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포 세대, 2011년 '복지 국가'에 대한 한 신문의 특별 취재 기사에서 처음 등장한 단어다. '불안정한 일자리, 학자금 대출 상환, 기약없는 취업 준비, 치솟는 집값 등 과도한 삶의 비용으로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하염없이 미루거나, 포기하는 청년층'을 일컫는 단어였다. 하지만 나아지기는 커녕, 해가 갈 수록 삶의 비용은 상승하지만, 그 삶의 비용을 감당할 '젊은이들의 소득'에는 더욱 가차없다못해, 약탈에 가까운 세상에서 젊은이들은 포기할 '꺼리'를 추가한다. 연애와 결혼, 출산에, 인간 관계와 집을 포기하더니, 이제 거기에 '꿈'과 '희망'까지 더해, 칠포 세대가 등장했다. 여기에 '건강'과 '외모'까지 포기한 구포 세대, '보통의 삶'이 로망이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희망'이 사치가 되는 시대, 그 시대 젊은이들의 이야기는 하지만 여전히 tv 속에서는 '로맨스', '가족극' 등의 소재로써만 소용되기가 십상이다. 그런 가운데 14회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젊은이들의 눈물겨운 고군분투를 '다큐'가 아닐까 싶게 실감나게 그려가는 <자체 발광 로맨스>는 발군이다. 하지만, <자체 발광 로맨스>가 '다큐'가 아닌 이유는, 그 현실 속에서 애써 '판타스틱'한 '로망'을 품어보려 하기 때문이다. 



제 남자예요 
하우 라인의 '은장도'. 은호원(고아성 분), 도기택(이동휘 분), 장강호(이호원 분). 한강 자살 특공대 동지로 이 시대 루저들의 표상으로 등장했던 이들, 서현(김동욱 분)의 배려아닌 배려(?)로 하우라인 비정규직으로 입사해 꿈에 부풀었던 것도 갖은 비정규직으로서의 수모와 고생, 거기에 '낙하산'이라는 오명으로 마음 고생까지 하며 가까스로 정규직 심사까지 도달했던 세 사람의 희비가 엇갈렸다. 은호원과 장강호가 정규직으로 채용된 반면, 도기택은 그 대열에 합류하지 못한 것이다. 

인생에는 다음이 있으니 괜찮다던 도기택, 하지만 그도 결국은 홀로 화장실에 들어가 오열하고 만다. 그의 오열에는 동료들보다 좀 더 곡진한 사연이 있으니, 바로 이제야 다시 본 궤도로 회복할 가능성을 보인 오랜 연인 하지나(한선화 분)와의 관계 때문이다. 

공시생으로 매번 미역국을 먹는 앞날이 불투명한 도기택에게 이별을 통보했던 하지나. 그녀가 바랬던 건 자신을 빛나게 해줄 멋진 스펙의 남자였다. 그녀 역시 회사 일보다는 쇼핑과 소개팅을 주업으로 살아가던 처지. 그런 그녀의 눈 앞에 그녀가 이별했던 도기택이 비정규직 사원으로 등장한다. 보잘 것없는 도기택대신 있는 집안과 가진 남자를 찾아 방황하던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도기택은 헌신적인 태도를 보이고, 그런 그의 태도에 하지나의 마음도 조금씩 움직이는데. 그러나 정작 마음이 열려가는 하지나와 달리, 기택은 자신의 처지로 인해 그녀를 포기하려 한다. 대신 정규직이 된다면 당당하게 그녀의 앞에 나서겠다 했는데.......

하지만 하지나는 정규직에서 탈락한 도기택을 다른 사원들 앞에서 당당하게 '제 남자예요'라고 밝힌다. 또한 도기택에겐 '과분한 여자'가 되겠다며 상심한 그를 품어준다. 이 상황 자체로만 보면 흔한 '로코'의 극적 반전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체 발광 로맨스>라 이를 설득해 가는 과정이다. 그저 흔한 '로코식 반전'이 아니라. 거기에는 극 초반 이른바 '김치녀'라 세간에서 야유하는 캐릭터의 전형으로 등장했던 하지나란 여성의 성장이 포함된다. 어떻게든 일하는 대신 괜찮은 남자를 잡아 결혼을 하는게 성공이라 생각했던 그녀가 도기택의 등장과 함께 하우라인의 대리로써 점점 자기 몫을 찾아간다. 그렇게 일과 함께 달라지던 그녀는 선배인 싱글맘 조석경(장신영 분) 과장의 충고를 통해 '취집' 대신, 일을 통해 자기 성취를 하고, 그 성취의 동반자이자, 지원자로서 도기택의 '과분한 여자'가 되기로 한다. 이처럼 하지나-도기택의 사랑은 결혼은 당연히 포기하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현실에 기반하면서도, 그런 젊은이들의 새로운 로망으로서의 '사랑'을 '과분한 여자'의 캐릭터로 제시한다. 



제 힘으로 살아볼게요 
도기택과 달리 이전의 취업 면접에서 놀라운 스펙과 달리 자신없는 태도로 인해 내리 '미역국'을 먹었던 장강호는 하우라인에 들어와 꾸준한 성실성과 능력으로 인해 상급자 조과장의 눈에 들어 무난하게 정규직의 길에 들어섰다. 하지만 정작 그에게는 정규직의 길보다 더 어려운 관문이 남아있으니 바로 '가족'과의 관계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스펙을 가질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울 수 있었던 풍족한 집안 환경, 하지만 부모님은 자신들의 기대에 못미친 아들 장강호가 스스로 목숨을 버리려 할 만큼 마땅찮아 한다. 하우라인 정규직이 된 장강호, 부모님은 기택과 함께 보잘 것없는 자취방에서 지내는 생활을 버리고 이제 다시 부모님 그늘 아래 풍족한 삶으로 돌아오라 한다. 

여기에 다시 장강호에게 말 한 마디로도 위로와 힘이 되어주던 조과장이 등장한다. 그녀 역시 강호처럼 사회 생활의 출발과 함께 집안으로부터 독립했던 경험이 있던 바, 그 생활을 회고하며 힘들어지만, 비로소 '어른'이 된 느낌이었다는 소회를 밝히며 강호의 '어른됨'을 축하한다. 어느새 '멘토'가 된 조과장의 말에 강호는 그 예전 '마마보이'로서의 복귀 대신, 아직도 낯설고 힘들지만 기택과의 자취방 생활을 선택한다. '제 힘으로 살아볼게요'라는 선언은 또 다른 이 시대 청춘의 선언이다. 가진 것이 없어서 고민하는 청춘과 달리, '캥거루 족'이라는 단어가 우리 시대 청춘의 또 다른 표상이듯, 부모의 그늘이 곧 스펙이 되는 세상 속에서 '청춘'의 또 다른 도전, 어른됨에 대해 드라마는 말한다. 



이건 취업 사기라고 생각합니다. 
사고뭉치, 기존의 정규직 평가표로 보면 당연히 떨어져야 마땅한, 그래서 도기택 대신 정규직이 된 은호원의 처지는 사실 애매모호한 지점이 있다. 그녀가 죽을 위기에서 겨우 살아나 응급실에서 만난 서현에 의해 하우라인이라는 낙하산이 되었듯이, 마찬가지로 늘 고개를 수그리다 결국은 할 말은 하고야 마는 '도발'적 비정규직 은호원에게 또 다른 키다리 아저씨 서우진(하석진 분)이 없었다면 과연 그녀의 정규직이 가능했을까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낙하산 비정규직이란 처지에 고개를 숙이는 대신, 발품을 팔아 열심히 했고, 노오력은 하되, 꺽이지는 않고 할 말은 하고 보는 그녀의 정규직 전환은 '을'을 내연화시키며 자신을 꾹꾹 눌러담는 이 시대 청춘들에게 하나의 새로운 이정표가 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서우진의 그늘을 지울 수 없는 정규직 은호원, 그녀는 역시나 그녀답게 14회 마지막 정규직을 볼모로 젊은이들을 낚는 회사의 공모원 응모 사항에 반기를 든다. '이건 취업 사기입니다.'라며. 취업 사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울며 겨자먹기로 '스펙'의 한 줄을 채우기 위해 공모전을 전전해야 하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 비정규직 혹은 정규직이라도 하급자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상황에 대해서도 할 말을 꿀꺽 삼켜야 하며 어느덧 자신이 부속품이 아닐까란 자기 모멸감에 시달리는 또 다른 청춘들의 한계를 은호원은 도발한다. 그리고 그렇게 굴러들어온 복을 스스로 버리며, 다시 한번 어쩌면 '또 다른 낙하산'일 지도 모를 그녀의 행운을 스스로 찢어내며 도전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이렇게 <자체 발광 오피스>의 은장도는 다큐에서 흔히 보던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스테레오 타입이다. 그들은 삼포, 오포, 칠포 이제 구포를 하며 '포기'는 당연하다며 보통의 삶을 꿈꾸는 것도 사치라 여기는 세대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런 세대에게 '꿈'와 '희망'을 열어보이고자 한다. 하지만 그 '희망'과 '꿈'은 그들에게 '거저' 오지 않는다. 낙하산이란 행운은 결국 스스로 극복해야 할 또 다른 딜레마이자, 관문으로 그들에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 관문을 통과하며 쭈그리고 한없이 고개를 수그리던 자신감없는 청춘에서 이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알고,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어른'으로 성장한다. 그렇게 드라마는 힘들지만 자기 스스로 자신의 삶의 한 걸음을 떼어가며 '자체발광'하는 '청춘'들의 도전기를 곡진하게 그려가고 있다. 

by meditator 2017. 4. 28. 16:58
|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