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8회를 맞이한 mbc의 수목 드라마 <한번 더 해피엔딩>은 oecd 국가 중 이혼율 1위, 아시아 국가 중 1위인 대한민국의 현실을 배경으로 한다. 현실은 이혼율이 높지만 그래도 여전히 새로운 행복을 꿈꾸는 남녀들을 배경으로 드라마는 '한번 더 해피엔딩'을 꿈꾸고자 한다. 


그러니 당연히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각자 한번씩 이별의 아픔을 가진 남녀들이다. 여주인공 한미모(장나라 분)도, 그녀와 엮이게 되는 송수혁(정경호 분)도, 구해준(권율 분)도 다 한번씩 다녀온 '돌싱'들이다. 유수한 아침 드라마들이 이혼한 그녀들에게 멋진 총각을 배필로 선물한 것에 비하면 매우 현실적인 설정이다. 뿐만 아니라, 드라마는 8회에서 보여지듯이 한 직장에서 같이 일하는 전부인과 이제 새로이 만난 연인과의 사이에 긴장감을 조성하거나, 혹은 아들 때문에 지레 여자에 대한 마음을 접어야 하는 홀애비 송수혁의 사정을 등장시켜, '재혼' 과정에서 있을 법한 에피소드로 '한번 더 해피엔딩'의 현실감을 부여한다. 

하지만, 이렇게 매회 등장하는 해프닝과 사건들, 그리고 그를 보충 설명이라도 하듯 한미모의 재혼 컨설팅업체를 찾아오는 고객들의 사연이 엇물리며 '재혼' 과정에서 벌어질 법한 이야기들을 통해 공감지수를 높이려 하지만 <한번 더 해피엔딩>의 시청률은 좀처럼  6%대를 벗어나지 못한다. '재혼'을 둘러싼 상황 설정은 그럴듯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로맨틱물들이 지겹도록 반복한 여주인공과 그녀와 엮이게 되는 남자 둘의 미묘한 신경전을 울궈먹듯이 되풀이 한 점이 크지 않을까 싶다.



<섹스 앤더 시티>의 2016년판?
그러나 '사랑'이야기의 진부함만이 아니라, 어쩌면 <한번 더 해피엔딩>의 진짜 문제는 바로 이 드라마가 동지애적 연대로 등장시키는 한때 최고의 걸그룹이었던 '엔젤스', 그녀들에 대한 공감 부재가 크다는 것이다. 

<한번 더 해피엔딩>의 여주인공은 재혼 컨설팅 업체를 운영하는 한미모이지만, 극중 스토리는 그녀의 재혼 해프닝을 중심으로, 한때 그녀와 걸그룹을 이뤘던 고동미(유인나 분), 백다정(유다인 분), 홍애란(서인영 분)의 이야기로 채워져 간다. 

틈만 나면 브런치 카페에 모여 수다를 떨고, 고동미의 집에 모여 술잔을 나누는 그녀들을 보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작품이 있다. 2004년까지 무려 여섯 시즌에 걸쳐 제작되었던 <섹스 엔더 시티>가 그것이다. 뉴욕이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네 명의 여성들의 솔직한 '성' 담론을 펼쳐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이 드라마와 <한번 더 해피엔딩>의 구도는 놀랍도록 유사하다. 솔직담백한 성격으로 늘 해프닝을 만들던 캐리 역의 사라 제시카 파커는 역시나 첫 회부터 술로 인해 송수혁과 결혼 해프닝을 벌인 한미모와 흡사하고, 자유분방한 사만다(킴 캐트럴 분)는 가슴이 뛰지 않는다며 결혼을 미룬 홍애란이 겹쳐진다. 사회적으로는 능력있지만 여성적 매력이 부족한 미란다(신시아 닉슨 분)는 당연히 고동미가 연상되고, 소극적 여성성이 강조되었던 샬롯(크리스틴 데이비스)은 어쩐지 백다정같다. <섹스엔더 시티>의 그녀들처럼 <한번 더 해피엔딩>의 네 여성들은 모여앉아 허심탄회하게 '섹스'마저 가리지 않고 자신의 속내를 터놓고, 심지어 역할은 사만다와 백다정으로 달라지지만 '유방암'에 걸려 여성성의 상실을 고민하는 에피소드처럼 비슷한 상황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왜 2000년대 뉴욕을 사는 네 명의 젊은 여성들의 성과 사랑의 대명사가 되었던 <섹스 엔더 시티>와 달리, <한번 더 해피엔딩>은 이혼율 2위의 대한민국 현실을 반영하려 애쓰는 데도 동시대 여성들의 공감을 쉬이 얻지 못할까. 물론 <섹스 엔더 시티>를 방영할 당시 트렌디한 패션 리더의 대명사가 되었던 캐리처럼, 한미모 역의 장나라의 여전한 미모와 아름다운 옷차림새가 화제가 되기는 한다. 마찬가지로 권율이 잘 생기고, 정경호는 역시나 귀엽지만 그 또한 그뿐이다. 

아마도 그것은 드라마는 그럴 듯하게 서른이 훌쩍 넘은 여성들의 삶을 드라마로 재현한다고 했지만, 막상 드라마를 보며 그녀들의 현실적 삶에 공감을 얻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화제가 되었던 역시나 같은 방송사의 <그녀는 예뻤다>가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시작한 것은, 한때는 이뻤을 지는 몰라도 이제는 미운 오리 새끼처럼 외모도 사람들 눈에 띄지 못하고, 심지어 매번 입사 시험에 미끄러지는 '루저' 여성의 현실을 제대로 그려냈기 때문이었다. 외모도, 스펙도, 가진 것도 없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열정적인 김혜진(황정음 분)이 대번에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치즈 인더 트랩>의 홍설(김고은 분)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를 통해 연기력 논란이 되었던 김고은이 이 작품을 통해 사람들에게 재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현실 대학 교정 어디선가 마주칠 거 같은 고군분투하는 대학생 홍설의 모습이 김고은을 통해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사랑만 하는 그녀들의 부실한 삶의 이야기 
그런데 <한번 더 해피엔딩>의 한미모는 정말 이름답게 아름답지만 공허하다. 동료 백다정과 함께 재혼 컨설팅 업체 대표로 오랫동안 일해오며 실제 드라마 속에서도 숱한 고객들을 상대로 인터뷰를 하지만 그녀에게서 쉽사리 '일하는 여성'의 향기를 느낄 수 없다. 늘 고객의 상담을 통해 자신의 '사랑'을 오버랩시키는 그녀, 하는 일이라곤 직원이 가져다 주는 서류에 도장을 찍거나 지시를 내리는 것이 다인 그녀에게서 그 경쟁률이 치열하다는 결혼 컨설팅 업체의 ceo로서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극중 그녀가 하는 대부분의 일은 공주처럼 이쁜 옷을 입고 찾아오는 고객들과 인터뷰를 하며 자신의 사랑을 헤아려 보거나, 자신과 엮인 두 남자와의 밥 먹고 술 마시는 등 사랑 만들기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애초에 재혼 컨설팅 업체 대표임에도 자신의 사랑에는 여전한 환타지를 가지고 있다는 비현실적 설정답게, 한때 걸그룹이었다가 겨우 서른 중반 나이에 잘 나가는 재혼 컨설팅 업체대표가 되기 까지의 내공이, 드라마 속에선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건 한미모만이 아니라, 동업자 백다정도 마찬가지다. 마치 그녀들이 하는 일은 한미모가 '재혼'을 하기 위해서 '재혼 컨설팅 업체'가 필요할 뿐, 꽃집을 하거나, 까페를 해도 별무 상관일 상황처럼 보인다. 

그런 면에서는 그녀들의 동지 고동미와 홍애란도 마찬가지다. 학교 선생님인 고동미와 홈쇼핑업체 대표 홍애란도 일하지 않는다. 한때 걸그룹이었던 그녀가 비키니 차림으로 '호객'을 해 인기를 끌었다는 홈쇼핑업체 대표 홍애란이 드라마 상에서 유일하게 업무적으로 한 일이라고는 인기가 떨어진 자신의 홈쇼핑 제품을 들고 방송국에 가다가 후배를 만나 면박을 받고 방문 배달을 하다 팬을 만나기 위한 설정때뿐이다. 역시나 한때 걸그룹이었던 전력이 무색하게 양배추 인형같은 차림새로 바람둥이에게 당하고야 마는 고동미는, 흡사 <b사감과 러브레터>의 사감처럼, 여성성이 상실된 전문직 여성에 대한 편견을 재연하고 있는 듯하다. 

그녀들은 한가롭게 브런치 까페에 앉아 자신에게 찾아올 진실한 사랑을 부르짖지만, 결코 현실에서 자신들을 괴롭힐 잘 안되는 사업 고민이나, 혼자 사는 삶의 경제적 고달픔 따위는 논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이혼 현실에서 실제 가장 문제가 되는 이혼 후의 경제적 어려움 따위는 재혼 컨설팅 업체 대표에게는 논외의 이야기이듯, 자신에게 다가올 '사랑'에 목말라하는 그녀들에게 현실은 그저 장식이다. 당연히 그들과 엮이는 남자들도 고동미처럼 재수없게 바람둥이가 아니라면, 전처가 있더라도 의사이거나, 아들이 딸렸어도 기자라는, 심지어 아내의 투병을 알고 눈물 흘리는 자산가이다. 그저 하릴없이 나이 먹어가며 방치되는 자신의 성적 홀몬이 문제일 뿐, 홀로 사는 삶에 닥칠 경제적 위기나 어려움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로맨틱 코미디의 뻔한 클리셰를 덮을 '공감'지수조차 부족하니, 한미모의 미모만으로는 시청자의 관심 얻기는 역부족이다. 

by meditator 2016. 2. 12. 1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