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예고한대로 <힐링캠프> 두 번째 설경구 편은 그가 그간 입다물고 있었던 이혼과 재혼에 대한 토로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결코 사람들이 생각하던 그런 불륜이 아니라고 항변하던 설경구는 송윤아의 손글씨 편지에 오열을 멈추지 않았고 최고의 아이돌 JYJ를 공부한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전처의 딸에게 열과 성을 다하고 있음을 피력했다.

그 결과 사실을 몰랐거나 오해했던 많은 사람들의 굳어진 마음을 풀어내는데 꽤 많은 일조를 한 듯하다. 하지만 한편에선 그들 부부에게 찍힌 분홍 글씨가 거둬져 보이기는 커녕, 분노를 고착화시키는 결과가 되기도 한 듯하다.

 

<직장의 신>첫 방영을 앞두고 주연 김혜수의 '석사 논문 표절' 시비가 일었다. 그러자, 김혜수는 제작발표회에서 아무런 변명없이 자신의 잘못이라며 석사 학위를 반납하겠다며 사과를 했다. 그러자, 들끓던 비난의 여론이 언제 그랬냐는듯 호의적으로 돌아섰다. '석사 학위 논문 표절'이라는 사실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는데 그 대상의 태도에 따라 사람들의 반응이 손바닥 뒤집듯 차이가 나게 된 것이다.

적적한 예일지는 모르겠지만 아이가 잘못을 저질러서 혼을 내고 있을 때 혼을 내는 입장에서 화를 북독으는 것은 잘못을 저지른 당사자인 아이가 잘못했단 말은 전혀 하지 않고 변명으로 일관할 때이다. 그저 잘못했단 말 한 마디면 되는데 구구절절 자신이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설명하면서 자신의 정당성을 증명해 내려 할 때 오히려 상대방은 더 화가 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상대방이 애초에 오해를 해서 야단을 치기 시작한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설명을 들어보니 오해를 한 것이 분명한데도 야단을 치는 당사자는 자신의 화를 쉽게 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야단을 치는 당사자가 옹졸하거나 편협해서가 아니다. 인간의 뇌가 그리 생겨 먹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지극히 자신이 이성적이며 판단력이 뛰어난 동물인 줄 알지만, 실은 대부분 인간의 판단은 그가 소속되어 있는 집단의 고정 관념이나, 선입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금까지 뇌과학의 연구 결과는 말해주고 있다.

지금까지 <힐링 캠프>가 택하고 있는 방식은 논란이 있는 당사자가 나서서 스스로 변명을 할 시간을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위험한 방식이 그간 제법 성공적이었던 것은 김혜수의 솔직한 사과처럼 당사자들의 '진정성'이었다. 하지만 요즘 떠들썩한 이슈의 대상이 되고 있는 박시후 편에 이어, 김래원, 이병헌, 그리고 이제 설경구 편까지 이어지면서, 슬슬 <힐링 캠프>가 내 건 '진정성'에 틈이 보이기 시작한다. 출연자들은 눈물까지 흘리며 읍소를 하거나, 진솔한 목소리로 진실이라 항변하지만 시청자들은 마치 늑대를 보았다고 거짓말을 한 소년의 이야기처럼 <힐링 캠프>를 바라보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설경구 편에 대한 상반된 반응처럼. 그리고 이건 <힐링 캠프>의 존재 자체의 위기다.

 

 

 

개인적으로 설경구가 구구절절 불륜이 아니었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물론 네티즌들 사이에 설왕설래되는 온갖 구설들을 들어본 적은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걸 다 믿지는 않는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가정 폭력조차 남의 가정사라고 간섭하지 않으려는 묘한 관습적 전통이 있는 나라로 버선 목도 아니니 뒤집어 보지 않는 한에서 남의 부부 일은 그 속을 모른다는게 대부분 사람들의 심정 아닐까?

그런데도 설경구 부부에게 오래도록 주홍 글씨 같은 낙인이 찍혀진 것은 '사실'이 아니라 '도덕적 불쾌함' 때문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오랫동안 함께 고생해 왔던 사람을 버리고 아름다운 젊은 사람을 선택했다는데 대한, 마치 김태희가 비와 교제를 했다는 사실만으로, 비는 대한민국 남자들에게 '국민 나쁜 놈'이 돼버리는 것같은 정서와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건 해명을 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세세한 변명보다는 이제는 지나간 일, 자신 때문에 이쪽 사람도, 저쪽 사람도 피해를 입었다는 읍소만으로도 충분했었다. 자신도 송윤아도 연기가 하고 싶으니, 이제 제발 맘을 풀어달라고 하는 게 나았다. 그런데 설경구는 구구절절 상세한 내용까지 들면서 해명하려 들었다.

거기서 더 문제인 것은 MC 그 중에서 김제동이 태도였다. 너무나 노골적으로 설경구에 대한 세간의 오해를 풀어주려고 하는 그의 언급 하나하는, 듣는 사람에 따라, 오해가 풀리는 게 아니라, 짜고 치는 고스톱같은 느낌을 주게 만들었다. 다른 때 같으면 조심스레 편을 들어주었을 한혜진조차 그저 지켜보는 상황에서. 그저 이경규의 아무 말없는 눈물 한 방울이 나았다.

 

 

그간 타 프로에서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출연진을 모셔가며 어느 덧 최고의 토크쇼로 자리매김한 <힐링 캠프>다. 하지만 화무십일홍이라고, 화려한 출연진에 걸맞는 '힐링'에만 신경을 쓰다보니, 대중과의 거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인터뷰어의 구구절절 필요 이상의 해명,인터뷰이의 중심을 잃은 편들기, 제작진의 출연진에 따라 노골적으로 차이가 나는 과도한 리액션, 프로가 끝나고도 여전한 설경구에 대한 논란처럼, 과연 이것이 모두가 힐링이 되는 길인지, <힐링 캠프> 설경구 편이 분명한 문제를 남겼다.

by meditator 2013. 4. 2. 09: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