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영화 <해빙>이 누적 관객수 총 116만4966명으로 손익 분기점을 돌파했다. 꾸준히 박스 오피스 3위를 유지해왔던 소기의 성과다. 무엇보다 반가운 점은 '반성'와 '회의'의 기조를 가진 '스릴러' 장르 영화가 모처럼 '손익 분기점'의 문턱을 넘어섰다는 점이다. 


2016 <비밀은 없다>, <미씽, 사라진 여자>, 그리고 2017의 <싱글 라이더>까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반전'을 곁들인 '스릴러', '미스터리'를 통해 접근해 봤지만 결국 모두 대중의 관심을 환기시키는데 실패했다. 때로는 지나치게 실험적인 장르적 접근이 주제를 괴리시켰고, 여전히 우리 사회에 지배적인 타자에 대한 백안시가 아예 접근조차 봉쇄하기도 했다. 그리고 '반전'이라는 떡밥이 영화를 집어 먹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떤 핑계에도 불구하고 이들 영화의 부진을 낳은 가장 기본적인 요인은 <어쩌다 어른>에서 사회심리학자 하태균씨가 지적한 이른바 '비현실적 낙관주의'의 영향이 가장 크지 않을까 싶다. 가능성이나 현실과 상관없이 '낙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고픈 심리가 현실을 냉정히 재단하고 비판하며 되돌아보는 '실존'적 기조의 영화들에 대한 '저어'하는 기조를 형성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그래서 현실은 불가능해도 '통쾌하게' '한 방' 치고 보는 영화들이 대체적으로 '흥행'의 순위를 달린다. 덕분에 평론가들이 보기엔 작품적 완성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영화들이 인기를 얻는다. 마치 시청률 30%의 고지를 넘보는 (닐슨 코리아 수도권 기준 화요일 27.1%) <피고인>처럼 현실적으로 따지면 엉성한 구성이지만 탈옥까지 감행하며 진실을 향해 달려가는 주인공의 속시원한 활약을 대체적으로 선호하는 것이다. 

<해빙>과 <싱글 라이더>의 같고도 다른 길 
그런 '지배적인 한국인의 사회심리'에도 불구하고 <해빙>이 꾸준히 박스 오피스 3위를 지키며 손익 분기점을 넘었다는 지점에서 박수를 받을 만하다. 그렇다면 <해빙>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해빙>과 얼마전 개봉한 <싱글 라이더>는 공교롭게도 '가장의 몰락'을 다룬다. 그리고 두 영화 모두 '반전'을 통해 '가장'의 실체를 폭로한다. 그런 점에서 두 영화는 모두 '반성'적 시선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반성'을 다루는 방식에 있어 두 영화의 길은 달라진다. 



<싱글 라이더>가 한국에서 출세와 성공에 독주하던 가장 강재훈(이병훈 분)이 이제 그 모든 것이 무너진 순간, 홀로 호주에 남은 아내와 아이의 삶 속으로 유영해 들어가며 영화는 철저히 삶을 반추하는 자세를 지닌다. 그리고 그 '반추'하는 시선은 '반전'을 통해 경악과 충격 대신, 안타까움으로, 그리고 '삶의 방향성'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진다. 진짜 이 영화에서 아쉬운 것은 '반전'의 용도이다. '반전'이 남긴 문제 의식이 해프닝으로 덮여버렸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해빙>의 반전은 이 영화의 발목을 잡을 정도는 아니다. 영화 <해빙>은 홀로 아직 개발이 채 이루어지지 않은 신도시로 대중 교통 수단인 버스를 이용해서 떠나는 가장 승훈(조진웅 분)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한때는 강남에서 병원을 개업했지만 이제는 이제 막 개발이 시작된 도시의 의원에서 하루 종일 내시경 검사나 해야 하는 처지의 '고용'인이 된 의사. 하지만 영화는 미처 그의 추레한 처지에 이입하기도 전에 그가 세든 빌라 1층의 정육점 식당 주인 성근(김대명 분)과 그의 아버지 정노인(신구 분)의 이상한 행동으로 시선을 잡아끈다. 

승훈과 성근, 두 가장의 섬뜩한 대결 
내시경 수술 중에 자신의 살인 행적을 고백한 정노인, 그 노인의 말에 홀려 승훈은 정육점 냉동고에 있을지도 모를 시신의 '머리'에 집착한다. 그리고 영화는 중반까지 의심하는 승훈과 그런 승훈을 더 의혹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성근의 대결 구도로 진행된다. 이런 주된 갈등으로 인해 승훈의 이혼이나, 아들의 양육, 그리고 그를 찾아온 아내의 실종 등 주인공의 실종적 문제들은이 갈등의 회오리 안에 휩쓸려 버리게 되는 것이다. 

아내가 실종되고 의심이 가는 성근 부자 대신 승훈이 경찰의 의심을 받는 상황에 이르기까지, 관객들은 '승훈'의 관점이 되어 영화를 따라간다. 덕분에 그의 몰락과 이후에 드러나는 진실은 충격을 완화시킨다. 심지어 마지막 추가 영상같은 마무리까지. 영화는 승훈이 의심을 받는 지점에 이르러 승훈의 의심을 밀고가는 대신, 암전의 효과를 환기시킨다. 문득 그의 방문 앞에서 멈춰지면 어두어지는 화면을 통해 관객은 문득 지금까지 자신이 보아온 것의 진실을 되짚게 된다. 그리고 드러나는 진실, 하지만 관객은 충격보다는 보여지는 진실이 '프레임'의 문제였음을 깨닫게 된다. 그때부터 폭발하는 무너진 중산층 가장을 열연하는 조진웅의 연기, 그리고 새로운 프레임을 통해 사건의 진실을 '설명'하는 영화로 인해 허겁지겁 다시 새로운 서사 속으로 빠져든다. 



영화는 묘하다. <해빙>을 통해 드러나는 건, 성공이란 환상이 풀려난 중산층 가장의 처절한 몰락의 생태계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 '몰락'의 생태계에 던져진 가장의 추레한 모습을, 그와 대비되는 또 다른 외국인 아내를 맞이하는 등 그와는 다른 계급의, 또 다른 가장의 모습을 통해 장식한다. 어쩌면 싱글라이더의 강재훈과 승훈은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그가 보인 몰락의 행로가 주는 심리적 충격파는 중산층 가장 전체의 대변자인듯한 강재훈과 그로 부터 파기된 한 비정상적 인물처럼 보이는 승훈을 통해 다른 색채를 가지고 전달된다. 또한 그의 처절한 몰락조차 마지막 성근 부자의 에필로그 등을 통해 한 줄기 '구원' 하지만 그 '구원'마저 봉쇄된 아이러니한 상황으로 '페이소스'의 여지를 남긴다. 

사실 영화 초반 이미 보여지듯이 '범죄'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조건에 놓인 것은 몰락한 승훈이다. 하지만 관객은 그가 여전히 번듯한 '의사'라는 이유만으로 쉽게 그의 의심에 동조한다. 영화 초반 간호사는 늘 긴 팔만 입는 그의 행색을 지적하지만, 그런 힌트조차도 성근의 초라한 행색에 덮여버린다. 그러면서 영화는 조진웅과 김대명의, 가장과 가장의 섬뜩한 심리 대결로 나아간다. 승훈의 처지는 난감하지만, 아버지 대에서 부터 아내를 갈아치우는 수상한 부자의 '핏빛' 직업은 더더욱 시선을 잡아끄는 것이다. 이런 관객들의 '속물적' 편견에 힘입어, 영화는 순조롭게 감독이 펼쳐놓은 그물 사이로 나아간다. 

승훈의 의심조차도 유의미해지는 결말, 결국 이는 몰락한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이 사회의 주도적 계층이라 자부하는 화이트 칼라 계층과 그런 그들을 비웃는듯한 '전근대적인 폭력적 가부장제'의 대결이지만, 결국 이런 저런 가장들의 행태가 귀결되는 궁극적 지점은 언제든 편의적으로 '여성'을 희생양으로 삼는 우리 사회 '남성주의'이다.  <싱글 라이더>와는 또 다른 방식의 '실존'에 대한 반성이자, 반문이다. 
by meditator 2017. 3. 15.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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