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바빠서 tv 드라마 하나 챙겨 볼 여유가 없는 친구가 웬일로 <따뜻한 말 한 마디>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고 했다. 

부부 사이의 문제를 모처럼 진지하게 바라보는 드라마라며, 그러면서 과연 재학(지진희 분)과 은진(한혜진 분)의 불륜으로 시작된 드라마가 어떤 결말을 맞을지 귀추가 주목된다고 덧붙였다. 중년의 그 친구가 살아온 나날에서 짚어왔을 때, 설사 불륜이라 하더라도, 실제 부부 사이의 이혼이란 게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구나 하는 자기 나름의 결론과, 결혼에 대해 모처럼 진지하게 접근하는 <따뜻한 말 한 마디>가 부부의 외도와 갈등을 여타의 드라마처럼 무 자르듯 이혼이라는 결론으로 맺을 건지 기대 반 걱정 반이라고도 했다. 

(사진; tv 리포트)

그리고 드디어 종영을 맞이한 <따뜻한 말 한 마디>는 친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덕분에, 그 결론으로 인해 드라마적 완성도에 대한 논란까지 불러왔다. 

아마도 그것은 재학의 불륜을 알고 용의주도하게 쿠킹 클래스까지 잠입하며 복수를 다짐했던 미경(김지수 분)의 깊은 분노, 그리고 그 깊은 분노만큼이나 집착적인 사랑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오랜 세월 재학에 대한 사랑 만으로 거의 학대에 가까운 시어머니의 시집살이을 견디며 살아온 미경에 대해 드라마를 봤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마도 이 부부는 이혼을 하지 않을까 라고 쉽게 기대(?)를 했었기 때문이다. 
은진의 외도가 성수(이상우 분)의 외도로 인한 보복성 해프닝의 성격이 강하고, 두 사람이 막말을 하며 혹독하게 상대방을 몰아세워도 이른바 '미운 정'이 느껴지는 것과 달리, 재학-미경 부부에게서는 함께 한 세월의 온기가 그보다 덜 느껴졌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마도, 드라마의 마지막까지, 그 냉랭함을 대신할 '정'과 '관계'를 설득하기에 <따뜻한 말 한 마디>의 논리가 상투적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상대방의 외도로 인한 상처가 치유받았다고 혹은 치유는 아니더라도 봉합되었다고 드라마는 말하고 싶었으나, 시청자들은 그리 받아들여지지 않은 바가 클 것이다. 

하지만 그런 논리적 근거의 부족과 함께, 부부간의 문제를 다루는 우리 드라마에 숨겨진 '이혼'에 대한 환타지를 <따뜻한 말 한 마디>가 무시했다는 데서 오는 배신감도 있지 않을까.
일상의 삶을 견디며 사는 사람들이 기회만 주어진다면 짧게는 하루, 아니 1박2일, 길게는 해외 여행을 꿈꾸는 핵심은 바로 '일탈'에 있다. 그처럼, 부부 간의 문제를 다루는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에게, 현실의 자신이 불만을 가지고 사는 문제들이 드라마를 통해 속시원하게 해결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또한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여전히 일정한 시청률을 확보하고 있는 부부간의 문제를 다루는 드라마 <사랑과 전쟁>의 클라이막스와 엔딩은 마치 못된 놀부를 처단하듯, 자신을 괴롭히던 사람들을 응징하고 통쾌하게 이혼을 선언하는 것으로 끝나기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그런데, <따뜻한 말 한 마디>는 미경이 재학을 버리고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삶을 찾아 행복하게 사는 환타지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현실의 선택을 보여준다. 이혼은 그리 쉬운 게 아니라고, 어쩌면 상대방의 불륜 한번으로 손상된 자존심을 내세워 이혼하기 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이 사랑하고 있는 그 사람과, 가족을 끌어안고 가는 것이 더 행복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익숙하지 않은 해법을 논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세계 수위의 이혼율을 보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어쩌면 <따뜻한 말 한마디>가 내세운 해법이 역설적으로 환타지적이거나, 진부한 것일 수도 있겠다. 

(사진 엑스포츠 뉴스)

이렇게 대중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따뜻한 말 한 마디>와 달리, 애초에 제목에서부터 두 번의 이혼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 <세번 결혼하는 여자>는 당연한 수순이듯, 주인공 두 사람의  두번 째 이혼을 목전에 두고 있다. 

준구<하석진 분)와 재혼한 은수(이지아 분)는 마무리 되지 않는 준구의 불륜으로 이혼의 위기에 놓인다. 은수의 전남편인 태원(송창의 분) 역시 새엄만 채린(손여은 분)의 딸 슬기(김지영 분)에 대한 학대로 이혼을 선언한 상태이다. 마치 두 사람은 제목이 정해준 메뉴얼처럼, 재혼을 하고, 다시 이혼을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심지어, 이지아는 준구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는 상태이다. 

3월 1일 은수가 준구를 만나 정리하듯, 애초에 은수와 준구의 결혼은 잘못된 것이라고 드라마는 말한다. 설사 준구가 바람을 피지 않았더라도 자의식이 강한 은수는 준구의 집안에서 조금씩 말라가다, 언젠가는 또 다른 이유로 이혼을 선언할 것이라고 말한다. 아니, 그보다 <세번 결혼하는 여자>는 마치 탯줄을 자르지 않은 아이처럼, 비록 시어머니의 학대로 인해 이혼까지 했지만 여전히 정신적 유대의 끈을 놓지 않은 은수와 태원의 두번 째 결혼이 순탄치 않는게 당연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드라마에서, 두번 째 결혼은 마치 두 사람이 지난 시간 내렸던 첫 번째 이혼이라는 결정이 경솔했음을 증명하기 위한 도구처럼 씌여지고, 두 사람들의 두번 째 파트너는 무엇을 어떻게 해도 결국 두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지 못하는 도구적 인간들일 뿐이다. 드라마는 그들이 만난 새로운 사람들이 문제적 인간이기 때문에, 두번 째 이혼에 봉착한 것처럼 그려내지만, 결국 두 사람의 근본적 문제는, 자존이라고 내세우면서, 첫 번 째 결혼의 탯줄을 끊어내지 못하는데 기인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세번 결혼하는 여자>는 두 주인공의 두번 째 이혼을 들먹이며, <따뜻한 말 한 마디>가 이르른 이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라는 결론에 이르르고 있다. <세번 결혼하는 여자>의 은수와 태원은 두번 째 결혼의 붕괴 지점에 이르러서야, 지난날 자신들의 결정이 경솔했음을 시인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다른 분석도 가능하다. <따뜻한 말 한 마디>가 세월의 더깨가 앉은 좀 살아본 사람의 눈으로 바라본 결혼과 이혼에 대한 현실적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결혼에 대한, 그리고 관계에 대한 따스한 가능성에 대한 천착이라면, <세번 결혼하는 여자>는 김수현이라는 노작가의 눈으로 바라본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한 냉소가 그대로 드러난다. 사랑을 담기에도, 가족이라는 그릇으로 포용하기에, 더더우기 개인의 자존감이 존중받기에는 더더욱 어색해져 버린 이 시대의 결혼이라는 거북살스런 제도를 야멸차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결국은 가정으로 다시 돌아간 미경도 어색하고, 태중에 아이를 넣고 이혼을 하겠다고 나서는 은수도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다. 애초에 결혼 자체가 미친 짓이기 때문일까. 설득력있는 이혼이라는 건 존재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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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4.03.02 10:26

1월 28일 방영된 <로맨스가 필요해3>의 백미는 신주연(김소연)과 그녀를 보살펴 주는 주완(성준)의 관계도, 신주연도 미처 깨닫지 못한 선배 강태윤(남궁민)과의 사랑도 아니다. 내일 방송을 앞두고 겨우 집에 들어가 옷이나 갈아입고 올 정도로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조기 폐경을 맞게 된 신주연의 동료이자, 고참인 이민정(박효주)과의 갈등이다.

(사진; 엑스포츠 뉴스)


이민정은 강도윤과 동기이자, 직장 연배로 보면 신주연에게 언니 대접을 받아야 할 연배이다. 하지만 늘 신주연에게 ‘자기야’라고 불리워지는, 신주연을 팀장으로 모셔야 하는(?) 위치의 그녀에게 생각지도 못한 신체적 변화가 생긴다. 흰 머리가 늘고, 달력의 잔글씨가 보이지 않고, 급기야 찾아간 산부인과에서는 조기 폐경이라는 진단을 받게 된 것이다. 늘 연애할 시간조차 제대로 없다고 푸념을 하던 그녀에게 일하느라 바쁘고 번거로워 금요일 밤의 원나이트 정도면 즐기기에 적당하다 하던 그녀에게 내려진 여자로서의 사형선고이다.


자신에게 닥친 불의의 신체적 변화에 아노미 상태가 된 그녀는 그 일을 비밀 없이 지내는 듯한 사무실 동료들에게 토로하지만 돌아온 것은 내일 방송을 앞둔 팀장 신주연의 철면피같은 무반응이요, 그저 ‘왜 이렇게 바쁜 시기에’라는 난처함이 역력한 다른 동료들의 표정이다. 그런 동료들의 모습에 분노한 이민정은 ‘갑각류같은 년’이라며 신주연에게 퍼붓고 그 자리를 떠나버리고 바쁜 동료들에게 이기죽거리는 심정으로 카톡으로 사직서를 날려 버린다.


<로맨스가 필요해3>가 사랑에 미성숙한 여성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사랑해 주는 멋진 두 남성이라는 환타지에 충실한 로맨스 소설의 얼개를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음에도 젊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가는 측면은 그 로맨스 소설이 딛고 있는 현실성이다. 고시를 앞둔 애인 때문에 데이트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고사되어 가는 듯한 정희재(윤승아 ), 마흔을 앞두고 있음에도 직장 일에 얽매어 시원하게 연애 한 번 사랑 한번 못해본 이민정, 그리고 팀장의 자리에 오를 만큼 일에서의 성취는 눈부시지만, 정작 자신이 누구를 사랑하고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할 만큼 사랑에 있어서는 미성숙한 신주연까지 이 시대 젊은 여성들이 그 중 누군가에게 자신을 투영하기에 충분할 캐릭터들이다.


그렇게 일에 압박당하느라 사랑도, 젊음도 제대로 챙겨보지 못한 젊은이들의 삶을 케이블 tvn이 그려내고 있는 동안, 종편 jtbc<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가 그려내고 있는 것은 그녀들의 언니급인 마흔 무렵의 삶이다.


직업적으로 안정된 지위에 올랐지만 결혼이라는 관문을 아직까지 넘지 못해 이제는 불안해 하는 김선미(김유미 )의 모습은 <로맨스가 필요해3>의 신주연이나 이민정의 미래가 오버랩된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화려한 결혼을 했지만 그 번듯함이 허명이 되어 고통으로 다가오는 권지현(최정윤)은 <따뜻한 말 한 마디>의 미경의 다른 버전 같기도 하다. 결혼도 넘고, 이혼까지 넘어버린 그래서 이제는 스스로 가장이 되어 자기 삶을 꾸려낼 수 밖에 없는 처지의 윤정완(유진)은 이 시대 마흔 무렵 여자들이 빚어낼 수 있는 또 다른 현실성이다.


(사진; 무비조이)


sbs의 <따뜻한 말 한 마디>의 나은진(한혜진)은 세대로 치자면 jtbc < 우리 사랑할 수 있을까>와 같은 세대이다. 하지만, <따뜻한 말 한 마디>라는 드라마의 논조를 담당하고 있는 것은 그녀를 연적이라 생각하고 있는 미경(김지수)의 시선이다. 자신의 동생이 미경의 동생과 사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은진은 자신이 전염병같다고 오열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재학(지진희)와 정신적 외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미경으로부터 온갖 수모를 겪고, 가족, 친지, 심지어 동네 사람들에게서 손가락질을 받는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의 외도 그 불가피성 여부랑 상관없이 <따뜻한 말 한 마디>가 그려가고 있는 파장은, 외도가 가족에 미치는 사회 병리학적 조사 보고서와도 같은 것이다. 가족이, 남편이 전부였던 삶을 살았던 40대 중반의 여성 미경의 눈높이이다.


은진이 재학과의 외도 한번에 천형과도 같은 형벌을 겪고 있는 것과 달리, <우리 사랑할 수 있을까>에 오면 드라마의 제목처럼, 상황은 한결 여유로워 진다. 비록 그녀가 낳은 숨겨진 딸의 아버지라는, 첫사랑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지만, 이제는 엄연히 남의 집 부인과 그 집 남편의 사업상 파트너라는 위치에 놓인 지현와 안도영(김성수)는 사람 없는 엘리베이터에서 키스를 나눌 만큼 대담해진다. <따뜻한 말 한디>에서 ‘사랑’이기에 더 용서할 수 없던 외도가, <우리 사랑할 수 있을까>에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조장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단짝 친구였던 선미와 주완은 한 남자를 놓고 연적이 될 처지이지만, 결혼이란 제도에서 놓여진 그녀들이 철천지원수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천형이던 외도에서 사랑이란 이름이 부각되고, 결혼이란 제도에서 헐거워진 그녀들은 한 남자의 사랑을 높고 자유로이 경주한다. 


(사진; osen)


<로맨스가 필요해3>로 가면 한 발 더 나아간다. 고등학교 시절 자신의 첫사랑을 빼앗겼다는 트라우마에 시달렸던 신주연이지만 머리끄댕이 한번 잡는 것으로 지나간 회한을 풀어내고, 사업상 그녀가 필요하자 그녀에게 달려가 도움을 요청하는 ‘쿨’한 선택을 한다.  얼굴만 마주대면 으르렁거리다가도 일로 돌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냉철한 카리스마를 놓치지 않는다. 사랑에 상처받으면 일로 풀어내고, 일이 힘들어 졌을 때 다시 사랑이 채워주는, 양수겹장의 삶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났다 하여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기에 신주연이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은 일과 사랑 모두에서 그녀의 버팀목이던 도윤의 냉정함에 마주쳤을 때이다.


이렇듯 동시간대 sbs, jtbc, tvn에서 월화 10시대에 방영되는 드라마는 각 그 드라마의 타겟층이 되는 여성들의 삶을 반영하고 있다. 이혼을 해도 당장 먹고 살 걱정이 없는 <따뜻한 말 한 마디>의 그녀들과, 이혼 후의 가장이 되어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 >, 그리고 일이 곧 삶의 주된 동인이 되어버린 <로맨스가 필요해3>의 그녀들은 우리 시대 세대별 여성상의 반영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 풍요를 맛본 중년의 세대와, 그 사이에 끼인 세대, 그리고 88만원 세대로 대변되는 세대별 사회적, 경제적 삶의 반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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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4.01.29 12:54

우리나라에서도 인기있는 일본의 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중에 [편지]라는 작품이 있다. 

소설 속 형 츠요시는 어머니도 죽고 홀로 동생을 보살피며 생계를 책임지던 중, 동생의 대학 입시를 앞두고 홀로 사는 노파네 집 담을 넘다 강도 살해범으로 잡히는 처지가 되고 만다. 편지는 강도살해범을 둔 동생이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세상 사람들의 편견에, 불편함을 견디며, 도망치며, 발버둥치며 살아가려 하지만 천형같은 강도살해범 형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오키의 이야기인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편지]는 대다수 이런 문제를 다루는 다른 이야기들이 츠요시나 나오키에 대한 편견을 지향하는 것을 취지로 다루는 것과 달리, 그 편견을 짊어지고 나가야 하는 당사자 가족의 운명을 더 실감나게 그려내는데 치중한다. 

그렇게 제 아무리 발버둥쳐도 결국은 형제라는 운명으로 엮어진 사슬을 벗어나기 힘들다고, 그저 짊어지고 가야 하는 천형과도 같은 것이라고 소설은 은밀하게 토로하는 것처럼, <따뜻한 말 한 마디>는 사랑의 결실을 넘어, 사회적 관계로서의 부부를 들여다 보기 시작한다. 



은진(한혜진 분)-성수(이상우 분) 부부는 물론, 집착에 가까운 사랑을 가졌던 미경(김지수 분)-재학(지진희 분)부부 역시 결국은 이혼이라는 결정을 내리기에 이르른다. 하지만, 사랑으로 시작하여, 신뢰로 지탱하던 부부 관계가 종지부를 찍는 마당에도, 이들의 부부 관계는 쉬이 대단원의 막을 내리지 못한다. <사랑과 전쟁>에서라면 오히려 부부의 불화를 부채질할 주변의 관계들이, 역으로 네 사람의 부부 관계를 끝내지 못하는 접착제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 집에서 얼굴을 맞대는 것조차 힘들어 하던 은진-성수 부부에게는 아픈 성수의 어머니가 찾아온다. 그래서 둘은 어쩔 수 없이, 비록 침대 위와 아래에서이지만, 시어머니 앞에서 부부인 척 생활할 수 밖에 없다. 미경-재학의 부부 역시 마찬가지다. 재학의 바람이, 그저 바람이 아니었음을 절감한 미경이 집을 나가고 이혼을 선언했지만, 역시나 재학의 어머니가 쓰러지는 바람에 미경은 며느리의 역할로 돌아올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미경의 시어머니는 자식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남편을 견딜 것을 미경에게 종용한다. 뿐만 아니다. 미경의 의붓 동생 민수(박서준 분)와 은진의 동생 은영(한그루 분)의 결혼으로 불가피하게 부부연하게 되는 미경과 재학, 은진과 성수의 관계만 보아도, 부부는 그저 부부가 아니다. 

시한 폭탄과도 같은 민수와 은영의 결혼은 그걸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접점이 될 것이다. 두 사람은 사랑하지만, 두 사람을 둘러싼,은진-성수, 미경-재학의 관계가 과연 그걸 용인해 낼 수 있을까. 심지어 은진 부부에게 차 사고까지 낸 민수가 순탄하게 결혼에 이르를 수 있을까. 이는 결국, 대한민국에서 부부란 관념적으로 사고되는 사랑의 결실이라기 보다는 사회적 관계 단위로서의 부부가 차지하는 바가 더 크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라 보여진다. 

<힐링 캠프>에 나온 황정민은 자신의 아내에 대해,
이제는 배도 나오고, 주름도 지고, 예전처럼 이쁘지는 않지만, 그러나 자신이 세상에서 손가락질을 받는 처지가 되더라도, 나의 편이 되 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아내라고, 가장 자신의 친한 친구가 바로 아내라고 정의 내린다. 


사랑이 지나간 자리, 아니 희미해져가는 자리, 부부는 그 틈을 신뢰와 우정으로 메워간다. 하지만, <따뜻한 말 한 마디>는 그런 신뢰와 우정조차 너덜너덜해진 상황에서도, 부부는 그리 쉽게 지워질 관계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첨언한다. 대한민국 에서 부부란 그저 사랑하는 사람 둘이서만 만들어진 단위가 아니라, 부부와, 그 주변 사람들이 얽혀진 공동체로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물론 경우에 따라서, 그 공동체가 오히려 부부 관계의 파국을 재촉하는 촉매제가 되기도 하고, 지금까지 대부분의 드라마는 그걸 유효한 카드로 사용하고 있어왔다. 하지만, <따뜻한 말 한 마디>는 좀 다르게 진지하게, 우리 사회에서 부부의 위치는 어디쯤 되느냐고 다시 한번 반문한다. 혈연주의의 확장이, 발목을 잡기도 하고, 반대로, 부부란 인연의 접착제가 되기도 하는 모호한 그 경계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에서 나오키와 츠요시는 제 아무리 츠요시가 저지른 범죄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혈연으로 나누어진 형제였다. 그래서, 나오키는 형의 범죄를 함께 짐지우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하지만 부부는 분명 다르다. 서류에 도장만 찍으면 끝나는 쿨한 관계일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진정 부부는 무엇으로 살아갈까? 그렇게 자꾸만 <따뜻한 말 한마디>는 반문한다. 전생에 억만 겁의 인연이 합쳐져 이생에서의 부부라는 연을 맺었다던 전통적인 부부 관계의 관념이 사랑이 없으면 헤어져야 한다는 신식 이혼관이 대체해 가는 이즈음, 하지만 부부란 그리 간단명료한 사회적 단위가 아니라고 한번쯤은 진지하게 되돌아 보자고 드라마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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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4.01.22 10:44

흔히 우리나라를 방문하거나 한동안 머무르던 외국인들이 한국, 한국 사람에 대해 가장 명료하게 정의내리는 말이 있다. 

'정이 많다'
우리나라 사람도 이런 말에 대해 동의할 뿐더러, 정이 많다는 것에 자부심마저 느낀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정'이란게 무얼까?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정(情)'이란 오랫동안 지내오면서 생기는 사랑하는 마음이나 친근한 마음'이란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낯선 사람들도 쉽게 내 주변의 사람처럼 쉽게 잘 받아들여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이라는 뜻이겠다. 그런데, 마음을 나눈다는 이 말, 정말 좋을까? 문제는 사람들이 마음만 나누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속담에도 있듯이, '정'을 무기로, '남의 젯상에 감놔라, 배놔라'하는 식이 된다는 데 있는 것이다. 바로 그 대한민국 사회의 정겨운, 하지만 알고보면 징글징글한 인간적 관계들이, 불륜이라는 도덕적 문제에 부딪쳤을 때 나타나는 부작용을 <따뜻한 말 한 마디>는 고스란히 그려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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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말 한 마디>는 흡사 불륜에 대한 세밀화와도 같다. 대부분의 드라마들이, 불륜 이후에 게임의 다음 행로를 버튼을 눌러 선택하듯, 이혼, 복수 등 명료한 방식으로 그려내는 것과 달리, <따뜻한 말 한 마디>는 불륜을 겪는 과정, 불륜 이후의 심리, 불륜이 미치는 파급에 대해 마치 섬세한 조사 보고서라도 되는 양 그려 내고 있다. 덕분에 그 어느 드라마보다도, '불륜'이 부부 사이의 흔해빠진 사건이나 이혼이나 간통이라는 법률적 문제가 아니라, 신뢰를 바탕으로 한 부부 사이에 인간적 모멸과 심지어 파멸까지도 불러올 만한 심리적 트라우마을 가져올 만한 사건이라는데 공감대를 충분히 자아내고 있다. 물론, 그간 통속적으로 부부 관계를 그려냈던 타 드라마와 달리 섬세한 이런 묘사가 <따뜻한 말 한 마디>라는 드라마가 보다 대중적인 입지를 차지하는데 마이너스로 작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처럼 인간 관계를 진지하게 들여다 보는 드라마라는데 있어서는 이견이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따뜻한 말 한 마디>가 그려가는 세밀화는 이제 주인공, 그리고 주인공들의 배우자를 넘어 존속과 친지의 관계로 그 영역을 확장해 가면서, 대한민국에서만 보여질 수 있는 이혼의 풍속도로 그 색채를 변주하고 있다. 처음 은진(한혜진 분)과 재학(지진희 분)가 만났을 때만 해도 불장난같은 사랑이었다가, 그게 재학의 아내 미경(김지수 분)이 알게 되고, 드디어 성수(이상우 분)까지 알게 되며 본격적인 불륜으로 자리매김한다. 하지만, 두 부부 사이의 일은 언제나 주변 인간들에 둘러싸인 대한민국에서 두 부부, 혹은 네 사람의 일로 그칠 수가 없다. 아직 모두가 자신들이 벌여놓은, 혹은 예상치도 못하게 배우자의 배신으로 겪게되는 고통에서 헤어나올 수조차 없는 상황에서, 이제는 그로인해 벌어지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터지는 폭탄 세례를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가깝게는 미경의 가족에서 그 사실을 알게된 재학의 어머니(박정수 분)는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잘난 자신의 아들, 번듯한 집안을 내세우며 며느리 미경의 상처를 긁으며 덮을 것을 종용한다. 자기 가족에 대한 자부심을 똘똘 뭉친 은진의 엄마(고두심 분)은 딸을 불륜 사실을 차마 받아들이지 못하면서도, 지레 앞서 사위를 가족의 이름으로 가둬두려 애쓴다. 공교롭게도 양 집안의 직계 존속들은 태도 여하야 어떻든, 두 부부의 관계를 봉합하려 애쓴다. 그들의 상처와 관계가 어떻든. 여전히 어른들 세대에서 부부 사이의 믿음이라는 개인적 가치보다는 가족라는 공동체적 관계가 우선하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미경을 너무 안쓰러워 하는 의붓 동생 민수(박서준 분)는 누나를 괴롭게 했다는 이유만으로 은진 부부가 탄 차를 사고로 내몬다. 왜곡된 가족애의 전형이다. 

하지만 연예인의 가족사에조차 달려들어 감놔라 배놔라 하는 사람들처럼, 정작 보탬도 되지 않으면서 남의 일에 열내고 흥분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은진, 미경과 함께 쿠킹 클래스를 다니던 은진의 대학 선배 영경은 미경에게 위로와 응원의 꽃바구니를 보낸다. 그런가 하면 은진을 쿠킹 클래스로 불러내 갖은 모멸과 물세례까지 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영경이 그러는 이유는 자신이 바로 미경처럼 남편의 불륜에도 불구하고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수모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남의 일과, 내 자신의 일을 구분하지 못하는 오지랖의 전형, 심하게는 자아분열의 예시이다. 
정작 은진의 동생들 조차, 그리고 미경의 자식들에게는 차마 말할 수 없는 문제를 동네방네 사람들이 알고 자기 일처럼 떠들고 흥분하는 요지경 속이다. 
오지랖은 그 영역을 확장한다. 미경에 수모를 겪는 은진을 본 동네 사람들은 지나가는 은진의 뒤에서 수근거리고, 천리를 간 은진의 불륜 사실은 동창회에 참석한 성수로 하여금 동창들에게 손찌검을 하게 만든다. 
그저 부부간의 문제가 사회적 문제화되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불륜 한번 했을 뿐인데, 은진은 이제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얼굴을 들고 살아가기 힘든 처지에 놓인 것이다. 


하지만 정작 불륜을 일으킨 당사자들이 받는 고통도, 불륜으로 인해 신뢰가 깨지고 사랑의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도움의 손길은 멀다. 쿠킹 클래스 선생이 건네 준 정신과 상담 명함을 집어 넣고 점집을 찾은 미경의 선택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현실적인 선택인 것처럼 보이듯이. 번번히 어긋나는 미경 부부의 노력, 그리고 여전히 마음 속에서는 서로가 가져왔던 시간의 깊이에 대한 미련에도 불구하고 주변 상황으로 인해 자꾸만 파멸로 떨어지는 은진 부부를 길어올릴 사회적 두레박은 드라마에서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분주히 어른들 세대의 통념으로 봉합하려는 어설픈 시도거나, 자기 일인지, 남의 일인지 구분하지 못하거나, 가쉽으로 즐기려는 오지랖이 있을 뿐이다. 봉합할 도구도, 상처에 바를 약도 오로지 부부 자신들만고는 찾아낼 길이 없는 고달픈 부부들의 현실, 그것이 바로 <따뜻한 말 한 마디>가 그려내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의 불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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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4.01.08 09:58

<어바웃 타임>을 아들과 함께 봤다. 아름다운 여성과의 달달한 로맨스 영화를 기대했던 아들에게,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가족의 의미를 되묻게 하는 영화가 어떻게 다가갔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예상외로 아들은 참 좋았단다. 그리고 덧붙인다. 영화 속 아버지의 모습이 인상깊었다고. 우리 사회의 어른들 모습과 너무 달랐다고.



영화 속 아버지는 자신의 암에 대해 담담하게 맞이한다. 암에 걸리지 않은 시절로 돌아가라는 아들의 권유에, 내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멋있어서 니 엄마가 나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만약 지금의 암을 없애려면 수십년을 함께 해온 아내와, 사랑하는 자식들의 없어져야 한다고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우리가 늘 갈구하는 진정 '쿨한' 삶의 태도이다. 하지만, 그 속에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대한 애정과 가족에 대한 사랑이 담겨있다. 아들과 탁구를 치면서 오만 입방정을 다 떨 정도로 친근하지만, 정작 인생의 고비고비 아버지는 의연하고 담대하다. 아들의 삶에 조언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 어린 아들이 보기에도 자신이 우리 사회에서 어른이라 불리는 사람들에게 보여진 모습과는 무척이나 달랐던 것이 다가온다. 

12월 17일 6회를 맞이한 <따뜻한 말 한 마디>의 엔딩은 유재학의 어머니인 추여사(박정수 분)의 한바탕 굿판이었다. 송미경의 의붓 동생 송민수의 울분에 찬 말들처럼, 새벽같이 일어나 밤 늦게까지 하루 24시간을 48시간으로 살아온 며느리가, 자신에게는 입 속의 혀처럼, 뭐가 먹고싶다 말 하기도 전에 알아서 대령하는 며느리가, 바람난 아들에게 술 한 잔하고 숨겨진 분노를 내뱉는 그 순간을 견디지 못하고, 호령을 한다. 본데없는 며느리의 집안을 들먹이는 것에서 시작해서, 그간 이룬 것이 뭐있냐는 식의 시어머니들의 전통적 레파토리이다. 

추 여사

아마도 이 장면을 드라마의 엔딩으로 설정한 것은, 시어머니의 그 폭언들이 진부한 클리셰들임에도, 여전히 고부 관계가 설정되어 있는 드라마에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어올리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 그 덕분이었는지, <총리와 나>에 밀려 3위로 떨어졌던 <따뜻한 말 한 마디>의 시청률은 다시 2위의 자리를 회복했다. 

<따뜻한 말 한 마디>의 시어머니 추여사는 돌출적 캐릭터이다. 그녀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심리에 근거한 행동을 하는 예측 가능한, 즉 이해가능한 인물들이라면, 그녀만이 잘난 자기 아들과, 그보다 더 잘난 자기 집안에 대한 자부심으로 일관되게 며느리를 '학대'하는 비이성적이고, 탈논리적인 막가파이다. 바람 핀 남자와 여자도 그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도록 그려지고, 바람난 남편때문에 흥신소를 부르고, 상대방의 여자를 스토킹하는 아내의 모습이 절절하게 공감되게 그려내는 <따뜻한 말 한 마디>에서 아들의 잘못을 '포악'으로 해결하려는 유일하게 막돼먹은 사람이다. 

추여사와 비슷한 사람이 또 있다. <세번 결혼한 여자>의 정태원의 엄마 최여사(김용림 분)이다. 재혼을 미루는 아들의 결혼을 밀어붙이기 위해 이미 재가한 전 며느리의 시댁에 전화를 걸어 당신의 며느리가 우리 아들을 만나고 다닌다며 무고를 하는 식이다. 그녀의 친정에 쳐들어가 한바탕 하는 건 예사다. 새초롬한 시누이조차, 자신의 어머니에게는 두 손 두 발 다 들 정도로, 자신의 아들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한 것에는 상식도, 예의 따위는 밥 말아 먹는다. 

최여사

재밌다. 두 분 다, 이름도, 추여사, 최여사다. 그들의 이름은 없다. 그들 또한 한때는 누군가의 아내이자, 며느리였을 터이지만, 이제 그런 흔적은 지워버리고, 한 집안의 상징적 어른이자, 아들의 어머니로서만 자리매김한다. 그리고 그걸 수호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맹목적인 모습을 보인다. 어머니란 그녀의 앞에 그녀의 아들은 십중팔구 무기력하고, 며느리는 고양이 앞에 쥐 신세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건, 이름도 없이 어머니란 존재만으로 굳어진 이들 캐릭터가, 드라마에서는, 결정적 용병처럼 작용한다는 것이다. <따뜻한 말 한 마디>는 부부의 불륜을 다루되, 그것을 <사랑과 전쟁> 수준으로 풀어내는 대신, 그들의 사연과 심리에 천착하여, 시청자들이 함께 고민해 볼 여지를 만드는 드라마이다. <세번 결혼한 여자> 역시 마찬가지다. 김수현이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은 시청률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지만, 요즘 드라마에 보기 드물게, 여자의 이혼과 재혼에 대해 진지한 고민의 자세를 가지고 있는 드라마이다. 

그러기에,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에 공감하고 풀어가는 방식에 동조하는 시청자라면 깊이 빠져들며 함께 고민을 나누어 가지만, 그 코드에 맞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냥 나쁜 년하면 되는데, 뭐 그렇게 시시콜콜 이해를 시켜 하면서 시쿤둥하거나, 재혼을 하던가 말던가, 얼른 남편 바람핀 거 들키기나 해라 하며 심심해 하는  드라마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시청자들의 관심이 나른해 질때, 이분들 여사님이 등장한다. 등장과 함께 짜~하게 말도 되지 않는 행동을 보이며 시청자들의 욕을 들어주신다. 하지만 그러면서 드라마에는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필요악이 되어 버린 것이다. 

두 드라마뿐이 아니다. 인기를 끈다 싶은 드라마에는 이들 여사님같은 캐릭터가 꼭 있다. 인기리에 종영된 <황금 무지개>에서 며느리를 쫓아다니며 포악을 떨던 강정심 여사(박원숙 분)가 그분이며, 요즘 가장 인기가 좋다는 <왕가네 식구들>의 박살라 여사(이보희 분) 또한 만만치 않다. 어디 그뿐인가, <오로라 공주>에서는, 시어머니는 아니지만, 시누이 삼종셋트가 시어머니 캐릭터를 톡톡히 해냈다. 

용병의 역할이자, 필요악으로 자리매김하는 어머니들의 모습은 분명 현실의 어머니들과는 차이가 분명한 그 이기심이 극대화된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번번이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이들 어머니들의 모습은, 그저 작가의 편의주의라기엔, 존경할 어른이 없다는 우리 사회의 '어른'을 상징화 시켰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12월 14일자 [한겨레 신문]의 오길영 교수는 그의 칼럼에서 '지금 한국 정치는 청년 세대는 과소 대표된다. 반면 기성 세대는 과잉 대표된다. 그들 마음대로 정치, 경제, 정책을 좌지우지한다. 젊은이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기성 세대의 시각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된다'고 안타까워 한다. 바로 그 과잉되고, 자의적인 기성 세대의 반영이, 드라마 속 시어머니들의 캐릭터가 아닌가 싶은 거다. 소통할 수 없는 논리로, 오로지 자신의 것만을 지키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기성 세대, 그것이 바로 드라마 속 우리 사회 어른들의 모습이다. 그래서 더 그 시어머니들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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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3.12.18 10:51

<감자별2013QR3(이하 감자별)>의 첫째 딸 노보영(최송현 분)은 셜록 홈즈가 저리 가라할 만큼 남다른 관찰력으로 추리의 일가견을 보인다. 남편이 화장실 변기의 뚜겅을 내리지 않은 것도, 큰 아이가 세수를 하지 않은 것도,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척~보면 알아낸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듯 똑부러지는 주부인 그녀에게 시련이 닥쳤다. 그것은 바로 큰아들 규영(김단율 분)이 반에서 기르는 방울 토마토를 따먹었다는 혐의를 받게 된 것이다. 거짓말을 하면 바로 티나 나는 아들 규영을 붙잡고 추궁해 보지만, 그녀의 예리한 눈에도 아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 보인다. 아들의 결백을 믿은 그녀는 아들의 혐의를 풀어주고자 셜록 홈즈의 복장을 한 채 학교에 나타난다. 그리고 세심한 추리 끝에 그녀가 내린 결론은 이웃반 토끼가 범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런 그녀의 말을 아들의 혐의를 덮기위한 무리한 속단이라 치부한다. 그녀 스스스로도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결론에 자신없어 하던 그녀는 돌아서는 아들의 바지에 묻은 붉은 얼룩을 보고 아들이 범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추리가 틀렸음을, 선생님에게 거짓맛을 하게되어버린 자신을 자책한다. 침대에서 뒹구는 아내의 화면으로 남편(김정민 분)의 나레이션이 흐른다. 그토록 완벽했던 아내가 추리를 틀리게 된 건 바로 엄마라는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허술한 그녀에게서 사람 냄새가 남다고.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감자별>의 이야기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화면은 규영의 반 교실 문쪽으로 바뀌고, 조금 열린 문 사이로 토끼인 듯한 물체가 보인다. 

흔히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고 우리는 긍정적으로 사고하려고 한다. 노보영의 남편이 자신의 아내가 한 첫 실수를 모성의 착시라고 정의내린 것처럼, 하지만, 냉소적 시각의 <감자별>은 아니 오히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지는 '불온한' 역설을 논한다. 사랑하기에 믿을 수 없는 거라고. 

노보영은 평소 자신의 큰 아들을 늘 못미더워 했다. 이성적인 그녀와 다르게 허무맹랑한 별 이야기 따위나 즐기고, 하는 짓이라고는 헐랭이인 규영의 말을 늘 그녀는 '거짓말이지?'하고 의심부터 하곤 했다. 만약 아들의 말을 철썩같이 맏는 엄마였다면 아들의 거짓말을 판별하는 따위의 노하우는 필요없었을 것이다. 그런 그녀였기에 아들의 결백을 밝히겠다고 했지만, 내심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들 녀석의 도발을 의심하는 마음을 저버릴 수 없었다. 자신이 내린 이성적 결론에 그녀 자신도 미덥지 않아했다. 평소같으면 아들의 엉덩이의 붉은 자국을 의심해 볼만도 하건만, 아들에 대한 불신에 사로잡힌 그녀는 대번에 그 자국을 아들이 깔고 앉아 으깬 방울 토마토라 믿어버린다. 사랑이 내지른 정신적 폭력이다. 시트콤 <감자별>에서는 하나의 에피소드로 마무리되었지만 대부분 자녀들은 성장과정에서 부모가 내지르는 사랑이란 이름의 불신과 정신적 폭력을 감내해야 어른이 된다. 

(사진;따뜻한 말 한 마디; tv리포트)

<따뜻한 말 한 마디>에서 송미경(김지수분) 말 대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그녀의 남편 유재학(지진희 분)이다. 16일 방송된 5회에서 이 부부의 역학 관계는 미묘하게 변화된다. 남편의 밥상을 쓸어버릴 호기를 부리던, 자는 그의 얼굴에 베개를 덮어 누를 만큼 분노를 발산하던 미경은 당신을 믿었다던 남편의 말 한 마디에 허물어 진다. 비록 자신은 잠시 바람을 피웠을 망정, 그 순간에도 당신을 택했다, 당신을 믿었다고 남편은 말한다. 괴변과도 같은 말이다. 하지만, 남편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남편을 사랑하던 미경은, 남편의 미묘한 변화에 '바람'을 감지하고 남편을 감시하는 흥신소를 붙였다. 평소 자신을 덜 사랑해 준다는 불안이 그녀로 하여금 넘지 말아야 할 부부의 믿음을 깨뜨린 것이다. 

분명 그 선을 먼저 깬 것은 남편이지만, 5회의 <따뜻한 말 한 마디>를 보면, 부부 관계의 신뢰에 대한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된다. 물론 작가의 이런 서술이, 바람핀 놈이 나쁜 놈이라는 우리사회의 선험적 명제에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흔히 부부 싸움을 칼로 물베기라던가,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우리나라 속담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어떤 전제가 필요한가 드라마는 논하고 있다. 이제 5회에 들어선 작가는 묻고 있다. 정말 부부를 이끌어 가는 것은, 한 가정을 온전히 지켜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 것일까 라고. 그래서 은진(한혜진 분)은 남편에게 선택하라고 말한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진흙탕의 진실을 알게 될 것인지, 그게 아니면, 막연한 믿음으로 부부 관계를 이어갈 것인지. 하지만, 이미 교통 사고 종료 건으로 은진의 남편 성수(이상우 분)는 판도라의 유혹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사진; 감자별; osen)

16일 <감자별>에서 백설공주가 되어 광고 촬영을 하러 간 나진아(하연수 분)에 대한 노민혁 형제의 반응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이제 막 나진아를 여자로 좋아하기 시작한 노민혁(고경표 분)은 자신의 마음을 감추지 않는다. 회사 대표의 호의를 빙자해, 첫 광고 현장에서 자신없어 하던 그녀를 북돋아 주고, 자신의 옷을 벗어 어깨에 걸쳐 주는 등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하지한 이미 산꼭대기 허름한 나진아네 집에서 부터 나진아를 마음에 두고 있던 준혁(여진구 분)은 사랑의 마음을 '못생겼다'는 식으로 표현할 뿐이다. 더 사랑하지만 더 괴롭히는 사랑의 역설이다. 더 사랑하는 자가 약자라고 하지만, 그 약자가 늘 지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기에 의심하고, 사랑하기에 불신한다. 그리고 자신의 사랑을 주체치 못해 괴롭힌다. 그래서 때로는 사랑의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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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3.12.17 10:35

<따뜻한 말 한 마디>에서 송미경(김지수 분)은 남편 유재학(지진희 분)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내며 줄곧 말한다. '사랑해'라고, 하지만 그런 아내의 애닳은 사랑 고백에 대한 지진희의 반응은, '부담스러워'이다.

반면, 유재학과 밀어를 나누었던 나은진(한혜진 분)은 비를 맞으며 유재학에게 말한다. 어떻게 당신이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남편에 대한 연민이 깊어지냐고. 단 한 마디도 부인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지 않던 남편 김성수(이상우 분)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울음을 쏟아 놓고서는 내가 마음놓고 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너라고 고백한다. 
단 2회에 불과했지만, 이미 이혼을 들먹이고 있는 성수, 은진 부부와 달리, 오히려 보면서 저 부부는 어떻게 살까 라는 마음이 드는 건 재학, 미경 부부이다. 미운 정도 정이라고 성수, 은진 부부에게는 연민이나마 서로에 대한 마음이 남아있는데, 정작 결코 이혼을 하지 않을 거라는 재학, 미경 부부 사이에는 온기가 없어 보이니까. 그러면서 드는 질문은 부부는 무엇으로 살까? 하는 것이다. 


물론 이제는 학자들에 따라 지금과 같은 부부와 아이 중심의 소가족 형태가 인류가 인류이던 그 처음 시절부터 가지고 왔던 모양새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형태와 상관없이, 이른바 '사랑'이라는 이념을 중심으로 형성된 가족의 탄생은 근대 이후, 자본주의 체제의 탄생과 맞물리는 것으로 학자들은 정리하고 있다. 
우리나라 근대 문학의 거개가 집안에서 정해준 정혼자가 싫어 도피를 하거나, 자유 연애를 하는 이야기를 다룬 것은 그저 서양 조류에 따른 유행이 아니다.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은, 그저 경제적 제도의 변화만이 아니라, 그 경제적 제도를 담당하는 인간들의 모양새조차 그에 맞게 변화시켰으니까. 근대 이전의 농업 중심 사회가, 그것을 효율적으로 담당하기 위해 대가족 중심의 가부장적 관계를 추동시켰다면, 근대 이후의 핵가족 관계는 산업노동자로 재편된 근대적 인간형에 맞는 가족 구도인 것이다. 해체된 대가족을 등지고 도시로 흘러들어온 개별의 인간군상들을 맺어주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우리가 지상 최고의 이념으로 간주하는 '사랑'인 것이다. 개인의 자아가 공동체 속에서 함몰되어 살아가던 집단 일부인 개인을 일깨운 근대의 자명종이었다면, '사랑'은 그 개인을 근대사회의 근간으로 묶어놓는 '팡파레'였다. 

네 이웃의 아내
(사진; tv데일리)

그래서 우리는 철썩같이 부부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사랑'이라고 믿으며, <따뜻한 말 한 마디>에서 사랑업이 집안의 강원으로 결혼한 재학과, 그를 목숨을 다해 사랑할 것 같은 미경 부부를 '불행'의 편에 놓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네 이웃의 아내>에서 일찌기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아내와 결혼을 한 상식(정준호 분)과 경주(신은경 분) 부분가 문제를 원초적으로 내포하고 있다고 간주하게 된다. 경주의 선물을 낚아채 자신의 사랑의 증표로 만들어 버린 채송하(염정아 분)에 이르르면, 뒤틀린 관계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공공연히 떠도는 속설이지만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이라는데? 그렇다면 그 나머지 장구한 기간 동안 부부를 채워가는 것은?
흔히 우리 부모님 세대분들은 그 나머지를 채워가는 것을 '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 세대들은 웬지 징그러워한다. 마치 집안의 강요로 다시 만난 정혼자를 보듯이, 예전 같으면 소닭보듯 하는 게 당연한, 일찌거니 결혼을 했으면 손주 볼 나이가 된 부부조차도, 자신들의 사랑에 대해 고민하는 시대가 되었다. 왜?

'사랑'이라는 지상 최고의 이념으로 뭉쳤다지만, 근대 이후에 탄생된 가족은 우월한 남성 노동력을 과시하며 가정을 지탱하는 돈을 벌어오는남편과, 그 남편 아래에 복무하는 아내라는 가부장적 구조를 가져왔다. '정'으로 살아오셨다고 하지만, 당신이 살아온 세월을 이야기하자면 '홧병'이라는 대한민국 여성만이 가진 고뇌의 시간을 넣지 않고서는 구성되지 않는 인고의 시간을 줄줄이 읊어야 하는 우리 어머니 세대만 보아도 당장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대신 어머니들은 밖으로 도는 아버지 대신 가정을 장악하며 늘그막에 실권자로 등극하는 궁극의 권위를 얻는다. 

(사진; 세번 결혼하는 여자 은수 역의 이지아; 오마이 뉴스)

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 세대 이후의 자식들은 더 철저하게 '사랑'으로 뭉친다. 이제 월급 봉투를 가지고 위세를 떨 남편은 없으며, 남편과 아내는 동등하게 '사랑'으로 만나고, 가정 내의 관계도 동등하다. 동등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런데, 이제 그 '사랑'이 문제다. 남편과 아내로 만나 사랑을 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다. 세계 최고의 노동 시간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직장을 가진 남편과 아내들에게 집은 그저 머물 뿐, 대부분의 삶이 직장에서 이루어 진다. 그래서 오피스 와이프라는 단어가 탄생된 것이다. <네 이웃의 아내>의 상식과 경주처럼, 직장 내에서 만난 이들이 정작 '사랑'으로 이루어진 부부보다 더 알뜰하게 상대방을 이해하고 아끼게 된다. 그런가 하면 빈둥지 같은 집은 완벽한 아내 경주를 흠모하는 선규와 같은 증상을 발생하기도 한다. 꼭 필요만이 아니다. '사랑'과 같이 불현듯 찾아오는 감기와 같은 증상은, 우연히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난 은진의 밝은 모습에 마음이 활짝 열리는 재학처럼 어쩔 수 없는 열병에 빠지게 만든다. 이런 시대에 부부는 무엇으로 살아가야 할까? 그 질문을 드라마는 대신 물어주고 있는 중이다. 

3일 <따뜻한 말 한 마디>에서 이혼을 결심한 은진을 흔들어 놓는 건 '불행한 아이가 되고 싶지 않다'는 딸의 애절한 말 한 마디였다. <세 번 결혼한 여자>에서 처럼 이제 이 시대의 부부들을 고민에 빠지게 만드는 건, 개인의 행복과 개인을 희생한  가족에 복무하는 집단 구성원 사이의 갈등이다. 은수(이지아 분)는 자신의 행복을 짓밟는 시댁을 떨치고 이혼까지 감행했지만, 여전히 은수의 발목을 잡는 건,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이다. 
대부분의 부모 세대들이 이럴 때 시댁과의 갈등을 인고하며, 아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세월을 살았다면, 이제 드라마의 여주인공은 다른 선택을 한다. 아이보다 자신의 행복이 먼저라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따뜻한 말 한 마디>에서 미경의 배경이 되는 것은 완벽한 주부로써의 모습이지만, 이제 그것은 우리에게 공허한 울림으로 다가오는 시절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까지는, 아이들을 품고 기르며 온기를 나눠가질 공동체에 대한 끈을 놓지 못해 우리를 고민에 빠뜨린다. 자는 아이의 모습을 고민스레 바라보는 은진처럼. 

공교롭게도 같은 시간대 월,화 드라마로 방영되는 <네 이웃의 아내>와 <따뜻한 말 한 마디>는 표류하고 있는 이 시대 부부들의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그저 남의 집 부부 바람난 이야기가 아니다. 이 시대 부부의 속살이자 바로미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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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3.12.04 11:05

<따뜻한 말 한 마디>는 sbs에서 새로 시작한 월화 드라마이다. 

분명 방송국도 다르고, 출연진에 연출진은 더더욱 다르다. 그런데도, 첫 방송인 <따뜻한 말 한 마디>를 보는데 <비밀>같다는 느낌이 든다. 아니, 좀 더 솔직히 이 드라마도 <비밀>같을까?란 기대를 하게 된다. 

아마도 그런 기대의 상당 부분은 <비밀>이라는 드라마가 차지했던 자리가 워낙 컸던 탓이 클 것이다. 더구나, <비밀>이 종영된 이후, 그 드라마를 보고 느끼던 맛을 도무지 다른 드라마에서 찾을 수 없었던 공허감이 이제 막 오프닝을 마친 새 드라마에 대한 조급한 기대로 들이밀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막무가내식, <비밀>같다는, 혹은 <비밀>같은 드라마라는 건 뭘까?


<비밀>의 시작은 그저 그런 통속극같았다. 곧 검사 임용을 앞둔 전도양양한 사법연수원생, 그와 미래를 약속한 조그만 빵집 딸내미, 그리고 그들이 결혼을 약속한 날, 그들의 차에 숨져간 재벌집 자제가 집안의 반대를 무릎쓰고 사랑하던 여인. 한결 같은 사랑의 마음을 지닌 여주인공은 사랑하는 남자 대신 교통사고를 낸 죄를 뒤집어 쓰고,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과 그 여인의 배속에 있던 자신의 아이를 비명횡사하게 만든 사람에 대해 끝없는 저주를 퍼붓던 재벌집 자제는 복수를 다짐하는데......하지만, 드라마는 제목으로 내세운 <비밀>처럼 마치 끝없이 벗겨지는 양파껍질처럼, 통속극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갔다. 성공에 눈이 멀은 한 남자의 외면은, 눈덩이처럼, 사건을 키워가고, 그 과정을 통해,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었던 마음의 본질과, 상식적 관계의 뒷면, 심지어, 우리 사회의 본질적 모순까지 짚어보고자 했다. '비밀'이라는 드라마의 자막이 매회 화면 속에 출렁 떨어질 때 마다, 우리는 생각지 못한 비밀을 파헤치는 탐험가의 심정이 되어 가슴이 조여져 왔다. 

그렇듯, <따뜻한 말 한 마디> 역시 시작은 통속극의 모양새를 고스란히 보전한다. 은진(한혜진 분)과 성수(이상우 분), 그리고 재학(지진희 분)과 미경(김지수 분) 두쌍의 부부가 등장하고, 누군가의 외도로 또 다른 누군가가 상처를 받고 고통스러워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또 다른 누군가와 사귀고 있고. 하지만, 통속극의 보편적 코드, 외도와 불륜은 <따뜻한 말 한마디>의 첫 회부터 색다른 변주의 모양새를 보인다. 그저 '외도'와 '불륜'이라는 사건이 아니라, 이미 제목에서부터 제시하고 있는 부부 사이의 소통이 이 드라마의 관건이 될 것임을 충분히 첫 회에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첫 회 내내 은진과 성수 부부는 얼굴을 마주칠 때마다 많은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하지만 결국 첫회 마지막에 가서 은진은 말한다, 왜 서로 하나도 대화가 되지 않느냐고, 왜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런 은진의 절규에 대한 남편의 대답은 '반사'였다. 두 사람은 자신의 속에 담겨있는 말을 쏟아내면 낼 수록 외로워진다, 그런가 하면, 재학과 미경 부부는 살얼음판 같다. 미경은 계속 재학을 눈빛으로, 말로 사랑한다 하지만, 그런 미경에게 돌아온 대답은 결국 미안하다였다. 상황상으로는 사랑한다는 대답을 추궁한 미경에 대한 미안함이지만, 그 상황은 미경과 재학의 관계를 고스란히 상징한다. 

이처럼 <따뜻한 말 한 마디>는 통속극의 소재가 된 사건을, 그 사건을 넘어 또 다른 의미를 지닌 그 무엇으로 확장할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웰메이드 드라마 <비밀>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또한 드라마 제목에서부터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보여주었던 <비밀>처럼, 첫 회부터 서신으로 협박을 당하는 은진과,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벌어진 은진 부부 차량 사고 처럼, 미스터리의 영역을 장착함으로써, 통속극 이상의 재미를 열어두고 있다. 


(사진; 헤럴드 경제)

뿐만 아니다. 드라마 <비밀>을 통해 조토커 등 수많은 별명을 지닌 매력적인 캐릭터로 등극하게 된 지성과, 이제서야 연기파로 인정받게 된 황정음처럼, <따뜻한 말 한 마디>에는 새롭게 혹은 본좌의 모습을 보이는 배우들의 연기가 있다. 그들이 새삼스럽게 연기를 하는 게 아님에도, <비밀>이란 드라마를 통해 그들의 진가를 인정받게 만든 캐릭터가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따뜻한 말 한 마디>1회에서 선보인 은진 역의 한혜진의 연기는 왜 그녀가 결혼을 한 지 얼마 안된 새색시 임에도 이 작품에 욕심을 내었는지를 충분히 보여준 모습이었다. 한혜진은 빼어난 미모와 안정된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첫 히트작을 제외하고는 이렇다하게 연기로 주목받은 적이 없어 안타까웠었다. 그런 한혜진이었는데, <따뜻한 말 한 마디>의 첫 회 한혜진은 마치 그녀가 <굳세어라 금순아>의 그때로 돌아간 듯 통통 살아 움직인다. 모처럼 제 몸에 맡는 역을 얻은 듯하다. 
이상우도 마찬가지다. 항상 남의 아내와 바람이 나는 서브 불륜남으로 고착되는 듯한 그의 이미지가, 말이 안통하는 아내를 향해 막말하는 성수 역을 만나니 보는 시청자의 입장에서 다 속이 시원하다. 
이렇게 한혜진과 이상우가 그간 보여주던 연기와 다른 모습을 보이면서 활력을 불어넣는다면, 지진희와 김지수는, 그들이 가장 잘 하는 연기를 통해, 극의 분위기를 잡아주고, 안정감을 불어넣는다. 김지수의 알듯모를 듯한 표정을 띠며 인내하는 정갈한 연기와, 마지막에 홀로 스탠드를 켜고, 남편의 불륜이 증명된 사진을 바라보며 오열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 최고로 드라마에 온전히 몰입하게 만들었다. 이들의 연기에 대한 기대만으로도 <따뜻한 말 한 마디>가 기대가 되는 것이다. 

그에 덧붙여, 언제나 그렇듯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작가와 연출이겠다. 이미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를 통해 인정받은 하명희 작가는 <사랑과 전쟁>을 통해 갈고닦은 내공을 이미 1회 만에 넉넉히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또한 <비밀>의 절묘했던 연출을 그리워했던 사람들은, 어찌보면 뻔할 수 있는 은진과 재학의 밀회를 감성 넘치는 장면으로 연출하여 '불륜' 그 이상을 생각해 보게 만든 최영훈 피디의 연출력에 새삼 기대를 걸어보고 싶어질 것 같다. 

<따뜻한 말 한 마디>는 1회 만에 많은 기대를 품게 만들었다. 부디 그저 그런 결말이 아닌,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이 시점에, 우리로 하여금 부부 관계를 넘어 인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볼 웰메이드 드라마를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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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3.12.03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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