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수목 드라마로 새로 시작된 <킬미힐미>는 <해를 품은 달>의 진수완 작가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일곱 개의 다중 인격을 가진 남자 주인공이라는 난해한 캐릭터로 인해, 전작인 <미스터 백>이 중반을 향하도록 캐스팅이 결정되지 않았었다. 심지어, 모 배우의 경우, 기사까지 난 후임에도 결정을 번복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지기도 하였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구원투수로 지성이 남자 주인공 차도현 역을 맡게 되었고, 그의 파트너로, 이미 드라마 <비밀>을 통해 멋진 앙상블을 선보였던 황정음이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추게 됨으로써 <킬미힐미>는 지난한 캐스팅의 장벽을 넘게 되었다. 하지만, 우려도 있었다. 전작 <비밀>에서 조미혁과 강유정으로 치명적 사랑을 선보였던 두 사람이 과연 전작 캐릭터의 그늘을 지울 수 있을까 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2회를 마친, <킬미힐미>에서, 도무지 <비밀>의 조민혁과 강유정의 흔적을 찾을 길은 없다.

 

<킬미힐미> 이것이 궁금해! 지성이 앓는 정신병 'DID'란? 이미지-3

 

대를 이어 불운한 사고를 당한 재벌 집의 손자인 도현은, 5개 국어를 장착한 엘리트에, 운동까지 잘하는 능력자인 승진 그룹의 승계 순위 1위의 인물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재벌에 대한 선입관과 다르게 그는, 말끝마다 '괜찮습니까?'를 덧붙이는 친절하고 세심한 사내이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는, 숨겨진 또 다른 여러 자아들이 있다. 첫 회, 그가 같은 학교 친구를 찾아간 곳에서 그의 아버지로부터 폭력을 당하는 과정에서 뛰어나온 인격은, 신세기, 샌님같은 차도현과는 정반대로, 온몸에 문신을 드리우고, 스모키한 눈매에 자신을 때린 학우의 아버지를 '눈에는 눈'식으로 때려 눕히고야 마는, 야성남이다.

 

반듯한 모범생같은 주인공의 또 다른 인격 야성남, 여기까지는 어디선가 많이 본 설정이다. 극중 여주인공의 입을 빌어 등장한, '지킬앤 하이드'의 양 극단의 캐릭터가 그러하고, 가깝게는, 미드 <닥터 제이슨>의 설정과 흡사하다. 더구나, 주인공을 제치고, 스스로 자신이 주인격의 자리를 넘보며, 그를 통제하고자 하고, 그의 첫 사랑조차 손에 넣으려는 설정은, <닥터 제이슨>의 그것을 거의 빼다 박은 듯하다. 게다가 밤의 사나이로, 가죽 잠바를 입고, 오토바이를 타고 거침없이 거리를 질주하며, 열 여자를 마다하지 않는 '섹슈얼'한 캐릭터는 또 어떻고. 그저, 신경 외과 의사 닥터 제이슨과, 그의 또 다른 반사회적이고 폭력적인 인격 '이안 프라이스'의 미드를 우리식 로코로 둔갑한 것이 <킬미힐미>가 아닐까란 우려가 들만한 설정이었다.

 

하지만, <킬미 힐미>는 차도현과 신세기가 '지킬앤 하이드'와 비슷하다는 것을 드러내놓고 논하더니, 2회 마지막, 가죽 잠바를 찾기 위해 볼모로 잡힌 오리진(황정음 분)을 위해, 얻어 맞으며 불러 내려던 신세기 대신, 여수 사투리를 걸쭉하게 내뱉는 페리 박이 등장하면서, 전혀 새로운 궤도를 그려내기 시작한다.

 

반듯한 차도현과, 거친 신세기까지는 그렇다치고, 어쩐지 경박한 여수 사투리를 쓰며 등장한 페리 박에 이르르면, 왜 이 드라마가, <해를 품은 달>의 진수완 작가의 작품이었음에도 선뜻 남주 주인공이 결정되기 힘들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페리 박뿐인가, 안요섭에, 미지의 인물 x에, 심지어 여성 캐릭터 안요나에 7살 나나까지, 대기중인 캐릭터가 네 명이나 더 남았고, 개성이 강한 그들을 온전히 남자 주인공이, 자신의 연기력으로 커버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많은 타 배우들이 지레 물러서고, 결국 그 몫이 배우 지성에게 떨어진 것이, <킬미힐미>를 시청하는 사람들의 입자에서는, 오히려 감사할 일이 되었다는 것을, 단 2회만에, 그것도 페리박의 경우, 단 한 장면만으로도, 증명해내었다. 남은 네 인격의 등장이 기다려 질 만큼.

지성만이 아니다. 제작 발표회에서, 지성이 화려한 연기를 펼쳐 보일 수 있도록 조력자의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말에 어울리게, 여주인공 황정음 역시, <비밀>의 강유정이 떠올려지지 않는, 오리진 그 자체이다.

황정음만이 아니라, 그 외의 인물 면면이, 드라마 속 캐릭터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적재 적소의 캐스팅으로, 드라마를 풍성하게 만든다.

 

물론, <킬미힐미>가 지금까지 선보인 이야기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우리 드라마에서 익숙하게 등장하는, 재벌가의 부의 승계를 둘러싼 암투와, 갈등이, 드라마의 주된 줄기를 이룬다. 하지만 뻔한 재벌가의 이야기임에도, 재벌가의 승계 순위 1위의 남자 주인공의 변주만으로도, 드라마는 전혀 새로운 색채를 띤다. 게다가, 그가 가진 일곱 인격의 사연과 상관 관계가, 흔한 재벌가의 암투를 넘어선, <킬미힐미>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요,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그리고 이미 신세기가 선언하듯이, 주인격을 둘러싼 여타 인격들의 살벌한 한 판, 그리고 그를 통한 '힐링'이 새로운 이야기로 이 드라마를 기대하게 만든다

by meditator 2015. 1. 9. 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