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다가왔다. 꼭 차례상을 준비하지 않더라도 연휴를 맞이하는 주부의 입장에선 며칠동안 먹거리의 준비를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리기 십상이지만, 먹는 사람의 입장에선, '살'부터 걱정해야 할 만큼, 명절의 음식은 푸짐하다. 아마도 열의 아홉의 사람들이 추석하면 떠오르는 것에, 송편이니 하는 추석 먹거리가 들어가 있지 않을까. 한 해의 대표적 명절을 기억하는 것조차, 먹거리의 맛이다. 이렇게 우리네 삶은 '먹거리'와 그 '맛'에 좌우된다. 


마치 추석 특집이라도 되는 듯, 9월 1일부터  3일까지, <다큐 프라임>은 <맛이란 무엇인가>를 3부작으로 방영했다. 

그 시작은 1부 <맛의 비밀>이다. 맛에 대한 과학적, 인문학적인 접근이다.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진 인기 쉐프 박찬일이 등장하여, 사람들이 느끼는 맛의 본원을 탐색해 간다. 
우리가 학교 과학 시간에 배웠듯이 혀를 통해 인간이 느끼는 맛은 맵고, 쓰고, 달고, 짜고, 신 다섯 가지의 맛이다. 다큐는, 과연 인간이 이 맛을 언제부터 느끼게 되었는지부터 시작된다. 어린 아기에게 달고 짜고 신 맛을 맛보여 주었을 때, 아기는 이미 맛을 분명하게 인지한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임신 6개월차 주부에게 다양한 맛을 보여주었을 때, 뱃 속의 아기는, 엄마가 맛본 음식에 따라 다른 반응을 느낀다. 즉, 인간은 이미 탄생 이전부터, '맛'을 느낀다. 


물론 맛에 대한 반응도 다 다르다. 아기들이 단 맛에 입맛까지 다시며 좋아하는 것과 달리, 쓴 맛에는 진저리를 친다. 아기들만이 아니다. 어린 시절 쓴 약에 대해 울고불고 했던 기억을 누구나 가지듯이, 대부분의 어린 아이들은 쓴 맛에 질색이다. 물론 이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이 가능하다. 인류에게 있어 쓴맛은, 독이 들어 있는 음식에 대한 경고이다. 신맛 역시 상한 음식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본능적 반응이 강한 어린 연령의 아이들일 수록, 쓰고 신 맛에 대해 거부감이 강하다. 

하지만, 인류는, 그 역사를 거듭하며 맛을 발전시켜 왔다. 오늘날 쓴맛의 커피가 대중적인 기호품으로 등극한 것을 보면, 맛의 진화는 획기적이다. 어디 그뿐인가. '아지노모도'라는, 이른바 조미료의 감칠맛은 인간이 다시마 등을 통해 개발해낸 맛이다. 우유가 발효되어 치즈가 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풍미 가득한 향 역시, 감칠맛의 본산이다. 이렇게, 과학 시간에 배운 다섯 가지 맛을 넘어선 수만가지의 맛을 인간은 느낀다. 음식 문화가 발달한 나라일 수록, 맛에 대한 표현이 풍부한 것처럼. 

하지만 정작 맛의 실체는 따로 있다. 눈과 코를 가리고 사과와 양파를 구분하지 못하는 실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간이 느끼는 맛은 그 '향'에서 비롯된다. 음식을 이루는 98%의 물질은 무색, 무취, 무미이며, 그 나머지 2%만이 맛을 좌우하는데, 바로 거기에, 극소량의 '향'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향'은 바로 인간의 추억과 연관된다. 급격하게 변화되는 사회 속에서 사람들이 즐기는 음식은 대부분 오랜 역사를 가진 것이다. 즉, 인간의 입맛은 보수적이다. 그런데, 이 보수적인 입맛의 시작은, '향'이다. 미각을 잃은 말기암 환자에게 어린 시절 엄마가 즐겨 해주시던 시레기 볶음을 주자, 그 구수한 향에 눈물이 흐른다. 놓았던 수저를 들 힘이 생기게 한다. 이렇듯,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향'으로 부터 비롯된 맛은, 어린 시절 자신의 추억과 연관이 있다. 노인이 되어서도 쉽게 식성을 바꾸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어린 시절 길들여진 맛에 평생 노예이기가 쉽다. 집 문앞에서부터 코를 자극하는 김치찌개 냄새에 마음이 푹 놓인 기억을 누구나 다 가지고 있으리라. 

그래서, 역설적으로 추억의 맛은 위험하다. 엄마가 직장을 다니는 바람에, 인스턴트 음식과 육류 등에 익숙해진 유치원 아이의 입맛은 벌써, 변화되어 있다. 신선한 채소와 과일 등에 거부감을 느낀다. 바로 여기서, 교육적 관점에서 '맛'의 훈련이 필요로 된다. 

실제 슬로푸드 운동을 주창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이미 뱃속에서 부터 엄마가 즐겨 하는 음식에 길들여지기 시작한 아이들의 평생 건강을 위해, '밥상머리'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인공적으로 조미한 가공된 맛에 쉽게 중독되는 인간의 특성을 고려할 때, 어린 시절부터, 건강한 입맛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스턴트식 조리 등으로 인해 상실된 맛을 찾기 위한 노력도 경주된다. 마크로 바이오틱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심지어, 재료 본연의 맛을 넘어, 흙 맛을 강조한다. 우리가 잃었던, 음식 본연의 맛을 되찾는 것이, 곧 우리의 건강을 되찾는 것이요, 생명을 살리는 길이라는 것이다. 

3부작의 <맛이란 무엇인가>는, 맛에 대한 다수의 다큐가 그러하듯, 과학적, 인문학적 접근으로 평이하게 시작된다. 그러던 것이, 맛을 분석하다, 추억으로 넘어가며, 변주가 시작된다. 하지만, 다큐의 변주는, 그저 추억을 그리는 것으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우리가 우리의 추억을 잊지 못하듯, 우리의 아이들에게 건강한 맛의 추억을 되찾아 주어야 한다는 강고한 목소리로 마무리된다. 

실제 아이들과 함께 1주일간의 맛의 훈련에 들어간다. 처음 채소를 맛보는 것만으로도 질색을 하던 아이들은, 스스로 수확하고 만들어보며 낯선 그 음식들에 친근해져 간다. 심지어, 게임을 하다보니, 구역질까지 하던 처음의 반응이, 그저 무심히 집어 먹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슬로푸드 운동의 주창자는, 각 학교 별로, 텃밭을 만드는 것이 필수라고 강조한다. 식물이 자라는 것을 직접 보고, 키우고, 수확한 기쁨을 누린 것을 맛으로 연결하는 것이, 어린 시절 맛 교육의 필수 코스라는 것이다. 


할아버지와 종종 함께 하는 밥상을 받은 아이들은 요즘 아이들답지 않게, 어른들의 먹거리에 거부감이 없다. 아이들이라고 해서 달리 먹일 것이 아니라, 어른들과 함께 하는 먹거리 문화가, 건강한 입맛의 시작이라는 것도, 추석을 앞둔 <다큐 프라임>이 강조한 평범 속의 진리이다. 결국 맛에 대한 과학적 접근에서 시작된 <맛이란 무엇인가>는 <다큐 프라임>만이 할 수 있는 추석 특집이 되었다. 

물론 아쉬운 점은 남는다. 엄마가 바뻐 인스턴트 음식에 길들여진 아이를 위해, 엄마는 바쁜 시간을 쪼개서 제대로 된 밥상을 준비한다. 엄마와 함께 하니, 알록달록 채소도 먹기 시작한다. 맛에 대한 교육적 원론은 원칙적이다. 하지만, 바쁜 시간을 쪼개서 밥상을 준비해야 하는 엄마의 사정은 안중에 없다. 맛벌이를 하느라, 늦은 밤까지 학원을 돌려야 하는 고달픈 서민들의 생활에 대한 배려 역시 없다. 유기농 채소를 사먹을 형편이 안되는 가난한 엄마의 주머니 사정은 고려치 않는다. 마치 명절 준비를 온전히 해내야 하는 주부가 빠져버린 추석 선물이 된 것이다. 


by meditator 2014. 9. 4.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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