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 프로그램은 많다. 하지만 그 대부분의 '남과 여'의 프로그램들은 '사랑'을 다룬다. 연예인들의 가상 결혼 이야기를 다룬 <우리 결혼했어요>나, <님과 함께>처럼, 2015년 종영한 <마녀 사냥>의 경우도 남녀간의 솔직한 이야기를 다룬다고 했지만, 그 솔직한 담론의 대부분은 만남과 교제를 전제로 깐다. 진짜 '민낯'의 남성과 여성의 이야기는 없을까? 그 시도를 3월 27일 새로이 시작한 ebs의 <까칠 남녀>가 시작했다. 




일상 곳곳에 숨어있는 불편한 이야기. 그 속에 숨은 불평등과 편견에 화난 프로불편러들의 까칠한 토크. 이것이 새로 시작한 <까칠 남녀>의 입장이다. 그렇다면 그들을 화나게 한 일상의 불평등과 편견은 어떤 것일까? 

<까칠 남녀>는 3월 27일 '남성성과 여성성'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는 '공주도 털이 있다'에 이어, 4월 3일 금기어가 된 '피임'을 전면적으로 다룬 '오빠 한번 믿어봐, 피임 전쟁'을 다루었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편견과 불평등의 담론, 그 시작은?
남녀 차별에 대한 솔직한 고백 혹은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문제 제기라고는 했지만, '가부장주의에 입각한 남성 중심 사회'인 현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문제 제기의 중심은 우리 사회가 짊어지우고 있는 여성성의 문제일 수 밖에 없다. 그러기에 첫 회, '공주도 털이 있다'는 과연 남성성이란? 여성성이란? 하고 말문을 열지만, 곧 여성이 털을 기르는 구체적인 사안을 통해 우리 사회가 여성들에게 가하고 있는 '여성성'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다. 

겨드랑이 털, 겨털이란 칭해지는 이 단어에 대해 '빅 데이터'의 상당 부분이 '웃기다'로 규정내려지는 대한민국, 거기서 한 술 더 떠서 제모 안한 여자와 사귀느니, 뱃살 나온 여자랑 사귀겠다란 대답은 젊은 남성 56%가 답했다는 현실의 데이터에서 보여지듯이, 그 '웃긴' 겨털이 여성의 문제가 되면, 혐오와 공격의 대명사로 치환되는 우리의 현실이 바로 첫 번 째 회차의 주제다. 

가슴 털을 보이는 남자 배우는 '섹시'하다고 칭송받지만, 시상식 장에 제모를 안하고 등장한 미 여배우 롤라커크의 모습이 화두가 되고, 내 몸을 사랑하자는 취지에서 털을 기른 여성이 혐오스런 대상으로 공격을 받는 현실, 그것을 통해 '법'은 어기더라도, 사회문화적으로 길들여진 '아름다움'에 대한 '내면화'로써의 '미감(美感)을 짚어보며 그 이미 내면화된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를 가진다. 

프로그램은 미지의 x의 방을 등장시키고, 그 방 주인을 '추리'하며 그 날의 주제를 파고 들어가는 식으로 시작된다. 이미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를 이끌어 내던 박미선이, 이번에는 그 '관습화된' 남자와 여자 이야기가 아닌, '민낯'의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그런 박미선과 함께 에로 영화 감독으로 성에 대해 솔직함의 대명사인 봉만대 감독과 당당한 여성의 대명사로 인정받는 서유리, 빅데이터 전문가 서영진, 기생충 학자 서민, 성 칼럼니스트 은하선이 때론 솔직하게, 때론 까칠하게 그 날의 주제를 풀어나간다. 



그렇게 우리 사회가 강요한 '여성성'의 문제를 짚어보는 것으로 시작한 <까칠 남녀>는 2회 보다 더 솔직한 주제인 '피임' <오빠한번 믿어와, 피임 전쟁>을 가지고 찾아온다. oecd 낙태율 1위, 콘돔을 안쓰는 문화인 대한민국의 심각한 현실이 주제가 된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나누는 '성', 하지만 현실은 '임신'에 대한 공포는 고스란히 '여성'의 몫으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미혼 여성에게만? 아니 미혼 여성 낙태율 17%의 거의 두 배에 가까운 기혼 여성의 낙태율 33.3%에서 보여지듯이, 기혼, 미혼의 문제가 아닌 남녀 일반의 문제다. 

하지만 그 남녀 일반의 문제는 패널로 등장한 중년의 봉만대 감독이 적절한 피임 방법이 아니라고 확정된 체외 사정을 자랑스레 말하는 해프닝에서 보여지듯이, 여전히 대다수의 사람들이 '피임'법에 무지하거나, 여성의 책임으로 전가하거나, '기분, 감정' 등의 문제로 치부하는 안이한 현실에 대해 프로그램은 패널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통해 짚어간다. 

결국 이야기의 방향은 리처드 기어의 '노 콘돔, 노 섹스'의 슬로건을 앞세워 '가장 유효하고 경제적이며 합리적 피임 방법'인 콘돔에 의한 피임으로 귀결된다. 즉 여성만의 임심 공포가 아니라, 남자와 여자가 함께 하는 성, 그런 선택 과정에서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서 '남성 피임 방식인 콘돔'으로의 유도다. 

사회적 의식을 내면화한 편견에 대한 문제 제기 
무엇보다, 첫 회 여성의 겨털에 이어, 피임를 다룬 <까칠 남녀>는 그린 라이트 식의 '솔직'함과는 궤를 달리한 편견과 오해를 걷어내고자 하는 솔직함이다. 우리의 편견이 남자가, 혹은 여자가가 아닌, 피임에 대한 사회적 강제가 임신과 출산에 대한 국가 경제적 접근에서 시작되었듯이, 1915년 질레트 면도기의 광고와 함께 시작된 여성의 제모 관습에서 보여지듯이, 우리가 무심히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대다수의 의식들이 '사회'적으로 훈련되고 교육받은 '생각'이라는 것을 제기하고자 한다. 

즉 임신 공포가 여성의 책임이 된 세상의 이면에는, 정관 수술로 강제로 수술대로 끌려 들어갔던 남성의 피해가 존재하듯, 여성과 남성 이분법 그 이상의 '사회적 의식'에 대한 '제고'를 요청한다. 단지, 그 사회적 의식이 만든 세상이 남성이 지배적인, 그래서 여성이 사회적 을인 결과를 가져왔기에, 그 경직된 사회에 대한 문제 제기가 결국 보다 많은 부담을 안고 있는 여성의 문제 제기에서부터 시작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아쉬운 점도 남는다. 피임에 대한 회차는 가장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방식으로서의 '콘돔'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과 인식 제고에 많은 시간을 제공했지만, 여성이 개발 도상국이냐란 발끈한 반발을 불러왔던 정영진의 '미군이 있다고 자주 국방을 안할쏘냐'라는 문제 제기도 그냥 허투루 넘어설 부분은 아니라고 보여진다. 즉 남성의 콘돔 사용율도 심각하게 저조하지만, 콘돔을 사용하지 않으려는 남성에게 '철 좀 들어라' 식의 유도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감정적 성적 대립을 조장하는 자세이다. 또한 네덜란드 등의 30%에 비해 우리나라의 경구 피임약 사용율 5%에서 보여지듯이, 성적 자기 결정권의 방식으로서 여성의 피임 방식에 대해서도 보다 긍정적인 입장이 아쉬웠다. 

즉 방송 초반 보여지듯이 우리 나라 청소년의 대다수가 '성'에 대해 조숙한 반면, '피임' 등의 방법에서 무지한 현실, 아니면 청년들의 경우, 친구나 인터넷을 통한 '외전'으로서의 성 지식의 습득이 현실인 상황에서, <까칠 남녀>가 '편견'과 불평등'이란 담론에 입각하여, 남성 중심의 피임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겠다는 취지는 적절했지만, 어쩌면 콘돔 대신 랩을 쓰는 지금의 열악한 현실은 그보다 더 근본적인 '피임', 그리고 '성'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계몽'이 절실한 상황이 아닐지라는 우려도 드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7. 4. 5.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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