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알고 싶다> 이후 김상중이 맡은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화제를 모은 tvn의 새 프로그램 제목은 <어쩌다 어른>이다. 제목처럼, 이제 4회를 맞이한 프로그램은 어쩌다 보니 '어른'이 된 어른들의 푸념이 풍성하다. <어쩌다 어른>이 정의한 어른은 이 시대의 사람들이 바라보는 어른을 정확하게 드러낸다. 즉, 이 시대의 어른이란, 나만 빼고 란다. 즉, 나이가 오십이 되도, 육십이 되도, 그리고 칠십이 되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다수는 아직 자신이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왜곡된 자기 인식(?)은 프로그램의 제목처럼 '어쩌다 보니 어른이 되어버린 삶'에 대한 회환과 토로로 귀결된다. 마음은 청춘인데 어느새 아버지가 되어 어깨 양쪽에 잔뜩 '책임'만을 짊어진 채, 그 누구도 알아주는 이 없이 쓸쓸하다는 것이, 프로그램의 정서요, 그를 서로 위로하는 것이 프로그램의 취지이다. 어디 <어쩌다 어른>에 등장한 여전히 철딱서니없는 어른들 뿐이랴, 우리 사회의 모든 세대는 다 저마다 자신이 몰려버린 세대의 위치에 적응하지 못한 채, '어쩌다'라는 수식어를 붙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천만의 영화 <국제 시장>은 아버지 세대로 밀려버린 전후 세대를 위로하려 하고, 이제 <사도>를 통해 아들을 죽인 아버지의 눈물조차 이해하려 애쓴다. 




'어쩌다 어른'이 된 세상에 '어른'의 이야기
그렇게 '어쩌다 어른'이 된, 하지만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철딱서니의 세상에 <인턴>은 신선하다. 어쩌면 이질적이기까지 하다. 왜냐하면, 기꺼이 어른이 되고자 하는 어른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사랑할 때 버려야 하는 아까운 것들>, <왓 위민 원트>의 낸시 마이어스가 만든 <인턴>은 그녀의 전작들에게서 연상되는 그 분위기를 이어간다. 아내를 사별하고 직장에서 은퇴한 채 노년의 나날을 무료하게 보내던 70세의 벤(로버트 드 니로 분), 그는 우연히 거리에 붙은 시니어 인턴 모집 광고를 보고 창업 1년만에 220여 명의 직원을 두게 된 줄스(앤 해서웨이 분)의 회사에 노크를 하게 된다. 그렇게 만나게 된 서로 다른 세대의 두 사람, 벤과 줄스, 그들이 서로 갈등하며 이해해 가는 과정을 영화는 다룬다. 

영화 속 벤, 줄스의 직장이 있던 그 장소에 있었던 전화번호부 회사에서 40여년간 부사장의 자리까지 근속했던 그는 늘 그가 정갈하게 차려입는 양복, 이제는 앤틱한 희귀템이 되어버린 가방, 늘 챙겨두는 손수건에서 보여지듯이, 이제는 그들의 은퇴와 함께, 그리고 경제 위기와 함께 사라져 간 미국의 전형적 중산층을 상징한다. 그런 그를 고용한 줄스는, it 시대를 배경으로 한 아이디어 상품을 매개로 한 홈쇼핑 산업에서 성공한 21세기의 전형적 ceo를 상징한다. 그렇게 영화는 이제는 사라져가는 미국의 이전 세대의 대표적 인물과, 그리고 이제 미국을 이끌어 가는 신흥 세대의 대표적 인물을 등장시켜, 그들의 이해와 화해를 그려냄으로써, 암묵적으로 '세대간 화해'를 모색한다. 그런 면에서, <인턴>은 이른바 그간 헐리웃 영화가 전형적으로 그려왔던 세대간 화해의 해피엔딩의 공식을 답습한다. 

하지만 똑같은 주제의 답습이라고 해도, 그것을 답습하는 주체가 '낸시 마이어스'인 한에서는 그 질감과 깊이는 달라진다. 서로 이질적인 세대와 문화의 충돌을 영화 속 주된 설정으로 끌어왔던 낸시 마이어스가 끌어온 세대는 이른바 미국의 전형적 아버지 세대와, 그와는 전혀 다른 삶의 구성을 가진 젊은 여성 ceo이다. 영화 속 벤은 '가부장'으로서 '미국'의 부를 이루어 낸 아버지 세대다. 그의 정갈한 옷차림과 갖춰진 매너에서 보여지듯이, 그는 전 세대의 미국의 가치관을 상징한다. 그런 그가, 삶의 '구멍'이 난 노년의 삶을 메꾸기 위해 다시 한번 '인턴'으로 줄스의 회사 생활에 도전하는데, 영화는 노년의 궁상스러움과 추레함 대신에, 그가 가진 경험과 연륜을 내세운다. 

기업의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시니어 인턴을 받아들인 줄스는 벤이 거추장스럽지만, 그런 그녀의 부담에도 아랑곳없이 벤은 어느새 직장에서 가장 인기있는 존재가 되어간다. 그리고 벤이 직장 내 인기인이 될 수 있는 이유에는 그가 '어른'임에도 '어른임'을 내세우지 않고, '어른'의 몫을 다하기 때문인 것이다. 직장 내 사람들은 정장을 잘 갖춰입은 채 등장한 그를 보고 지레 '꼰대'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벤은 전혀 예상과 달랐다. 비록 회사의 컴퓨터를 켜는 것조차 제대로 해내기 힘들었지만, 그 조차도 그의 말대로 시간이 필요했을 뿐, 곧 적응하게 되었고, 오히려 그런 부적응보다, 오랜 사회 생활로 인한 연륜으로 그가 헤아려내는 회사 생활이 곧 그를 줄스 회사의 인기인으로 등극하게 만들어 버린다. 

벤이 늘 지니고 다니는 손수건의 가장 적절한 용도가 우는 여자들에게 건네주기 위해서라는 고리타분한 그의 명제처럼, 그는 고리타분하지만 필요적절한 도움을 회사에 준다. 줄스가 늘 눈에 가시처럼 여기던 책상 위에 잡다한 물건들을 치우는 것과 같은. 그렇게 지레 헤아려 주는 벤을 엄마의 잔소리에 시달리던 줄스는 부담스러워 했지만, 그녀 역시 어느새 아픈 자신에게 치킨 스프를 챙겨주는 벤의 세심함에 무장해제 당하고 만다. 

영화 중 줄스는 위기의 인물로 묘사된다. 외적으론 단 1년만에 회사를 키워냈지만, 빠른 시간 안에 부피가 커진 회사는 많은 문제들을 일으키고, 그런 문제들에 대해 투자자들은 그녀의 리더쉽으로 인한 것이라 판단하고 전문 ceo를 들일 것을 종용하는 한편, 가정 내에서는 일하는 아내로 인해 남편의 불만이 증폭되고, 외도까지 하기에 이르른 인물이다. 그런 쫓김과 스트레는 끊임없이 손 세척제로 손을 닦아대는 강박증과 자신이 말한 것조차 금새 잊어버리는 건망증으로 표현된다. 거기에 늘 일에 쫓겨 주변 사람들과 눈 한번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인간 관계 상실'의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경험 많은 어른과, 젊은 어른의 조우, 어른됨의 몫
아버지와 자식 세대가 조우한 영화가 그렇듯이, <인턴> 역시 경험이 많은 아버지 세대와, 위기의 자식 세대가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런 영화에서 대다수 '보수적'으로 아버지 세대의 경험'에 손을 들어 준 것과 달리, <인턴>의 화법은 좀 다르다. 물론 여전히 벤의 경험이 영화 속 줄스를 위기에서 구해주지만, 그렇게 위기에 빠진 줄스를 바라보는 벤의 태도에서 부터 <인턴>은 다르게 바라본다. 결국 자신의 집에까지 쳐들어 온 회사 직원에게 자신이 '산타클로스'냐며 푸념을 하지만, 그렇다고 벤은 섣부르게 줄스의 삶에 관여하지 않는다. 줄스가 지레 벤의 오지랖을 오해하지만, 그것이 말 그대로 오해일 만큼, 벤은 지켜보고, 알고 있되, 결코 간섭하지 않는다. 그저, 조금 더 경험을 가진 사람으로서 적절한 도움을 주려고 할 뿐이다. 

무엇보다, 경영권의 위기에 빠진 줄스에 대한 벤의 충고가 인상적이다. '자신은 페미니스트는 아니'라고 서두를 뗀 벤은 자신이 한 직장에서 40년을 근속했지만 부사장까지 밖에 이루지 못했던 것을, 줄스는 단 1년만에 ceo가 되어 넘어버렸다고 존중한다. 나이도 어리고, 인간 관계에서 어설프고, 매사에 실수 투성이인 삼십대의 젊은 여성 ceo에 대해, 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이루어 놓은 가치는 대단하다고 존중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낸시 마이어스가 바라본, 아버지 세대의 미국과, 이제 위태롭지만 또 하나의 성취를 이룬 젊은 세대 미국에 대한 정의와도 같다. 위태롭고 불안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세대가 이룬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성취를 이뤄낸 젊은 세대, 그 세대의 성취를 아버지 세대는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존중'의 입장에서 벤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알자, 줄스 역시 마음을 연다. 문제투성이이지만 그렇다고 줄스는 자기 아버지뻘인 벤의 앞에서 투정을 부리지 않는다.  그녀 역시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벤의 존중을 받을 만한, 또 다른 어른으로 영화는 그려낸다. 영화 속 줄스는 말한다. 모처럼 '어른'과 '어른'으로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었다고. 어른도, 어른이 아니라고, 어쩌다 보니 어른이 되었다고 자신을 부정하고,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어른'이 되기 싫다고 부정하는 우리 사회에서, '어른'과 '어른'의 만남인 벤과 줄스의 만남은 그래서 신선하고, 희귀해 보인다. 

더더구나, 한겨레 신문 9월 25일자 문강형준의 칼럼에서도 보여지듯이,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거나, 여자에게는 '아저씨'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나잇값이라 여기는 한국 사회에서 어쩌면 <인턴>은 벤의 가방처럼, 희귀템인 영화일 듯하다. 경험와 연륜을 가진 어른이, 비록 자신보다 경험과 연륜을 가지지 못했지만 또 다른 성취를 보인 젊은 어른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긍정적'인 고민을 보여준 영화, <인턴>은  그래서 현재 한국 사회에서 그저 미담 이상의 생각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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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5.10.02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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