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영하는 말한다.

베스트셀러와 베스트셀러가 아닌 소설의 차이는 그저 운일 뿐이라고, 인기리에 잘 나가는 자신의 소설과 도서관 서가에 꽂혀 먼지가 쌓여가는 소설 사이에 더 잘 쓰고, 못 쓰고의 차이가 없다고, 단지 당대의 사람들이 무엇을 선택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당대 사람들의 선택을 당대의 시민 정신이라 치환해도 될까?

올해 들어 sbs 드라마 중 가장 시청률이 높았던 것은 sbs의 <야왕>이었다. 전체 드라마 중 가장 높은 것은 <백년의 유산>이다. 작년에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해를 품은 달>이었다.

<야왕>이나, <백년의 유산>, <해를 품은 달>에 2012,3년의 시민의 정서를 대변할 그 무엇이 있을까? 출충한 대본과 탁월한 연출력, 빼어난 연기가 있었을까?

김영하의 솔직한 고백이 다시 한번 적용되는 지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드라마를 볼 때만 해도 '괜찮은데' 하다가, 막상 시청률이 낮게 나오면 그걸 보는게 창피한 거라도 되는 것처럼 툴툴 털어대려고 난리다.

 

<내 연애의 모든 것>도 그랬다.

털어 먼지 안나오는 드라마 없듯이, 신하균의 초반 설정의 과도함, 국회의원이라기엔 너무 이쁜 이민정,정치를 말하는 건지, 연애를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는 내용에, 잔잔하기 이를데 없는 국회에서 연애하기 등, 양파 껍질 까듯이 까고 또 깔 것들이 투성이들이었다.

하지만, 16회, 여전한 정치 판세에서도 편가르기가 아닌 정책으로 다시 만나게 된 김수영(신하균)과 송준하(박희순)가 하나의 당을 꾸려가고, 초심이 중요하다는 김수영의 연설은 여전히 신선하고 뭉클한 희망을 느끼게 해준다. 그건 내가 그런 희망을 공감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랑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접두어처럼, 우리가 그것을 버리거나, 무시하거나 상관없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야 하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겠냐는 그 메시지는 뜨끔할 정도였다.

바로 그것이다. <내 연애의 모든 것>이 위치한 지점이, 시청률이 낮다니까 지레 외면하고, 이렇다 저렇다 품평을 하면서, 쉽게 리모컨을 돌려 버리고, 이 드라마가 진득하게 하고자 했던 이야기들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허긴 요즘 이 드라마처럼 진득하게 무언가를 말하는 드라마들이 드물기도 하니까. 하지만, 아주 적은 사람들이 들어주어도, <내 연애의 모든 것>은 주인공 김수영이나, 노민영처럼 결코 자신이 할 바를 주저하거나, 목소리 낮추지 않고 뚝심있게 하고픈 말을 다해내고야 말았다.

 

 

 

종영을 향해 달려가는 <내 연애의 모든 것>을 보다보면 눈시울이 뜨거워질 때가 있다.

작가든, 배우든, 연출이든 너무나 즐겁게(?) 최선을 다해 작품에 임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16회를 보다보면 이 드라마가 마치 '대박'을 쳐서, 지금 연일 화제가 되는 드라마 같다. 화면의 때깔이나 구도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고, 쪽대본의 흔적도 없다. 연기를 하는 배우들은 무에 그리 신이 나는지, 좋아 죽겠는 표정이다.

제작진도 사람인지라, 기자 간담회에서 모 배우가 말하듯이 논란이 되거나, 시청률이 나오지 않으면 스트레스가 많이 쌓인다고 한다. 그리고 시청자도 사람인지라 드라마를 보다 보면, 그 감정들이 전해지기도 한다. 시청률이 나오지 않자, 원래 하고자 했던 의도를 버리고, 이러면 잘 나올까, 저러면 잘 나올까 우왕좌왕 하는 모습이 전해질 때가 많다.

그런데 <내 연애의 모든 것>을 보다 보면 행복해 진다.

마치 이미 떨어진 시청률 따위! 라고 하듯이, 누군가를 낚기 위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우리와 함께 하는 단 한 사람을 위해서라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듯하다. 그러기에 그 어느 히트 드라마 못지 않게 화면도, 색감도, 줄거리도, 연기도 손색이 없다. 아니 즐겁게, 행복하게 하는 '엔돌핀'에 전염된다.

시청률 고공 행진을 하며 회마다 누군가를 핍박하고, 악다구니를 벌이고, 개연성없는 전개에 피곤해 하던 그 마음조차 '힐링'이 되게, <내 연애의 모든 것>에는 말이 되지 않는 것들이 없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도, 등장인물들도 연애도, 삶도 모두 합리적으로 풀어간다. 제대로 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한 뼘 더 나아가려고 하듯, 삶도 그렇게 조금 더 나아지게 노력을 하는 것이다.

어쩌면 일찌감치 구제불능이었던 시청률이 <내 연애의 모든 것>을 숨겨진 명작으로 남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연애의 모든 것>이 공중파가 아니라, 케이블의 드라마였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모두의 구미를 맞춰야만 하는 공중파가 아니라, 누군가의 취향에 맞는 사람들이 찾아보게 만드는 케이블 드라마였다면 지금처럼 찬밥 취급은 안당했을까? 이런 신선한 이야기도 다루네? 하며 호청자들이 즐거이 시청하는 드라마가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그랬다면 조금 더 좋은 평가를 받았을 텐데 아쉽기 까지 하다.

누군가 처음 시청률이 떨어졌을 때 제작진의 정치적 성향을 비난했던 것처럼 이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노민영으로 상징되는 진보 진영의 도덕적 우위에 정서적 본진을 형성한다. 하지만 그건, 현존의 누군가와 비슷하지만, 현존의 누군가를 꼭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한겨레 신문 5월29일자 이원재씨의 칼럼처럼, 일종의 '사회적 상상력'이었던 것이다.

사회학자 프레트 폴락의 말처럼, 사회 변화는 미래와 과거와 밀고 당기는 가운데 일어나고, 거기에 진보란 미래의 이미지를 끌고가는 사회적 상상력이었을 때, <내 연애의 모든 것>이 말하고자 한 것은 그 사회적 상상력으로 품어 낸 미래의 진보 이미지였다.

하지만 몇 번의 국회의원 선거와 보궐선거, 그리고 대통령 선거를 치뤄내며 정치권에서 진보 세력이 사그라 들었듯이, 이제 스펙에 골몰하고, 내 살기에 바쁜 사람들은 미래를 함께 할 사회적 상상력으로의 '진보'에 냉소를 보낸다. 물론 거기에는 진보 진영 스스로의 패덕도 크다.

그저 그런 시기에 여전히 꿈에 부풀어 순진하게 다른 너와 내가 손을 잡는 방법, 심지어 사랑을 하는 상상을 했으니, <내 연애의 모든 것>의 참담한 결과는 자초한 일이라 하겠다.

하지만 꿋꿋하게 5% 내외를 넘나들며 이 드라마를 지켜 본 누군가들로 인해, <내 연애의 모든 것>의 순수한 상상력은 짓밟히지만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내 연애의 모든 것>의 5% 시청률은 소중하다. 폄하될 것이 아니다. 여전히 잔존한 우리 사회 희망의 싹같기도 하다.

 

(사진; 뉴스엔)

 

섣부르게 연애와 정치의 콜라보레이션이 어설펐다 어쨌다 논하지 않겠다.

그렇게 따지면, <야왕>은 복수와 정치의 콜라보레이션이 훌륭해서 시청률이 좋았는가. 그저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박수쳐 줄 때가 아니었다고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을 뿐이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외면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흔들림없이 최선을 다해준 <내 연애의 모든 것> 제작지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짝짝짝짝짝!!!!

배우도, 제작진도 다음 작품에서 또 봐요~~~

by meditator 2013. 5. 30. 10:06

요즘 sbs드라마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시청률로 모든 것이 평가받는 세상에서 월화수목금토일, 아침, 저녁, 밤 10시대 미니 시리즈까지 단 한 편도 높은 시청률을 보이는 것이 없으니까. 새로운 해석이라며 조선판 패션디자이너라고 야심차게 시도했던 장옥정은 본래의 악녀 장옥정으로 리턴하는 강수를 뒀지만 집나간 청률이는 좀 처럼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작년 <옥탑방왕세자>, <더 킹 투 하트>, <적도의 남자>가 격돌한 수목드라마 대전에서 결국 <옥탑방 왕세자>를 승리로 이끌었던 신윤섭 피디가 정지우 작가를 만나 따스한 가족애를 내걸며 일일 드라마로 돌아왔지만 막장의 대가 임성한 작가와 맞물리면서 진가를 내보이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무리한 설정에, 퓨전이라고 용서하기에도 무리한 역사 해석, 그리고 연기 논란까지 잇달아 문제가 되었던 <장옥정, 사랑에 살다>를 제외하고는 현재 방영되고 있는 sbs 드라마들이 꼭 문제가 있어서 시청률이 나쁜 건 아니라는 거다. mbc주말 드라마 <백년의 유산>의 스토리는 개그콘서트의 패러디 대상이 될만큼 '막장'의 본류라는 건 누구나 다 공감하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그 드라마가 항상 주말 1위를 차지하였던 kbs주말 드라마를 제끼고 1위까지 하는 기염을 토하는데 뭐 어쩌겠는가. 털 먼지가 있든 없든 애꿎은 상대편 드라마들만 탈탈 털리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시청률은 하늘의 계시'라, 지금 단지 sbs드라마의 손을 들어주시지 않고 있는데, 그런 와중에서도 단지 시청률이 낮다고 폄하되는 몇몇 작품들에서 유독 안쓰러운 배우들이 있다. 유준상과 신하균이다.

 

 

 

 

유준상과 신하균은 묘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이 두 사람 모두 작년에 kbs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과 <브레인>을 통해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올해에는 두 사람 모두 sbs드라마 <출생의 비밀>과 <내 연애의 모든 것>에 출연하는 중이고, 공교롭게도 두 드라마 모두, 5~6%의 치욕적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시청률만 낮은 게 아니다. 한때는 그가 표현해낸 캐릭터가 하도 사랑스러워 '국민 남편'이었고, 얼마나 연기를 잘했으면 '하균신'이란 별칭을 얻었던 이 두 사람이 단지 몇 개월만에 다른 드라마에서 연기력 논란 혹은 과도한 설정의 불명예까지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거기에는 전작의 그림자 따위는 단호하게 지워버리고 전혀 다른 캐릭터로 돌아온 두 사람의 연기에 대한 사람들의 부적응이 클 것이다.

<출생의 비밀>에서 유준상은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잘 배운 미국 교포 출신의 엘리트 의사는 싹 지워버리고 고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말끝마다 '이 잡녀르~~"를 달고 사는 단순무식한 애기 아빠로 등장하는 것이다.

반면, 차갑기가 동짓날 저리가지만 그 속에서 연민이 뚝뚝 떨어지게 만들었던 브레인의 이강훈 쌤은 가운데 가리마의 대뜸 첫회 부터 비호감의 말들만 골라하는 싸가지 여당 국회 의원으로 등장해 그의 호청자들을 식겁하게 만들었다.

연극과 영화로 다년간 경험을 쌓은 두 사람은 이전 캐릭터의 영광에 기대는 것 혹은 이미지메이킹 따위는 개나 주어버리고, 새로운 드라마에 가장 어울리는 캐릭터로 돌아왔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어불성설 연기력 논란에 비호감 딱지 뿐이다. 연기를 잘 했을 뿐인데 새 드라마의 낮은 시청률의 책임까지 고스란히 떠앉게 된 처지가 된 것이다.

요즘은 제 아무리 전작 드라마가 40%가 넘는다 해도 전작의 후광 따위는 없는, 드라마 한 편을 보는 시간에도 수십번씩 채널을 돌리는게 여사된 세상에서, 시청자들은 그들이 제 아무리 전작에서 좋았다 하더라도 비호감 캐릭터로 돌아온 두 배우들이 호감이 될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을 두 배우는 톡톡히 배워갈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두 사람이 현재 출연하고 있는 <출생의 비밀>과 <내 연애의 모든 것>이 상상을 초월하는 낮은 시청률을 보이고 있지만, 그렇게 낮은 시청률로 폄하할 만큼 형편없는 드라마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데렐라 언니>의 김규완 작가가 모처럼 집필한 <출생의 비밀>은 제목에서 보여지는 상투적 '출비' 스토리가 아니라, 김규완 작가가 언제나 그래왔듯 가족이,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을 던지는 드라마인 것이다.

또한 <내 연애의 모든 것>은 이미 탄탄한 원작으로도 검증이 끝난 작품으로, < 보스를 지켜라>의 권기영 작가와 손정현 피디가 시청자들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도 작품의 질에 있어 흔들리지 않고 굳굳하게 원작의 메시지를 충실히 전달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담 초반에 지나치게 과한 설정으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빼앗긴 배우들의 패착에 모든 것을 돌려야 할까. 아니 그것보다는 지긋이 비호감 캐릭터가 호감이 될 때까지 기다려 줄 여유가 없는 이 시대 시청자들에게, 개콘 패러디가 딱 맞듯이 극적이지 않으면 참고 보아지지 않는 막장에 길들여진 시청자들의 기호의 탓이 더 클 것이다.

오히려, 그 와중에도 흐트러짐 없이 드라마를 지켜내고, 연기를 보여준 두 사람과 제작진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덧붙여, 낮은 시청률이더라도 좋은 드라마는 좋게 평가받을수 있는 여유있는 환경을 덧없이 바래보기도 하고.

by meditator 2013. 5. 23. 10:02

<내 연애의 모든 것>이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 16일 기자간담회를 보면, 제작진 측에서도, 혹은 혹자의 지적처럼, 로맨틱 코미디인 이 드라마가 너무 정치 풍자에 힘을 쏟기때문이라 시청률이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아니 애초에 대한민국에서 풍자를 화두로 한 드라마는 잘 되기 힘들다는 한계도 느끼는 듯하다. 그래서 앞으로는 조금 더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에 집중을 하겠다는 결의를 다졌고, 17일 방송분은 그걸 반영이라도 하듯이 김수영(신하균 분)과 노민영(이민정 분)의 두 사람에 보다 포커스가 맞춰져 진행이 되었다. 그렇다면 결과는? 5.6% , 그리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그런데 요즘 텔레비젼을 통해 방영되는 드라마 중 세태를 풍자한 드라마가 <내 연애의 모든 것>만이 있는 게 아니다. KBS2의 월화 드라마 역시 직장이란 '정글'을 철저한 갑을의 관계로 해부해 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직장의 신>이 매번 갱신하는 시청률에, 화제성으로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반면에, <내 연애의 모든 것>은 <보스를 지켜라>의 명콤비에, <브레인>의 신하균까지, 황금비의 구성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로서는 회복하기 힘들다는 5%대의 시청률을 보이고 있다. 이 결과만 놓고 보자면 세태 풍자가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풍자를 했는가가 오히려 관건이 되는게 아닐까?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난다'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직장의 신>을 본 사람들은 이 드라마에 공감을 한다. 빨간 내복을 입고 김연아의 죽음의 무도를 흉내내는 미스 김을 비롯해서 주인공 격인 배우들이 슬랩스틱에 가까운 연기를 해도, <직장의 신>을 보다보면 짠해지는게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즉, 내가 직장을 다니던 다니지 않던, <직장의 신>을 통해 벌어지는 일들이 내 이야기로 공감이 된다는 것이다. 자세히 보면 신참 정주리는 언제나 그녀의 선의로 인해 문제가 발생한다. 실제 직장에서 이렇게 착하기만 하고 문제만 일으키는 직원을 민폐라며 싫어하는데, <직장의 신>을 보다보면 그런 그녀가 이해가 되고 한없이 안쓰럽기만 하다. 그래도 주저앉지 않고 다시 일어나 뛰는 그녀가 얼른 좀 더 빛나는 크리스마스 트리의 전구가 되길 바라게 된다.

하지만 <내 연애의 모든 것>에는 바로 이 지점, 공감이 없다. 국회에서 벌어지는 세태 풍자, 그럴 듯하다. 하지만 풍자가 날선 비난을 넘어서 힘을 얻기 위해서는, 그것을 내 것으로 받아들여주고 공감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로맨틱 코미디는 남녀 주인공 누군가의 시점이 되어 잠시 사랑에 빠지는 장르일진대, 과연 <내 연애의 모든 것>이 그걸 해내고 있을까?

똑같은 풍자극임에도 불구하고, <직장의 신>이 등장하는 내용 하나하나가 화제가 되는 반면, <내 연애의 모든 것>이 무엇을 해도 '뭥미?'의 반응을 얻는 건, <직장의 신>이 우리들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지는 반면, <내 연애의 모든 것>은 저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여야의 각축전은 익숙하지만 쟤네들 이야기이고, 여당이지만 여당같지 않은 정치에 환멸을 느끼는 김수영이나, 열혈 야당 투사 노민영이 우리가 아닌 것이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내 연애의 모든 것>의 정서적 기조는 야당 노민영 의원의 도덕적 우위, 혹은 정당성을 바탕으로 한다. 쌈박질을 해도 국회 내에 진정성을 가진 소수 정당 노민영 의원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노민영 의원을 보면 연상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지난 대통령 시기를 통해 노민영 의원에서 연상되는,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던 소수 야당의 국회의원이 국민들에게 너무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자기 당과 관련된 문제에서 비도덕적인 행동을 보여줌은 물론, 물의를 일으켰음에도 자중하기는 커녕 대통령 후보까지 나서서, 텔레비젼 토론에 까지 등장했던 것이다. 거기서 그녀는 대놓고 누군가를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다며 갖은 독설을 퍼부었다. 물론 그런 그 사람을 보면서,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을 받은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마 뒤이어진 냉정한 평가는 그 사람의 안하무인 독설이 결과적으로 보수층이 결집을 낳았다는 것이다. 드라마는 그녀를 지지했던 사람들만 보는게 아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도덕적 우위 혹은 정당성마저 잃은 사람을 롤모델로 드라마의 여주인공이다. 과연 그녀가 사랑스럽게 느껴질까?

 

차라리, 갓 정치판에 등장한 앳되고 순수한 보좌관이라면 모를까? 말끝마다 도덕을 들먹이며 여당을 통렬하게 논박하는 녹색당의 노민영 의원이 자꾸 어색하게 느껴지는 정치 풍자는 공감의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다. 대통령 선거를 통해 여당의 대통령 후보는 근소한 차이로 이겼지만, 50%를 겨우 넘는 그 근소한 차이도 무시할 수 없거니와, 여든야든, 그 과정을 통해 가장 뼈저리게 느낀 것은 '그 놈이 그놈이니 걔중 좀 미더운 놈을 뽑자'라는게 아니었을까? 하지만 언제나 뽑아놓으면 저들만의 리그가 된다는 걸 유권자들이 더 잘 안다. 그런 저들 중 누군가가 연애를 한다한들, 누가 그리 관심을 가지겠는가. 풍자를 덜 하건, 연애을 더 논하건, 이것이 <내 연애의 모든 것>의 태생적 한계일 듯하다.

by meditator 2013. 4. 18. 09:39

참 이상하다, 술자리 안주 중에서도 최고의 안주가 정치인들 씹는 건데, 막상 드라마를 통해 희화화되는 정치인, 그리고 거기서 피어오르는 사랑은 여전히 대한민국 사람들에겐 드라마로 쉽게 받아들이기엔 힘든 영역일까? 3회에 접어들은 <내 연애의 모든 것>의 시청률이 눈에 띄게 확 떨어졌다. 2011년에 방영된 같은 작가, 같은 연출자의 <보스를 지켜라> 때는 초반 재벌 회장의 재판을 피하는 꼼수를 적나라하게 묘사해서 화제가 되었던 것과는 달리, 그때보다 더 신랄하게 정치판을 묘사하는 <내 연애의 모든 것>에 대한 반응은 냉랭하다. 역시 연애사에는 재벌집 도련님이 나와야 제격이란 말일까?

 

2013년의 <내 연애의 모든 것> 그리고 2011년 방영되었던 <보스를 지켜라>는 전혀 다른 스토리의 드라마임에도 <내 연애의 모든 것>을 보고 있노라면 자꾸 <보스를 지켜라>가 떠오른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작품 모두, 손정현 연출에, 권기영 극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재벌가에서 정치판으로 판이 바뀌었을 뿐 그 속에서 움직이는 상황과 두 주인공의 캐릭터조차 흡사하다.

 

<보스를 지켜라>가 방영당시 화제를 끌었던 것은 그 얼마전 사회면에서 화제가 되었던 재벌 회장님의 유별난 아들 사랑, 그에 이은 재판 과정에서의 휠체어까지 탄 꼼수를 그대로 드라마로 끌어들여서이다. <내 연애의 모든 것> 역시 다르지 않다. 단지 사회면에서 정치면으로 영역만 변경되었을 뿐이다. 배경이 된 국회 내의 정치인들은 당리당락을 위해서는 억지 입원에, 대리투표 등 물불을 가리지 않고, 그런가 하면 룸싸롱에 모여 희희덕거리며 애국을 들먹이며 야합한다. 즉, 두 드라마 모두 마치 사회고발 장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적나라하게 우리 사회 기득권층의 행태를 고발하는 것으로 드라마의 포문을 연다.

 

거기다 주인공 캐릭터 조차 비슷하다. <보스를 지켜라>의 남자 주인공 차지헌(지성 분)은 재벌집 아들이지만 어떻게 하면 아버지의 일을 물려받지 않을까를 골몰하는 심지어 x맨이기까지 한 날라리이다. <내 연애의 모든 것>의 김수영(신하균 분) 역시 여당 의원이지만 공개 토론회에 나가서 대놓고 여당의 행태를 비난하고 떼거리 정치엔 결코 참여 따위 하지 않는 호시탐탐 의원직 사퇴를 노리는 아웃사이더이다. 편집증에 공황장애라는 병력을 지닌 차지헌의 독특한 캐릭터나, 김수영의 천상천하 유아독존식 캐릭터는 남이 보면 '또라이'이기엔 큰 차이점이 없다.

 

반면에 <보스를 지켜라>의 노은설(최강희 분)이나, <내 연애의 모든 것>의 노민영(이민정 분)은 우직하게 정의롭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정의로움은 언제나 면접을 보면 100% 떨어지고 겨우 얻은 직업이란게 비정규직이거나, 국회에 겨우 2석 밖에 없는 진보적인 당의 젊은 의원이기 때문이다.

허위의식에 가득찬 아버지, 혹은 선배들의 세계에 신물나 하지만, 그것을 그저 개인적인 일탈로 밖에 배출할 줄 모르던 남자 주인공(차지헌, 김수영)들은, 여주인공을 만나, 그녀들과 아웅다웅하고, 그 과정에서 그녀들의 진정성, 정의로움에 눈떠가게 되는 애정물이자, 성장물인 것이 두 작품의 공통적 특징이다.

 

 

 

그런데, 배경만 다르다 뿐이지 우리 사회 지도층을 조롱하며 시작되는 드라마, 그 속에서 좌충우돌 싹트는 사랑을 다룬다는 점에선 같은데도, 두 작품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다르다. 아마도 그것은, 제 아무리 술자리 안주로 씹어대도 경제는 사적 영역이요, 정치는 공적 영역이라는 마음 속 영역 표시가 강한 탓도 있겠다. 재벌집 아들이 양아치인 것은 허용이 되지만 정치인이 '또라이'인 것은 거부감이 드는.

그도 아니면, 말끝마다 정의를 외치는 노민영 의원의 그 말이 다가오지 않는 것처럼, 진보라는 이름의 사람들 조차도 더 이상 믿게 되지 못한 정치혐오주의가 주인공에 대한 감정 이입에 장애가 되는 것일 지도.

 

아니 무엇보다, 2011년에 비해 더욱 살기 힘들어진 2013년의 대한민국 사람들은, 로맨틱 코미디라고, 사랑 이야기라고 환타지를 기대하며 들여다 본 드라마에서 거울처럼 현실을 조우하게 된 불편함이 가장 컸던 것은 아닐까. 전형적인 '클리셰'로 굴러가는 <남자가 사랑할 때>가 치고 올라가는 것을 보면 이 편이 가장 설득적이기는 하다. 여전히 사람들은 드라마를 통해 현실의 사랑보다는 환타지를 원한다고.

하지만, 가장 불가능할 것 같은, 대한민국의 여야 정치인이 야합이 아니라, 진정으로 소통을 하고 사랑을 나누게 된다는 것, 이것이 사실은 가장 환타지이다. <보스를 지켜라>를 통해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재벌집 아들의 거듭나기를 다뤘던 것처럼, <내 연애의 모든 것>도 우리 현실에선 거의 불가능할 소통과 화해를 논할 것이다. 환타지라도 한번 꿈꿔볼 만하지 않을까.

권기영 작가와 , 손정현 연출 화이팅!

by meditator 2013. 4. 11. 09:38

우리나라의 모든 드라마들은 의학 드라마면 병원에서 연애하기, 법률 드라마면 법원에서 연애하기 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자, 거기에 하나의 기록이 더 덧붙이게 됐다. 국회에서 연애하기. sbs의 수목 드라마 <내 연애의 모든 것>은 노골적으로 대한민국에서 서로 다른 당적을 가진 국회의원 두 사람의 연애사를 드라마의 주제로 삼겠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같은 당도 아니고, 그것도 철천지 원수와도 같은 정치적 색깔이 다른 상대당의 국회의원 두 사람이 연애를 한다니! 이게 말이 될까?

 

이에 대해 <내 연애의 모든 것>이 첫 방영된 같은 날 <썰전>에서 전직 국회의원이었던 강용석 의원은 입장이 적대적인 두 당의 국회의원이 연애를 하는 게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고 언급을 하고 있다.

강용석 의원은 국회의원 외유(홍준표 의원이 말하기를 국회의원 활동의 꽃이라고 했단다, 외유를)를 들어, 실제 그 나라에 가서 하는 일이란게, 그 나라 사람을 만나면 외교, 그게 아니라 그 나라 실정을 보고자 한다면 외유인데, 대부분의 외유는 선심성 여행일 경우가 많고 그러다 보면 시간이 남아돌아 충분히 남녀 사이에 로맨스가 싹틀 마음의 여유가 생길 수도 있다고 구체적 예를 들어서 까지 설명하고 있다.

굳이 예를 들어서 그렇지, 결국 저분들 '영감님(드라마 속 국회의원은 나이가 많건 적건 여자건 남자건 꼬박꼬박 영감님이다)의 실생활이 생각만큼 그렇게 사상과 직업에 투철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상징적 표현이 아닐까?(회의 중 느긋하게 인터넷을 감상하다 걸린 심재철 의원의 마인드만 봐도 ) 전쟁 속에서도 적을 사랑할 수 있는 게 남녀 사이인데, 하물며 직업적으로 적대적인 상대방이랑 연애하는게 무에 그리 어렵겠는가!

 

<내 연애의 모든 것>은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 코스를 그대로 밟아가고 있다. 이른바 싸우다 정들기?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들을 언제나 처음엔 서로 다른 입장 혹은 오해로 인하여 미워하다 결국 정이 들어 버린다.

서로 미워하는 상대라, 그러고 보면 그런 설정에 대한민국 국회만큼 어울리는 곳도 없겠다.

강준만 교수는 그의 책 [증오 상업주의; 정치적 소통의 문화 정치학]에서 지난 10년간 대한민국을 관통해온 정치 문화가 바로 '증오'라고 일갈한다. 그가 말하는 증오란,

'비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명분, 영향력, 이익의 실현이나 확대를 위해 증오를 주요 콘텐츠로 삼는 정치적 의식과 행태를 말'하는 것으로 1987년 대선 이후 대한민국은 엄밀하게 비상적 정치 상황은 없었음에도 여당이나 야당 모두 국민들의 증오를 이용해 자기 당의 이익을 실현하려 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그리고 등장하는 두 주인공이 국회의원이라는 걸 사실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이전투구의 국회를 현장감있게 그려낸다.

드라마 속 국회에서는 현실처럼 언론법 통과를 두고 여야가 대치한다. 그 와중에 여당의 '똘끼'넘치는 신참 국회의원 김수영은 토론회에서 여도 야도 아닌 기존의 모든 정치권과 그들을 뽑아준 국민에 대한 독설로 화제가 되고, 여당은 그를 이용해 언론법을 날치기 통과를 해버린다. 그에 대해 가장 전투적으로 반발하는 것은 의회에 의석이 2석 밖에 없는 군소 야당의 노민영 의원이고, 날치기 통과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그만 실수로 소화기로 김수영 의원의 머리통을 가격함으로써 두 사람의 극적인 조우가 시작되게 되는 것이다.

드라마 속 야당의 국회의원 노민영은 한때 순수하게 국민을 위해 폭력이 없는 정치를 구현하겠다 마음먹은 적도 있었지만, 스스로 국회밥 1년 반에 남은 것 '증오'밖에 없는 열혈 투사가 되었다.

화가 감정, 곧 함축적으로 순수한 감정인 반면, 증오가 다른 사람이나 집단에 대한 공격적 충동이 구조화한 복잡한 감정(고든 올포트)이라는 정의처럼, 노민영은 과열되어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불의의 여당을 향해 폭주하다 김수영과 부딪치게 된다.

 

<내 연애의 모든 것>의 배경이 되는 국회, 그리고 두 주인공들은 뉴스에서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베껴 놓기라도 한 듯이 똑같은 행동을 한다.

코미디가 따로 없다! 던 말 그대로 그걸 옮겨놓으니 그대로 로맨틱 코미디의 과장된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마치 물의를 일으켜 이제는 케이블과 종편을 오가며 입담으로 먹고사는 명문대 출신의 국회의원 강용석을 보는 듯한,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김수영과, 정의를 추구하지만 현실에서는 쌈닭이 되어버린 노민영 또한 머릿 속에 자연스레 떠올려지는 누군가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 연애의 모든 것>의 실감 지수는 100% 아니 200%에 가깝다.

하지만 실감이 곧 공감으로 흐르지는 않느다.

비록 술 자리의 안주로도 마구 씹혀지고 희화화되는 것이 무색하지 않는 현실의 국회이지만, 과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감님'이라고 깍듯이 부르듯 권위 앞에서는 약한 대한민국의 보통 사람들이 한껏 비틀어진 국회와 국회의원들의 연애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그 희화화를 조장하기라도 하듯이, 연극이나 영화에서 봐야 어울리는 듯한 김수영 역의 신하균의 조금은 과장된 듯한 연기와, 국회의원이니 그렇다고 보지만, 어딘가 어설퍼 보이는 노민영 역의 이민정의 연기가, 조금 넘치거나 조금 모자라다보니, 어디까지 두 사람의 연애의 공감대를 얻어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그래도 국회에서 연애하기라니! 그것만으로도 <내 연애의 모든 것>은 신선한 기대를 부풀게 한다.

by meditator 2013. 4. 5.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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