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나이 오십에 이르러 하늘의 뜻을 알게 되었다고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2016년 대한민국 오십대의 남자들은 하늘의 뜻을 알기는 커녕, 평생 그들이 믿고 살아왔던 뜻이 무너지는 '청천벽력'을 겪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바로 이제 '가정'으로 돌아온 그들에게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들 때문이다. 




'정말 이혼이란 건 생각도 안해 봤어요. 낼 모레면 60이고, 조금 있으면 7~80인데, 이혼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박승호(가명)

그 꿈에도 생각해 보지 않은 이혼이 중년 남자들에게 현실이 됐다. 대한민국 중년 남성 10명 중 아홉 명이 아내로 부터 이혼을 요구받는다고 한다. 전체 이혼 건수에서 중년의 이혼이 젊은 층의 이혼을 뛰어넘은 지도 오래, 1995년 8.2%에 불과했던 중년의 이혼이 2015년 29.9%로 늘었다. 그리고 그 대다수가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는 경우라 한다. 

<sbs 스페셜>은 중년 이혼의 현실을 밝히기 위해 이혼 위기에 놓인, 혹은 아내로부터 이혼을 당한 남성들의 사례를 중심으로 풀어간다. 58세 배정효씨는 은퇴 후 전원 생활을 한다. 하지만 그의 전원 주택에는 아내가 없다. 그는 어머니가 들어가면 뭐가 떨어진다고 질색을 하던 주방에 들어가 홀로 끼니를 챙긴다. 그곳에 부재한 그의 아내는 일산에서 홀로 어린이집을 준비중이다. 아직 이혼을 하지 않은 주말 부부인 이들, 하지만 만나서 반가운 것도 잠시, 하루를 못넘기고 해묵은 감정을 들춰내며 언성을 높인다. 그리고 그 싸움의 끝에 아내는 이혼을 들먹인다. 젊은 시절 동시 통역사로 일하던 강철규씨는 동시 통역 일을 그만두고 택시 운전을 하게 되면서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 받았고, 그 결과 지금 산속 주차장의 작은 승합차에서 홀로 생활하는 신세가 되었다. 역시나 중년의 이혼남 박승호씨(가명)는 매일 눈물의 일기를 쓰며 아내에게 빌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이혼'이었다. 





자기가 잘못해서 전과가 있거나 이래서 당하는거야 어디다가 하소연도 못하지. 그런데 나름대로 열심히 했는데도 바라보는 시선은 적으로 바라보고 이러니까 정말 이거는 아니지 진짜 -배정효

이혼을 요구당하거나, 이혼을 당한(?) 남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저 평생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온 죄밖에 없는데, 경제적으로 무능력해지자 아내와 가족이 자신을 버렸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은 아내와 이혼을 했을 뿐인데 공통적으로 가족으로부터 외면을 당했다. 그들의 가족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혼을 당한 남성들이 대부분 자신들의 이혼 이유를 경제적인 이유에서 찾는 반면, 이혼을 요구한 아내들의 대답은 다르다. 대부분 우리나라 이혼 부부들의 원인이 '경제'보다, '성격 차이'이듯이 아내들은 경제적인 어려움보다도 참을 수 없는 남편의 억압적이고 가부장적인 태도를 이혼의 제일 우선으로 든다.

이렇게 만날 수 없는 평행선처럼 이혼을 했음에도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중년 부부의 위기를 다큐는 붕괴하는 가부장제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이혼 상담사임에도 남과 여의 사고방식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듯이, 대한민국의 남성들에게 남편의 자리란 곧 경제적 책임을 떠맡는 자리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가정을 내팽겨 둔 채 바깥 생활에 몰두했고, 가정에 돌아와  바깥에 나가 돈을 번 자신을 행세했다. 전통적인 아내들이 그렇게 바깥일을 하는 남편의 무관심과 폭압적인 태도, 언사를 '가족'을 위해, 아이들을 위해 '인고'해 왔다면 2016년 대한민국의 아내들은 더 이상 그렇지 않다는데 현재 위기의 시발점이 있다. 

그 예전 50이면 인생의 고개 2/3을 넘어선 노년기에 접어든 시기라면 100세 시대가 일컫는 현대의 50은 그 예전 40대처럼 아직도 한참을 더 살아내야 하는 말 그대로 '미들 에이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식을 키우기 위해 사사건건 아내를 무시하고 '노예'처럼 부렸던 남편을 참아왔던 아내는 이제 '자식'을 키우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시기도 지나고, 돈도 벌어오지 않는 남편을 참아낼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남편들은 돈을 벌어오지 않아 자신을 버렸다지만, 그저 '돈'에 의지해 가정 내에서 군주처럼 살아왔던 가부장적 남편들에겐 아내는 물론 다른 가족들까지의 외면이 필연적 결과이다. 시대가 변화하고 아내와 가족들의 인식이 변화하는 동안 마치 기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공룡처럼 변화된 세상에서 여전히 '가부장'이기를 원하는 남편들의 부적응이 엄청난 중년 이혼으로 드러나는 것이라 다큐는 진단한다. 

나는 그동안 주로 무슨 일을 했느냐 하면 주로 토목에 도로도 만들고 교량도 만들고 뭐 이런 일을 주로 했어요. 그래서 힘들었으니까 집에 와서라도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좀 대우 받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거야.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진짜 그건 일도 아니더라고." -배정효 

남자 이혼상담사는 여성 상담사들에게 여자들과는 다른 남자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해 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그의 부탁을 받은 여성들의 표정은 냉랭하다. 그도 그럴 것이, 21세기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을 살아온 여성들은 그 남성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고 맞추려 애쓰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스스로 '노예'처럼 살았다 생각한 여성들은 그래서 이혼 앞에 두려울 것이 없다. 남편들은 이혼으로 전부를 잃지만, 오히려 여성들은 이혼을 통해 '자유'로워진다 생각한다. 

그래서 다큐의 모색은 다시 한번 남성의 입장이 되보는 대신, 아내의 입장을 이해하는 쪽을 택한다. 전원 생활을 하며 홀로 끼니를 때우던 배정효씨는 몇 달생의 생활 후에야 비로소 지난 세월 아내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자신이 돈을 번다고 유세를 하며 바깥을 하는 동안, 아내는 매일 매일 쳇바퀴처럼 되풀이 되는 가사 노동에 시들어 왔었다는 것을. 막상 하루만 안해도 태가 나는 가사 노동을 해보고 토목 사업을 했던 배정효씨는 자신이 했던 바깥 일이 별게 아님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때서야 비로소 아내가 하겠다는 어린이집을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물론 여전히 그는 다음 세상에 여자로 태어난 자신과 같은 남편과 살아봐야 온전히 아내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가부장의 자리에서 내려온 그의 존재만으로도 아내는 그를 견대낼 여유가 생긴다. 

아내는 물론 가족마저 잃고 싶지 않다면 더 늦기 전에 얼른 남편들이 '가부장'의 자리에서 내려올 것을 다큐는 권한다. '돈'마저도 그의 편이 되지 않는 세상에서. 


by meditator 2016. 4. 18.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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