고 했으나 이미 먹잇감을 문 언론에겐 역부족이었다. 모두들 '박유천 성폭행'이라는 선정적 문구를 경쟁이라도 하듯 내걸었으며, 누가 더 자극적으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을까 경쟁이라도 하듯, 이와 관련된 '가상의 스토리'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후의 경과 과정에서 소속사의 발표처럼 '성폭행' 사실 여부가 불분명해지자, 이후 언론은 박유천이 '공익'의 신분으로 '술집'에 간 사실을 물고 늘어졌다. 심지어, 개인적인 질병으로 인해 현역으로 입대하지 못한 박유천이 법적 테두리내에서 '병가'를 낸 것을 가지고 트집을 잡았으며, 사실 여부조차도 분명하지 않은 술집과 술집의 접대비, 화대, 그리고 박유천이 냈다고 하는 지갑 속의 돈 액수까지 언론에 오르내렸다. 한 술 더 떠서, 채널 a는 이 문제를 가지고 특집을 꾸리고 거리로 나가 시민들에게 반응까지 묻는 해프닝을 벌었다. 

그간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가쉽성 기사에 대중은 쉽게 반응했다. 각 인터넷 사이트는 박유천과 관련한 그간 '루머'들이 사실처럼 도배되었고, 몇몇 네티즌들은 마치 '셜록'이라도 된 것처럼 박유천이 출입했다는 술집과 그 관례, 그리고 이 사건의 진행과 관련된 '가설'들을 진짜처럼 올렸고, 박유천을 그 어떤 법적 구속력있는 절차를 밟기도 전에 이미 대중에 의해 파렴치범으로 낙인을 찍었다. 



박유천을 둘러싼 언론의 이율배반적 태도 
그런데 이 과정에서 너무도 아이러니한 것은 박유천, 그리고 그가 소속된 jyj라는 그룹에 대한 언론과 대중의 이율배반적 태도이다. 세월이 흘러, 아니 하도 언론 등을 통해 외면받아 이제는 얼마나되는 사람이 알까 싶지만, 박유천은 과거 sm 소속의 동방신기라는 아이돌 그룹 소속이었다. 하지만 박유천을 비롯한 김재중, 김준수 등은 소속사 sm의 불공정한 계약을 문제 삼아  2009년 전속 계약 효력 정지 가처분 소송을 벌였다. 그리고 그 탈퇴와 소송 이후로 jyj는 그룹으로서든, 개인으로서든 방송에서 보기 힘든 존재가 되었다. 법은 한번도 sm의 손을 들어 준 적이 없으며, 2015년 11월 30일 '제 3자의 요청에 의해 정당한 사유없이 특정인의 방송 출연은 금지하는 불공정행위를 못하도록하는' 일명 jyj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여전히 이들에게 방송은 높은 벽이다. 

박유천, 김재중등은 가수로서의 방송 출연이 막히자, 연기자로 방향을 틀었지만 주중 미니시리즈의 주인공의 존재에도 그들이 출연하는 드라마 외의 방송에서 그들을 보는 것은 희귀한 일이었다. 심지어 마치 박유천이 볼드모트라도 되는 듯 주인공을 배제한 출연자들의 인터뷰가 연예 프로를 통해 방영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는 것이 비일비재하였다. 

과연 이번에 박유천 사건으로 특집까지 다룬 채널 a가 그간 단 한번만이라도 그룹 jyj 혹은 박유천 그리고 그들이 지난 시간 벌인 지난한 싸움에 대해 언급이라도 한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박유천은 2014년 해무로 신인상을 받으며 수상 소감으로 자신은 그저 노력했을 뿐 자신의 이름을 '기자'들이 찾아주었다고 했지만, 그와 그가 소속된 그룹이 지난한 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그들의 노력에 이번 가쉽성 사건만큼 관심을 가졌는지 묻고 싶다. 제일 먼저 보도한 jtbc 뉴스를 비롯한 공중파 뉴스들은 박유천을 비롯한 jyj의 불공정한 처우에 대한 보도를 한 적이 있었던가? 

하지만 그렇게 언론과 방송이 외면하는 가운데에서도 박유천을 비롯한 jyj 세 사람은 각자 혹은 그룹으로 음악과 드라마, 영화 등의 분야에서 걸출한 활약을 선보였고, 현재 공익으로 방송 활동을 하지 않는 가운데에서도 중국 인기 챠트에서 존재감을 보이는 성취를 보였다. 하지만, 그런 이들, 혹은 박유천의 노력은, '성폭행'이라는 가쉽성 기사 앞에는 무기력했다. 

물론 최근 우리 사회에서 '성'과 관련된 범죄가 문제시 되고 있는 상황에서 '촉각'을 예민하게 건드린 사안임에는 분명하다. 더구나 '공인'을 처신해야 할 '한류 스타'의 성추문이니 더더욱 민감할 수 밖에 없는 문제이다. 하지만 dna검사 결과가 나온 신안군 사건의 범인도 그 이름이 밝혀지지 않는 상황에서, 박유천은 확인도 되지 않은 고소장 접수만으로, 대중들의 손아귀에서 파렴치범이 된 것은 너무 가혹하다. 더구나, 그간 그와 그의 그룹이 지난한 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연예계 관례'라는 이름을 빌어 외면했던 언론의 낯 바꾸기는 더더욱 불공정하다. 

더구나 이렇게 한 연예인 개인의 가쉽성 기사에 목을 매는 과정에서, 정작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제반 정치적 사회적 사안들은 무관심의 대상이 일쑤이다. 과연 거리로 나가 사람들의 반응까지 궁금해 하며, 공공장소인 강남구청까지 카메라를 쳐들고 들어가던 언론이, 사람들의 관심을 호소하며 몇 백일의 고공 농성을 이어가는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그저 백주대낯에 사람이 죽어가고, 젊은 청춘들이 다치고, 죽어 나가야 잠시 잠깐 시선을 돌리고, 그 조차도 사연이 길어지면, 세월호처럼 외면하고 심지어 어떤 세력으로 치부해 버리는 그 '관성'의 황색성은 도대체 요지부동이다. 

결국 사안은 소속사의 발표대로 '경찰의 무혐의'를 기다리고 있지만, 이미 피해자는 고소를 취하하며 이 사건이 한 개인의 해프닝으로 마무리될 듯 보인다. 하지만, 이미 단 며칠동안 언론과 그 언론이 뿜어내는 가쉽성 기사에 함께 춤춘 네티즌들은 박유천 한 개인을 '범죄자' 이상으로 농단했다. 고소 취하 사실이 보도되자, 마치 성폭행범이 아닌 게 억울하기라도 한듯, 박유천 개인의 실수를 부풀리고, 역시나 또 확인되지 않은 물밑 합의 등으로 루머를 양산할 뿐이다. 이제 그 조차도 아닌 것이 되면, 언론이나 네티즌들은 언제나 그래왔듯이 '아님 말고'라며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다른 만만함 먹잇감을 향해 눈을 돌릴 것이다. 이 사건과 관련되어 개인적 모멸감은 물론 그 소위 사람들이 말하기 좋아하는 '공인'으로서의 실추된 명예를 떠앉은 박유천에 대한 사과 따위는 없이. 그리고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렇듯 박유천이란 이름 하나 만으로 자신들의 알고 있는 그 '루머'의 이름표를 붙일 것이다. 

by meditator 2016. 6. 15. 16:15

8회를 경과한 <냄새를 보는 소녀>의 관전 포인트는 제주도 해녀 부부 살해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그의 딸, 최은설이었던 오초림의 존재를 과연 최무각과 권재희 중 누가 먼저 알아낼 것인가를 두고 벌어지는 신경전이다. 또한 그 누구에게도 친절한 '스윗가이'이지만 목격자라는 이유만으로 대번에 칼을 그어 죽여버리는 잔혹한 살인을 서슴치 않는 냉혈한 사이코패스, 그리고 그 맞은 편에 가장 평범한 이십대 남자의 모습으로, 따스한 마음으로 자신의 동생과 그리고 이제 상처많은 오초림과 사랑을 가꿔가는 '온기넘치는' 무감각한 최무각의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이 있다. 그리고 그 숨막히는 신경전을 채워가는 건 온전히 최무각을 연기하는 박유천과, 권재희를 연기하는 남궁민 두 사람의 연기 자체이다. 



로코와 스릴러의 간극을 봉합하는 박유천의 '평범한' 최무각
8회에 이르러 이제 대놓고 '키스'까지 한 최무각을 두고 그가 '무감각한' 존재가 맞냐는 설왕설래가 있다. 이는 극 초반 얼굴에 피가 흐르고, 팔이 빠지면서도 범인을 향해 돌진하던 '무감각한' 캐릭터를 완벽하게 구현해 낸 탓에, 시청자들이 지레 그의 '무감각'을 '무감정'으로 오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 회 오초림을 부르는 '최은설'이라는 한 마디에 대번에 눈시울이 붉어지던 이 남자, 그의 무심한 표정은 동생을 잃고, 감각마저 잃고 삶의 의미를 잃었던 상실감의 표현이었다는 것을, 오초림을 만나 변화해가는 최무각이 설명해 낸다. 그래서, 강력계에 들어갈 욕심으로 '냄새를 보는' 오초림과 딜을 하기 위해 마지 못해 참여한 '만담' 과정에서 능청스레 변하던 그의 표정은, 오초림과 '썸'을 타며 감정이 자연스레 드러난다. 

그런데 그게 안쓰럽다. '동생 바라기'였던 장난기많은 한 남자가 그 동생을 잃고 '복수'만을 위해 살아왔던 '무감각한' 시간들이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또한 동생 또래의 오초림을 만나, 그녀의 틈을 헤집고 그녀의 속사정을 헤아리며 깊어가는 두 사람의 관계에서, 그저 '남녀 사이'를 넘어, 최무각이란 인물이 얼마나 따스한 인물인가를 알수 있도록 박유천은 '온기있는' 남자 최무각을 구현해 낸다. 

'로코'와 '스릴러'라는 무모한 결합을 시도한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두 극단의 장르의 이질성을 결합하는 건 실질적으로 온전히 박유천의 몫이다. 7,8회, 오초림을 만나 현실의 남자처럼 뒤끝 넘치게 '썸'을 타는가 싶더니, 동생을 죽였다고 믿었던 천백경의 죽음을 확인하고 지하주차장이 뒤흔들릴 정도의 '절규'를 한다. 막내로 들어간 수사반에서 그 누구보다 '촉'이 빠른 수사관이요, 처세에 능한 신참이다. 브리핑 현장에선 '쪽집게 강사'저리 가게 귀에 쏙쏙 들어오는 수사 상황을 전한다. 그런가 하면, 홀로 나간 컨테이너 수사 현장에서, 칼에 찔리고도 뒤늦게서야 그것을 알아차리고 땅에 고꾸라지는 무감각해서 안타까운 극적인 엔딩을 선사한다. '췌~'를 연발하는 코믹한 캐릭터와, 눈물어린 절규, 무감각해서 안타까운 피습씬까지, 도저히 화합하기 어려운 장면들을, 박유천이란 배우의 내공으로 온전히 풀어낸다. 그래서 때로는 무리수같은 개그씬도, 어설픈 수사 상황도, 장르적 분위기가 생소한 스릴러의 장면도 박유천이 풀어내는 연기의 스펙트럼 안에서 자연스럽게 봉합된다.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박유천의 연기가 보여주는 강점은 그가 이 작품을 하며 내보인 '평범한 연기'의 비범함에 있다. 데뷔를 하자마자 '스타'가 되었던 연예계 11년차의 그는 가장 평범한 현실 남자의 그것을 자연스레 보여준다. 동생을 잃은 따스한 남자, 사랑하는 이를 잃어 감각을 잃은 상실감, 분노, 그리고 이제 사랑하는 이를 만나 자연스레 빠져들어가는 젊은 남자의 그런 것들을 스물 아홉 최무각이란 우리 곁에 존재할 것만 같은 인물로 구현해 낸다. 가장 비정상적인 캐릭터를 가장 평범한 이십대 남자의 그것으로 설득해 내는 것이다. 그래서, 장르적 널뛰기를 하는 <냄새를 보는 소녀>는 박유천이 해석한 '평범한 이십대 남자'의 아픔, 고뇌, 설레임, 분노를 통해 자연스레 설득력을 얻어간다.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그런 그가 구현내 내는 우리 곁에 살 것만 같은 최무각에게서  불과 몇 년전 같은 작가의 작품이었던 <옥탑방 왕세자>에서의 이각, 역시나 같은 형사였던 <보고싶다>의 한정우, 비슷한 직업군이었던 <쓰리데이즈>의 한태경, 심지어 바로 전에 했던 <해무>의 동식과의 유사점을 좀처럼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욕심많은 배우의 한계가 어디인가 궁금해질 정도로. 



압도적 존재감의 사이코패스 권재희, 남궁민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린 천백경(송종호 분)을 살해하는 과정에서, 그가 남긴 '황금 물고기는 외로운 남자를 만나야 해'라는 의미심장한 한 마디와, 그에 근거한 '황금 물고기', '외로운 남자' 그리고 결정적으로 권세프에게 사로잡혀 있는 동안 천원장이 쓴 일기로 인해 권재희는 이제 8회까지 진행된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용의자 오초림의 존재에 가장 많이 접근한 인물이 되었다. 그가 한 발 한 발 사건에 접근해 가는 것만으로도 <냄새를 보는 소녀>의 시청자들은 가슴이 '쫄려온다' 그의 접근을 기대하고 잠복해 있던 병원의 최무각 팀들에게 보기좋게 '이벤트 남'을 통해 한 방을 먹이고 유유히 드뷔시의 '달빛'의 볼륨을 높일 때, 역대 그 어떤 사이코패스 보다 버전이 높은 권재희의 면모는 단숨에 드러난다. 하지만, 이런 캐릭터의 면모을 배가시키는 건 남궁민의 존재다. 

첫 회부터 주마리의 애인으로, 레스토랑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그리고 이제 죽은 천원장의 측근으로 그의 장례까지 치뤄주는 그가, 용의자 키 178~180 정도의 근육질 체격의 서울 말씨를 나긋나긋하게 쓰는 남자와 가장 유사한 외모를 가졌음에도 가장 유사한 존재임에도 쉽게 의심할 수 없는 것은 그의 '스윗함'이다. 매번 용의선상에 올라감에도 눈 하나 찡그리지 않고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는 여유로움, 다짜고짜 팔을 꺽고, 레스토랑을 찾아오는 불손함에도 능숙하게 대처하는 처세술에, 끈 떨어진 오초림을 거둬주는 자애로움, 거기에 요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잘 나가는 쉐프라는 직업까지, 보통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으로서 권재희를 그간 여러 드라마에서 여심을 울렸던 남궁민은 가장 자연스레 구현해 낸다. 

하지만, 그의 색다른 면모는, 6회, 그 부드러운 얼굴에서 눈빛 하나만 바뀐 순간, 시청자들이 소름끼치게 연쇄 살인범의 존재를 자각하게 만드는 그 순간부터 빛을 발한다. '연쇄살인'이란 미니 시리즈로서는 부담감있는 설정을, 가장 '스윗한' 연기에 일가견있는 잘 생긴, 심지어 바로 얼마전에 '가상 결혼'을 통해 연예계 화제가 돠었던 잘 생긴 남궁민이 연기함으로써 '살인 사건'을 마주하는 찜찜함을 한결 완화시켜 주는 동시에, 그 캐릭터의 간극으로 인해 스릴러의 긴장감을 배가시키는 것이다. 

그의 연기적 변신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2006년 영화 <비열한 거리>에서 일찌기 영화 평론가들은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인물이 조인성의 친구로 그를 배신하는 양면적 캐릭터를 연기한 민호 역의 남궁민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또한 최근 작인 <로맨스가 필요해2>나, <마이 시크릿 호텔>에서 그가 연기한 캐릭터 역시 신비로운 비밀을 지닌 음모적 인물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런 서사의 시작과 상관없이 언제나 로맨틱 멜로물의 장르적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던 이들 드라마는 남궁민이란 배우의 입지를 여주인공 바라기만으로 소모함으로써 아쉬움을 남겼다. 그의 연기적 스펙트럼은 장르물까지 펼쳐졌지만, 언제나 그의 연기는 '멜로'의 틀 안에서 숨죽여 왔었던 것이다. 그러던 남궁민이, 그가 가진 연기적 잠재력을, 지금까지 그 어떤 사이코패스보다도 극과 극을 오가는 권재희라는 인물을 통해 마음껏 풀어내고 있다. 잔잔하게 미소를 띠며 '내가 죽였는데'라고 말하는 장면을 남궁민보다도 전율을 일으키며 연기할 배우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냄새를 보는 소녀>의 스릴러는 남궁민으로 인해 완성된다. 
by meditator 2015. 4. 24. 10:22

지난 3월 12일 종영한 <킬미힐미>에서 지성은 전무후무한 7개의 인격의 변주를 연기했다. 심지어 이 드라마의 서브남은 주인격인 차도현(지성 분)에게 대립하는 또 다른 인격인 신세기였으며, 배우 지성은 사투리를 팍팍 써대는 뱃사람에서 부터 '오빠'를 남발하는 여고생, 심지어 개까지 종횡무진 변신에 변신을 거듭했다. <킬미힐미>는 전체적으로 심리적 상처를 다루는 미덕을 지녔지만상대적으로 그것을 풀어가는 방식이 생각보다 단선적이어서 아쉬웠지만,  배우 지성의 폭발적인 연기의 변주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 드라마를 선택한 시청자들은 흡족했다. 이제 7개의 인격의 변주는 지나가고, 그 아쉬움을 또 다른 '롤로코스터'같은 연기들이 달랜다. 비록 여러 개의 인격들으리 변주는 아니지만, 그 못지 않은 극과 극을 달리는 연기의 향연들이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빼앗는다. 




1. 순수와 위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상위 1% 중의 1%-유준상
sbs의 월화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는 상류층의 위선과, 거기에 맞물려가는 평범한 소시민의 삶을 연작처럼 풀어왔던 정성주 작가의 치밀한 대본과, 그 대본을 100% 이상 구현해 내는 안판석 pd의 연출만으로도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거기에 '화룡점정'처럼 찍힌 유준상의 연기가 대한민국 상류층의 위선을 보다 실감나게 시청자들에게 전달한다. 

tv에서는 생소하지만 이미 2014년 영화 <표적>을 통해 '순수한' 악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던 유준상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순진무구한' 상류층의 위악 자체가 된다. 
이미 극중 한정호로 분한 유준상과 그의 아내인 최연희로 분한 유호정의 광고가 tv를 통해 등장하듯이, 극 중 이들 부부는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평생 상위!%의 물에서 살아온 그들은 그들과 다른 봄이네 가족들을 만나며 당황하고, 그럼에도 상류층의 품위를 지켜보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삐져나오는 속물적인 근성에서비롯된 '인간적(?)'인 반응들은 또 다른 인간적인(?) 시청자들에게 친밀감을 자아낸다. 

하지만 유준상의 연기는 거기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손주를 보고 싶어 깨금발을 하며 돌아다니고, 머리가 빠질까 노심초사 하는 그 인간적인 얼굴을 하고, 가장 무자비한 '갑'질을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기획하고 지시한다. 그런 그의 얼굴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당연시 하는 '갑질'을 통해 시청자들은 우리 사회 갑의 실체가 그저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체득된 계급적 본질이며, 그것은 그저 일개인의 반성이나 좋고 나쁨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된다. 바로 그런 깨달음에 가장 직접적인 동기를 제공하는 것은 바로 순수하다 못해 순진한 얼굴을 하고, 거침없이 '을'들을 요리하는 연기를 능청스럽게 해내는 배우 유준상의 자연서런 연기에서 비롯된다. 



2. 상실감과 개그를 오가는 무감각한 형사- 박유천
동생을 잃고 감각을 상실한 남자와, 역시나 부모를 잃은 사고로 인해 기억을 잃고 대신 냄새를 보는 능력을 얻은 초감각한 여자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배우 박유천이 맡은 역할은 무감각한 순경이다. 
동생이 죽은 후 사건의 단서조차 찾아내지 못하는 경찰의 무능력함에 실망한 그는 스스로 경찰이 되어 동생 사건의 범인을 찾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된 '냄새를 보는 소녀', 그런데 개그우먼 지망생인 그녀가 내걸은 '딜'의 조건은, '내가 너의 수사를 도울테니, 너는 나를 위해 만담 파트너가 되어달라'는 것이다. 

이 말도 안되는 개그와 수사의 만남을 설득시키는 것은 배우 박유천의 연기이다. 지난 해 해무로 둘러싸인 낡은 어선에서 사랑하는 여자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던져 신인상을 거머쥐었던 막내 선원은 그가 연기한 최무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분명 같은 배우 박유천인데, 그가 연기한 인물들 속 박유천은 다 다른 인물이 되어 보는 사람을 흔든다.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팔이 빠져도 아프지 않은 무감각한 남자, 하지만 동생을 잃은 허전함을 몇 그릇의 짜장면과 짬뽕과 탕수육을 쏟아부어도 달래지지 않는 남자의 상실감을 '최은설'이라는 동생의 이름을 듣는 순간 차오르는 그의 눈빛만으로 설득해 낸다. 하지만, 이 봄에 어울리는 '로맨틱 코미디'를 위해 배우 박유천은 그저 애틋한 상처입은 남자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자신을 도와주는 오초림을 위해 그는 망가지를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린라이트'의 만담을 오초림보다 더 '바보'스럽게 하고, 좀 더 확실한 눈도장을 위해, 대머리 가발을 쓰고 기괴한 표정과 뒤집어지는 목소리로 '췌~'를 연발한다. 하지만 보는 사람를 폭소케 만드는 개그 연기의 장면이 지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무표정으로 돌아오는 최무각의 무감각이야말로 진짜 이 만담 장면의 절정이다. 어디 그뿐인가, 무감각하던 그가, 참새처럼 재잘거리는 오초림을 만나, 그녀를 얼르고 달래면서, 때론 자신도 모르게 삐지고, 미소를 지을락말락 하는 순간,  로맨틱코미디로 <냄새를 보는 소녀>는 완성된다. 




3, 중 2병과 순정남을 오가는 기업 사냥꾼- 정경호
타인에게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흔적이 느껴진다는 심장 이식 러브 스토리는 새삼 스러울 것이 없는 진부한 소재이다. 더욱이 2014년 10월 <내 생애 봄 날>이 종영한 후 1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소재를 재탕한다는 것은 더욱 위험 부담이 크다. 하지만, 그런 진부함과 위험부담을 <순정에 반하다>는 배우들의 연기로 설득한다. 그리고 그 설득에서 방점을 찍는 것은 다른 이의 심장을 받아 혼란에 빠지는 강정호 역, 정경호의 연기다. 

잔뜩 웅크린 채 발톱만을 내세운 채 으르렁거리는 상처입은 짐승처럼 지난 주 첫 선을 보인 <순정에 반하다>의 강정호를 연기하는 정경호에게 공감을 느낄 여지는 부족했다. 부모님을 단번에 잃고, 가업마저 잃은 채 비열한 기업 사냥꾼으로 성장한 그의 비사는 비극적이지만, 그 비극을 '백정'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눈 하나 끔쩍하지 않는 캐릭터로 변모한 그에게서 '연민'으로 전화시키는 건 어려워 보였다. 그렇게 일말의 정조차 느껴지지 않던 강정호란 캐릭터가, 절명의 순간 순정을 지고지순하게 사랑했던 마동욱(진구 분)의 심장을 받고 나서 달라졌다. 

분명 하는 행동은 여전히 피도 눈물도 없는 기업 사냥꾼인데, 지난 주 비열하던 그 모습은 어느 덧 자신의 감정에 휘둘려 질주하는 '중2병' 같아진다. 거기에 자신도 모르게 '순정에 자꾸 반하는' 순정남의 감정에 얹혀 진다. 그녀를 보면 가슴이 뛰고, 자신의 차 문에 다친 그녀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는 터무니없는 상황을 설득해 내는 건 배우 정경호의 연기다. 
1,2회차의 목숨이 오락가락 하는 상황에서도 숙원이었던 헤르미아 인수를 위해 자신을 던지는 비극적 인물 강정호와, 이제 새로운 심장을 받은 강정호가 하는 행동은 다르지 않은데, 미묘하게 빚어지는 온도차를 배우 정경호는 절묘하게 그려낸다. 거기에, 순간순간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심장이 사랑했던 순정에 대해 반응하는 그 불가항력적 상황마저도 개연성있게 그려낸다. 단 한 회만에, 심장을 받고 달라진 그 모습을, 비극에서, 중2병의 증상으로 완화시켜버리는 연기 톤과, 자신도 모르는 순정에 대한 쏠림에 당혹스러워하는 감정은, 극단이지만 묘하게 정경호를 통해 조화를 이룬다. 뻔한 심장 이식 스토리가 새로운 버전의 사랑 이야기로 둔갑하기 시작한 것은, 강정호란 독특한 캐릭터부터이다. 


<풍문으로 들었소>의 유준상이나, <냄새를 보는 소녀>의 박유천, 그리고 <순정에 반하다>의 정경호 모두, 객관적으로는 화합할 수 없는 양 극단의 캐릭터를 스스로의 연기로 조화하고 설득해 낸다. 또한 그 극단의 캐릭터를 화합하는 물리적 결합을 넘어, 그 조화를 통해 자신이 구현하는 인물의 캐릭터를 성숙하게 한다. 그들 덕분에, 시청자들은 팔딱거리는 한 인물에 공감하고, 감동하고, 작가와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저 대본에 씌여진 대사를 읊조리는 이상의 창조적 행위가 연기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유준상, 박유천, 정경호, 이 세 사람의 연기를 보는 맛이 쏠쏠하다. 
by meditator 2015. 4. 12. 12:57

2012년 11월 28일, sm을 상대로 한 jyj의 길고 소송의 항해가 끝났다. 

2009년 7월 31일 sm의 지나친 장기 계약과 수익 분배의 불공정함을 제기하며 전속 계약 무효를 주장하며 시작되었던 jyj의 소송은 3년 4개월이라는 시간을 거쳐 양 측의 합으로 마무리되었다. 
스물 세살, 네살 때 시작된 소송이 jyj멤버들이 스물 여덟, 일곱 살이 되어서야 막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여전히 소송 중이라는 이유로 방송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멤버들은 소송이 종료된 이후에도 드라마 등 개별 활동 외에는 각종 음악 프로그램이나 예능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오죽하면 2014년 8월 7일 방영된 <썰전>에서 평론가 허지웅은 지상파 방송 출연 스케줄이 없는 jyj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시하며, 소송 이후에도 암묵적으로 횡행하는 방송가의 출연 금지 카르텔에 대한 비난을 한 바 있다. 하지만 김구라 등이 언급했듯이, 각종 음악 방송과 예능 프로그램들은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이른바 '방송가의 침묵의 카르텔'이 존재하는 한 불가피하다는 점은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을 뿐이다. 

<한밤의 tv연예>의 박유천 그리고 김재중
하지만 2015년 봄, 꽃샘 추위를 물리치고 찾아보는 봄 볕처럼, 그간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던 방송과 예능 프로그램에서 jyj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3월 25일 <한밤의 tv연예> 기존 8시 55분에서 새롭게 11시 15분으로 방송 시간대를 바꾸어 찾아온 <한밤의 tv연예>는 그저 달라진 시간대보다 더 달라진 새로운 면모를 보였다. 바로 '한밤의 레드 카펫 코너'에서 다음 주 첫 선을 보일 <냄새를 보는 소녀>의 두 주인공 박유천, 신세경을 초대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새로 시작되는 자사의 주중 미니시리즈의 주인공을 방송 연예 프로그램에서 초대한 것이 무슨 놀라운일이라는 걸까?

허지웅이 sm을 볼드모트라 지칭했듯이, sm의 막강한 영향력은 방송 연예 프로그램에서, jyj의 흔적을 지웠고, 박유천은 주중 미니시리즈의 주인공으로 벌써 몇 번째나 출연을 했어도, 방송 연예 프로그램에서 제대로 된 조명을 받은 적이 없었다. 심지어, 그가 출연했던 <쓰리데이즈>의 경우는 '레드 카펫'은 커녕 제작발표회에 대한 기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으며, 프로그램 다음에 방영되는 <쓰리데이즈>에 대해 방송 말미 sm 소속 수영이 아닌, 윤도현의 멘트로, 다음에 <쓰리데이즈>가 방영된다는 마지못한 소개만이 있었을 뿐이다. 
그런 '블러'처리와도 같은 취급에 비하면, '레드 카펫'이라는 코너에서 단독으로 박유천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것은 장족의 발전이다. 거기에, 이날 방송 말미에는 31일 군 입대를 앞두고 마지막 콘서트를 하는 김재중의 셀프 홍보 영상까지 덧붙여 졌다. 격세지감이다. 



ebs<스페이스 공감>의 김준수
거기에 덧붙여 26일 오전 더 놀라운 기사가 등장했다. 그간 뮤지컬 무대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보이던 jyj김준수가 ebs 스페이스 공감 무대에 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3월 20일 위기에 빠진 <나는 가수다>에 김준수가 제격이라는 마이데일리 이승록 기자의 제안에 이어, 텐아시아 권석정 기자의 <스페이스 공감> 무대라면 김준수에게 기회를 줄 수도 있지 않겠냐는 각종 제안들이 등장하고, 팬들의 눈물어린 청원이 이어진 가운데, ebs측은 김준수의 <ebs스페이스 공감> 출연을 확정지었다. 다른 두 멤버들이 방송이 막힌 드라마 등의 영역을 통해 그래도 꾸준히 팬들과 만날 기회를 얻은데 반해 오로지 음악적 영역에 집중해 왔던 김준수였기에 이번 출연은 더더욱 발전적 성과이다. 

이렇게 생각지도 못했던 jyj의 방송 출연은 하지만 되돌아 보면 그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다음 주 첫 방송을 앞두고 있는 <냄새를 보는 소녀> 박유천의 경우, 지난 해 <해무>로 각종 영화제 신인상 8관왕에 달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김재중 역시 최근 종영된 <스파이>를 통해 주연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하게 다졌다. 뮤지컬계에서 김준수는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매진 사태를 부르는 주연이며, 최근 솔로 앨범을 들고 일본과 아시아 각국을 순회 중이다. jyj 로서 세 사람의 입지는 한류가 주춤한 가운데도 여전히 일본은 물론, 중국 등 아시아 각국에서 그 영향력을 확고하다. 이렇게, 스물 네살, 스물 세살 소송 이래로 개별적으로 혹은 그룹으로 충실하게 쌓아온 그들의 노력이 이제 서른, 스물 아홉이 된 이 봄에서야 싹을 틔우게 된 것이다. 

비록 아쉬운 첫 발자국이라도 
물론 아쉽다. <한밤의 tv 연예> 말미 셀프 홍보 동영상을 선보인 김재중의 콘서트는 31일 군입대를 앞둔 마지막 콘서트이다. 군대를 갈 즈음에야 짤막한 홍보 동영상을 내보내게 된 처지가 한편으론 안쓰럽기 까지 하다. 또한 박유천 역시 올해 군입대를 앞두고 있으며 김준수 역시 내년 입대를 할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각자 개별 활동은 각자 2년 후에나, 그리고 완전체로서의 jyj의 활동은 3년 이후에나 가능하다. 야속하기까지한 새싹이기도 하다. 

또한 박유천의 <냄새를 보는 소녀>에 대한 홍보도 울며 겨자 먹기 식이기도 하다. 그 전작 <하이드 지킬, 나>가 워낙 낮은 시청률로 종영을 할 처지이니, <냄새를 보는 소녀>를 자체 제작하는 sbs측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처지이니, '침묵의 카르텔'을 무력화시킬 만 한 것이다. 또한 과연 이런 관심이 해프닝이 아닐지, 이후 제작발표회와 시청률 공약으로 언급한 10% 달성 이후의 다시 한번 레드카펫 출연이 성사될 지 여부도 지켜봐야 할 문제다. 김준수의 경우도 이제 겨우, 공중파가 아닌 교육 방송 출연이 성사된 정도이다. 과연 이승록 기자의 제언대로, 공중파 음악 무대에서 김준수의 공연이 성사된 이후 팡파레를 터트려도 늦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물 세살, 네살의 앳된 청년들이 이제 서른 즈음의 원숙한 청년들이 되어가는 시간들을 끊임없는 노력으로 채워, 장막의 빛을 트이게 만드는 이 개화의 장면은 놓칠 수 없다. 감동의 박수를 보낸다. 
by meditator 2015. 3. 26. 13:00

믹키 유천은 아이돌 시절부터 감성이 남달랐다. 그 또래 소년, 혹은 청년들에게, 그 아버지 세대처럼 일생에 세번 울어야 하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울음이 남들 앞에 쉽게 드러내놓기엔 어쩐지 나약해 보이는 감정 기제로 받아들여 지는 것과 달리, 그는 쉽게 잘 울곤 했다. 음악 프로그램에서 1등을 했을 때도, 그룹이 위기에 빠졌을 때도, 길고 힘들었던 일본 활동 후에 도쿄돔에 섰을 때도, 그는 자신의 소감을 맑은 눈물로 대신했고, 그의 눈물을 소녀팬들의 가슴을 울렸다. 그리고 이제, 배우가 된 박유천은 울지 않는다. 대신 그의 눈물은 tv속 그가 연기하는 주인공들이 대신 흘려주고, 소녀팬들 대신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린다. 


박유천의 전작 <보고싶다>에서도 그랬다. 흔히 드라마에서 눈물은 여주인공의 몫이거늘, 드라마 <보고싶다>에서 눈물로 화제를 끈 것은 한정우 역의 박유천이었다. 14년 만에 처음 수연이인 듯한 여자를 보고 빗속에서 흘리던 눈물, 그녀가 자기라면 너부터 죽이겠다는 말을 듣고 그녀의 엄마가 싸다 준 도시락을 먹으며 토해내던 눈물이 화제가 되었었다. 마치 드라마를 쓰는 작가들이 그가 아이돌 시절부터 박유천의 감성이 무엇인지를 조사하기로 한 것처럼 그의 눈물을 적재적소에 써먹고 있다. <쓰리데이즈>도 다르지 않다. 

(사진; 시사 포커스)

1회, 드라마가 시작되자 마자 한태경이 된 박유천은 눈물을 흘린다.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도 대통령 경호관으로써의 자신의 직무에 충실하기 위해 대통령의 시장 방문 수행에 나섰던 한태경은 VIP의 포인트를 놓치는, 즉 대통령을 몸으로 막아야 하는 경호관의 기본도 놓치고, 아버지의 임종도 지키지 못한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뒤로 미루고 경위서를 작성하고 나오던 한태경은 버스 정류장에 앉아서 눈물을 흘린다. 그저 하늘을 바라보다, 주르륵 흘러내리는 눈물 한 방울, 하지만 한태경은 씁쓸한 미소를 지을 듯 말듯하며 그 눈물을 닦아낸다. 

그리고 5회, 다시 한태경이 눈물을 흘린다. 
이번엔 흑흑거리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절규한다. 아니라고 말해달라며 보호를 받으며 가는 대통령을 쫓으려 한다. 자신이 가장 존경하던 경호실장을 경호관이라는 신념에 따라 쏘고, 대통령에게 던진 질문에 대통령이 양진리 사건과 관련된 특검의 수사가 틀리지 않다는 대답을 했기 때문이다. 

1회 한태경이 흘린 눈물은 담백한 슬픔이다. 아버지를 여의 아들의 슬픔, 그리고 아버지로 인한 걱정 때문에 자신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그럼에도 아버지의 임종조차 지키지 못한 회한의 눈물이다. 정류장에 앉아, 한 방울 흘러내리기도 전에 닦아내는, 하지만 보는 사람은 저 사람이 지금 얼마나 침통해 하는 가를 공감하기에 충분한 눈물이었다. 엄밀하게 1회의 눈물은 그저 슬픔이다. 직무를 다하지 못했지만, 대통령은 그저 밀가루 세례를 받았을 뿐이고, 자신은 경위서만 작성하면 되는 정도의 실수이고, 아버지의 죽음은 슬프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에게 아버지는 존경스러운 분이었다. 

하지만 5회 그는 자신의 손으로 경호실장을 쏘았다. 한태경이 행동을 할 때마다 함께 오버랩되는 경호실장의 지시 사항에서도 알수 있듯이, 경호실장은 그의 또 다른 아버지다. 경호관이라는 직무에 들어선 그를 보살펴 주고, 방향을 제시해준 정신적 아버지 같은 존재다. 그런 사람을, 한태경은 스스로 쏘았다. 그는 이미 그 전에 알았다. 자신의 아버지와 대통령이 양진리 학살 사건에 주모자임을 하지만 경호관으로 훈련된 그는 대통령이 누군인지 상관없이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경호실장이 가르쳐 준 메뉴얼에 충실했다. 하지만, 그 다음 대통령에게 들은 대답은 그에게 안그래도 자기 스스로 정신적 아버지 같았던 사람을 스스로 쏘았다는 충격에 빠진 한태경을 또 한번 흔든다. 자신이 존경했던 친아버지의 세계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태경은 통곡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셔도 그의 세계는 온전히 남아 한태경을 지켜주던 1회와 달리, 5회 한태경에게는 친아버지의 정신적 유산도, 그리고 신념을 만들어 준 경호실장도 이젠 그에겐 혼돈의 그것일 뿐이다. 자신이 의지해 왔던, 자신을 떠받치던 세상이 무너진 것이다. 

장르물이라는 특성에도 불구하고, <쓰리데이즈>의 한 축은 지탱하고 있는 것은, 눈물어린 한태경의 정서이다. 대뜸 1회부터 눈물을 흘리며 시청자들을 한태경의 시선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5회에 이르러, 그의 통곡을 통해 어찌보면 억울한 경호실장 함봉수의 죽음을 애도한다. 드라마는 한 축에서 대통령과 그의 정적들 사이에 피튀기는 두뇌 싸움이 벌어지는 한편, 다른 한편에서 한태경의 슬픔과 고뇌의 흐름을 병존하여 가고, 여타 장르 드라마와 달리 감정적 공감대를 진하게 불러들인다. 슬픔과 고뇌가 현실태로 드러나는 액션씬은 액션을 위한 액션을 넘어 하나의 감정씬처럼 시청자들에게 전율을 일으킨다. 말간 눈물을 흘리던 믹키 유천은 이제 그저 배우 박유천이 되어, 한태경으로 깊은 감성 연기를 보인다. 

(사진; 무비조이)

신화 속 영웅 들은 아버지가 없다고 한다. 존재하지 않는 아버지를 찾아 떠난 주인공들은 결국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고 때로는 아버지를 죽이곤 한다. 신화학에서, 이런 살부의 메시지를, 성장으로 해석한다. 아버지의 세계에 발목이 붙들려서는 아들은 성장할 수 없다는 뜻이며 아버지의 세계를 파괴함으로써 자신의 세계를 준비하고 만들어 간다. 

그런 신화 속 주인공들 처럼, <쓰리데이즈>의 한태경의 아버지들은 죽었다.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는 죽고, 그가 만들어놓은 세계는 파괴되었으며, 경호관으로서 정신적 아버지였던 경호실장은 경호관으로서 그가 신념처럼 믿었던 세계를 뒤흔들고 그의 손에 죽어갔다. 하지만 아직 그에게는 상징적 아버지가 한 사람 더 남았다. 대통령, 그가 지켜야 하는 대통령, 세대적 상징인 아버지이다. 결국 그 아버지를 뛰어넘어 자신의 세계를 만들며 성장하는 이야기, 그것이  <쓰리데이즈>가 될 것이다.


by meditator 2014. 3. 21.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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