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5일 16회 <캐리어를 끄는 여자>는 국가대표 축구 경기로 늦게 방영된 jtbc 뉴스룸을 상대로 10.0%의 자체 최고 시청률을 달성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하지만 마지막 회를 제외하고는 주욱 8~9%로 주중 월화 미니 시리즈 중 2위를 유지하며 미묘한 포지션을 유지해왔다. 소위 쉽게 '망했다' 거나, '흥했다'라고 판단할 수 없는 경계선의 성과이다. 





이 성과를 좀 더 파고들어가 보자. 법정 드라마를 내세운 장르물의 관점에서 보자면 <캐리어를 끄는 여자>는 나름 '선방'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최지우'라는 '스타'를 내세운 '로맨스' 드라마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그리 흡족한 성과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늘 지난 몇 십년간 '멜로'의 대명사로 '발음' 문제가 그녀를 따라붙었던 연기력 논란의 배우 최지우가 능력있는 사무장에서 성공한 변호사로 거듭난 전문직 드라마를 깔끔하게 이끌어내다는 지점에서 본다면 <캐리어를 끄는 여자>는 최지우라는 배우에게 있어서는 또 한번의 질적 전환을 가능케 해준 드라마가 된다. 드라마가 한 편 마무리되었다고 해서 그걸 꼭 편가르듯 가를 필요가 있겠냐 싶지마는 그래도 그 성과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볼 때 <캐리어를 끄는 여자>는 생각해 볼 많은 여지를 남긴다. 

선방한 스릴러 
올 한 해 여러 편의 장르 드라마가 선을 보였다. 그리고 하나같이 모두 저조한 시청률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이 최고 시청률 7.6%(16회), <원티드>가 역시나 최고 시청률 7.8%(2회), 그리고 <뷰티플 마인드>로 가면 최고 시청률이 4.7%(3회)였다. 심지어 요즘 대세라는 박보검, 서인국이 주연으로 나온 <너를 기억해>도 최고 시청률이 5.3%(14회)였으니 누가 나온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니라는 걸 증명한다. 작품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심각한 드라마 기피증'으로 인해 아니 진지하게 주제에 천착하면 천착할 수록 드라마의 시청률은 반비례하는 암울한 성과를 올 한 해도 넘지 못했다. 이 상황이라면 공중파에서 주제에 천착한 장르물의 시도는 더더욱 쉽지 않을 수 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법정 드라마'에 '스릴러'를 가미한 <캐리어를 끄는 여자>의 평균 8~9%대의 시청률, 그리고 마지막 회에서 두 자리를 찍은 성과는 굉장히 흡족한 결과물이다. 결국 <시그널>이 공중파로 오면 '사랑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라는 우스개를 '법정 로맨스'라는 장르물로 나름 넘어선 <캐리어를 끄는 여자>가 증명해 버린 셈이 된다. 

<캐리어를 끄는 여자>는 능력있는 사무장이었던 차금주(최지우 분)가 의도치않게 노숙 소녀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잃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하지만 그런 그녀 앞에 나타난 백마탄 왕자, 아니 찌라시 언론사주 k팩트의 함복거(주진모 분)가 등장하며 이야기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이하 로코)의 양식을 띠기 시작한다. 거기에 순정어린 연하남 변호사 마석우(이준 분)까지 합류하면서 삼각 관계의 구도는 완벽해진다. 



하지만 드라마는 전직 검사였던 함복거가 사표를 던지게 했던, 그리고 차금주의 모든 것을 빼앗은 노숙 소녀 살인 사건과 그 배후의 '오성'이라는 로펌, 그리고 재벌가, 그리고 그들의 부도덕한 성스캔들을 '법정'을 배경으로 풀어내며 '법정'과 '사랑'이라는 양 날의 검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그리고 그 벼려진 두 날을 자유자재로 휘두르기 위해 배후의 사건은 다분히 '음모'적이고, 매우 구조적이지만, 그 다루는 방식에서는 찌라시 언론사 사주가 남자 주인공이고, 짝퉁 빽에 연연하는 속물 사무장이 여주인공이듯, 적당히 '통속적'이고, 적절히 코믹하게 강온 전략을 쓴다. 

결국 '법정'과 재벌가의 부도덕을 밝히기 위해 분투하는 '정의'를 다룬 장르물이라는 지점에서 적당히 진지하고, 적당히 달달한 <캐리어를 끄는 여자>의 새로운 '법정 로맨스'방식은 시청률 면에서 그 이전 장르 드라마들과 달리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래서 아쉽다. 노숙 소녀 살인 사건으로 시작하여 결국 재벌가의 부도덕한 성스캔들, 나아가  스폰서 의혹의 상징 '미식회'라는 드라마를 끌고 갔던 굵직한 줄기가 속시원하게 풀어졌는가라는 기본적인 의문에서 볼 때 물론 15,6 회 마지막까지 법정에서 공방을 벌이며 주제에 천착하려 했지만 어쩐지 아쉽다. 한 소녀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사건의 주범과 배후와 미식회의 핀트가 어긋나며, 시청자들이 '분노'의 촛점이 애매모호해졌고, 물론 억울하게 누명을 뒤집어 쓴 소년은 재심으로 굴레를 벗어났지만 과연 무엇이 해결되었는지 어리둥절한 채 드라마는 마무리되었다. 과연 그 악의 주체가 오성이라는 재벌이었는지, 그 재벌가를 장악한 며느리의 위악이었는지, 그게 아니면 재벌의 개라는 오성 로펌이었는지, 정작 드라마는 '개'들만 이리저리 몰다 끝난 건 아닌지 고개가 꺄우뚱해지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잔뜩 심각하게 벌여놓고 마치 실밥 풀리듯 쉬운 마무리에 결국은 '로코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아쉬움의 원인이 드라마 중반부에 들어서서 작가가 천착한 '로맨스'가 오히려 이들 장르물의 사건 전개에 발목을 잡는 결과가 되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건 '공중파'라는 한계 때문이었을까? 사실 그렇다고 말하기도 그렇다. 권음미 작가는 화성 연쇄 살인사건을 다룬 <갑동이>에서도 이와 같은 갈짓자 행보로 인해 드라마의 완성도에서 아쉬움을 남긴 바 있기 때문이다. 풀리지 않은 연쇄살인, 그 와중에 등장한 모방범, 그리고 이제서야 비로소 드러나기 시작한 가장 가까이에서 암약했던 진범, 하지만 드라마는 애초에 드라마가 천착했던 연쇄 살인의 본질에 다가가는 대신, 카피캣이었던 류태오(이준 분)과 갑동이로 인해 아버지를 잃은 형사 하무영(윤상현 분)과 오마리아(김민정 분), 마지울(김지원 분)간의 지리한 애증으로 시간을 허비하며 궤도를 이탈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한참 차금주에 의한 '오성' 로펌에 대한 수사로 속도를 붙여할 드라마는 뜬금없이 함복거와 마석우 사이의 애정 싸움으로 시간을 허비해 버린다. 물론 애초에 <갑동이>와 다르게 '법정 로맨스'라는 취지를 내세운 <캐리어를 끄는 여자>가 '로맨스'에 천착한다는 게 어패는 없지만 최소한 드라마가 이끌어 가는 본래의 궤도에서는 이탈하지 말아야 하는데, 권음미 작가는 <갑동이>에 이어 또 한번, 드라마를 전혀 다른 드라마로 만들어 버리며 호청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어 버린다. 덕분에 <갑동이>에서 양철곤(성동일 분) 형사의 활약이 아쉬웠든, 초반에 흥미진진했던 이동수(장현성 분)나, 강 프로(박병은 분)의 캐릭터가 서사의 횡보와 함께 용두사미가 되고 말았다. 



그와 그녀보다, 오히려 신선했던 그녀들의 이야기  
그 뻔한 첫 눈에 반한다는 식의 함복거와의 오글거리는 사랑도 그렇고, 다짜고짜 순정파인 연하남 변호사의 저돌적 애정도 그러려니 하면서 보긴 했지만, 오히려 <캐리어를 끄는 여자>에서 신선했던 것은 '여성'들이다. 

최지우라는 배우의 새로운 영역을 열어준 사랑스러운 속물 사무장 혹은 변호사 차금주의 캐릭터도 매력적이었고, 그녀와 견원지간처럼 으르렁거리다 동료가 된 구지현(진경 분), 그리고 16회까지 애증의 롤러코스터를 탔던 배다른 동생 박혜주(전혜빈 분)의 캐릭터도 신선했다. 거기에 재벌가의 며느리에서 재벌가의 비자금을 장악하고 안주인이 된 조예령(윤지민 분)도 매력적이었다. 차라리 어설픈 '로맨스' 대신 이들 여성들의 '육박전'으로 드라마를 치열하게 전개했다면 더 신선하고 멋진 드라마가 되지 않았을까? 

마석우가 가장 멋있던 장면은 안타깝게도 16회 마지막 그가 검사가 되어 차금주와 법정에서 팽팽하게 대립했을 때였다. 차금주가 멋졌던 것도 함복거처럼 법정에서 능력자로 그 능력을 십준 발휘할 때였다. 물론 장르물로써의 고심을, 그래서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에 대해 박수를 보내지만, 좀 더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위해, 권음미 작가가 잘 하는 것에 좀 더 천착한 차기작을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6. 11. 16. 16:55