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노래 자랑의 전통은 깊다. 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기 전인 1954년 라디오 방송국인 서울 방송국(HLKA)에서 <누가누라 잘하나>가 시작되었다. 1962년까지 300회를 넘은 이 프로그램은 이후 TV 방송국이 개국하면서 TV로 자리를 옮겨 1982년 200회를 넘기며 방영되었다. 이후 <모이자 노래하자> . <열려라 동요 세상> 등의 이름으로 시대에 따라 부침을 겪던 이 프로그램은 2005년 원래의 경연 방식을 되찾고 <누가누가 잘하나>라는 이름으로 매주 금요일 4시반 KBS2 TV 통해 방영된다. 


KBS에 <누가누가 잘하나>가 있었다면, MBC에는 <창작 동요제>가 있다. '노을이 머물다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 연기, 색동옷 갈압은 가을 들판에 빨갛게 노을이 타고 있어요', 이 시적인 가사를 탄생시킨, '노을' 뿐만 아니라, '새싹들이다', '아빠 힘내세요' 등 제목만 들어도 노래가 떠올리는 아름다운 동요를 탄생시킨 프로그램이다. MBC 창작동요제를 통해 1회부터 28회까지 본선에 진출한 곡은 총 402곡이고, 이중 20여곡이 초, 중등 교과서에 실릴 만큼 <MBC창작 동요제>의 성과는 혁혁하다. 



어린이 노래 자랑과 창작 동요제의 전통을 오늘에 되살려, 위키드 
그러나 아쉽게도 한 프로그램의 대상곡이던 '노을'이 전국민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가 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MBC 창작 동요제>는 '아이돌'로 대변되는 화려한 음악 산업의 현실에서 더는 버텨내지 못한 채 2010년 결국 종영되고 말았다. 아니 <누가누가 잘하나>는 역사와 전통을 지켜내며 여전히 방영되지만 이 프로그램이 '생존'해 있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대신 아이들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현란한 춤사위와 화려한 비트의 아이돌 음악을 소비한다. 그런 가운데, 음악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내공을 쌓은 M.NET과 TVN이 2016년을 맞아 야심차게 준비한 프로그램이 2월 18일 첫 선을 보였다. 바로 '아이들에겐 최고의 동요를, 어른들에겐 추억과 순수함을 선사하겠다는 꿈의 동요 공장' <위키드>가 바로 그것이다. 

첫 선을 보인 <위키드>는 성공적이었다. 에니메이션 <포카혼타스>OST '바람의 빛깔'을 부른 제주 소년 오연준의 청아한 목소리는 회자가 되었고, '리틀 효녀' 최명빈은 수식어답게 관객과 심사위원단은 물론 시청자의 눈물을 흘러내기게 만들고야 만 사연으로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첫 회의 화제성에도 불구하고, 신개념 창작동요 대전 <위키드>는 짚어봐야 할 점이 있다. 



우선 방영 시간이다. 어린이와 어른들을 모두 타깃으로 삼는 이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시간은 밤 목요일 밤 9시 40분이다. 이제는 밤 9시가 되면 TV에서 어린이 여러분 이제는 잠자리에 들 시간입니다. 라는 유치한 언급을 하는 시대가 지났다지만, 대부분 밤 10시 이후의 프로그램들이 초등학생들이 잠자리에 드는 것을 전제로 하여, 15세 이상을 타깃으로 한 프로그램들인 걸 전제로 했을 때, 밤 9시 40분에 방영되는 <위키드>가 과연 어린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띠는가 의심해 볼 수 밖에 없다. 

즉 내세운 것은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라지만, 정작 아이들을 소비하는 어른들의 프로그램이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 그리고 그런 의심은 프로그램의 형식과 내용으로 이어진다. 

과연 이게 아이들의 프로그램일까? 아이들을 소비하는 프로그램일까?
창작 동요를 만들겠다는 취지의 프로그램이라는데, 프로그램 어디에도 '창작 동요'를 위해 준비된 사람들은 없다. 심사위원단에서 노래를 잘 하는 어린이들과 함께 노래를 만들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은 대중 음악의 대표 주자 윤일상에, 힙합의 대부 타이거JK, 거기에 최근 예능을 통해 두각을 드러내는 유재환에, 유연석, 박보영, 이광수, 바로 등의 연예인들이다. 

제작진은 윤일상 작곡가의 입을 빌려 최근 어린이들이 동요를 즐기지 않는 이유가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가사와 멜로디'가 만들어 지지 않았다고 문제 제기를 했는데, 그 해결책으로 내세운 것이 아이들이 좋아하는 연예인과 대중 음악 작곡가라고 생각했는지, 프로그램 그 어느 곳에서도 '동요'를 전문으로 하는 분야의 사람들은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위키드>가 생각하는 바 2016년판 '마법의 성'은 노래를 잘 하는 아이들과, 성인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뭉쳐 최신의 트렌드를 방영하는 음악이라는 것인지. 



출연자의 문제도 그냥 넘어가기에는 석연치 않다. 청아한 목소리로 화제가 된 첫 출연자 오연준, 하지만 아름다운 노래에도 불구하고 오연준 어린이는 불안해 보였다. 과도한 연습으로 인해 '성대 결절'이 온 것이다. 그의 노래는 회자될 정도로 아름다웠지만, 겨우 이제 초등학생인 아이가 성대 결절이 올 정도로 노래 연습을 해야 한다는 '혹사'에 대해 그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저 <슈스케>의 그때처럼 노래 잘하는 연준이가 <위키드>의 일정을 소화해 낼 지가 걱정될 뿐이다. 

최명빈 어린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엄마와 함께 어린 동생들을 돌보며 사는 큰딸 명빈이, 여덟살이 불과한 나이에 명빈이는 일 나간 엄마를 대신해 동생들을 돌보고, 어려운 가정 형편을 돕기 위해 홈쇼핑 모델에 나선다. 명빈이의 소원은 얼른 돈을 벌어 엄마와 넓은 집에서 편하게 사는 것이다. 이런 명빈이의 소원은 모든 이를 울렸다. 하지만 이게 한번 울어주고 말 일인가?

만약에 명빈이와 엄마가 우리 나라가 아니라, 영국 쯤 된다면, 명빈이 엄마는 명빈이와 동생들을 위해 나라에서 제공되는 육아 보조금으로 너끈히 생활을 꾸릴 수 있다. 어린 명빈이가 가정 생계를 돕기 위해 홈쇼핑 모델을 나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명빈이의 사연을 보고 눈물을 흘릴 것이 아니라, 보장되지 않는 홑부모 가정의 생계에 대한 시스템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야 하는 것이다. 학교에 나오지 않고 방치된 아이들만큼 홑부모와 함께 힘겨운 생존의 고통을 견뎌내는 동심에 대해 함께 반성하고 고민해 봐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위키드>는, 그리고 그것을 그저 감명깊은 음악 방송으로 소비하는 시청자들은, 그런 어른들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어린이 대신, 그저 노래 잘 하는 또 하나의 색다른 콘텐츠로 어린 아이들을 소비한다. 그리고 프로그램은 그걸 잔뜩 조장하여, 아이의 노래를 들려주기 전에, 한껏 감정을 부추길, 아이의 사연을 들려주고, 그 사연에 걸맞는 노래를 선정하여, 시청자와 관객들을 몰입시킨다. 그리고 시청자와 관객은 언뜻보면 아이의 사연에 감동을 받고 슬퍼하는 것 같지만, <슈스케>의 사연많은 시청자를 소비하듯, 그렇게 눈물어린 눈으로 방송에 등장하는 아이의 사연과 그 아이의 노래를 점수 매길 뿐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by meditator 2016.02.19 16:44
|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