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기억해>는 매회 작은 제목을 내걸었다. 15회에 내걸은 제목은 '해피엔딩은 가능할까? 였다. 


대부분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 특히나 스릴러물, 그 중에서도 사이코패스가 등장하는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바라는 것 중 하나는 별다른 이유도 없이 생명을 앗아가는 범죄자들이 통렬한 댓가를 치르는 것이다. 아마도 스릴러 물의 해피엔딩이란 바로 그런 것이리라. 그런 면에서 <너를 기억해>는 매우 찝찝한 드라마이다. 결국 악의 최종 근원이었던 이준영, 혹은 이준호(최준영 분)은 결국 잡히지 않았으니까. 16부라는 길고 긴(?) 회차를 통해 이준영을 잡기 위해 발버둥치던 두 주인공 이현(서인국 분)과 차지안(장나라 분)는 처음과 다르지 않게 끝까지 이준영을 잡겠다며 의지를 다짐하고 드라마는 마무리된다. 도대체 이 드라마는 그렇다면 16부작 동안 뭘 한 거지? 이런 뜨뜨미지근한 결론 답게 드라마는 마지막 회까지 5.1%(닐슨 코리아 기준)로 별다른 반동 없이 마무리되었다. 그렇다면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망드'의 대열에 합류한 것일까?



어른들이 저지레해놓은 세상에 던져진 아이들.
하지만 <너를 기억해>의 미덕은 분명하고도 통쾌한 결론을 드러내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아니다. 누군가를 대놓고 벌주고 잡아넣고 하는 식의 단죄는 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너를 기억해>가 내린 결론은 명확하다. 

<너를 기억해> 속 등장 인물들은 모두 '아이들'이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던져진 아이들, 아이들이란 말은 곧, 아직 성장하지 않아서, 어른들이 만든 세상을 뚫고 자신의 세상을 만들어 내지 못한 존재들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들은 어른들이 만든 세상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한다. 

절대 악으로 등장한 이준영이 그렇다.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 인해 태어난 아이, 철이 들기 까지 방안에 갇혀서, 문자만을 상대하며, 우리든 갇힌 동물처럼 학대받으며 자라나던 아이, 그의 존재는 자신을 그렇게 만든 '어른들에 대한 복수와, 자신처럼 학대받는 아이들에 대한 동포애'로 정의내려진다. 그리고 그는 그런 자신의 생각을 타고난 뛰어난 두뇌와 학습된 지적 능력을 기반으로 실천해 나간다. 

그리고 악의 사도 이준영에 의해 부모를 잃은 아이들, 이준영의 유일한 어린 시절 친구는 이준영에게 말한다. 니가 누군가를 생각하면, 언제나 일이 잘못된다고. 그도 그럴 것이, 이준영은 자신처럼 학대받는 아이들을 돕기 위해, 그들을 학대했던 것으로 간주한 부모들을 살해하고, 자신이 대신 그들의 보호자연 했으니까. 그렇게 '이준영의 아이들'은 앨범을 가들채울 정도로 채워져 나갔다. 그는 이준영의 범죄 외에, 그렇게 이준영의 범죄를 기인하는 어른들의 부조리한 세상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준영이 포악한 범죄자인줄 알면서도 이용하는 현지수(임지은 분)나, 강은혁의 아버지 경찰청 부청장같은 인물들이 존재힌다. 

드라마는 직설적으로 드라마 속 어른들과 우리가 사는 세상을 비유하지는 않지만,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마음대로 하고,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이용하며, 자신들의 잘못이 밝혀진 이후에도 사죄를 하기는 커녕 덮으려고 전전긍긍하는 그 모습들에서 충분이 작가가 현재의 기성 세대를 상징하고자 함을 읽어 낼 수 있다. 



어른들의 세상 속에서 아이들이 성장하는 방법
그렇다면 이 부조리한 세상 속에 던져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앞에서 설명했다시피 이준영은 악의 사도가 되어 그런 부조리한 어른들을 사적으로 징벌하고, 아이들을 구원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의 '구원(?) 방식은 뜻하지 않게(?) 아이들에게 부모를 잃게 만들고, 형제간의 생이별을 하게 만든다. 

이현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게 만들고, 동생을 사라지게 만든 이준영을 찾아 헤맨다. 그리고, 이준영에게 폭력을 가했지만, 그의 도피 과정에서 죽임을 당한 아버지의 딸 차지안 역시 복수를 지향한다. 그리고 이준영의 거짓말로 인해 형이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했던 정선호는 제 2의 이준영이 되어 나쁜 사람들을 사적으로 징벌하는 사이코패스가 되었으며 형을 최후의 목표로 설정하고 쫓는다. 그리고 경찰청 부청장의 아들로 유학까지 다녀온 강은혁(이천희 분)은 그저 자부심이 넘치는 수사팀장이 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이준영으로 인해, 그리고 정선호가 저지른 범죄로 인해 서로 얽혀 들어가며 과거의 사건과, 진실에 다가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들은 끊임없이 자신에게, 서로에게 묻고, 또 묻는다. 나쁜 것이 무엇인지, 나쁜 것의 단죄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복수는 정당한 것인지, 벌을 받는 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너를 기억해>의 16부는 속시원한 사건 해결 대신 사건에 휘말린 이들이 던진 수많은 물음표로 채워진다. 

어떻게 보면 이준영과 이현은 다르지 않다. 물론 방식은 다르지 않지만, 그 둘은 모두 어른에 의해 밀실에 갇혀진 '학대'당한 경험을 가진 아이들이다. 그리고 본능적 상황에서 누군가를 죽였다. 그래서 이준영은 그런 이현을 구한답시고 그의 아버지를 죽이고, 자신과 같은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 동생을 숨겼다. 하지만, 이현의 선택은 달랐다. 그는 사이코패스인 동생을 숨기는 대신 감수하려 했고, 진실에 다가가려 했다. 프로스트의 두 갈래 길에서, 이준영과 이현이 선택한 길은 서로 달랐다.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을 확인한 차지안이 선택한 길도 달랐다. 그리고 이현과 차지안이 선택한 길이 달라짐으로 해서, 이현의 동생, 정선호 변호사, 민이가 선택한 길도 달라졌다. 그리고 수사 기획관을 죽인 최은복(손승원 분)에 대한 동료 수사관들의 선택도 달랐다. 

이준영을 암묵적으로 방조한 아버지의 실체를 알게 된 강은혁은 말한다. 아버지를 사퇴하게 만들까, 하지만 경찰 고위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경찰에서 나가도 공기업 이사직을 맡으며 그 부패한 권력을 유지해 갈 것이라고 자조적으로 말한다. 그러면 자신이 사표를 쓸까, 하지만 그것은 도망가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강은혁이 선택한 길은 스스로 아버지 대신 차지안에게 사과를 할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고자 한다. 그가 선택한 사과는 '실천'이다. 앉아서 아빠를 원망하며 징징거리지도 않고, 도망치지도 않고, 기꺼이 자신의 운명을 감내하고자 한다. 이준영을 잡기 위해 누구보다 솔선수범하고자 하는 것이다. 어쩌면 <너를 기억해>에서 가장 명확하게 제시된 어른들 세상을 사는 아이들의 방식이요, 제대로 된 어른이 되어가는 길이다. 

이현은 말한다. 이준영은 불쌍하지만, 그가 이해도 되지만, 그를 용인하지는 않겠다고, 차지안 역시 끝까지 이현과 함께 이준영을 쫓겠다고 한다. 분명, 이현도, 차지안도 1회와 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범죄자 이준영을 잡지 못했고, 그의 존재는 그들의 곁을 유유히 지나칠 정도로 여유롭다. 하지만, 16부의 과정을 거치며, 그들은 어른들 세상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들의 신념에 흔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이제야 비로소 흔들리지 않고 굳건해졌다. 그리고, '이준영의 아이들'로 잘못 자란 아이들을 설득할 내공조차 생겼다. 처음과 똑같지만, 똑같지 않다. 그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서 상처받은 아이들에 불과하던 그들은, 이제 부조리한 어른들의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어른이 되었다. 

그렇게 <너를 기억해>는 언뜻 모호해 보이지만 명확하게 부조리한 부모 세대가 만들어 놓은 세상을 살아가는 젊은 사람들의 선택에 대해 목소리를 분명하게 전달한다. 초반 '표절'시비 까지 불러 왔던 트릭이 가득했던 이야기와, 힘이 잔뜩 들어갔던 연기들을 뒤로 하고,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집중했던 후반이 진득했던 모처럼 보기드물었던 '수작'이다. 단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모두가 함께 하기에는 '접근성'이 떨어졌다는 점일뿐. 모두가 공감해야 한다는 과제는, 놓쳐버린 이준영처럼, 공중파 미니 시리즈의 과제로 남기며. 
by meditator 2015. 8. 12. 15:36

kbs2의 미니 시리즈가 고전 중이다.

새로이 시작한 sbs의 수목 드라마<용팔이>는 첫 회 11.6%(닐슨 코리아 기준)로 너끈하게 동시간대 1위를 쟁취하였다. 하지만 <가면>의 종영 이후 새로이 펼쳐진 공중파 3사의 경합에서, <어셈블리>는 자체 최고 시청률 5.3%(닐슨 코리아 기준)를 기록하였지만 역시나 꼴찌의 자리는 면치 못했다.  
그런가 하면 역시나 동시간대 1위였던 <상류 사회>가 종영된 이후 뒷심을 노리던 <너를 기억해> 역시 약속이라도 한 듯 5.3%(닐슨 코리아 기준)의 시청률 상승을 보였지만, 동시간대 꼴찌는 따논 당상이었다.
이런 <너를 기억해>와 <어셈블리>의 꼴찌 릴레이를 두고, 혹자는 '고전'중이라는 타이틀을 내건다. 하지만, 그건 이 두 드라마를 폄하하는 평가일 뿐이다. 그리고 '시청률'이라는 편협한 프레임 속에 드라마를 집어넣고, 드라마의 입지를 좁혀가는 시선일 뿐이다. 오히려, <너를 기억해>와 <어셈블리>는 도돌이표처럼 되풀이되는 뻔한 막장급 재벌 드라마들 사이에서 '고군분투', 분전 중이라고 평가되어야 하는 수작들이다. 



<너를 기억해>와 <어셈블리>의 첫 번째 공통점; 재벌이 없다. 
동시간대 1위를 기록하며 종영한 <가면>, <상류 사회>, 그리고 그 후속작인 <미세스 캅>, <용팔이>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바로 '재벌'스 월드이다. '재벌'에 의해 움직이며, 그들과 그들 주변 인물들의 이합집산과, 이전투구, 그리고 정의 실현이 세상을 채운다. 살면서 방송을 통해서가 아니면 만나지도 못하는 재벌들의 이야기, 최근 뉴스를 점하고 있는 롯데 그룹 사태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혈육 간의 골육 상쟁이 시청률 상위의 드라마들을 접한다. 

그리고 이런 재벌들의 이야기는 바이러스와도 같이 어마어마한 번식력을 자랑한다. 그 시작이 주말 드라마부터였던가, 아니면 아침 드라마부터 였던가, 시청률 주도층인 3.40대 중장년 주부들의 시선을 끌어 모을 상류 재벌 집안의 막장 스토리가 트렌드가 되기 시작하면서, 아침 드라마와, 주말 드라마을 잠식하더니, 이제 케이블과 종편의 다양한 프로그램의 공세와, 젊은 층의 외면으로 인해 낮아진 시청률로 고전하던 주중 미니 시리즈까지 잠식하고 말았다. 

종영한 <상류 사회> 계급 간 로맨스를 통해 사랑의 의미와 오포 세대들에게 희망을 주겠다는 권두언은 뒤집으면 재벌 자제와 '평민'들간의 사랑 싸움과 집안 갈등으로 채우겠다는 말이었다. 작가 최호철을 임성한의 뒤를 이을 막장계의 후계자로 만든 <가면> 역시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커녕, 갖다 붙이면 이야이가 되고 마는 어이없는 재벌가의 막장 해프닝의 연속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어설픈 신인들의 연기가 어땠건, 말도 되지 않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스토리가 어땠건, 재벌가의 막장 급 이전투구는 여전히 '욕을 하면서' 보건 말건 시청률 1위의 자리를 고수한다. 

그런 '트렌디'한 '재벌'가란 소재가 <너를 기억해>와 <어셈블리>에는 없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이들 두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가장 큰 장벽 중 하나일 지도 모른다. 대신 <어셈블리>는 해고당한 노동자들의 농성 장면이 화면을 채웠다. 혹자는 바로 이런 시작이 <어셈블리>의 접근성을 낮춘 요인 중 하나로 꼽기도 한다. 게다가 정의롭기만 해도 될똥망똥한 주인공은 형제같은 사람을 배신하고 여당 국회의원이 되더니, 공천을 받겠다고 삼천포로 빠져서 여당의 돌격대가 되어 설친다. 그런가 하면 <너를 기억해>는 익숙한 사이코패스가 등장하지만, 그는 재벌이 아니다. 정체를 모를 연쇄 살인범, 그리고 한 술 더 떠서 자신의 정체를 의심하는 주인공, 그리고 범죄 심리학자와 법의관, 형사, 변호사, 이렇게 전문직들이 등장하여 각자 자신의 전문적 용어를 즐비하게 나열하며 '추리'를 해대는 이들 드라마는 '접근성이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다. 

평소에는 만날 일 조차 없는 그들의 집안 내 막장 스토리는 뉴스를 통해서야 아는 하지만, 언제나 드라마만 보면 옆집 사람처럼 익숙하게 집안 속내를 까발리는 '재벌'이 없는 드라마, 사람들이 기피하는 노조의 이야기와, 정치의 협잡과 더러운 이면을 낱낱이 까발리는 드라마, 선과 악이 분명하지 않고, 사건의 추이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으며, 하나의 사건을 통해 또 다른 사건이 꼬리를 물고, 그것을 통해 조금씩 과거가 드러나는 드라마, 이것이 <너를 기억해>와 <어셈블리>이다. 이렇게 익숙하지 않고 낯설고, 생소한 이들 두 드라마, 그렇다고 '고전'이라는 말로 밀어 제치기에는 <너를 기억해>와 <어셈블리>의 가치는 소중하다. 



<너를 기억해>와 <어셈블리>는 분전 중
여권 실세인 여당 사무총장 백도현(장현성 분)의 히든 카드로 국회에 입성한 진상필(정재영 분), 하지만 그의 행보는 여느 '히어로'물의 주인공과는 다르다. 애초에 더 이상 몰릴 곳이 없는 노조 위원장으로 선택한 행보였지만, '노조'라는 위치와 달리, 그가 선택한 곳은 '노조'의 성향과는 반대편인 '여당'이었다. 어떻게 중간이 없이 모 아니면 도냐며 볼멘 소리를 하는 최인경(송윤아 분)의 말처럼, 여당에 들어온 진상필의 행보는 롤러코스터를 탄다. 여당 국회의원 신분임에도 정부 추경 예산을 추인할 수 없다고 큰 소리를 치는가 하면, 어느새 백도현의 개가 되어 반청파를 물어 뜯는데 앞장 선다. 그러다, 이제는 살생부 속 한 인물이 되어, 정치 생명의 위기를 맞는다. 

그는 '배신자' 소리를 들어가며 국회의원이 되고자 했던 그 초심, 그리고 그를 '믿노라'며 죽어가던 배달수(손병호 분)의 유언처럼 노동자들을 위해 무엇이라도 하는 국회의원이 되보고자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장벽이다. 정치 초년병인 그는 노회한 정치 고단자들에게 이용해 먹히기 십상이고, 그의 선의는 언제나 짓밟히곤 한다. '무관심'을 넘어. '혐오' 수준에 이른 정치에 대한 '희망'을 길어 올리기엔 아직 한참 '역부족'이다. 하지만, 그래서 <어셈블리>는 가치있다. 쉽게 환타지처럼 정의로운 히어로를 내세워 쉽게 희망을 들먹이지 않고, 오히려 철저히 현실에 천착하여, 갖은 우회로를 돌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정치'를 놓아서는 안되는 목적을 향해 뚜벅뚜벅 나아간다. 사람들이 쉽게 평가하고, 시청률을 내세워 험담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에 흔들리지 않는다. 

<너를 기억해> 역시 쉽지 않다. 아버지를 사이코패스에게 잃고 동생마저 잃은 한 소년의 이야기로 시작된 드라마는, 한 회, 한 회 하나의 사건들을 통해, 그와 그 주변의 이야기들을 차근차근 풀어 나간다. 한 회의 이야기는, 하나의 퍼즐을 푸는 동시에,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그저 범인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옳고 그름이 아니라, 때로는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그 이면의 진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들에 대해 차분하게 천착해 나간다. 이 놈이 나쁜 놈 하고 다같이 몰려가 두드려 패는 식의 사건 해결이라는 것은 없다. 통쾌한 한 방도 없다, 장군 하면 멍군이요, 멍군인가 하면, 또 다른 패가 등장한다. 하지만, 대신, 그 느리고, 퍼즐로 가득한 이야기들을 풀어가면, 고정 관념을 넘어선 사람과 사람의 관계, 선과 악에 대해 한번쯤은 생각해 보게 된다. 역시나 그저 시청률이나, 범인 잡기로만 설명할 길이 없는 드라마이다. 


하지만 시청률 지상주의 드라마 시장에서, <어셈블리>나 <너를 기억해>는 그저 꼴찌일 뿐이다. 그나마 콘텐츠 영역 면에서 면피를 한다. 더구나 한 회만으로 그 흐름을 따라잡기 힘드니, 리모콘 돌리다 재밌어 자리 틀고 앉게 되는 '중간 유입'도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다세대의 다중'을 대상으로 하는 공중파 드라마로는 젬병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이런 냉혹한 시청률 기중에 따른 평가는 처음으로 드라마판에 들어선 영화배우 정재영의 마지막 작품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일까, <너를 기억해> 후속 작품은 가장 대중적 기호에 맞춘 '고부 갈등'을 내세운 <별난 며느리>를 택했다. <복면 검사>에서 <어셈블리>로 이어진 '사회 비판적'인 계보를 잇던 수목 미니 시리즈 역시 대하 드라마 <장사의 신-객주 2015>를 선택하였다. 

만약에 드라마에서 '재벌'을 등장하면 안된다는 '법'이라도  통과된다면 어떨까? 아마도 우리 드라마계는 '개점 휴업'을 해야 할 형편에 빠질 것이다. 그만큼 현재 특히나 공중파 드라마들은 '재벌 중심의 막장 스토리'에 현격하게 편중되어 있다. <상류 사회>, <가면>의 후속작인 <용팔이>는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자 하지만, 신선하지 않다. 역시나 재벌가의 이전투구가 빠지지 않는다. 제 아무리 시청률 1위를 수성하고 있다지만, 결국은 그 나물에 그 밥이란 느낌이다. 시청률 지상주의를 내세우면 결국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뻔해진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익숙하지 않지만, 뻔하지 않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이어가는 <너를 기억해>와 <어셈블리>의 가치는 소중하다. 그저 몇 %의 시청률로 설명할 수 없는, 귀 기울여 들어볼만한 이야기들이다. 
by meditator 2015. 8. 6. 17:20

'스릴러' 장르물의 묘미는 무엇일까?

액션이니, 추리니, 거기에 겯들인 로맨스니 해도, 결국은 스토리가 주는 쫄깃한 반전이 아닐까. 뒤통수를 맞은 느낌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뒤통수를 내어주어도 좋을 것 같은 허를 찌르는 그 기발한 스토리가, 이런 저런 겉치레를 덜어낸 장르물의 진짜배기 알곡이 아닐까 싶다. 그런 면에서, 월, 화요일 밤 10시, 11시에 연달아 찾아드는 두 편의 장르물 <너를 기억해>와 <신분을 숨겨라>는 로맨틱 스릴러와, 도심 액션 스릴러라는 서로 다른 지향에도 불구하고, 동일하게 장르물의 묘미를 흠씬 맛보게 해준다. 


범인과 범인을 잡는 묘미라니!
21일 10회의 시작은 이현(서인국 분)의 집에 초대되어 온 정선호(박보검 분) 변호사로 시작된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의 방문자, 이현이 초대한 옆집 사람, 이준호(최원영 분) 법의관이다. 이 세 사람이 함께 한 식탁은 긴장감이 흐른다.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시청자 역시 손에 땀을 쥐며 바라보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는 프로파일러, 변호사, 법의관으로 안면을 트게 된 세 사람이지만, 어쩌면 형과 동생, 그리고 형과 동생의 생이별을 기인하게 만든 연쇄 살인범이라는 악연일 수도, 아니 거의 그래보이니까. 그리고 현재의 사건으로 드러나는 '시체 없는 연쇄 살인'의 배후일 수도 있는 인물들과 그들을 의심하는 프로파일러와의 만남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긴장감이 흐르던 세사람의 식사는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차지안(장나라 분)이 납치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차지안의 납치 소식에 충격을 받은 이현, 그런 이현을 만류하고 대신 운전대를 잡은 정선호,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이준호, 차지안을 알고 있던 세 사람은 그래서 함께 현장으로 향하고, 본의 아니게 함께 수사에 참여하게 된다. 세상에, 범인으로 의심되는 사람들과의 수사라니! 하지만, 일찌기 탁월한 두뇌 플레이로 감옥을 빠져나간 이준영으로 부터, 아버지로부터 사이코패스라 낙인 찍힌, 하지만 이젠 프로파일러가 된 이현에, 사실은 진짜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의심이 되는 이현의 동생같은 정선호까지, 세 사람의 싸이코패스가 함께 하는 수사라면, 따지고 보면 이게 바로 천하무적이다! 천하무적의 승률을 가질 수 밖에 없는, 하지만 서로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의 눈길을 접을 수 없는 세 사람은 손발을 맞춰, 아니 정확하게는 입을 맞춰가며 범죄자를 추적해 들어가고 검거에 성공한다. 길지 않는 세 사람의 수사 장면은, <너를 기억해>만이 선보일 수 있는 '쪼는 맛'의 정점이다. 

그리고 그 사건을 통해 이현은 어쩌면 자기 동생 역시 그저 가출이 아니라, 이준영에 의한 유괴였다면 이번 사건처럼, 이준영에 의해 사이코패스로 길러졌을 수도 있을 것이란 의혹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 의혹은 동생의 실종을 두고 이준영과 딜을 한 현지수(임지은 분)로 인해 더더욱 확고해진다. 하지만 이현이 그런 의심을 하는 시각, 이준영은 전혀 다른 언급을 한다. 범죄자와 함께 하여 범죄자가 된 것이 아니라, 애초에 그런 소양이 있었기에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겠냐는 이현돠 다른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그렇게 이현과 이준영이 서로 다른 입장을 표명하게 만든 사람, 바로 이현의 동생으로 추정되는 정선호 변호사, 그를 자신의 동생일지도 모른다고 의심을 가지게 된 이현은, 그래서 동생이 그가 다가가는 연쇄살인의 범인일까 고뇌하고, 그런 이현의 마음과 달리 정선호 변호사는 형이 자신을 찾지 않았다는,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자신에게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는 것에 눈빛이 흔들린다. 

<너를 기억해>의 묘미는 차지안의 이현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시작하여, 이현의 차지안의 기억으로, 그리고 이제 다시 정선호의 기억에서, 이현의 기억으로, 얽혀있는 인물들의 기억과 상처 속을 헤집으며, 범죄 수사, 그리고 진실을 향해 한 발자국씩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동생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 냄으로써 동생을 싸이코패스로 만들까봐 두려워하는 이현, 하지만 그런 형과 달리 자신을 기억해 주지 못하는 형이 내내 서러운 동생, 그리고, 아버지의 기억으로 고통받는 차지안 등, <너를 기억해> 속 숨겨진 반전의 장치들은 그저 사실을 알게 되는 쾌감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관계'와 '인간'에 대해 다시 짚어보게 되는 지점을 열어준다. 


'고스트' 대신 '민태인'을 잡아버린 통수
11회 <신분을 숨겨라>가 기대되었던 것은 드디어 '고스트'라 불리워졌던 인물과의 대면이 이루어질 지도 모른다는 정황때문이었다. 정선생(김민준 분), 남인호(강성진 분) 등 악인 뒤에 숨어있는 절대 악 고스트가 유명인사초청 자선파티에 등장한다는 첩보를 입수한 수사5과는 촉각을 곤두세운다. 수사 5과 요원들을 현장과 주변에 잠복시킨 채 자선파티을 예의 주시한다. 

파티에 등장하는 한 명, 한 명의 인물들, 장민주(윤소이 분)의 친부로 추측되는, vd107바이러스에 관심을 가졌던 이명근 방위산업체 회장, 최대현 국정원 과장, 이일한 경찰청장 등 그들이 등장할 때마다 수사 5과 인물들은 물론 시청자들조차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신분을 숨겨라>를 지켜보던 시청자들이 한번쯤은 혹시나 고스트일까 의심했던 인물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들은 미리 예견되었던 바 고스트가 등장할 밀실까지 초대받는다. 

하지만 드라마는 시청자의 뒤통수를 친다. 이명한 회장을 제외한, 질병관리 센터장을 포함한 나머지 세 사람은 엄인경의 주도 아래 와인을 마시며 잠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와인잔이 따라지는 순간, 장민주의 수사로 그 와인잔에 독이 든 것을 알게 된 수사 5과의 저지로 다행히 세 사람은 죽음을 면하고, 엄인경만이, '국가에 의해 부정당한 스파이'의 전설을 통해 경고를 남기며 죽어간 것이다. 

역시나 이번 회도 '고스트'의 뒤를 쫓다 헛물만 키는가 하는 순간, 11회의 뜻밖의 복병이 나타난다. 수사5과가 고스트의 꼬리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 순간, 고스트는 vd107을 획득한 것이다. 남인호가 잡히면서 함께 회수된 줄 알았던 바이러스, 하지만 남인호는 자신의 체포를 예감하고 바이러스를 자신을 잡으러 온 민태인의 몸 안에 주입했고, 고스트는 수사5과의 눈을 자선파티에 돌린 채 유유해 민태인을 납치해버린다. 수사5과의 '장군'에, 더 강력한 고스트의 '멍군'인 셈이다. 

<신분을 숨겨라>의 감정 코드는 고스트와 수사 5과의 전선이 대치된 가운데 사랑하는 동생과 연인을 잃은 민태인(김태훈 분)과 차건우(김범 분)의 깊은 원한, 그리고 그들과 동지애로 얽힌 장무원(박성웅 분)의 형제애로 이루어진다. 이미 5년간의 잠입 수사 끝에 목숨을 잃을 뻔한 적이 있는 민태인이, 이제 다시 그의 몸이 바이러스의 숙주가 되어 고스트의 손에 잡히는 설정은, 그 어떤 멜로드라마의 이별보다 애절하다. 수사5과가 고스트 측이 내세운 하수인, 정선생, 남인호, 이제 엄인경까지 하나씩 제거해가며 고스트로 좁혀가는 순간, 고스트는 민태인을 숙주로 이용하며 수사5과의 허를 찌른다. 결국 잔가지들을 다 제거당한 고스트와, 가장 안타까운 동지를 잃은 수사 5과의 진검승부만이 남게 된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고스트를 지키려는 하수인들, 그리고 그렇게 하수인들을 잃고 수사5과의 아킬레스건 민태인을 볼모로 자신의 이해를 관철시키려는 고스트, 누군가의 목숨을 담보로 한 <신분을 숨겨라>의 다음이 기대될 수 밖에 없다. 



by meditator 2015. 7. 22. 16:40

7월 12일 <sbs스페셜>에서는 '슬픈 천륜, 감옥 밖의 아이들'이란 제목으로, 살인자를 부모로 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한 해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살인 사건이 1000 여건, 그 살인 사건을 저지른 범죄자는 분명 법의 심판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이지만, 그의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부모를 범죄자로 둔 자식들의 운명은 가혹하다. 죽음을 앞두고 자신이 남기고 떠나야 할 자식들 때문에 범죄자 아버지는 통한의 눈물을 흘리지만 아버지의 눈물로는 자식들은 보호받지 못한다. 


또 다른 인권의 사각 지대에 놓인 범죄자의 자식들 이야기를 다루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에게 '사형'이 실제로 집행되는 중국의 사례를 빌어 부모를 범죄자로 둔 자식들의 이야기를 다룬 <sbs 스페셜>, 바로 다음 날 방영되는 kbs2의 <너를 기억해>는 바로 그 슬픈 천륜으로 인해 죽음에 이른 한 소년의 이야기가 극중 에피소드로 다루어 졌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뀐 불행한 우정
이현(서인국 분)의 강의실을 찾아와 살인자의 자식인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을 토로했던 소년 이정하, 이현의 다독임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찾은 현장에서 이정하는 아버지를 감옥으로 보낸 목격자를 죽인 현장에서 그 자신도 상해를 입은 채 잡히고야 만다. 하지만 이현은 이정하의 범행을 믿지 않는다. 오히려 그에게 정선호(박보검 분) 변호사를 붙여, 그를 보호하기까지 한다. 그리고는 그의 친구인 이진우를 쫓고, 결국 이진우가 이정하의 아버지를 자신의 아버지라 오해하여 벌인 범행임을 밝힌다. 

두 소년의 불행한 우정, 거기엔 이정하를 아버지로 오인했지만, 사실은 이정하에 의해 죽임을 당한 피해자의 아들 이진우와, 그런 이진우를 알고도 묵과해버린 이정하의 혼돈이 있다. 그리고 이진우의 오해를 알고서도 이용한 파렴치범 이정하의 아버지, 이한철이 있다. 

sbs스페셜은 사회적으로 배척받는 범죄자의 자식으로 살아가야 하는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범죄자의 자식을 '인권'의 차원에서 다루었다면, <너를 기억해>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범죄자의 DNA를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범죄자 자식의 정체성에 대한 고뇌를 깊게 다룬다. 이현의 말대로 성범죄자였던 아버지 때문에 사춘기가 되어서 자신에게 찾아온 성적인 혼돈조차 죄의식으로 느꼈던 소년, 누군가를 죽인 아버지 때문에 살면서 누구나 때론 떠올릴 수 있는 나쁜 생각조차 죄책감으로 시달려야 했던 소년은 결국 친부를 오해해 살인을 저지른 피해자의 자식인 친구의 칼을 맞아 세상을 떠나고야 만다. 길지도 않은 18년의 세월의 상당 부분을 자신도 아버지처럼 살인자가 될까 두려움에 떨며 보내다가. 피해자와 가해자의 자식이라는 어긋난 운명이 불러온 불행한 우정도 슬프지만, 자신의 천륜으로 인해 고통받으며 사는 범죄자 자식의 가혹한 운명이 이정하라는 소년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소년의 죽음을 통해 자신들의 상처에 한 발씩 다가서는 이현과 차지안 
그리고 이 이정하에 대해 변호사까지 붙여주며 마음을 써주던 이현, 그리고 그런 이현의 마음을 헤아리는 차지안(장나라 분)는 이 사건을 통해, 서로에게 조금 더 한 발 다가가게 된다. 이정하에게 마음을 쏟는 이현에게 정 변호사는 이유을 물었지만 이현은 그저 꽃 중에서도 유독 눈에 들어오는 꽃이 있다고 대답을 피했지만, 차지안은 안다. 그 소년에게서 어린 시절 아버지에 의해 '사이코패스'라 규정되어 갇혔던 경험이 있는 이현이 자기 자신을 투영했음을. 그리고 차지안에게 조차 자기 자신을 의심했기 때문에 솔직하지 못한 거 아니냐며 반문하는 이현의 여전한 고뇌를. 

그래서 소년의 죽음 이후, 마음이 아플 이현을 찾아가 차지안은 말한다. 너는 괴물은 아닌 거 같다고. 그것은 일찌기 어린 시절 아버지조차 '내 아들이 괴물'이란 규정을 당한 이현에게는 뒤늦게 찾아 온 면죄부와도 같다. 그렇게 이현은 내내 자신을 옭죄어 왔던 '괴물'이란 올가미가 차지안으로 인해 조금 느슨해 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현 역시 차지안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역시나 소년처럼, 차지안은 결코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준영과 함께 사라져버린 교도관의 딸로, 공범의 자식으로 취급받으며 살아왔던 차지안의 삶도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그러면서 이만큼 자라느라 수고했다며 쓰다듬어 준다. 

그렇게 이준영이라는 사이코패스 연쇄 살인범으로 인해 어린 시절 씻을 수 없는 상처를 가진 소년 이현과 소녀 차지안은 이제 어른이 되어 만나, 함께 파트너가 되어 사건을 해결해 가면서 그 사건 속에서 두 사람의 '치유'의 실마리를 얻어 간다. 이미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도 보여졌듯이 상처를 입은 두 주인공은 서로의 상처를 그 누구보다 진솔하게 이해하고 보다듬으며, 그 사건에 개입함으로써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상처를 치유한다. <냄새를 보는 소녀>와 <너를 기억해>가 공통으로 제시하고 있는 상처받은 젊은이들에게 권하는 치유의 해법이다. 

이현과 소년 이정하는 한 권의 동화책을 공유한다. 인디언들 사이에서 전해 내려오는 민담을 담은 '늑대 이야기'가 그것이다. 여기서 늑대는 실존하는 늑대가 아니라 마음 속 늑대다. 마음 속에 있는 착한 늑대와 나쁜 늑대, 두 늑대 중 누가 승리하느냐에 대한 인디언 추장의 대답은, 바로 내가 먹이를 주는 늑대이다. 즉, 이 '늑대 이야기'를 통해 <너를 기억해>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그간 우리 드라마가 관행적으로, 혹은 편의적으로 다루어 온 결정적 범죄자 사이코패스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해석이다. 타고난 사이코패스라 하더라도, 결국 그의 범죄를 결정짓는 것은 '그의 의지'라는 것이다. 아버지가 피해자였던 소년이 자기 자신을 살인으로 내몰수도 있게 되는 것, 혹은 그 반대로 살인자 아버지를 둔 채 평생을 자기 반성으로 살아갈 수도 있는 것, 그리고 아버지에 의해 괴물로 낙인 찍혔지만 오히려 범죄를 쫓는 프로파일러가 되는 것처럼, 결국 어떤 '늑대의 삶을 사는가는 자신의 책임이라는 '주제 의식'을 7회 <너를 기억해>는 드러낸다. 그리고 이런 드라마의 주제 의식은, 앞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이준영과 이현의 동생을 통해 보다 구체화될 것이다. 
by meditator 2015. 7. 14. 06:25

매주 월, 화요일 두 편의 스릴러물이 안방 극장을 찾아든다. kbs2의 <너를 기억해>와 tvn의 <신분을 숨겨라>가 바로 그 두 편의 스릴러물이다. 하지만, 스릴러물이라는 장르적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이 두 편의 색채는 다르다. '사랑하고 치유하는' 로맨틱 스릴러를 표방한 <너를 기억해>가 피비린내 나는 살인 사건을 배경으로 범죄심리학 교수 이현(서인국 분)과 경찰인 차지안(장나라 분)의 달달한 러브 스토리를 메인으러 내세운 반면, 도심 액션 스릴러를 표방한 <신분을 숨겨라>는 매회 유혈이 낭자한 현실감있는 액션을 중심으로 수사5과의 지능적 범죄 수사가 화면을 채운다.




절대 악을 향해 다가가는 여정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편의 스릴러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아직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지만 결국 궁극적으로 도달하게 될 절대 악을 향해 가는 여정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어린 시절 이현이 우연히 아빠의 경찰서에서 만나게 된 연쇄 살인범 이준영, 그가 감옥에서 탈주를 하고 집으로 찾아온 날 이현의 아버지 이중민(전광렬 분)은 죽임을 당했고, 동생은 사라졌다. 아버지에 의해 사이코패스가 규정되어 자기 자신조차 믿지 못하고, 어린 시절의 기억의 일부분조차 사라진 이현은 차지안의 요청으로 고국에 돌아와 현재의 사건들 속에서 과거의 인연을 짚어가며 절대 악을 향한 여정에 나선다. 매회 벌어지는 단편적인 사건들은 프로파일러로써의 이현의 능력을 증명해가는 과정이지만, 동시에 이현의 숨은 기억 속 퍼즐을 맞춰가며 숨겨진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너를 기억해>가 '살인' 등의 범죄를 연속적으로 저지르는 사이코패스에 대한 이야기라면,<신분을 숨겨라>의 절대 악은 스케일이 크다. 민태인(김태훈 분)이 자신의 목숨을 던져서 찾고 싶은, 그리고 8회 차건우가 상부의 명령까지 어겨가며 다가가고 싶은 존재 '고스트'는, 그 누구도 얼굴을 본적이 없는, 그리고 그 얼굴을 보는 순간이 죽는 순간이라는 무시무시한 범죄조직의 우두머리이다. 하지만 그는 그저 범죄조직의 우두머리라는 수준을 넘어선다. 일찍이 중앙정보부 시절부터 국가정보원까지 국가 기관이 나서서 그를 잡기위해 혈안이 된 고스트는 위폐, 마약, 청부 살인은 물론 7월 7일 8회에서는 세균전까지 불사하려 한다. 그저 범죄 조직이 아니라 국가 안보을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존재다. 

그런데, <너를 기억해>도, <신분을 숨겨라>도 모두 궁극적으로 찾아내야 할 절대악은 분명하지만, 정작 그가 누군인지는 모른다. <너를 기억해>에서 '생각보다 범인은 가까이에 있다'는 대사처럼, 극 중에 등장하는 인물 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의심을 살만한 정황을 가지며, 누가 범인인지 추측해 나가는 것이 이 두 드라마의 묘미다. 



그런데 절대 악은 누구?
<신분을 숨겨라>는 '저승'을 갈 때야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고스트, 중정 시절부터 국가로부터 범죄자로 낙인찍혔다는 그 연배의 출연자들은 모조리 의심스럽다. 가장 유력한 대상자로 눈빛부터가 모호한 국정원 최대현 국장(이경영 분)에서부터 수사5과를 진두 지휘하는 경찰청장, 심지어 수사5과의 최태평(이원종 분)까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며 의심하는 맛이 <신분을 숨겨라>의 묘미이다. 정작 드라마는 수사 5과의 신분 위장 수사를 매개로 하지만, 정작 이 드라마에서 가장 절묘하게 신분을 숨긴 사람은 바로 그토록 찾아헤매는 범인이다. 

<신분을 숨겨라>가 단 한 명 고스트를 향한 여정이라면 <너를 기억해>의 술래잡기는 조금 더 미묘하다. 이현의 아버지가 죽던 날 사라진 이현의 동생, 그리고 함께인지, 따로인지 역시나 사라진 이준영, 그 또래로 보여지는 <너를 기억해>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수상하다. 7월 7일 6회묘하게 이현의 눈에 들어온 법의관 이준호(최원영 분)의 일거수 일투족은 수상하며, 그가 내뱉은 말은 그저 허투루 지날 수 없는 것들이다. 또한 이현 동생 또래로 등장하는 정선호(박보검 분)는 이현 못지 않게 사건이 일어나는 곳이면 늘 등장하여 시선을 끌 뿐만 아니라, 의심을 받기에 충분할 만한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하지만, 이렇게 드러내놓고 의심이 갈만한 인물들 뿐만 아니라, 스치듯 지나갔지만 사건 수사 현장에 제일 먼저 갔다는 최은복(손승원 분) 역시 그저 지나치기가 애매하다. 그저 웃기는 캐릭터 같은 강은혁(이천희 분)조차 의심스럽다. 



케이블과 공중파의 서로 다른 입지가 낳은 다른 처지 
<신분을 숨겨라>는 케이블 드라마 답게 제작 발표회에서 1%의 시청률 공약을 내걸었다. 초반 정선생으로 분하여 압도적 존재감을 선보인 김민준의 열연과 그와 엇물리는 김태훈, 수사 5과의 활약으로 <신분을 숨겨라>는 순탄하게 1%를 넘었을 뿐만 아니라, 2% 고지조차 거뜬히 해치워 출연자들이 커피를 대접하는 등 공약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정선생이 출연한 1,2회 이후 좀 맥이 빠진듯한 스토리가 잠시 지지부진한 듯 하지만, 새로운 사건, 그리고 그 사건을 중심으로 끌고가는 남인호(강성진 분)등 다른 고스트의 하수인이 저마다의 포스를 가지고 헤집으며, 그 새로운 악과의 대결을 위한 위장 작전과 액션이 매회 애청자들의 손에 땀이 식지 않게 만든다. 거기에 매회 끈끈해지는 듯하면서고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수사 5과 캐릭터들의 매력도 <신분을 숨겨라>의 숨길 수 없는 매력이다. 또한 케이블이라는 존재적 특성을 살려 거친 액션과 국정원에 사과 문구를 내보일만큼 수위를 넘나드는 설정 등이 <신분을 숨겨라>를 기대하게 만든다. 

오늘 제작사 cje&m이 6월 4주 콘텐츠 지수에서 <너를 기억해>가 <무한 도전>, <복면 가왕>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고 기사를 냈지만,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콘텐츠 지수 1위가 무색하게, 시청률면에서 <너를 기억해>는 4%대를 넘지 못하며 동시간대 꼴찌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 초반 '표절'과 관련된 시비를 무난하게 극복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 <너를 기억해>는 스릴러물을 좋아하는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호오가 엇갈리는 평가를 받아서 더더욱 그렇다. 무엇보다, 이현이라는 셜록 홈즈 뺨치게 능력자인 주인공을 커버하기엔 아직 서인국의 내공이 딸려 보이는 면이 역력한데다, 드라마는 모든 출연진을 의심하게 만들 만큼 문어발식으로 이리저리 엮인 관계들로 어수선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초반 스릴러물로서 이야기의 틀이 잡기히도 전에 어설프게 풀기 시작한 이현과 차지안의 로맨틱한 분위기는 오히려 스릴러물로서의 <너를 기억해>의 정체성을 갉아먹었다. 
하지만 그런 초반 악수를 극복하고 이제 6회에 들어선 <너를 기억해>는 이현과 차지안 두 사람의 과거가 풀어지면서 그저 로맨틱물을 넘어선 스릴러물의 공조자로서의 주인공들의 위치를 공고히하고, 매회 등장하는 사건들과 과거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본격적으로 스릴러물로써의 묘미를 선보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모든 연령대의 시청자들을 설득하기엔 여전히 난해한 스릴러 장르는 공중파라는 지정학적 위치가 <너를 기억해>의 결정적 장애물이 된다. 
by meditator 2015. 7. 8. 15:44

6월 22일 <너를 기억해> 첫 회가 방송된 이후 드라마 시청자 게시판에 '드라마 작가 지망생'의 글이 올라왔다. 2014년 CJ드라마 공모전에 제출한 자신의 드라마 시나리오와 내용이 지나치게 흡사하다는 내용이었다. 시청자 게시판에 올라온 작가 지망생의 글은 곧 일파만파 '표절'시비로 이어졌다. 이에 <너를 기억해>의 작가 권기영은 다음 날 2013년말부터 노상훈 감독과 함께 이 드라마와 관련된 작업을 계속해 왔으며 2014년 7월 14일 이 작품에 대한 저작권 등록을 마쳤다고 밝혔다. 앞서 드라마 지망생의 저작권 등록일 8월 21일보다 앞선 시점이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절'관련 여론이 잦아들지 않다. 다음 날 이 드라마의 제작사인 CJE&M은 문제를 제기한 드라마 작가 지망생의 글이 본선에 올라 경합되었지만 아쉽게도 최종 후보에는 오르지 못했고, 오르지 못한 작가의 시나리오 파일을 폐기되어 외부로 유출되지 않았음을 단언했다. 또한 이미 2013년말부터 작가와 감독 등이 작품과 관련하여 나눈 이메일등이 기록으로 남겨져 있다고 덧붙이며 '표절'논란을 종식시키고자 했다. 


법적인 문제와 별개로 개운치 않은 '표절'의 그림자 
절차상의 문제, 그리고 저작권 등록일 등 법적 문제로 볼 때, <너를 기억해>의 표절 문제로 일단 표면적으로 마무리된 듯 보인다. 하지만, 막상 이 문제를 접한 네티즌 등 시청자의 입장에서, 개운치만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너를 기억해> 1회의 전개 중, 프로파일러 아버지와 아들 형제의 설정, 그리고 그중 한 명을 아버지가 '싸이코패스'라 짐작하여 '감금'하기에 이르렀다는 설정은, 누구나 쉽게 생각해 내기에는 너무도 고유한 독특한 설정이기 때문이다. 마치 신경숙 작가가 '표절' 시비와 관련하여 일본 작가의 '우국'을 보지 못했다고 주장을 했지만, 누구나 두 작품을 나란히 마주하면 '표절'을 연상하듯, 프로파일러 어머니와 두 아들이라는 드라마 작가 지망생의 설정과 <너를 기억해>의 프로파일러 아버지와 두 아들의 설정은 지나치게 흡사하다. 더욱이 아들 중 한 명이 싸이코패스고, 그 아들의 존재를 착각한다는 설정에 이르르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기에, <너를 기억해>의 '표절' 시비는 법적, 혹은 절차적 문제와 별개로 두고 두고 <너를 기억해>와 권기영 작가의 짐으로 남을 것이다. 특히 작가는 전작 <내 연애의 모든 것> 첫 회, 아론 소킨의 미국 드라마 <뉴스룸>의 첫 회 설정과 유사한 설정을 그대로 본따와 논란이 되었던 바 있기에 더더욱 의심을 살 수 밖에 없는 처지인 것이다. 



셜록인 듯, 셜록같지 않은, 셜록같은 
그렇다면 표절의 문제를 차치하고 드라마로 들어갔을 때 <너를 기억해>는 어땠을까? 1,2회에 걸쳐 두 번의 범죄 현장에 남은 표식과 관련하여 화면에 각종 도표가 띄워지며 공감각적 이미지를 한껏 배가시키는 연출은 어디선가 본 듯 익숙하다. 거기에 이현(서인국 분)과 차지안(장나라 분)의 움직임을 따라 함께 움직이는 역동적인 카메라의 움직임 역시 익숙하다. 심지어, 2회에 들어서면서 차지안의 머리 꼭대기에서 놀며 차지안으로 하여금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도록 유도하는 이현의 스타일에 이르르면 떠오르는 한 편의 작품이 있다. 바로 영국 드라마 <셜록>이다. 

<너를 기억해>는 프로파일러 아버지 이중민(전광렬 분)와, 그의 앞에 나타난 싸이코패스 범죄자 이준영(도경수 분), 그리고 싸이코패스로 오해받은 아들 이현의 과거 사연을 한 축으로 한다면, 그 과거의 사연이 현재로 이어져 벌어지는 이현과 차지안의 진실을 향한 사건 수사가 또 다른 한 축을 고정한다. 그 중 현재에 방점을 둔 이현과 차지안은 역시나 한국 드라마 답게 사건을 수사하다 연애를 하는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적 설정을 가지고 있지만, 1,2회 이제 막 관계를 풀어가기 시작한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오히려 연인의 단계에 앞서 마치 셜록과 왓슨의 관계를 보는 듯하다. 천재 범죄학자로 미국에서 범죄학 관련 강의를 하고 뉴욕 경찰의 범죄 수사 컨설팅을 해주었다던 이현은 과거 사연과 관련된 메일을 받고 다짜고짜 한국으로 건너 와 한국 경찰의 컨설팅을 해주는 캐릭터이다. 캐릭터 소개에서 셜록인 양 한다지만, 드라마 속 그의 캐릭터와 설정은 과거의 사연을 제외한다면 셜록과 너무도 흡사하다. 거기에 그가 움직이는 동선을 따라가는 카메라의 움직임, 그리고 그의 사건 수사와 관련된 프로파일링을 설명하는 장면 역시 '셜록'과 흡사하다. 


이미 과거부터 이현을 스토킹했다는 사연을 차치하면, 이현의 뛰어난 범죄 추리 능력에 늘 허를 찔리고, 하지만 그의 오만방자한 태도에 분통을 터져하면서도, 사건 수사를 위해 그의 뒤를 허덕이며 쫓을 수 밖에 없는 차지안은 영락없이 여자 왓슨이다. 그렇게 <너를 기억해>의 현재 이현과 차지안, 두 사람의 캐릭터와 두 사람이 사건을 수사하는 장면들은 영국 드라마 <셜록>이 없었다면 존재하기 힘든 설정들이다. 단지, 스물 아홉 서인국이 연기하기에 능력자 이현의 캐릭터가 좀 버거워보이고, 아직은 여자 형사 차지안의 캐릭터가 몸에 배지 않은 장나라라는 단점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드라마 작가 지망생의 아이디어와 영국 드라마 <셜록>을 차치하고서도 <너를 기억해>는 흥미를 자아내게 하는 드라마이다. 한 싸이코패스 범죄자와 인연을 맺은 부자의 악연, 거기서 시작된 현재의 범죄, 저마다 하나씩 사연을 품은, 그래서 미스터리해질 수 밖에 없는 등장 인물들이 자아내는 궁금증, 그리고 그것이 아니라도 저마다 개성을 가진 등장인물들이 범죄 수사를 중심으로 얽혀들어가며 풀어내는 재미 등, 굳이 주인공을 '연애담'으로 엮지 않을 지라도 충분히 흥미진진할 드라마처럼 보인다. 부디 그 무엇을 본딴 아류나, 표절이 아니라 좋은 캐릭터의 향연으로 <너를 기억해>를 기대해 보고 싶다. 
 
by meditator 2015. 6. 24.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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