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회를 경과한 <냄새를 보는 소녀>의 관전 포인트는 제주도 해녀 부부 살해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그의 딸, 최은설이었던 오초림의 존재를 과연 최무각과 권재희 중 누가 먼저 알아낼 것인가를 두고 벌어지는 신경전이다. 또한 그 누구에게도 친절한 '스윗가이'이지만 목격자라는 이유만으로 대번에 칼을 그어 죽여버리는 잔혹한 살인을 서슴치 않는 냉혈한 사이코패스, 그리고 그 맞은 편에 가장 평범한 이십대 남자의 모습으로, 따스한 마음으로 자신의 동생과 그리고 이제 상처많은 오초림과 사랑을 가꿔가는 '온기넘치는' 무감각한 최무각의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이 있다. 그리고 그 숨막히는 신경전을 채워가는 건 온전히 최무각을 연기하는 박유천과, 권재희를 연기하는 남궁민 두 사람의 연기 자체이다. 



로코와 스릴러의 간극을 봉합하는 박유천의 '평범한' 최무각
8회에 이르러 이제 대놓고 '키스'까지 한 최무각을 두고 그가 '무감각한' 존재가 맞냐는 설왕설래가 있다. 이는 극 초반 얼굴에 피가 흐르고, 팔이 빠지면서도 범인을 향해 돌진하던 '무감각한' 캐릭터를 완벽하게 구현해 낸 탓에, 시청자들이 지레 그의 '무감각'을 '무감정'으로 오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 회 오초림을 부르는 '최은설'이라는 한 마디에 대번에 눈시울이 붉어지던 이 남자, 그의 무심한 표정은 동생을 잃고, 감각마저 잃고 삶의 의미를 잃었던 상실감의 표현이었다는 것을, 오초림을 만나 변화해가는 최무각이 설명해 낸다. 그래서, 강력계에 들어갈 욕심으로 '냄새를 보는' 오초림과 딜을 하기 위해 마지 못해 참여한 '만담' 과정에서 능청스레 변하던 그의 표정은, 오초림과 '썸'을 타며 감정이 자연스레 드러난다. 

그런데 그게 안쓰럽다. '동생 바라기'였던 장난기많은 한 남자가 그 동생을 잃고 '복수'만을 위해 살아왔던 '무감각한' 시간들이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또한 동생 또래의 오초림을 만나, 그녀의 틈을 헤집고 그녀의 속사정을 헤아리며 깊어가는 두 사람의 관계에서, 그저 '남녀 사이'를 넘어, 최무각이란 인물이 얼마나 따스한 인물인가를 알수 있도록 박유천은 '온기있는' 남자 최무각을 구현해 낸다. 

'로코'와 '스릴러'라는 무모한 결합을 시도한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두 극단의 장르의 이질성을 결합하는 건 실질적으로 온전히 박유천의 몫이다. 7,8회, 오초림을 만나 현실의 남자처럼 뒤끝 넘치게 '썸'을 타는가 싶더니, 동생을 죽였다고 믿었던 천백경의 죽음을 확인하고 지하주차장이 뒤흔들릴 정도의 '절규'를 한다. 막내로 들어간 수사반에서 그 누구보다 '촉'이 빠른 수사관이요, 처세에 능한 신참이다. 브리핑 현장에선 '쪽집게 강사'저리 가게 귀에 쏙쏙 들어오는 수사 상황을 전한다. 그런가 하면, 홀로 나간 컨테이너 수사 현장에서, 칼에 찔리고도 뒤늦게서야 그것을 알아차리고 땅에 고꾸라지는 무감각해서 안타까운 극적인 엔딩을 선사한다. '췌~'를 연발하는 코믹한 캐릭터와, 눈물어린 절규, 무감각해서 안타까운 피습씬까지, 도저히 화합하기 어려운 장면들을, 박유천이란 배우의 내공으로 온전히 풀어낸다. 그래서 때로는 무리수같은 개그씬도, 어설픈 수사 상황도, 장르적 분위기가 생소한 스릴러의 장면도 박유천이 풀어내는 연기의 스펙트럼 안에서 자연스럽게 봉합된다.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박유천의 연기가 보여주는 강점은 그가 이 작품을 하며 내보인 '평범한 연기'의 비범함에 있다. 데뷔를 하자마자 '스타'가 되었던 연예계 11년차의 그는 가장 평범한 현실 남자의 그것을 자연스레 보여준다. 동생을 잃은 따스한 남자, 사랑하는 이를 잃어 감각을 잃은 상실감, 분노, 그리고 이제 사랑하는 이를 만나 자연스레 빠져들어가는 젊은 남자의 그런 것들을 스물 아홉 최무각이란 우리 곁에 존재할 것만 같은 인물로 구현해 낸다. 가장 비정상적인 캐릭터를 가장 평범한 이십대 남자의 그것으로 설득해 내는 것이다. 그래서, 장르적 널뛰기를 하는 <냄새를 보는 소녀>는 박유천이 해석한 '평범한 이십대 남자'의 아픔, 고뇌, 설레임, 분노를 통해 자연스레 설득력을 얻어간다.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그런 그가 구현내 내는 우리 곁에 살 것만 같은 최무각에게서  불과 몇 년전 같은 작가의 작품이었던 <옥탑방 왕세자>에서의 이각, 역시나 같은 형사였던 <보고싶다>의 한정우, 비슷한 직업군이었던 <쓰리데이즈>의 한태경, 심지어 바로 전에 했던 <해무>의 동식과의 유사점을 좀처럼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욕심많은 배우의 한계가 어디인가 궁금해질 정도로. 



압도적 존재감의 사이코패스 권재희, 남궁민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린 천백경(송종호 분)을 살해하는 과정에서, 그가 남긴 '황금 물고기는 외로운 남자를 만나야 해'라는 의미심장한 한 마디와, 그에 근거한 '황금 물고기', '외로운 남자' 그리고 결정적으로 권세프에게 사로잡혀 있는 동안 천원장이 쓴 일기로 인해 권재희는 이제 8회까지 진행된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용의자 오초림의 존재에 가장 많이 접근한 인물이 되었다. 그가 한 발 한 발 사건에 접근해 가는 것만으로도 <냄새를 보는 소녀>의 시청자들은 가슴이 '쫄려온다' 그의 접근을 기대하고 잠복해 있던 병원의 최무각 팀들에게 보기좋게 '이벤트 남'을 통해 한 방을 먹이고 유유히 드뷔시의 '달빛'의 볼륨을 높일 때, 역대 그 어떤 사이코패스 보다 버전이 높은 권재희의 면모는 단숨에 드러난다. 하지만, 이런 캐릭터의 면모을 배가시키는 건 남궁민의 존재다. 

첫 회부터 주마리의 애인으로, 레스토랑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그리고 이제 죽은 천원장의 측근으로 그의 장례까지 치뤄주는 그가, 용의자 키 178~180 정도의 근육질 체격의 서울 말씨를 나긋나긋하게 쓰는 남자와 가장 유사한 외모를 가졌음에도 가장 유사한 존재임에도 쉽게 의심할 수 없는 것은 그의 '스윗함'이다. 매번 용의선상에 올라감에도 눈 하나 찡그리지 않고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는 여유로움, 다짜고짜 팔을 꺽고, 레스토랑을 찾아오는 불손함에도 능숙하게 대처하는 처세술에, 끈 떨어진 오초림을 거둬주는 자애로움, 거기에 요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잘 나가는 쉐프라는 직업까지, 보통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으로서 권재희를 그간 여러 드라마에서 여심을 울렸던 남궁민은 가장 자연스레 구현해 낸다. 

하지만, 그의 색다른 면모는, 6회, 그 부드러운 얼굴에서 눈빛 하나만 바뀐 순간, 시청자들이 소름끼치게 연쇄 살인범의 존재를 자각하게 만드는 그 순간부터 빛을 발한다. '연쇄살인'이란 미니 시리즈로서는 부담감있는 설정을, 가장 '스윗한' 연기에 일가견있는 잘 생긴, 심지어 바로 얼마전에 '가상 결혼'을 통해 연예계 화제가 돠었던 잘 생긴 남궁민이 연기함으로써 '살인 사건'을 마주하는 찜찜함을 한결 완화시켜 주는 동시에, 그 캐릭터의 간극으로 인해 스릴러의 긴장감을 배가시키는 것이다. 

그의 연기적 변신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2006년 영화 <비열한 거리>에서 일찌기 영화 평론가들은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인물이 조인성의 친구로 그를 배신하는 양면적 캐릭터를 연기한 민호 역의 남궁민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또한 최근 작인 <로맨스가 필요해2>나, <마이 시크릿 호텔>에서 그가 연기한 캐릭터 역시 신비로운 비밀을 지닌 음모적 인물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런 서사의 시작과 상관없이 언제나 로맨틱 멜로물의 장르적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던 이들 드라마는 남궁민이란 배우의 입지를 여주인공 바라기만으로 소모함으로써 아쉬움을 남겼다. 그의 연기적 스펙트럼은 장르물까지 펼쳐졌지만, 언제나 그의 연기는 '멜로'의 틀 안에서 숨죽여 왔었던 것이다. 그러던 남궁민이, 그가 가진 연기적 잠재력을, 지금까지 그 어떤 사이코패스보다도 극과 극을 오가는 권재희라는 인물을 통해 마음껏 풀어내고 있다. 잔잔하게 미소를 띠며 '내가 죽였는데'라고 말하는 장면을 남궁민보다도 전율을 일으키며 연기할 배우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냄새를 보는 소녀>의 스릴러는 남궁민으로 인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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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5.04.24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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