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일에서 3일 연휴의 마지막 날을 넘어가는 밤 11시 40분, kbs 드라마 스페셜  2016 두 번 째 작품이 찾아왔다. 지난 주 80년대의 학교로 갔던 단막극은 이번 주 또 다른 시대, 현재의 학교로 시선을 옮긴다. 80년대 전두환 정권 시절 말도 안되는 학칙으로 학생들을 얽어맸던 학교는 이제, 그 보이는 규칙 대신, 이른바 '짱'이라는 학교 폭력의 또 다른 권위 체제 아래 신음하고 있다.


클리세가 된 유구한 학교 폭력 
<빨간 선생님>이 그 배경을 여자 고등학교로 삼아서 그랬을 뿐이지, 이제는 전설이 된 영화<말죽거리 잔혹사>의 그 '잔혹'한 배경이 바로 개발 열풍이 한참 불어제치던 80년대의 말죽거리, 오늘의 양재동을 배경으로 한 것이고 보면, 정권보다 그 생명력이 유구한 게 '학교 폭력'인 셈이다. 그리고 <학교> 시리즈를 비롯하여 주로 남자 고등학생들이 등장하는 드라마치고 '학교 폭력'에 대해 다루지 않은 드라마가 거의 없으니 학교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의 학교 폭력은 이제 거의 '클리셰'에 가깝다. 이 '뻔한 소재'에 대한 고민을 <전설의 셔틀>은 '희극(comedy)'이라는 장르를 통해 접근하고자 한다. 



소개에 따르면 '명실상부, 자타공인' 명성 고등학교의 짱 조태웅(서지웅 분), 그의 천하독존 권위를 설명하기 위해 드라마는 빵 셔틀을 위해 달리는 학생들의 급박한 모습으로 시작한다. 숨이 턱에 차도록 달려 빵을 토스하며 조태웅 앞에 빵과 딸기 우유를 대령하는 학생들, 하지만 조태웅은 그런 학생들의 단말마적 경주에 대해 시간을 재며, 다음에는 좀 더 분발하라 으름짱을 놓는다. 그렇게 '권위'의 조태웅이 선생님 앞에서도 여유롭게 빵을 베어무는 그 반에, 이미 소문으로 17대 1로 학생들을 때려눕혔다 하는 서울의 강찬(이지훈 분)이 전학을 온다. 대뜸 새롭게 등장한 '전설의 주먹'을 눈빛으로 선제 공격하고 나선 조태웅과 달리, 피씨방에서부터 조태웅과 실랑이를 벌이던 조폭인 듯한 다짜고짜 끌고나가 때려눕히는 것에서부터 강찬은 태웅의 세계에 친밀하게 스며들어 온다. 하지만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존재하기 힘든 법, 찬의 관용적인 태도는 태웅의 강팍한 태도와 대비되며 태웅 일인독재 하에 신음하던 학교 아이들의 분위기를 바꾸어 놓는데.....

'희극'에 대한 정의를 찾아보면 함께 등장하는 단어가, '풍자'와 '해학'이다. 나아가 '페이소스'도 좋은 희극의 빠질 수 없는 요소이다. 이런 그저 웃기는 것을 넘어 진짜 희극의 맛을 위해 <전설의 셔틀>이 등장시킨 캐릭터는 바로 한때 빵 셔틀로 자살까지 생각했었으마 전학이라는 인생 역전의 계기를 통해 다시는 셔틀을 하지 않기 위해, 17대1의 일진으로 자신을 조작한 전학생 강찬의 웃지못할 해프닝이다. 태웅과 아이들 앞에서는 강한 눈빛을 부라리며 전설의 짱인 척 하다가 뒤돌아 서며 그 상황을 모면했다, 혹은 성공적으로 해냈다는 안도, 혹은 기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찌질한 한때 빵셔틀이었던 이면을 보여주는 강찬의 이중적 캐릭터가 이 학교 폭력을 희화화한 <전설의 셔틀>의 묘미이다. 

하지만 그저 잘 속아넘겼던 안도의 묘미는 기존의 태웅과 달리,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 어쩔 수 없이 태웅에게 당하는 아이들을 위기에서 번번히 구출해 주는 상황을 만들어 가는 강찬에 대한 아이들의 호의, 그리고 뜻하지 않게 조우하게 된 찬이로 인해 빵 셔틀이 되었던 서재우(김진우 분)의 등장으로 인해 그저 순탄하게 학교 생활을 하기 위해 일진 흉내를 냈던 강찬이 결국 조태웅과 맞장을 떠야하는 상황으로 몰려가며 극의 긴장감을 더한다. 

캐릭터는 흥미롭고, 이야기가 재밌긴한데 
전학을 간 학교에서 다시 빵셔틀을 하지 않기 위해 자신에 대한 정보를 조작하고 소문을 퍼뜨려 17대1의 전설적 영웅이 되어 나타난 강찬의 캐릭터는 그 자체로 흥미롭다. 하지만 극 초반 그런 강찬의 캐릭터와 그가 조태웅 그룹의 일원으로써 겪는 해프닝으로 끌고가는 전개는 어쩐지 좀 버거워 보인다. 그의 지난 빵 셔틀로서의 고통스러운 기억과 이제 일진으로서 난처한 상황이 빚어내는 아이러니와 거기서 어떻게든 그 상황을 모면하거나, 다른 학생들의 피해를 줄여보려는 강찬의 고군분투는 분명 신선하지만, 그런 서사의 반복 혹은 점층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끌고가기엔 좀 버거워보였다. <말죽거리 잔혹사>의 대사를 선생님의 대사로 되풀이하여 상황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유오성으로부터 신입생 유준상 등의 카메로 군단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이것이 애초의 서사의 단조로움인지, 연출의 단순함인지, 아니면 연기의 단면성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여지가 남는다. 



외려 조태웅과 일전이 끝난 후 그때야 비로소 서재우와 둘이 앉아 마음을 터놓고 하는 이야기들, 공부만 하던 엄친아였던 서재우가 먼저 학교에서 늘 얻어터지던 강찬에 대한 폭력을 외면해서 미안했다던 속내와 그런 서재우에게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빵 셔틀의 자리를 넘길 수 밖에 없었던 강찬의 피치못했던 상황에 대한 사과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들여다 보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서재우 역시 강찬이 떠넘긴 빵 셔틀, 즉 학교 폭력의 희생자로 전학을 택한 듯한데, 그 사연이 전혀 드러나지 않은 채 강찬의 보조적 캐릭터로만 소모된 점이 극을 단조롭게 만든데 일조한 듯 보인다. 

<전설이 셔틀>이 학교 폭력을 그려내는 방식은 <목포는 항구다> 등의 조폭 코미디와 같은 방식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숨긴 주인공이 다른 집단에 들어가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그로 인해 해프닝을 버이게 되는, 즉 극 속의 폭력은 심각하지만, 몇 번의 해프닝을 통해 희화화되고, 쉽게 마음을 나누고 해소되는 갈등들인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전설의 주먹으로 속여낸 강찬은 조태웅과 맞짱을 뜨게 되는 위기에서 뜻하지 않은 서재우를 비롯한 학생들의 도움과 역시나 우연히 내지른 발차기로 조태웅을 무너뜨린다. 그리고 그런 강찬과의 일전에서 패자가 된 조태웅은 '보복' 대신 곱게 강찬의 친구로 거듭나고, 학교는 평화를 되찾았다는 '동화'같은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그런데 한때 옥상에 올라가 자살마저 생각했던 강찬의 인생역전을 '가볍게' 그려내는 방식이 그 상황을 그저 타자로서 바라보는 사람들에겐 '재밌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혹시나 그 당자사에겐, 그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소모하는 방식이 아닌가란 우려를 덧붙이고 싶다. 특히나 현재 사회문제로서 '폴리스'가 학교 안에 상주해도 쉬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 상황에 대해, '소재적'으로 접근한 방식이 아닌가에 대한 노파심이다. 

by meditator 2016. 10. 3.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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