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시청률로 고전하던(평균 시청률 3.4%) <아이언맨>이 결국 애초에 하기로 했던 20부에서 2회가 줄어든 18회로 조기 종영되었다. 남주인공 주홍빈(이동욱 분)의 등에서 칼이 솟는 기괴한 설정을 시청자들은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그 기괴함 너머에, 밤하늘을 쏟아질 듯 채운 별과, 섬진강의 아스라함, 그리고, 깍아지를 듯한 빌딩, 기하학적 미감의 극치를 보여준 집과 푸근한 재래시장과 오래된 주택가의 대비, 그리고 그것을 채워가던 동화같은 이야기를 공유하지 못했다. 그리고, 또한 어렵사리 도달한 두 주인공의 사랑, 그리고 그 저변에 깔린 세대간의 화해에도 시선을 맞출 수 없었다. 비록 애초에 하고자 했던 20회를 채우지 못했지만, 굳굳하게 <아이언맨>의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에둘러가지 않았다. 마지막 회, 엔딩, 다시 만나 힘껏 포옹하며 하늘로 치솟는 두 주인공들처럼, <아이언맨>은 자신의 정체성을 지고지순하게 지켜냈다.  왜 굳이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은 '칼'을 설정했을까란 의문이 무색하게

 

 

 

소년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어려웠다. 항상 최고만을 요구했던 엄격한 아버지를 피해 가지고 싶은 걸 사랑하는 소녀의 부모님이 하던 문방구에 숨겼지만, 모든 걸 숨길 수는 없었다. 그래서, 소년은 결국 사랑하는 소녀를 빼앗겼다. 가장 사랑하는 걸  빼앗긴 소년은 상실의 분노를 참을 수 없었고, 그 분노는 소년의 몸에서 자라난 칼이 되었다.

 

그리고 칼이 돋아나기 시작한 소년 앞에, 어린 시절 사랑했던, 그래서 아버지로 인해 잃었던 첫 사랑의 소녀의 냄새를 지닌 또 다른 소녀가 나타난다.

 

 

 

<아이언맨>의 여주인공 손세동(신세경 분)은 마치 '바리데기'와도 같다. 주홍빈의 아버지 주장원(김갑수 분)은 태희(한은정 분)를 찾아가 자신이 세동이로 인해 달라졌음을, 잘못했다고 사과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유가 자신때문이라고 생각한 세동은, 누군가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혹시나 자신의 외면때문에 그 사람이 자신의 부모님처럼 될까봐, 그런 세동이, 창이를 만나고, 창이로 인해 주홍빈을 만나고, 다시 주홍빈으로 인해 주홍주와 주장원을 만나면서, 닫혀있던 이들의 마음에는 생명의 피가 흐르고, 굳었던 관계가 다시 이어진다. 세 부자만이 아니다. 생명을 앗아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거 같은 태희와 주장원, 그리고 그로 인해 꽉 막혀버린 태희와 주홍빈의 관계에도 '해원'을 풀 시간이 주어진다.

 

마치 죽은 부모님을 다시 살려내기 위해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넘어 숱한 사람들의 부탁을 들어주며 생명력을 소생시킨 바리데기처럼, 손세동은, <아이언맨>에서 묵은 해원과, 굳은 관계와, 그 속에서 고사되어져 가던 인간성을 살려내는 매개체가 된다.

 

그리고 그렇게 <아이언맨>에 등장했던 모든 사람들을 다시 살려냄으로써(?) 자기 자신도, 어머니와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받았던 트라우마에서 놓여나 누군가를 보살펴주는 사랑이 아니라, 주체적인 사랑을 찾는다.

 

(아시아 투데이)

 

 

 

<아이언맨>은 진짜 어른이 되는 이야기를 다룬다. 당대 최고의 게임 회사의 ceo이지만 어린 시절 아버지가 무서워 장난감을 숨기고, 장난감을 빼앗겨 분노하던 아이에서 한 치도 성장하지 못한 채 분노를 칼이 되어 뿜어내기만 하는 주홍빈은 누군가를 지켜줄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서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저버리면서까지 희생하던 손세동은, 역시, 자신의 사랑 앞에 당당해 지는 어른이 되었다.

 

무조건적인 희생도, 무조건적인 분노도 넘어, 성숙하게 자신을 책임질 줄 아는 어른이 되어가는, 상처받은 아이들의 성장담, <아이언맨>이었다.

 

 

 

그리고, 그 상처받은 아이들에게는 그들에게 상처를 준 아버지가 있다. 그저 그가 아는 삶의 해법이라곤, 높은 건물을 올리듯, 더 높이 올라가고, 더 많이 쌓는 것만이었던, 그리고 그런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는 것이 자식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우리 시대의 어른, 아버지가 있다. 그리고 그 아버지로 인해 상처받고, 빼앗긴 그의 자식과 남의 자식들이 있다.

 

 

 

<아이언맨>은 그런 아버지 세대와 '화해'에 대해 고민한다. 자식들에게서 소중한 것을 빼앗고, 자식들을 분노하게 만들어 버린 이 아버지를 어떻게 해야 하나? 이것이 <아이언맨>의 숨겨진 화두다.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던 손세동의 아버지를 외면해 빨리 수술을 받지 못해 죽음에 이르게 했던 주장원에게 손세동이 요구한 것은 '사과'였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에 대한 시인과,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겠다는 진심어린 사과.

 

주장원은 어렵사리 말문을 연다. 그저 자기 잘 살겠다고 했던 일이, 누군가에게 아픔을 주는 일인줄 몰랐다고, 그리고 또 다시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 누군가도 자신처럼 자식을 가진 부모라는 걸 염두에 두겠다고.

 

그리고 손세동에게 배운대로, 주장원은 죽어가는 태희를 찾아가 사과를 한다. 노골적으로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자신이 잘못했다고.

 

 

 

세동의 아버지는 죽었고, 태희 역시 주장원의 속내를 헤아린 윤여사의 사주를 받은 사람들로 인해 고통 속에서 죽어간다. 그렇게 죽어버린, 그리고 죽어가는 사람들 앞에, '세치 혀' 주장원의 사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하지만 작가는 감옥 한번 다녀오고, 절에 한번 다녀오고 나서, 사죄를 했네라며 뻔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처벌'이 '처벌'이 아니요, 어쩌면 '처벌' 보다는, 진심어린 '사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듯하다.

 

 

 

마지막회 어린 시절 주홍빈이 아버지의 눈을 피해 소중하게 숨겨놓았던 딱지가 알고보니 아버지가 곱셈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홍빈을 위해 만들어 주었던 것이라는 걸 밝혀진다. 아버지가 만들어 준 것임에도, 아버지의 눈에 띄지 않게 숨겨야 했던 아이러니한 사랑의 상징이라니! 그 '불화'의 상징이었던 딱지는,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죄한 아버지와, 분노를 거두고, 누군가를 책임질 어른이 된 아들의 '화해'의 상징으로 거듭난다.

 

물론 주장원이 그리도 바라던 더 많은 것, 더 높은 것도 이루어 지지 않았다. 그가 이룬 부는 그의 두번 째 아내의 수중으로 사라졌고, 윤여사가 바라던 주홍빈의 집도 얻어지지 못했다. 텅빈 방에 홀로 서있는 주장원과, 홀로이 떠나는 윤여사의 모습으로, 즉 그들이 어쩌면 핏줄보다도 더 소중하게 여겨왔던 것을 상실케 함으로써, <아이언맨>의 단죄는 마무리된다.

 

 

 

'바리데기' 같은 여주인공의 도움을 받아, '고도 성장' 시대의 아버지와, '분노'의 시대를 살아온 아들이 다시 손을 맞잡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결국 아버지와 아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화같은 남녀 주인공의 사랑도, 어렵사리 도달한 세대간 화해도, 주인공의 등에서 돋아난 기괴한 칼을 넘어서지 못했다. 아니, 여전히 '고도 성장'을 포기하지 않는 아버지와, '분노'를 성숙하게 다스릴 줄 모르는 아들들이 득세하는 시대에, 진심어린 사과와, 누군가를 지켜줄 줄 아는 사랑은 정말 동화 속 이야기같기만 했기 때문이라는게, 진짜 <아이어맨>이 외면받은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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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4.11.14 10:29

태희(한은정 분)가 살아돌아왔다. 아니 엄밀히 말해, 태희는 죽은 적이 없으니, 살아돌아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겠으나, 태희가 죽은 줄 알았던 주홍빈(이동욱 분)에게도, 엄마가 저 멀리 별로 간 줄 알았던 창이(정유근 분)에게도 태희는 다시 살아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태희가 그 존재를 드러냄으로써, 그녀와 관련된 과거의 사건들 역시 봉인이 풀릴 여지가 보인다. 그러자, 태희를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만들어야 했던 무리들은 돌아온 태희의 존재에 위험을 느낀다. 당연히 다시 봉인해제된 태희를 그 이전 상태로 돌리고자 한다.

 

그간 태희를 만나왔다는 홍주(이주승 분)의 말을 듣고, 홍빈이 태희를 찾아나선 그곳, 하지만 그곳에 홍빈이 그리워했던 태희는 없었다. 그저 김태희라는 이름표를 건 또 따른 아가씨가 있었을 뿐. 하지만 그건 홍빈이 찾아온 줄 알고, 벌인 태희의 작은 눈속임이었다. 홍빈이 떠난 후 태희는 홍주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 말 것을 신신당부하지만, 그녀의 바램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태희의 아버지를 따라나섰던 세동(신세경 분)에게, 그리고 자신이 갔던 재래 시장에 태희 아버지가 내렸다는 운전사의 전언으로 홍주에게까지, 결국 태희의 존재는 드러나게 되었다.

 

(사진; 뉴스엔)

 

그렇다면 돌아온 태희는 어떤 모습일까?

단발의 웨이브에, 기다란 가디건 속에 남방, 그 안에 받쳐입은 흰 티의 소박하지만 자유로워보이는 모습?  그도 아니면 여전히 홍빈이 사랑했던 추억 속의 그 아리따운 외모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아니, 그 보다도 주목해야 할 것은  상징적 우화로서 <아이언맨>이 그려내고 있는 태희의 모습이다. 드라마 속 태희를 없애고자 했던 세력, 그들의 상징적 주구는 바로 주홍빈의 아버지이다. 아버지가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던지, 아닌지 그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주홍빈의 아버지 주장원(김갑수 분)는 자기 아들의 눈을 멀게 한 보잘 것 없는 집 딸 태희가 사라지기를 원했고, 아버지의 측근이었던 윤여사(이미숙 분)은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태희를 없애는 더러운 일을 자처했다. 윤여사가 바랐던 것은 큰일 하시는 아버지가 작은 일에 마음을 쓰지 않게 하는 것이었고, 아버지가 하시는 큰 일이란, 그가 다시금 벌이듯이, 태희 아버지가 사는 섬진강 변을 개발하는 것과 같은, 개발이란 명목으로 자연을 허물고, 거기에 사는 사람들을 밀어내고, 건물을 지어 올리는 일이었다.

 

그런데, 15회 태희가 사는 곳을 찾아가는 태희 아버지의 행적을 쫓다보면, 오래된 재래시장이 나온다. 태희의 아버지는 절룩거리는 걸음으로, 재래 시장을 지나, 철거 예정 지역이라되 된 듯 사람들의 흔적이 사라진 구불구불한 미로같은 골목을 지나, 허름한 이층집에 다다른다. 태희가 사는 곳이다. 홍주가 태희를 만났다는 곳은 또 어딜까? 고물상같은 그곳은, 사람들이 쓰다버린 옷가지와 책들 중에서 쓸만한 것을 모아, 볼리비아 같은 개발도상국의 아이들에게 보내주는 유니세프 휘하의 단체이다.

 

개발 시대의 상징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맞은 편에, 개발이란 이름 속에 스러져갈 철거 예정지에 살며, 문명 사회가 쓰레기가 버린 것들에서, 가난한 아이들의 구원이 될 것들을 길어올리는 일을 하는 태희, <아이언맨>은 그저 재벌집 아들을 사랑한 가난한 집 딸의 전형적인 멜로의 구도를 넘어, 개발과, 그 개발 속에 스러져 간 희생자들이라는 사회적 구도로서, 주인공을 사이에 둔 아버지와 첫사랑을 그려낸다.

 

태희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홍빈은 아버지를 찾아간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부탁한다. 아버지가 세동이에게 했던 것처럼, 세동이의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했던 것이 자신이 했던 일의 과정에서 생겨난 불행이었음을 우회적이나마 사과했던 것처럼, 자신의 첫사랑 태희에게도 그렇게 '사과'해줄 것을.

그런 홍빈에게, 아버지는 오히려 반발한다. 홍빈이 사랑하는 태희가,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빼앗아 갔다고. 그리고 아버지가 생각하는 태희가 빼앗아 간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아들 홍빈이었다.

즉, 개발 시대의 아버지는, 그저 아들을 잘 살게 하기 위해, 아들을 좀 더 낫게 만들기 위해, 땅을 파헤치고, 사람들을 몰아내고, 종종 사람들을 헤치기까지 했다. 그저 아들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하지만, 정작, 아들의 사랑을 얻는 방법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아들에게 필요한 것은, 아버지의 부가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이었는데, 아버지는 그걸 외면한 채 왜곡된 사랑을 얻으려, 아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조차 빼앗아 버린 것이다. 즉, 우리 사회가 개발이란 이름으로 놓쳐버린 것들을 <아이언맨>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통해 상징적으로 그려내고자 한다. 아직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무의식적 사주로 인한 폭력으로 인해 머릿속에 뼈조각이 돌아다녀 시한부의 삶을 사는 태희는, 개발이란 이름 아래 위기에 놓인 섬진강변처럼, 개발 이란 이름 아래 사라져갈  자연과, 우리가 소중히 여겨왔던 추억들을 상징한다.

 

<아이언맨>의 스토리는 상투적이다.

아들의 가난한 사랑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아버지, 그 아버지를 위해 더러운 일을 마다하지 않는 어둠의 세력, 그리고, 시한부의 운명을 가지고 절묘한 시기에 다시 나타난 첫사랑, 그리고 그 첫사랑을 다시 음해하려는 세력 등, 멜로 드라마의 클리셰를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진부한 클리셰들이, 우리 사회를 상징적으로 그려내는 우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게 되면서, 진부함은, 다른 진동으로 다가온다. 뻔한데, 다른 울림을 준다. 스토리를 채색해 간 배경의 다름때문이다. 또한 스토리를 바라보는 시각의 다름때문이요, 그 갈등의 해법의 차이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다시 사랑하는 아들을 빼앗은 세동에게 아버지 주장원이 우회적이나마 사과를 통해 해원을 풀었듯이, 돌아온 첫사랑 태희에 대한 주장원의 결자해지를 <아이언맨>답게 풀어내는 것이, 이 드라마를 개발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우화로 완성시킬 관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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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4.10.31 13:25

주장원(김갑수 분)의 외면으로 인해 자신의 아버지가 수술을 제때 받지 못해 죽어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된 손세동은, 그로 인해 한참 사랑으로 무르익던 주홍빈(이동욱 분), 유치원에 엄마 대신 동화책을 읽어주러 가마고 약속까지 했던 창(정유근 분)이와의 관계조차도 저만치 미뤄두게 된다. 그리고 오랜 숙고 끝에 다시 주홍빈을 찾게 된 세동이, 뜻밖에도 '원수'인 주장원에게 던진 요구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미안하다'고 말해 달라는 것이었다. 주홍빈의 죄과를 치루라는 것도 아니고, 보상을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했던 일로 인해 누군가의 목숨이 사라지게 된 사실에 대해, 그저 그 사람의 사진을 앞에 두고 사과를 해달라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 자신의 아버지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주장원이 그간 해왔던 일들을 그만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장원은 그런 세동의 요구, 아니 눈물을 머금은 간절한 청탁을 거부한다. 자신은 그런, '미안하다'는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아니 살면서 누구에게도 '미안하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그리고,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국토를 파헤치고, 건물을 올리는 그 일은 그저 자신의 일이었을 뿐이라고. 그걸 더 이상 그만두겠다 말할 수 없다고.

 

주장원과 손세동의 대화를 듣고 있노라면, 기시감이 느껴진다.

우리에겐 아주 익숙한 화법이다. 개발이란 이름으로 행해졌던 이 사회의 수많은 폭력들, 그 폭력의 피해자들은, 늘 자그마한 소망을 가질 뿐이다. 관계자의 사과와 진상 규명. 하지만, 주장원으로 대변되는, 우리의 기성 세대들은, 주장원처럼 말할 뿐이다. 난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고, 살아갈 뿐이라고. 즉, 국토를 파헤치고, 건물을 짓고, 그런 '개발'의 과정을 빛나는 이 사회의 영광스런 과정이고, 그 과정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들은, 그저 불가피한 과정의 부산물일 뿐이라고, 그래서 자신은 책임지거나, 미안하다고 말할 이유가 없다고.

지금도 광화문 광장을 메우는 많은 부모들의 소망, 그저 왜 자신의 아들, 딸들이 죽어갔는지, 그 진상을 밝혀달라는, 그리고 책임있는 자의 사과를 원한다는 '소박한' 소망에 대한 이 정부의 화법도, 주장원의 화법과 다르지 않다.

 

 힐링 어른동화 '아이언맨', 이동욱-신세경-김갑수가 달라졌어요 / 사진 : KBS2 '아이언맨' 방송화면 캡처

(사진; 더 스타)

<아이언맨>의 아버지 주장원은 상징적이다. 그저 주홍빈의 , 주홍주의 아버지 개인 아니다. 23일 방영된 <아이언맨>에서, 이제 은퇴한 듯 보이던 주장원이 또 한번의 일을 벌인다. 주홍빈까지 동원해 장관에게 허락받은 일, 바로 주홍빈의 첫 사랑 태희의 부모님이 사시는 섬진강 변을 개발하는 사업이었다.

태희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처음으로 주장원의 집에 달려간 주홍빈, 자신을 이용하며서까지 아버지가 하시려던 일이 태희 부모님을 내쫓는 것이었냐는 아들의 원망섞인 질문에, 아버지는 오히려 적반하장이다. 태희 부모님이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이다. 그래도 자신은 태희 부모님을 생각해서, 시가의 두 배에 해당하는 보상액을 책정했단. 한 몫 단단히 잡게 해주었는데, 무슨 소리냐?며 오히려 아버지 주장원은 큰소리를 친다. 익숙한 화법이 아닌가. '돈'을 벌기 위해, 잘 살게 해주기 위해 한 일이라는.

그렇게 주장원은 한 평생을 바쳐 나라의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 불철주야 자신을 헌신했다. 그는 부수고 짓고, 세우고, 그러면서 평생을 살아왔다. 하지만,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그의 욕심을, 아들이 사랑하는 하찮은 집안의 여자를 폐자재 치우듯이 해버렸고, 작은 아들에게 아버지가 못다한 명예를 채우기 위한 공부를 요구한다.

 

허물고 부수고, 거기에 철근을 넣고 짓고, 세우며 살아왔던 아버지 세대, 그 아버지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아들은, 분노를 견디지 못해, 몸에서 칼이 돋아난다. 왜 하필, 주홍빈의 몸에서 돋는 것이, '칼'즉, '아이언'인가 하는 이유는, 바로, 그 아버지 주장원에게서 찾을 수 있다. 공부에 관심도 없는 작은 아들 홍주에게 다짜고짜 미국 유학을 종용하자, 작은 아들 홍주는 술에 취해, 아버지가 처음 지은 건물 옥상으로 올라간다. 그곳 난간에 위태위태하게 올라 선 아들, 아버지가 지은 건물 위에서, 죽을 위기에 놓인 아들, 그리고, 아버지로 인해 몸에서 칼이 돋는 아들, 거기서 읽을 수 있는 것은 그저 한 집안의 속사정이 아니다. 건설로 나라를 일구어 내었다 자부하는 아버지 세대, 그 아버지 세대가 일군 토대 위해, 부를 이루었을 지 모르지만, 마음을 잃은 아들 세대,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주장원, 주홍빈, 주홍주 부자를 통해, 작가는 상징적으로 그려내고자 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를 세상을 일구기 위해 도구로 사용했던 아이언은 이제 무기가 되어 아들의 몸에서 돋는다. 그래서 드라마를 통해 종종 등장하는 가파른 건물들, 그리고 그 가파른 건물들 위에 아슬아슬 서있는극중 인물들은,  그저 연출의 남다른 스킬이 아니라, 주장원이 만들어낸 세계의 암묵적 배경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미안하다'는 사과를 바라는 세동을 단호하게 돌려보낸 주장원은 얼마 후 세동에게 전화를 건다. 그리고 머뭇머뭇 말을 꺼낸다. 그렇게 살아왔기에 이제 와 새삼 미안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되돌아 보니, 자신이 했던 일의 과정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데, 그들 역시 자신처럼 누군가의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을 전한다. 그리고 앞으로 그런 일을 하게 되면, 그런 자신의 깨달음을 염두에 두겠다고 말을 맺는다. 기괴한 칼의 시간을 견디고, 어렵사리 얻은, 기성 세대의 '사과의 변'이다. 비록, 그 어려운 '사과의 변'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단 3% 정도에 불과하지만, <아이언맨>의 극진한 상징이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 시대에 그런 사과가 필요하다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3%일 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그런 동화같은 일이 가능할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3%일 지도. 어른들의 동화같은 <아이언맨>이 사실 말하고 있는 건, 이 시대를 살아왔던 아버지의 세대와, 그 아버지로 인해 상처를 입다 못해 누군가를 피 흘리게 만드는 아들 세대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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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4.10.24 10:18

시청률지상주의 세상에서 시청률이 낮은 드라마의 처지라는게 진퇴양난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그렇게 사람들의 주의가 집중되지 않아, 다행이다 라고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바로 <아이언맨>이다.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지 않는 이 드라마의 '한적함'이, <아이언맨>이 그 누구의 눈치도 안보고(?) 상상의 나래를 한껏 펼쳐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회를 거듭할수록 든다. 시청률이 낮아 자유로워 보이는 드라마, <아이언맨>이다. 


다짜고짜 화가 나면 칼이 돋는 남자 주인공에 기겁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저만치 물러났다. 아니 칼이 돋는 것만이 아니다. 주인공 주홍빈 역을 맡은 배우 이동욱에게는 버거워 보이는, 드라마가 시작하자마자부터 위, 아래 없이 화를 분출하는 주인공 캐릭터도 만만치 않다. 거기에, 한량없이 착하고 씩씩한 '캔디'가 울고 갈 여주인공(신세경 분)이라니!
그런데 가장 기괴한 남자 주인공에, 가장 진부한 이 여주인공의 캐릭터가 회를 거듭하면서, 차츰 마음에 들어온다. 스토리가 아니라, 이른바 '김용수 월드'라고 불리는 연출가의 힘에 의해서다.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는 아들 창이의 소망을 듣고, 주홍빈은 다짜고짜 아들 창이와 손세동을 끌고 밤 늦은 시간 구례로 향한다. 과열된 차를 버리고 산골 마을 버스를 왁자지껄 할머니들과 타고, 창이 외할아버지가 젓는(?) 배를 타고 창이 외가에 이르는 길은, 이게 괴작인가 싶게, 서정적이다. 아름다운 농촌 풍경에, '와~!'를 연발하는 손세동 역의 신세경의 대사는 어색하지만, 그녀의 티없는 얼굴에 버무려져, 슬슬 무장해제하게 만든다. 할머니들의 짐을 들어드리는 손세동의 캐릭터는 어색하지만, 정감이 간다. 


무엇보다 압권은, 외가가 보이는 강가에서이다. '와~!'를 연발하는 손세동과, 그녀에게서 첫사랑 창이 엄마의 향기를 맡으며 그녀를 떠올리는 주홍빈, 그 두 사람의 정서가 구례의 정취가 물씬 피어나는 강가에서 어우러질 때, 이 말도 안되는 두 사람의 조합에 반기가 가셔진다. 그 어떤 대사와 설명이 필요없다. 

절정은 밤길의 반딧불씬이다. 이 씬의 내용도 뻔하다. 가로등 하나 없는 시골의 밤길, 혼자 집을 지킬 수 있다는 아들 창이 보다, 더 아들같은 주홍빈이, 손세동의 뒤를 따른다. 말이야, 밤 늦은 시간 겁도 없이 혼자 다니냐고 하지만, 사실 밤길을 무서워 하는 건 주홍빈 측이다. 까만 밤 길에, 앞서 가는 손세동, 그 뒤를 쫓는 주홍빈의 그림자는, 뻔한 스토리임에도 미소가 지어진다. 그러던 두 사람 주변에 한 점, 한 점, 불이 피어난다. 반딧불 떼다. 반딧불 떼에 버무려져 가던 두 사람, 손세동이 겁을 주자, 그만 주홍빈은 손세동을  꽉 안고 만다. 백 마디의 말이 필요없는 연출이 설명해낸, 두 사람의 첫 교감이다. 

그렇게, 서정적인 연출로, 주홍빈의 아픔과, 그 아픔조차 아랑곳없는 손세동의 맑음이 설명이 되니, 그저 기괴하괴만 느껴졌던, 주홍빈 등에서 솟아나는 칼이 전과 다르게 느껴진다. 심지어, 과거 주홍빈 등에서 처음 칼날이 솟아나는 그 장면, 삐죽 솟아오른 아기같은 칼날은 귀엽게 까지 느껴진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칼이 처음 솟아나기 그 시점부터, 마지막 주홍빈이 자신이 '아이언맨'임을 자각한 채 빌딩을 오르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기까지, 칼이 커지고 늘어가는 것을 통해 주홍빈의 분노가 깊음을 설명한다. 마지막 '아이언맨'임을 자각한 채 날뛰다 빌딩에 매달리는 그 모습은, 흡사 포효하는 킹콩을 연상케 하는데, 킹콩의 포효가, 그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애잔하게 느껴지듯, 기괴한 아이언맨 주홍빈이, 기괴함에만 머물지 않는다. 처음엔 버겁게 느껴지던 이동욱의 연기도, 6회쯤 되니, 멜로에, 코믹에, 컬트까지, 종횡무진, 배우가 스스로 최선을 다해 즐기고 있음이 공감된다. 

그러나 아직도 종종 <아이언맨>을 보고 있노라면 이른바 형식과 내용의 괴리가 느껴질 때가 있다. 만약 이 드라마가 연출이 김용수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가 떠올려진다. 그렇다면 일찌기 <신데렐라 언니> 이래로 일관되게, 유지되어 온, 가족으로 인한 상처로 몸부림치는 주인공의 아픈 상처가 심정적으로 도드라지는, 전형적인 김규완 작가 특유의 멜로의 정서가 담뿍 담긴 드라마가 되었을 것이다. 일찌기 <신데렐라 언니> 이래로 김규완 작가의 작품에서 대표적 배우였던 이미숙과 김갑수가 존재하고, 그들이 극의 갈등에서 주된 축으로 자리 매김하며, 김규완의 정서를 이끌어 간다. 

하지만 김규완의 전형성이 김용수와 조우하면서, 드라마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괴작, 혹은 신선한 실험작으로 변모한다. 주홍빈이 사는 집의 포스트 모던한 분위기로 대변되는, 그 정서처럼 말이다. 윤여사가 터는 좋은데, 집만 기괴해 졌다는 그 말처럼, 김규완의 터에, 김용수가 지은 <아이언맨>은 때론 여전히 언밸런스하고 기괴하다. 그리고 그것이 <아이언맨>만의 독특한 정서로 자리잡는다. 6회 마지막, 그토록 분노하던, 주홍빈이 자신이 아이언맨임을 자각하고, 슬퍼하고 좌절하지 만은 않은 묘한 쾌감의 정서가, 생뚱맞기 보다는, 김용수의 세계에서 또한 가능한 반응일 수 있다는 생각까지 불러 일으킨다. 

하지만 여전히, 칼이 가진, 지극히 모던한 그 도구가, 인간의 몸에서 솟아오르는 그 상황이, 김규완의 멜로와 조응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가족으로 인한 갈등보다는, 조금 더,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스토리였다면, 그의 분노가, 개인적 인내를 넘어서는 사회적 자각이라면, 그 차가운 칼날의 생경함이 조금 더 공감가지 않았을까 하는 점에서, 연출로 다 가리지 못하는 극본의 전형성이 아쉽다. 

물론 그럼에도 속단하기에는 이르다. 주장원으로 대변되는, 아들을 최고로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기성세대와, 아이언맨이 된 주홍빈의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 른지, 전혀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아이언맨>의 매력이니까. 부디, 그 기괴한 칼이, 한낯, 내 가족만 베고 끝나지 않는 상징적 도구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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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4.09.26 10:48

앞서거니 뒤서거니 공중파 3사의 수목 드라마가 새롭게 시작되었다. 9월 10일 시작한 kbs2의 <아이언맨> mbc의 <내 생애 봄날>에 이어, 9월 17일 시작된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 등 세 편의 작품이 그것이다. 

그런데, 전혀 다른 듯한 이 세 편의 드라마, 꼼꼼히 뜯어보면, 비슷한 점이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우선, 이 세 편의 스토리를 이끌어 나가는 것은 나이가 제법 지긋한(?) 남자 주인공들이다. 
그 중 나이가 가장 많은 건, 여주인공과 열 여덟 살 나이 차가 설정되어 있는 <내 생애 봄날>의 강동하(감우성 분)다. 마흔 다섯 살의 그는 축산업체 하누라온의 대표이다. 
다음은 <아이언맨>의 주홍빈(이동욱 분)으로 서른 여섯 살의 게임업체 대표이다. 마지막 가장 젊은 남자는, <내겐 너무 아름다운 그녀>의 이현욱(정지훈 분)으로 서른 두 살의 작곡가이자, 연예기획사 대표로, 매달 통장에 들어오는 저작권료로 놀고 먹어도 상관이 없이, 애완견과의 생활을 즐기고 있는 '유산 계급'이다. 


그런데, 이 여유로운 싱글남들에게는 하나같이 지워지지 않는 상흔이 있다. 그게 과거의 여자들 때문이다. 
강동하는 아내가 죽은 후, 그녀를 떠나 보낸 자책감과 상실감에, 그의 외견을 보면 차마 축산업체 ceo라 차마 연상할 수 없게 홀애비의 추레함과 궁상을 트레이드 마크로 삼고 살아간다. 
주홍빈도 만만치 않다. 등에서 칼이 돋는 '괴물'이 되는 그의 트라우마에는, 과거 자신이 사랑하던 여자를 아버지의 강권에 의해 잃은 고통이 담겨 있다.
이현욱은 어떤가? 그가 이제는 작곡도, 연예 기획사 일도 저만치 밀어둔 채 오직 애완견과 하루를 보내는 이유는 바로 사랑하는 그녀를 잃은 때문이다.
그들은 일상 생활을 제대로 영유하지 못할 정도로 고통받지만(물론 그럼에도 경제적으로 누릴 것은 다 누리지만), 그들의 고통에 사회적 이유는 0.1%도 없다. 

기가 막히게도 하나같이 어쩜 과거의 순애보로 인해, 현재의 삶이 고통받고 있는 이 남자들이, 새로운 여자를 만나게 되는 방식은 또 '기가 막히게도' 과거의 연인에 대한 기억을 통해서이다. 
아내를 잃은 바다를 쓸쓸히 찾아간 동하, 그는 그곳에서 아내가 죽은 후 처음으로, 그의 마음을 따스하게 녹이는 그녀를 만난다. 예전 아내가 그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듯, 처음 만난 그녀가 동하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물론 여기엔 아내의 심장을 이식받은 봄이(수영 분)라는 숨겨진 비밀이 있다)
주홍빈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우연히 마주친 손세동(신세경 분)에게서 자신이 사랑했던 그녀의 향기를 맡은 후, 그는 맹목적으로 그녀를 찾아내기 시작한다. 
이현욱도 마찬가지다. 3년전 죽은 애인의 핸드폰에서, 그녀 동생인 여주인공 세나(크리스탈 분)의 음성 메시지를 들은 후, 이현욱은 세나를 쫓는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남자 주인공과 엮인, 과거의 그녀와 연관이 있는 그녀들, 그녀들은, 자신에게서 사랑하는 과거 그녀의 흔적을 잊지 못하는 그들의 집착, 혹은 배려로, 원하던, 혹은 원하지 않던, 도움을 받게 된다. 

정지훈-크리스탈 ‘내그녀’ 티저포스터

자, 여기까지, 이렇게 세 편의 드라마는, 여자 주인공에 비해,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남자 주인공, 그것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넘치는 그를 등장시킨다. 그는, 현실에서는, 그녀와 맺어지기에는 '도둑놈' 소리를 들을 만한 처지이지만, 그와 그녀를 매개시키는, 과거의 그녀 덕분에, 그들의 사랑은, 개연성을 얻기 시작한다. 전형적인 재벌남, 혹은 그에 버금가는 부유한 남자 주인공과 그에 비해 경제적으로 여유가 덜한 여주인공의 결합의 변형일 뿐이다. 단지 그런 전형적인 버전이, 동화 버전, 트렌디 버전, 컬트 버전으로 색채만 달리한 것처럼 보인다. <아이언맨>의 경우, 등에서 칼이 돋는 기괴한 설정을 내세우고, 정작, 그걸 풀어가는 건, 지극히 전형적인 멜로드라마라는 언밸러스한 구성을 보인다. 

단지 이전의 멜로 드라마의 전형에 비해, 남자 주인공의 나이는 지긋해 졌고, 여주인공은 젊어졌다. 그는, 상처를 가지고 있지만, 그 상처를 얻은 시간만큼 부를 축적했다. 대번에, 여주인공의 허기를, 혹은 그녀를 위협하는 주변 상황을 일거해 해결해 줄 만큼의 능력을 지녔다. <아이언맨>의 손세정이나,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의 세나는 현재 어렵지만, 시청자들은 다 안다. 그런 그녀가 곧 넉넉한 그로 인해, 그녀가 겪는 경제적 고통에서 벗어나리라는 것을. 

더구나, 이 가을 새롭게 등장하는 이 드라마들의 설정이 전혀 신선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인의 심장을 이식받은 그녀, 이건, 이미 윤은경, 김은희 극본, 윤석호 감독 연출의 그 유명한 사계절 시리즈 중 여름에 해당하는 <여름 향기>로 유명해진 설정이다. 그 드라마에서 송승헌이 자신의 사랑했던 여인의 심장을 받은 손예진을 보고 과거의 그녀를 느끼듯이, <내 생애 봄날> 역시, 감우성도, 아내를 잃은 바다에서 만난 그녀에게서 동일한 감정을 공유한다.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의 천재 작곡가와 가수 지망생의 만남 역시 몇몇 작품에서 보았떤 익숙한 설정이다. 가요계를 배경으로 신데렐라의 탄생 역시, 낯설지 않다. 

힐링 멜로 <내 생애 봄날>가 앞으로 더 '기대되는 이유' 이미지-1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이 가을 동시에 이 상처받은 남자들을, 그들을 구원해 줄 어린 동정녀같은 여주인공들이 등장하는 멜로 드라마가 출격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 가을, 더할 나위없이 사랑하기 좋은 계절 때문일까? 그게 아니면, 장기 불황이 예고된 시점에서, 리모컨을 쥔 여성 시청자들에게, 그녀의 불안한 사회적 정체성을 달래줄만큼 넉넉한(나이 그까이꺼, 차라리 나이가 좀 많더라도, 경제적으로 안정된 것이 좋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자존심을 버틸 만큼, 나이가 먹어도 여전히 나잇값을 못하게 아이같은 영혼의, 그래서 그녀가 구원해 주었단 자부할 만한 존재가 필요했던 것일까?

선선해 지는 날씨와 함께 옆에 누가 있어도 가슴이 스산해 지는 가을, 따스한 멜로 드라마 한 편, 좋다. 하지만, 소리 높여 사회적 의식을 주장하던 상반기 드라마들의 흔적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오직 '사랑'으로 인해 아파하고, 사랑으로 인해 고통받으며, 사랑으로 인해 구원받는, 그 예전에 하던 이야기를 버전만 달리하여 도돌이표처럼 되풀이 하는 공중파 3사의 드라마들, 그렇다고 어느 작품하나, 빼어나게 시청률이 대박을 치지도 못하는 이 작품들을, 온국민이 트라우가 되었던 세월호 사태조차도 그저 이제는 시간이 흘렀으니 지겹다고 하는 이 냉정한 사회적 방기의 계절에, 그저 가을 탓이라고만 해야 할까? 아이를 키울 육아 비용이 무서워 아이를 낳기 두려워 하고, 결혼 자금이 없어 결혼도 미루는, 이 처참한 불황기에 말이다. 현실의 사회적 배경은 단 1%도 드리워져 있지 않은, 결국은 부유한 그와, 그보다 가난한 그녀의 만남을, 혹은 부유한 그와 그와 어울릴만한 배경의 그녀가 만나는 이야기를,  그저 아름다운 순애보로 이 가을을 달래야 하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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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4.09.19 13:40

현대에 들어선 예술은 그들이 건너온 중세와 전근대의 흔적을 털끝만치라도 남기지 않기 위해 마치 속가를 떠난 사람이 세속의 때를 벗기는 상징으로 머리를 자르듯, 장식적 요소로 작동하던 그 모든 것을 배격하기 시작한다. 또한 그것을 위해 들여졌던 온갖 비용을 경제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그것이 건축으로 가면, 집안을 장식하던 커튼이 벗겨지고, 바닥에 깔렸던 카펫이 벗겨지며, 가구의 윤곽이 되었던 모든 틀이 날라가는 것으로 등장한다. 

<아이언맨> 1회, 주인님이 '용천 지랄'을 한다며 윤여사가 허겁지겁 계단을 뛰어 올라간다. 하지만 그녀가 뛰어 올라가는 계단엔 손잡이가 없다. 앙상한 계단인 듯한 차곡차곡 쌓인 층계만이 있을 뿐이다. 또한 그녀가 들어선, 그 '용천 지랄'하는 주인님 방 역시 앙상하긴 마찬가지다. 늙수그레한 하녀를 부릴 정도의 주인님인데, 방안을 차지하는 거라곤, 여기저기 툭 튀어나온 부스같은 벽체 몇몇에 덩그머니 침대 하나가 다다. 

그런데 건축학적 신사조인 '미니멀리즘'이 보기에는 꽤 새로울지는 모르지만, 소리역학? 혹은 정신과적으로 보자면 황량하기 이를데 없는 구조이다. 벽체, 혹은 바닥 그 어느 곳하나 따스하게 소리를 품어줄 공간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 건축은 온갖 소리를 그대로 발산해 낸다. 우리가 패스트푸드 점같은 공간에서 유달리 시끄럽게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렇게, 가장 첨단의 트렌드를 따른 듯하며 매우 경제적인, 하지만, 그 어떤 일말의 온기라고는 붙어있을 것같지 않은 공간에 사는 '주인님'은 그의 하녀 말처럼, '용천지랄'을 한다. 그 구조를 극대화시킬 듯한 그의 '언성'은 시멘트 벽체를 마치 당구공처럼 이리저리 튕겨 듣는 시청자의 귀까지 한껏 시끄럽게 울린다. 드라마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 역을 연기하는 배우가 밥을 평소 두 배 정도는 먹기라도 해야 할 듯, 남자 주인공 주홍빈(이동욱 분)은 시종일관 보통 사람보다 '화'가 나있다. 그의 주변은 하다못해 냉장고의 상한 마말레이드에서부터, 그의 회사일까지, 온통 '울화통'은 곧 터지게 만들 것 투성이이다. 그리고 게임개발 업체 대표로 하녀까지 부리고 살 정도의 부를 지닌 그는 '갑'답게, 눈치보지 않고 '갑'질을 한다. 화가 나는 대로 마음껏 소리를 지르고, 성과를 내지 못한 직원에게 컴퓨터를 날리며, 그로 인해 부상을 입었다면, 넉넉한 보상금과, 기대치 못한 승진으로 달래는 식이다. '안하무인'이 허락된 그의 존재지만, 오히려 모든 것이 그의 화를 돋굴 뿐이다. 


다짜고짜 1회 내내 화만 내다 못해, 결국 그 화를 내지 못해 등에서 칼이 돋는 주인공, 눈을 씻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유전자 이상 변이로 인해 혼돈을 겪는 <엑스맨>이 아닌가 다시 들여다 보게 만드는 드라마가 바로 1회의 <아이언맨>이다. 
하지만, 이 기괴함에 묘한 익숙함이 느껴진다. 바로 우리가 사는 일상이, 주인공 주호빈의 '화'를 조장하는 일상과 너무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먹기 싫은 아침밥, 도무지 입을 만한 옷이 없는 옷장,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일, 단지 다르다면, 주호빈 그는 그 '화'를 '갑질'을 통해 풀 수 있는 반면, '을'인 우리는 그저 속으로 삼키거나, 음주가무를 통하거나, 또 다른 만만한 누군가를 대상으로 풀어내야 하는 양상이 다를 뿐이다. 그래서 결국 화를 견디지 못하고 칼이 돋는 주인공이 기괴하면서도, 묘하게 익숙하다. 칼이 돋을라 하면 혹은 칼이 돋을 상황이면 후각이 예민하다 못해 '개' 저리가라가 되는 만화같은 설정인데, 낯설지 않다. 엑스맨때문일까?

하지만, 그런 '괴작'의 향기를 차치하고 보면, <아이언맨>의 기본 구도는 어디선가 본 듯 익숙하다. 괴팍한, 하지만 가진 것은 많은 남자 주인공에, 가진 것 없는 여자 주인공, 아니, 남자 주인공은 과거 그가 사랑하던 여인의 향기( 물론 여기서 진짜 향기>를 그녀에게서 느끼고 맹목적으로 그녀를 찾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여자, 하다못해 길잃은 아이의 울음조차 그냥 넘기지 못하고, 자기가 쫓겨날 처지인데도, 후배들의 밥 한끼에 목을 매는, 사랑받아 마땅한 아름다운 심성, 그리고 당연히 그에 못지 않은 미색을 겸비한 여자이다. 이쯤되면, 아하! 하고 무릎을 탁 칠 수 있듯, 우리가 그간 익히 보아온 로맨스물의 구도 아닌가?

이렇게 <아이언맨>은 우리가 뻔히 알 수 있는 로맨스물의 구도에, 현대인의 전형적 증상인, '화'를 내다 못해, 괴물로 변하는 주인공이란, 독특한 설정을 얹는다. 결국 이 드라마에게 주어진 길은 프로스트의 시처럼 두 갈래 길이 될 것이다. 토핑처럼 주인공의 기괴한 변신을 양념으로 얹은 로맨스물이 될 것인가, 아니면 로맨스를 양념으로 친, 현대인의 고뇌와 슬픔을 상징적으로 다룰 것인가? 
그런데 우려되는 것은 기괴한 상상력으로 남자 주인공의 등에서 칼을 돋우는 독특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1회의 그 나머지 진행은 상당히 '우연'에 의존하는 불길한 징조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후각이 예민한 주인공이 과거 연인의 향기를 찾아가다 여주인공 손세동(신세경 분)을 찾아내는 건 그렇다 치고, 하필이면 여주인공이 그에게 회사를 넘기고 외국으로 도망가는 게임개발 업체 대표의 후배이자, 직원이다. 당연히 의협심이 강한 그녀는 빼앗긴 자신의 몫을 찾아 주호빈을 만나고자 하는데, 하필이며 그런 그녀가 거둔 길잃은 아이의 아빠가 주호빈이란다. 이 얽히고 섥힌 미로의 조성 과정은, 상당부분, 우연이라는데, <아이언맨>의 함정이 있다. 

과연 이 뻔한 우연과, 그 우연을 빙자한 만남을 과연 등에서 칼이 돋는 기괴한 설정을 넘어, 현대인의 고뇌를 상징하는 역작이 될 지 1회 <아이언 맨>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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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4.09.11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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