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쌍끌이'라고, 2015년 올 한해에 천만 영화가 두 편이나 탄생했다. 하지만, 그렇게 한국 영화가 천만의 호황을 누리는 와중에, 소리없이 사라지는 수많은 작은 영화들이 있다. 그리고 이제 조만간 <기적의 피아노>도 그런 영화 중 한 편으로 기록될 것 같다. 

9월 3일 개봉된 <기적의 피아노>는 개봉을 한 지 일주일도 채 안된 시점에서 개봉관을 찾기가 힘들다. 설사 개봉관을 찾는다 하더라도 상영 시간 또한 만만치 않다. 아침 7시 10분, 꼭두 새벽부터 영화를 보러 간다 호들갑을 떨어야만 겨우 볼 수 있다. 거대 배급사인 '롯데'의 배급이라지만, 그 마저도 언제까지 허용될 지 모를 일이다. 이 영화를 보고 아이들과 함께 단체 관람을 마련하려 했던 어른들은 이 '험란한' 상영 시간에 제 풀에 주저앉고 만다. 좋은 영화라 다같이 보고 싶다는데, 볼 수가 없다. 

천재 소녀 예은, 그 누군가는 스타킹 등 예능에 등장했던 앞이 보이지 않은 이 꼬마 소녀를 기억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도 기억이 밝은 누군가의 몫일 뿐이다. 많은 예능에, 혹은 미디어로 소비되었던 수많은 일반인들처럼, 세간의 관심에 잠시 반짝 빛났다 사라진 소녀, 날 때부터 안구가 없어, 그 어떤 발달된 의학적 시술로도 다시 앞을 볼 가능성이 없는, 하지만 세 살 때부터 스스로 피아노를 익혀 천재 피아니스트라 박수를 받았던 소녀, 이제는 초등학생이 된 천재 소녀 피아니스트의 후일담을 <기적의 피아노>는 담는다. 



천재 소녀 예은이의 이야기를 통해 나지막히 울리는 '좋은 어른'으로 살아가는 법
천재 소녀였던 예은이의 피아노 여정을 담은 <기적의 피아노>는 2015년 제천 국제 음악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듯이, 음악에 대한 영화이다. 하지만, 그 예은이의 음악을 통해 전달되는 것은, 음악이 아니라, 그저 장애인으로만 살아갈 예은이의 꿈을 길어 올려 준 '어른들'의 모습이다. 

'스타킹'에도 출연해 '천재'라 칭송받았던 예은이, 예은이는 엄마의 노래 소리만을 듣고 피아노를 연주할 만큼의 능력을 지녔다. 그래서 아직도 간간히 앞이 보이지 않는 그녀를 찾는 곳이 있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세상의 관심은 점점 무디어져 간다. 그리고 그저 천재였던 예은이가 그녀의 꿈인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한 길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소리로 피아노를 익힌 예은이는 당연히 악보를 볼 수 없다. 아직 점자 책도 겨우 더듬거리며 읽는 예은이에게 피아노 악보를 익히는 것은 난망이다. 그러기에 악보에 적힌, 원 작곡자의 의도대로 그대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이 기본인 피아니스트의 길은, 그 첫 걸음부터 삐걱거린다. 엄마의 회초리를 눈물로 감내하며 연습했음에도 불구하고 또래 아이들과의 콩쿨 예선조차 통과가 안된다. 박자의 길이는 제멋대로이고, 자유롭게 건반을 노닐던 손가락은 악보와 따로 논다. 놀이요 꿈이었던 피아노가 현실에 가로막히자 예은이 스스로 피아노 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영화 중 예은이가 홀로 걷는 연습을 한다. 늘 누군가의 손을 붙잡고 다녔던. 그래서 자기 보다 어린 아이의 손조차 놓기를 두려워 하던 예은이가 걷기 연습을 한다. 휠체어를 타야 움직일 수 있는 아버지는 예은이와 개울에 가서, 물을 좋아하는 예은이가 홀로 개울까지 내려갈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준다. 엄마는 예은이가 맹인용 지팡이를 써서 혼자 걸을 수 있도록 독려한다. 

예은이의 피아노에 대한 영화인 <기적의 피아노>에서 이렇게 예은이가 홀로 걷는 연습을 하는 장면이 한 동안 등장한다. 그렇게 예은이가 이제 누군가의 손을 놓고 홀로 걷는 연습을 하듯, 천재 소녀라는 명망을 넘어, 진짜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첫 걸음을 내딛는 모습은 서로 오버랩된다. 엄마의 말처럼, 그저 장애인을 넘어, 스스로 세상에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한 첫 걸음이다. 

그런 첫 걸음에서 예은이는 두려워 한다. 종종 눈물도 흘린다. 그리고 상처를 받고 한없이 자신 속으로 수그러 든다. 예은이의 좌절은 꿈만큼 깊다. 그런 예은이를 깨워 다시 세상으로 돌려세우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그리고 <기적의 피아노>는 그 과정의 이야기이다. 



가끔 예은이는 자신이 세상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슬퍼한다. 하지만, 그런 예은이의 슬픔에 대한 엄마의 반응은 여유롭다. 그저 세상 사람들이 다르듯이, 너도 그렇게 다른 것일 뿐이라고, 스스럼없이 넘어간다. 아빠가 몸을 못움직이고, 다른 사람들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듯이, 엄마가 뚱뚱하고, 니가 날씬하듯이, 그렇게 서로 다름일 뿐이라고 유머러스하게 넘긴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예은이의 운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진짜 엄마'를 궁금해 하는 예은이에게, 같이 사는 엄마가 진짜 엄마라고 말하며. 선생님의 레슨 내용을 제대로 이해못해 슬픈 예은이가 쪼르르 엄마 품으로 매달리면 엄마는 그저 그렇게 아이를 안아주듯이, 예은이의 장애도, 슬픔도 엄마의 품안에선 스르르 풀어져 버린다. 

소리를 듣고 음악을 익힌 예은이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음악을 하는 길은 보이지 않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첫 발자국처럼 두렵다. 심지어 예은이는 눈이 보이지 않는다. 악보를 쉬이 읽을 수도 없다. 그렇게 세상과의 싸움에서 한없이 무기력해진 한때 천재였던 아이, 그런 아이의 좌절에 부모가 먼저 주저앉지 않는다. 내 아이가 남들처럼 할 수 없다는 것에 속상해 하는 대신에, 예은이의 다른 점을 찾아내고 알리고자 애쓴다. 그래서 아버지는 소리를 듣고, 피아노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예은이의 능력을 알리고자 애쓰고, 그 아버지의 노력이 예은이를 알아본 눈밝은 어른들의 따스한 마음을 통해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라는 창작품으로 완결된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또 다른 능력을 통해 자신감을 얻는 예은이는 '피아니스트'라는 여정에도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기적의 피아노>는 그저 한때 천재였던 소녀 예은이가 이제 어엿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성장해 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아이의 꿈과, 좌절에 대한 어른들의 이야기로 승화된다. 아이를 키우는 방법, 방향, 그리고 교육이라는 근본적 물음을 던진다. 부모로서, 그리고 아이들이 자라는 세상을 책임지는 어른들에 대한 물음표로 끝을 맺는다. 어쩌면 예은이의 감동 스토리로 마무리 될 수도 있는 이야기가 더 근본적이고 큰 질문으로 향해 갈 수 있었던 것은, 슬픔과 감동을 지그시 누르고, 예은이와 엄마, 아빠, 그리고 주변 어른들의 이야기를 담담히 바라보았던 영화적 시선에 의지하는 바 크다. 세상 그 어떤 부모의 열혈 후원보다도, 고구마 순을 다듬으면서도 내 아이를 향해 귀를 열고, '다시'를 외치는 엄마의 한 마디가 뭉클하다. '진짜' 엄마를 찾는 아이에게 그럼 난 '진짜 엄마가 아냐'라고 되묻는 엄마의 앙탈이 아름답다. 번듯한 부모와 연습을 반복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늘어진 티를 입고, 아이를 꼬옥 안고, 행복했던 모짜르트를 생각하며 연주하라는 엄마의 당부가 감동적이다. 눈이 보이지도 않는 아이를 고개를 숙여 들여다 보아주는, 소리없이 숨죽여 흐르는 눈물을 알아채주는 부모가 따스하다. 좌절에 호들갑 떠는 대신, 내 아이가 잘 하는 것을 찾아내려 애쓰는 어른들이 미덥다. '내 엄마가 나를 믿어주었듯이 나 역시 예은이를 믿는다'는 엄마의 마지막 말이 울컥한다. 그리고 영화는 그렇게 어른들의 배려와 보살핌을 진득하게 담아낸다. 목소리높여 무언가를 전하지도 않고, 애써 감정을 쥐어짜지 않아, 오히려 더 가슴을 울리고,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영화를 간간히 채우는 맑은 하늘, 그리고 아름다운 꽃은, 그것을 바라볼 수 없는 예은이의 시선과 대비돠어, 마음을 아득하게 하고, 느닷없이 등장하는 차 소리, 바람 소리는 평범한 사람들이 느낄 수 없는 '예은이'의 세계를 상상하게 돕는다. 그리고 뭉클한 예은이의 사연 사이담담해서 더 감정을 울컥하게 만드는 재능 기부 박유천의 나레이션, 그리고 예은이의 재능을 창작 음악으로 승화시켜 함께 무대에 세워 준 피아니스트 이진욱의 나즈막하지만 풍부한 음악이, <기적의 피아노>를 평범한 감동극을 넘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와 어른들이 함께 보며 생각해 볼 작품을 만드는데 일조한다. 

by meditator 2015. 9. 6.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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