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이어 <범죄 도시>로 그 흥행세가 주춤하고 있지만, 엇갓린 평에도 불구하고 <킹스맨; 골든 서클>은 청불 최단 기간 400만을 돌파하며 우리나라에서 1편에 이어 흥행의 호조를 보이고 있다. 


시즌을 '스타일'이 이어가다. 
<킹스맨>은 등장은 그 유래부터 007과는 다르다. 영국 정보부라는 국가 조직의 관리 하에 첩보원이 아닌, 영국 테일러 산업의 이익을 환원하기 위한 조직으로, 테이러 산업이 만들어낸 슈트를 '갑옷'처럼 입은 '원탁의 기사'들이 세계를 구하기 위해 나선다. 가장 '신사적'인 것이 요구되는 훈련 과정은 '왕실에 의한 작위'가 아니라, 그 '신사복'을 만드는 협회에 의해 주도된다는 '장인적 설정'이 이 '시리즈'의 관건이다. 그러기에 원작이 없는 2편에서 미국의 위스키 협회, '스테이츠맨'이 그들의 동지로 등장한 건 시리즈의 연장 선상에서 개연성을 갖는다. 



이렇게 협회가 만들어 낸 '킹스맨'에 1편을 본 사람들은 알다시피 온갖 신사 가문의 자제들이 지원한다. 하지만 정작 '킹스맨'이 된 건, '동지애'를 실천한 사투리를 쓰는 하층민 에거시(태런 에저튼 분)이다. 취지야 진정으로 '신사'의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킹스맨'의 자격이 있다는 말로써 '문화'의 본질을 짚는다. 

하지만 해학적으로 해석하되, 테일러 협회 수장과 재단사, 그리고알고보니 '나비 연구가',  뒷골목 소년에 의해 완성된 킹스맨은 그 어떤 '신사'보다 더 '신사스러운' 정서와 스타일을 선보인다. 안경, 우산, 가방을 활용한 무기하며, 007보다 더 007스러운 신사들이다. 2편에서 신사복을 벗은 에거시가 동네 친구들과 예의 사투리같은 자신의 언어를 쓰다가도, 킹스맨의 복장을 장착하면 어엿한 '신사'로 전투에 임하는 장면은 본투비 신사였던 007과 차별성을 부각시킨다.

이렇게 한 편에서 '신사'들이 무게 중심을 잡고 있는 가운데, 1편에서는 그런 '신사'의 반대 편에 지구를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바이러스같은' 인간들을 절멸시키겠다는 야욕을 가진 발렌타인(샤무엘 L잭슨 분이 등장한다. 그런데 '인간의 뇌'에 칩을 작동시키는 천재적 발상의 과학자 악인의 모습이 반전이다. 힙합 보이 복장에, 힙합스러운 어투로 '맥도널드' 햄버거를 대접하는 식이다. 



그런가 하면 2편에서 캄보디아 정글 속에 자신만의 '포피랜드'를 포진한 빌런 포피 역시 발렌타인에서 시대를 거슬러 7,80년대 미국 팝음악을 배경으로 현란한 색채를 덧입혀 그 시절 미국 거리를 재현한다. 거기에 그녀가 오만불손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살려준 인질이 바로 그 시절 대표적 팝스타 '엘튼 존'의 등장이 화룡점정이 된다. 

이렇게 1편에 이은 2편에서 <킹스맨>은 '전통적 영국의 신사 문화'에 힙합 문화와, 7,80년대의 파퓰러한 미국의 대중 문화를 대비시키며 '스타일'의 격전지로서 시리즈를 이어간다. 2편에서도 영화의 정점이라 하면 뜻밖에도 장엄한 '존던버'의 노래가 울려퍼진 가운데 멀린의 장렬한 죽음이었다. 영화 시작부터 빈번하게 에거시의 현란한 액션이 이어지지만 정작 공을 들여 보여주는 건 '스타일'의 전시이며, 그 '스타일'의 활용에 관객 역시 <킹스맨>을 다른 스파이물과 다르게 시선을 빼앗기게 된다. 작품의 호불호, 혹은 성패와 상관없이 적어도 <킹스맨>은 1편에 이어, 2편까지 '스타일'의 계보를 순조롭게 이어갔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을 듯하며, 그런 의미에서 과연 3편의 '스타일'은? 이라는 궁금증을 덧붙이게 만든다. 

그리고 남겨진 질문들
1편의 클라이막스에서 벌어진 인간 폭발의 '카니발'은 두고 두고 회자되었다. 심지어 가장 잔혹스런 장면에서 울려퍼진 위풍당당 행진곡은 이후 김지운 감독의 <밀정>에서의 차용 여부를 두고 논란이 될 만큼, 신선하고도 충격적이었다. 

그런 '충격파'에 대한 부담이었을까? 마치 1편만큼 쇼킹한 '인간 살육'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의 소산이기라도 하듯, '인간 분쇄기'가 2편에 등장한다. 1편과 같은 화려한 배경 음악도, 연출도 없이 가감없이 '인간'을 '햄버거 패티'로 만들어 버리는 장면, 심지어 꼭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인증이라도 하듯, 두 다리는 남겨두는 그 처단에 눈을 질끈 감은 관객들이 많을 듯하다. 

'가감없이 잔혹하다', 이런 평가에서 어쩌면 우리는 1편에서 간과했던 질문을 이제 다시 해보아야 할 지도 모른다. 1편의 발렌타인의 방식이나, 2편의 포피의 방식이나, 사실 보여주는 방식의 차이일 뿐이지, '생명에의 경시'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2편에서 그것이 전면적으로 드러남으로써, 1편의 그 '잔혹했던 살상'을 오버랩하며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리고 그 질문은, 1편에서 각국의 지도층 인사들이면서도 자신들의 안위 이상 지도자로서의 책임 의식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무차별 살상에 대한 살인에 대한 묘한 대리만족과 그럼에도 정당한가라는 질문은, 이제 2편에서 애꿏게도 그 대상이 된 '약물중독'의 존재론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 질문은 정작 포피를 제거하자, 등장하여 사랑했던 연인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로 킹스맨 일행이 해독제 버튼을 누르는 걸 저지하려고 했던 스테이츠맨이나, 미국 대통령의 결정에 대한 회의로 이어진다. 이처럼 <킹스맨>이 내세운 '정의'는 모호하다. 

마치 제국주의 시대 '신사'복을 입고 제국주의 영국의 첨병이 되었던 그들이 이제 영국 문화의 전통이 된 것처럼, 1편에서 인간 카니발의 제물이 된 각국 수뇌부의 목숨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려야 하는 임무나, 이제 2편에서 걷잡을 수 없는 필요악이 되어가는 약물 중독자에 대한 구급 버튼의 수호처럼, 현대의 신사들의 임무는 그 자체에 '딜레마'를 안고있다. 하지만, 그건 햄버거 패티가 되는 인간에 대한 반작용이 곧 '정의'가 되는 임무에서 '킹스맨'의 고민은 깊지 않다. 나비 연구가가 되는 대신 나라를 위한 길을 선택했던 해리의 고민이 그리 길지 않았던 것처럼. 

이런 식이다. 신사복을 입은 에거시에게 주어진 임무는 뜻밖에도 상대편 여성의 질 속에 첩보용 칩을 이식하는 것이다. 거기서 그가 고민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반응을 보인 '여성의 도구화'가 아니라, 자신의 약혼자에 대한 순결 여부이다. 어쩌면 가장 신사입네 하면서 그 신사적인 면을 숱한 '여성 편력'을 증명하는 007 시리즈와 차별성은 에거시의 결혼으로 마무리지은 소박한 순애보라 영화는 생각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영화는 '아이러니한' 설정들의 집합체이다. 전통을 가진 문화의 수혜자가 된 청년은 이제 신사의 제복을 입고 정의의 사도가 되어, 하지만 여느 스파이물 못지 않은 혹은 더 적나라한 액션과 살극을 펼친다. 그의 정의는 분명하지만, 그 결을 따지고 들어가면, 어쩌면 우리 시대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 투성이다. 이 모호한 시대 속에서 '정의'을 외치는 시도 자체가 가진 본원적 딜레마일지도. 

by meditator 2017. 10. 8. 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